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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모음 - Readingworks/소설·비소설·인문·

지금 계시는 당신의 엄마를 부탁합니다!

by Richboy 2008. 11. 19.

엄마를 부탁해

저자 신경숙  
출판사 창비   발간일 2008.11.10
책소개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여자로서 엄마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우리 어머니들의 삶과 사랑을 절절하고 ...

 


아직은 엄마가 있는 행운을 얻은 당신, 당신의 엄마를 부탁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쯤인가보다. 방학인지 휴일인지 모를 석양때의 늦은 오후. 잠에서 깨었다. 푸욱 잠이 들었던지 깨어나니 개운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는 적막. "엄마~엄 마아~" 대답이 없자 순간 내가 누워있던 안방이 주욱 늘어나서 세 배의 크가 된다. 높이도 마찬가지 크기로 높아지고 있다. 크나 큰 방에 홀로 남겨진 기분. 황.망.함. 어려서 알 수 없었던 헛한 기분의 단어일 듯 싶다. 눈물이 흘렀다. 흘러 턱 밑지나 떨어지는 것을 신호로 난 크게 울었다. 무엇이 그렇게 서러웠을까 알 수 없지만 어디 있는 지 모르지만 당신이 있는 그곳까지 들리게끔 목청껏 한참을 울었다. 한참만에 옥상에서 이불빨래 널고 뒤집고 있는데, 다 큰 녀석이 왜 우냐고 들어와 어깨를 때리신다. 호된 매가 아팠지만, 눈물은 흘렀지만 웃었던 기억. 안심해서 일거다.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작가가 그러라 시켰다면서,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쌍과부 넋두리가 필요하다며 지방에 홀로 계신 이모댁으로 내려 가셔서 한참 만에 올라오신 적이 있다. 밑반찬을 잔뜩 만들어 냉장고가 터지게 채워놓고, 아름드리 솥에는 사골을 가득 채워 끓여놓고 가셨지만, 잠이 깰 때만 되면 오십 센치씩 방이 커져서는 엄마가 오신 날 아침에는 콧구멍만한 방이 운동장만큼 커졌더라며 왜 이리 늦게 왔냐고 푸념하는 동생녀석의 말을 들었을 때, 어린 시절의 그때가 생각났다. 오십 센치는 녀석이 느끼는 엄마의 부재감이었다.
 
  잔치를 앞두고 상경한 노부모. 그리고 지하철 문이 닫히는 바람에 칠순의 아내를, 칠순의 어머니를 눈 앞에서 실종되는데 그 후에 벌어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소설가 신경숙의 손을 빌어 한 권 가득 엄마의 부재감을 말하고 있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을 당한 가족이 엄마를 찾으면서 저마다 느끼고 있는 엄마를, 아내를 더듬는데 구구절절 가슴이 시린 기억들로 가득하다.
 
"세상의 대부분의 일들은 생각을 깊이 해보면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뜻밖이라고 말하는 일들도 곰곰 생각해보면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뜻밖의 일과 자주 마주치는 거은 그 일의 앞뒤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일 뿐." (40 면)
 
  아버지는 걸음이 빨라 엄마보다 늘 앞서 걸으셨고, 종종걸음을 바알간 얼굴을 해서 뒤를 쫓았다. 그렇게 살아왔었다. 하지만 단지 엄마는 뇌졸증을 앓아 몸이 성치 못해 그날은 그렇게 하질 못했던 뿐. 당연히 쫓아올 줄 알았던 아버지는 지하철을 탔고, 엄마가 타기 전에 문이 닫힌 것 뿐이다. 그리고 엄마는 머리가 아파 아들 집을 찾지 못하고, 연락처를 몰랐던 것 뿐이다. 자식들은 저마다 바빠서 서로 마중나가지 못했던 것 뿐이다. 그것 뿐인데 엄마는 온 데 간 데 없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상을 엉망으로 만든 것은 아버지와 엄마를 갈라놓은 지하철 문 때문이었다.
 
"아내를 지하철 서울역에서 잃어버리기 전까지 당신에게 아내는 형철 엄마였다. 아내를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기 전까지는 당신에게 형철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나무였다. 베어지거나 뽑히기 전에는 어딘가로 떠날 줄 모르는 나무. 형철 엄마를 잃어버리고 당신은 형철 엄마가 아니라 아내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오십년 전부터 지금까지 대체로 잊고 지낸 아내가 당신의 마음에서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라지고 난 뒤에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육감적으로 다가왔다."(149 면)
 
함께 있을 때는 의식하지 못한 당신의 말과 행동을 추억하고,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고 탓하고, 그동안 하지 못한 말과 행동을 탄식한다.
 
  "당신은 이 집을 내키는 대로 떠났다가 돌아오면서도 아내가 이 집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말한 아버지의 말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존재의 부재를 경험하는 가족들의 마음은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공허감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생각을 되돌려 엄마와 함께 했던 순간의 그녀를 더듬으며 '어쩌면 엄마를 잃어버리기 전부터 내 마음 속에는 엄마를 잃어버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후회를 거듭한다. 육 년전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보내고 난 회한이 작가의 손에서 되살아나 '당신의 글이 내 맘 같았다'고 자꾸만 말하게 했다.
 
  울컥대는 마음을 끝까지 잡지 못했던 대목은 '처음보는 새'로 변한 엄마의 가족에 대한 마지막 인사 장면이었다. 아쉬움이 남아 차마 저세상을 가지 못하고 가족 모두를 마음으로 나마 보듬는 그녀는 내 엄마를 닮았고, 세상의 엄마를 닮아서 언젠가 있을 내 이야기만 같아 시선을 고정하게 된다.
 
"언니,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뭍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낸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언니, 언니는 엄마를 포기하지 말아줘. 엄마를 찾아줘."(262 면)
 

  너의 여동생이 이탈리아로 떠나는 언니에게 보낸 편지의 말은 나에게 우리에게 말하는 듯 하다. 나의 하루만 힘든 것이 아니라 당신의 하루 또한 두 세배의 나이만큼 힘들고 고된 하루였던 것을 알라 말하는 듯 하다. 그리고 알고 있음을, 공유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 조금은 덜 후회스러운 하루가 될 것임을 명심하라 말하는 듯 했다. 책을 덮으며 전화해 보니 최근에 재미붙인 외국드라마를 시청하다 쇼파에서 곤히 잠든다 동생이 말했다. 추우실라 이불 꺼내 덮어드리라 말하고 안심하며 수화기를 내렸다. 틈이 나는대로 당신의 하루를 공유하고, 순간을 기억하리라 마음먹었다. 기회가 닿는대로 사랑도 전해야겠다. 곧 당신이 떠난 나중에 거듭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같아 얄궃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해야겠다 굳게 다짐하게 된다. 엄마라는 이름의 나무가 한껏 커진 기분, 이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면 가득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