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베조스, 종이책보다 뛰어난 무언가를 창출하라!
2014년 매출액 253억 5,800만 달러(약 28조 6,000억 원)로 세계에서 가장 큰 인터넷 서점이자 종합 쇼핑몰인 이곳은 바로 여러분이 잘 아시는 아마존닷컴입니다. 아마존닷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1994년 7월 회사를 처음 설립했을 때의 이름은 ‘카다브라(Cadabra.Inc.)’였습니다. 마술사나 마법사가 외우는 주문,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를 줄인 말인데요. 아무도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자 7개월 후 베조스는 회사명을 아마존으로 바꿨습니다. 그 이유는 우선 발음하기가 쉬웠고, ‘A’로 시작하기 때문에 알파벳순으로 작성되는 어떤 리스트에서 앞에 나올 수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의 이름이라는 점에서 자신이 거대하고 높은 포부를 상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답니다.
아내와 함께 차를 몰고 이주하다가 사업계획을 떠올려 정착하게 된 곳이 시애틀이었고, 낡은 차고에서 자본금 300달러로 인터넷 서점 아마존닷컴을 창업했다는 후문도 있는데요, 이처럼 세계 최대 인터넷 쇼핑몰의 탄생치고 그 시작은 정말 초라했습니다. 이쯤에서, 왜 아마존은 최초의 전자상거래 업체로 서점을 생각한 걸까요? 왜 하필 책이었을까요?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조스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베조스가 청소년기 시절부터 독서광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단순히 책을 좋아해서 세계 최대의 서점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는 비즈니스를 하고픈 공학도였습니다.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전기공학과 컴퓨터공학 학위를 받고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한 제프 베조스는 동료들이 선망하던 벨 연구소 구애를 마다하고 벤처기업을 거쳐 월가 투자은행 ‘데이비드 E 쇼’ 사에 입사해 26세에 부사장에 오르는 고속승진을 했습니다.
“이봐, 친구! 요즘 급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기술이 있는데, 바로 ‘인터넷’이야. 앞으로 비즈니스를 일으키고 싶다면 이 기술에 주목해야 해.”
1994년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딩 시스템 개발자인 데이비드 쇼가 청년 제프 베조스에게 한 말입니다. 제프 베조스는 얼마 안 가서 매년 인터넷 사용자가 2,300%씩 증가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인터넷에 미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말이 매년 2,300%지 이것은 거의 세균 감염과 같이 기하급수적인 증가였으니까요.
문제는 ‘어떤 상품을 팔 것인가’였습니다.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베조스는 몇 가지 기회들을 분석하기 위해 ‘거래 흐름 차트’를 작성했습니다. 상품의 친근감, 커다란 시장 규모, 경쟁, 재고 확보, 판매 데이터베이스 구축, 할인 기회, 배송 비용, 온라인의 잠재력 등을 키워드로 고려 대상이 되는 20가지 상품의 리스트도 도출했습니다. 그는 오로지 온라인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원했습니다. 물리적 세계에서는 모방할 수 없기에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말입니다. 결국, 그가 찾은 답은 ‘책’이었습니다. 온라인 시장에 최적화된 제품은 다름 아닌 500년 전 탄생한 아날로그 시대의 대명사인 ‘책’이었습니다.
이제 책으로 전자상거래를 하는 사업비즈니스는 섰는데, 문제는 그가 직장인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는 수백만 달러의 연봉에 두둑한 보너스까지 받을 수 있는 안정된 일자리와 창업 사이에서 깊이 갈등했습니다. 하지만 알토란같은 직장을 버리고 달랑 비전만 보이는 전자 상거래를 선택하는데 그는 그리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떻게 이런 ‘미친 짓’에 가까운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나중에 그는 <원 클릭>이라는 책에서 그 순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먼 훗날 나이가 80세가 되었을 때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볼 때 어떤 결정을 가장 후회하게 될까’를 생각해 봤다. 그때 삶을 뒤돌아보면서 1994년 월스트리트에서 받던 연봉과 보너스를 포기한 일을 후회할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 어쩌면 그 일이 기억나지도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세계, 내 마음속 열정이 향하는 그 세계에 뛰어들지 않은 것은 크게 후회할 것 같았다. 설령 뛰어들었다가 실패한다 할지라도 후회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온라인 서점으로 시작해서 비디오와 DVD, 그리고 MP3로 분야를 넓혔고 이어 컴퓨터 소프트웨어, 비디오 게임, 전자 제품, 식료품까지 다양한 제품군으로 확대해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쇼핑몰로 거듭난 아마존닷컴. 제프 베조스는 이제 ‘500년 동안 존재해온 위대한 발명품’인 책이 변화해야 할 때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종이책을 넘어서는 종이책을 만들 수는 없다. 따라서 종이책으로는 불가능한 무언가를 창출해야 한다. 사전 검색, 글꼴 변경, 60초 안에 콘텐츠 무선 다운로드처럼 말이다. 종이책보다 더 뛰어난 서비스를 구축해야 한다.”
2012년 아마존 킨들 프레스 컨퍼런스 동영상
제프 베조스가 꺼내 들은 종이책의 후계자는 ‘킨들(kindle)’이라는 이북(e-book)입니다. 아마존의 킨들 시리즈는 독서가들에게는 꿈과 같은 책입니다. 전자책을 읽다가 본문 중에서 모르는 단어를 만나면 바로 사전 검색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읽고 감동을 받았거나 나중에 써먹을 대목을 만나면 밑줄을 치듯이 다른 색깔로 표시할 수 있고, 그런 구절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의 습관과 욕구를 오랫동안 정밀하게 연구한 성과를 킨들 UI(User Interface)에 녹인 것입니다.
아마존의 킨들 덕분일까요? 전자책 시장의 미래가 지닌 가능성은 엄청납니다. 시장조사 기관인 포레스터 리서치의 자료에 따르면, 2010년도에 소비자들은 전자책 콘텐츠에 10억 달러를 지출했으며, 2015년에 이 수치가 무려 30억 달러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시장 전문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소비자에게 팔리는 전자책 네 권 중에 세 권이 아마존에서 제공한 전자책이라고 합니다. 21세기 구텐베르크라 할 수 있는 제프 베조스의 활약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신용호 회장,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
제프 베조스가 세계 최대의 온라인 서점 아마존을 만들었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오프라인 서점인 교보문고를 만든 분은 창업주인 고(故) 신용호 회장입니다. ‘교보문고’ 하면 떠오르는 말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도 신용호 회장이 하신 말씀이고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명언 역시 이 분이 평소 하시던 말씀이라고 합니다. 주목할 점은 교육보험을 창안하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서점을 차린 신용호 본인은 정작 무학(無學)이라는 점입니다. 네, 대산(大山) 신용호 회장은 초등학교 문턱도 가지 못했습니다.
교보그룹 창립자 신용호 회장 경력(대산신용호기념사업회 홈페이지)
신용호는 1917년 가난한 선비 집안에서 육 남매 중 다섯 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폐병에 걸려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는 바람에 보통학교(초등학교) 입학 시기를 놓친 신용호는 친구들이 4학년 되던 해 새로 입학하려다 나이 많고 정원이 찼다는 이유로 거절당해 결국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배움에 목말랐던 소년 신용호는 17세부터 독학을 작심하고 3년간 ‘천일 독서’를 결정, 1,000일 동안 도서관이나 하숙생들에게 빌린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신용호는 책에서 만난 수많은 주인공 중에 특히 헬렌 켈러와 카네기를 존경했습니다. 건강 때문에 진학이 좌절됐기에 농맹아 최초로 대학 교육을 받은 헬렌 켈러에게 ‘도전정신’을 배웠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세계 최대 철강회사를 일군 앤드류 카네기는 소년에게 사업가의 꿈을 심어줬습니다.
어느덧 20세가 되자, 신용호는 돈을 벌기 위해 중국으로 떠났고, 1940년 24살 나이에 베이징에 곡물회사 ‘북일공사’를 운영하던 청년 신용호는 민족시인 이육사와 운명적으로 만나 사업을 통해 독립운동을 돕기도 했습니다.
이때 육사는 청년 신용호에게 ‘대사업가’가 되어 동포들을 구제하는 ‘민족자본가’가 될 것을 당부했는데요. 사업이 번창한 후 1958년 8월 7일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형성’을 설립이념으로 ‘대한교육보험’을 세웠습니다. 세계 첫 ‘교육보험’이 탄생하는 순간이고요, 교보생명이 태어난 순간입니다.
광화문 교보빌딩 전경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대한교육보험의 설립으로 교육보험 혜택을 받은 수많은 학생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해 경제성장의 주역이 됐습니다. 또한, 학부모들이 맡긴 보험금은 ‘민족자본’이 되어, 도로, 항만 등 국가 기간산업 구축에 이용됐습니다. 보험 사업이 굳건히 자리를 잡자, 신용호는 일본 도쿄 기노쿠니야(紀伊國屋)나 산세이도(三省當) 서점보다 더 크고 좋은 서점을 우리나라에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광화문 네거리에 사옥을 지으면서 지하에 교보문고라는 이름의 서점을 짓기로 합니다.
그러자 금싸라기 공간인 지하에 상가를 들여 돈 벌 생각하지 않고 서점을 짓는다고 임원들이 반발하며 반대했습니다. 신용호는 "서울 한복판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점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일갈했고, 1981년 서울 광화문 사옥 지하 1층에 당시 단일층 면적 세계 최대 서점인 교보문고가 문을 열었습니다. 이후 20년이 지난 2003년에는 교보강남타워에 축구장 넓이 2배에 달하는 교보문고 강남점을 개장했습니다. 기업의 이윤추구가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신용호 회장의 신념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1981년 교보문고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창업주인 신용호 회장은 다음과 같은 영업방침을 내렸습니다.
<교보문고 영업방침>
1. 모든 고객에게 친절하고 초등학생에게도 반드시 존댓말을 쓸 것
2. 책을 한곳에 오래 서서 읽는 것을 절대 말리지 말고 그냥 둘 것
3. 책을 이것저것 빼보기만 하고 사지 않더라도 눈총 주지 말 것
4. 책을 앉아서 노트에 베끼더라도 말리지 말고 그냥 둘 것
5. 책을 훔쳐 가더라도 도둑 취급하여 절대 망신주지 말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가 좋은 말로 타이를 것
곰곰이 살펴보면, 독서가들이 ‘서점이라는 보물섬’에서 마음껏 보물을 캐내려면 전제되어야 할 내용입니다. 1980년대 시대상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독서광 신용호의 소비자를 위한 깊은 배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신용호 회장은 교보문고 강남점 개장을 앞둔 2001년 암으로 6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교보문고 강남점 개점을 정말 보고 싶었던 그는 강한 의지로 준공식을 넘긴 2003년 9월 끝내 눈을 감았습니다. 후손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는 길은 더 나은 교육을 하는 것이라 여겼던 그가 평소 즐기던 말은 “아버지가 담배 한 갑을 줄이면 자녀를 대학까지 교육시킬 수 있다.” 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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