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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보이가 주목한 오늘의 책 - 강신주이ㅡ 감정수업

by Richboy 2013. 11. 18.

 

 

   철학자 강신주 박사는 『위대한 유산』에서 핍의 희망과 좌절을 통해 “인간의 희망은 여전히 사람 그 자체를 향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속물은 속물을 만나고, 진지한 사람은 진지한 사람을 만나는 법이다. 이것은 불확실성을 내포하는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경험이 쌓이면 누구나 확실히 알게 되는 삶의 진리가 아닌지.” 이 책에서 저자가 감정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이유는 감정의 긍정을 통해 ‘살아 있는 나’를 위한 윤리학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강신주는 스피노자의 프리즘을 통해 인간 감정의 참모습을 찾아낸다. 그것이 바로 ‘건강한 자아’를 찾는 첫 걸음이자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첫 단추이다.

 

철학자 강신주가 읽어주는 욕망의 인문학
“자신의 감정을 지켜낼 용기를 가진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 『에티카』와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
“감정을 다스리려는 칸트의 이성이 아니라
감정을 긍정하고 지혜롭게 발휘하는 스피노자의 이성이 필요하다“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와 그의 저서 『에티카』는 철학사에서 많은 논란과 동시에 흠모의 대상이다. 이성 중심의 서양 철학 전통에서 ‘감정의 철학자’로 불리게 되는 혁명적인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강신주 박사는 스피노자가 정의한 48가지 감정을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하나하나 세심하게 설명해 준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성적인 존재일까? 이것은 감정의 강력함에 직면했던 인간의 절망스러운 소망에 지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한 번이라도 자신과 타인을 제대로 응시했다면, 누구나 인간이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이성은 감정보다 먼저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지어 이성은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 발명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성이 감정을 적대시한다면 언젠가 감정의 참혹한 복수 앞에서 자신의 무기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감정에 무조건적으로 적대적이었던 칸트의 이성과는 다른 종류의 이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감정의 쓰나미를 무모하게 막아서려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을 긍정하고 지혜롭게 발휘하는 스피노자의 이성 말이다.
―「프롤로그」에서

★ 철학자가 풀어주는 48가지 욕망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인간의 이성에서 윤리학을 시작하려고 할 때,
스피노자는 자신의 윤리학을 욕망에서부터 출발했다.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지닌 혁명성이다.“


우리의 현실은 이성보다 감정에 좌우되는 존재다. 하지만 나의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 감정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 모를 때가 많다. 내 옆에 있는 남자에 대한 끌림이 단순히 좋은 사람에 대한 호감일까, 아니면 사랑의 시작일까? 지금 연인에 대한 나의 감정은 연민일까, 진짜 사랑일까? 나의 선택은 올바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소심함 때문에 선택한 실수일까? ‘대담함’이란 감정은 용기와 동의어일까? 나의 친구가 좋아하는 사람을 나도 좋아하는 것은 진심일까, 아니면 경쟁심의 발로일까? 우리는 나도 모르는 감정에 이끌려 잘못된 판단을 할 때도 있다.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나의 감정을 분명히 파악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감정의 종류와 성격에 대해 인문학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개개인의 삶보다는 사회질서를 우선시하는 대부분의 윤리학자들이 스피노자를 그토록 비난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들은 전체 사회를 위해 개인의 욕망은 통제되거나 절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니까. 이렇게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자신의 욕망을 검열하는 것이 바로 ‘이성’의 역할이다. 결국 이성의 윤리학은 사회의 윤리학이지 ‘살아 있는 나’의 윤리학일 수는 없다. 욕망을 긍정하면서 스피노자가 복원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살아 있는 나’를 위한 윤리학이었던 것이다. 스피노자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를 욕망하는 존재이고, 당연히 나의 욕망을 부정하는 것과는 맞서 싸우는 존재이다. 그러니 만일 욕망을 억압당한 채 끝내 실현할 수 없다면, 우리는 살아도 죽은 것과 진배없는 것 아닐까.
―「16 욕망, 모든 감정에 숨겨져 있는 동반자」에서

★ 철학자가 읽어주는 48권의 소설
사랑의 감정은 질투라는 감정을 낳지만,
반대로 질투라는 감정이 사랑의 감정을 낳지는 못하는 법.
질투는 단지 사랑의 찌꺼기에 해당하는 감정일 수밖에 없으니까.


스피노자는 ‘비루함(abjectio)’의 감정을 “슬픔 때문에 자기에 대해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렇게 철학적인 명제를 일반 독자가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저자는 스피노자가 정의한 감정을 소설 문학을 통해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예를 들어 투르게네프의 『무무』에서 농노 게라심은 그토록 사랑하는 강아지 무무를 왜 자기 손으로 직접 강물에 던져야 했을까?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빼앗기고 나자, 게라심은 자신도 모르게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지 않는다면 사랑도 지킬 수 없다는 진실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기적이다. 나 또한 사랑의 기쁨을 지켜낼 수 있는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1 비루함,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감정」에서

‘야심’ 하면 우리는 보통 정치적, 사회적 욕망을 떠올린다. 하지만 저자는 좀 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들여다본다. 모파상의 소설 『벨아미』에서 철학자는 ‘야심’을 신성하고 순수한 욕망이라고 생각하는 사랑의 감정에서도 떨쳐버리기 힘든 욕망이라고 말한다.

사랑에도 이미 야심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사랑의 행복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자신의 행복을 알려 모든 사람들로부터 주목받고 싶기 때문이다.
―「5 야심,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감정」에서

『위대한 개츠비』에서 철학자는 순수한 열정으로 데이지를 사랑하는 개츠비의 꿈에 숨어 있는 ‘탐욕’의 욕망을 읽어낸다. “결국 개츠비의 사랑도 탐욕에서 출발했던 셈이다. 그러니 진정으로 위대한 것은 개츠비, 데이지, 그리고 톰을 가로지르고 있는 ‘탐욕’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는 ‘대담함’을 사랑과 관련시킨다. 주인공 윈스턴과 줄리아는 당국이 그토록 금지하는 사랑을 감행함으로써 빅브라더에 맞서려 했다.

대담함을 욕망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스피노자의 비범함을 발견하게 된다. 욕망이란 기본적으로 기쁨의 증진을 도모하는 작용이기 때문이다. 사랑만큼 살아갈 힘과 기쁨을 증폭시키는 경험이 또 있을까? 조지 오웰이 『1984』에서 모색했던 것도 바로 사랑의 파괴력, 그러니까 압도적인 힘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대담함이라는 감정이었다.
―「7 대담함, 나약한 사람을 용사로 만드는 감정」에서

알랭 로브그리예의 『질투』에서 철학자는 “질투의 바닥에는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고 싶은 감정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셈이다. 질투는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을 때 드는 감정이니까.”라며 질투의 본질을 드러내 보이는 한편, ‘질투’가 결코 ‘사랑의 증거’는 아님을 짚는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 화자에게 사랑이 완전히 복원될 수 있을까? 불행히도 그럴 수는 없다. 사랑의 감정은 질투라는 감정을 낳지만, 반대로 질투라는 감정이 사랑의 감정을 낳지는 못하는 법. 질투는 단지 사랑의 찌꺼기에 해당하는 감정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프랑크는 일종의 손전등과 같은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화자의 시선에 중심적으로 들어오지 않던 아내가 그의 눈과 마음에 들어온 것은 프랑크가 그녀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카메라 앵글과 같은 화자의 눈에 그녀가 다시 사라질 수도 있는 법이다. 프랑크가 더 이상 그녀를 주시하지 않고, 그녀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 순간 다시 북아프리카의 하루하루는 모든 활기를 잊고 무미건조하게 돌아갈 것이다. 무심하게 작열하는 태양에 널브러져 있는 모래알처럼.
―「28 질투, 사랑의 껍데기와 같은 서글픈 감정」에서

소설 읽기는 가상의 사회생활을 경험하게 만든다. 소설가들이 경험했던, 혹은 묘사한 소설 주인공의 감정들을 이해하는 것은 나의 감정을 이해하는 하나의 친절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철학자가 문학에서 예를 가져와 독자에게 친절한 설명을 해 주는 문학과 철학의 소통을 통해 헷갈릴 수 있는 개념들을 일상의 철학으로 끌어내려 친절하게 가이드해 준다.

★ 철학자가 들려주는 48개의 어드바이스
“감정을 다스리려


많은 독자들은 이미 「색다른 상담소」나 「벙커」 등을 통해 저자와 직간접적으로 상담을 접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년간의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어드바이스를 철학자의 시선으로 정제하여 담았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정체성』에서 저자는 사랑받는 사람이 ‘자긍심’을 느끼는 이유를 설명한다.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금방 자긍심을 회복할 수 있다. 내 자신이 충분히 소중하고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고서는, 어떻게 타인이 나를 사랑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겠는가.”

스토커로서 편지를 쓰기 위해 장마르크는 지금까지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던 샹탈을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지금까지 간과하고 있었던 연인의 매력,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그녀가 얻게 된 새로운 변화들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새롭게 찾아낸 샹탈의 모습에서 장마르크는 자신의 가슴에 사랑이, 과거와는 다른 색깔의 사랑이 새롭게 차오르는 것을 느낀 것이다.
―「2 자긍심,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발생하기 어려운 감정」에서

『여인의 초상』에서 철학자는 독자에게 ‘경멸의 대상’과는 단호히 결별할 것을 충고한다. “남편을 경멸함에도 불구하고 그와의 삶을 유지하려는 비겁함 때문에, 마침내 이사벨은 자신을 경멸하는 데 이른다.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경멸하는 대상과 단절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만이 자신의 소중한 감정을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레 미제라블』에서 공동체의 의미와 ‘박애’의 원리를 설명한다.

사랑의 원리는 무소유의 원리를 토대로 한다. 겨울 찬바람에 사랑하는 사람이 떨고 있다면 기꺼이 추위를 무릅쓰고 자신의 옷을 벗어 줄 것이다. 이럴 때 두 사람은 최소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공동체의 범위는 자신이 가진 것을 어디까지 나누어주느냐에 의해 측정될 수 있다.
―「10 박애, 공동체 의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너무나도 소중한 감정」에서

철학자 강신주 박사는 『위대한 유산』에서 핍의 희망과 좌절을 통해 “인간의 희망은 여전히 사람 그 자체를 향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속물은 속물을 만나고, 진지한 사람은 진지한 사람을 만나는 법이다. 이것은 불확실성을 내포하는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경험이 쌓이면 누구나 확실히 알게 되는 삶의 진리가 아닌지.” 이 책에서 저자가 감정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이유는 감정의 긍정을 통해 ‘살아 있는 나’를 위한 윤리학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강신주는 스피노자의 프리즘을 통해 인간 감정의 참모습을 찾아낸다. 그것이 바로 ‘건강한 자아’를 찾는 첫 걸음이자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첫 단추이다.

 

 

 


감정수업

저자
강신주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3-11-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철학자 강신주가 읽어주는 욕망의 인문학 “자신의 감정을 지켜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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