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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재미있는 하루’가 어제 꿈꾸던 ‘내일의 행복’이다
“육군 훈련병의 하루 중에서 무엇이 가장 힘드냐?” 훈련병 시절, 퇴소식을 앞두고 ‘회식’이라며 십시일반 돈을 모아 빵과 음료, 과자들을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먹는 자리에서 내무반장이 던진 질문이었다. 퇴소를 앞둔 마당이라 무서울 것이 없다는 심정으로 너나 할 것 없이 온갖 푸념을 늘어놓았는데, 키는 관우에 생김새는 장비만한 고릴라(이름을 잊었지만, 성씨가 고씨였다. 그의 별명이다)가 떠들어대는 좌중을 물리치고 이렇게 말했다. “새벽 6시에 기상하는 게 제일 힘들었습니다.” 내무반장은 ‘네 말이 맞다’는 듯 박수를 치며 웃었다. “나 역시 신병 때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내 사수인 김병장이 알려준 방법을 너희들에게도 전해 주겠다. 아침에 눈을 뜨거든 기지개를 활짝 펴고 달력에 그려진 오늘에 X 표를 그리고 이렇게 생각해라. ‘아, 오늘 하루도 지났구나.’ 명심해야 할 것은 너희들이 제대를 기다리는 군인일 때만 그래야 한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났거든, 괴로워하지 말고 차라리 즐기라 했던가? 영화감독을 꿈꾸는 동기녀석 레디고는 군생활을 ‘병영체험중’이라 했고, 자동차를 팔던 동기 중고차는 ‘인맥을 쌓는 중’이라 했다. 난...내무반장의 말대로 매일 아침 달력에 X표 그리는 맛에 하루를 보냈다. 재미? 글을 쓰기도 어색할 만큼 재미에 대해 생각한 적이 없는 듯 하다. 재미있는 소설이라기에 읽었고, 재미있는 영화라기에 영화를 봤다. 그 재미를 즐겼던가? 너무 순식간이라 기억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재미, 재미? 궁금하다.
재미; [명사]
1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
2 안부를 묻는 인사말에서, 어떤 일이나 생활의 형편을 이르는 말.
3 좋은 성과나 보람. <출처: 네이버 사전>
재미는 기분이고 느낌이다. 그리고 보람이란다. 그리고 재미는 물건이 아니라서 누가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한단다. 우연하게 만나 재미를 느끼기만 한 것 같은데, 재미를 찾고 만나라니 구체적으로 재미란 게 무엇이고, 어떻게 찾아야 할지 난감하다. 그 방법을 한상복의 <재미>에서 찾아 봤다. “재미가 있다면, 우리의 내일은 더욱 설렐 것이다” 재미있는 삶에 대해 그가 한 말이다. 베스트셀러 <배려>로 잘 알려진 저자 한상복은 자기계발 우화를 잘 쓰는 우리나라의 몇 안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스스로를 ‘잡다한 것들에 두루 관심이 많은 B급 문화애호가’라고 설명했지만, 그의 책은 다소 딱딱한 주제인 자기계발 분야에 대해 쉽게 읽히고 재미있게 읽힌다는 점에서 스토리텔링에 능한 작가라고 봐야겠다. 재미있게 책을 쓰는 작가이기에 ‘재미’를 제대로 아는 셈이고, 그래서 <재미>라는 제목의 책을 쓸 자격은 이미 충분했다.
이야기는 단란하지 못한 한 가정에서 시작된다. 디자인 회사의 팀장으로 있지만, 실력에 비해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동료들과의 관계 또한 원만하지 못해 회사를 옮길까 고민하는 아빠와 처녀 시절엔 잘 나가는 학원강사였지만, 남편(아빠)와 결혼한 후 자신의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채 딸아이의 교육에 연연해 하며 열등감 속에 사는 엄마, 그리고 뛰어난 습작력을 지녔지만, 무관심한 아빠와 공부만을 강요하는 엄마 그리고 왕따를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아이. 이 세명의 가족은 특별한 것 같지만 내 가족, 이웃의 가족같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세 명의 가족은 모두 ‘힘들다’고 말한다. 아빠는 회사에서 일 때문에 스트레스로 힘들고, 엄마는 가정을 돌보랴, 아이 키우랴 일에 치이다 보면 ‘내가 없다’고 힘들어 한다. 아이는 싫은 공부는 해야만 하고,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해 또 힘들다. 내가 힘드니 가족들을 관심을 둘 여력이 없고, 대답을 한다 해도 좋은 대답이 나올 턱이 없다. 가족 모두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가족’을 미워한다.
나 역시 사랑하는(사랑한다고 믿는) 가족이 있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말 못할(굳이 못할 것도 없지만) 많은 고민과 근심을 안고 살아간다. 때로는 이 개인적인 고민과 근심 때문에 하늘을 원망하고, 생활을 비관하며 하루를 망치기도 한다. 그러면서 늘 후회하고 ‘인생사는 재미가 없다’고 느끼게 된다.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사는 방법은 뭘까? 저자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아이의 불만족스러웠던 일상이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하루를 살아가면서 놓치고 있는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아빠는 자전거를 타면서 작은 재미을 알게 되고 동료들의 취미를 이해하게 된다. 엄마는 갖고 싶었던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서 세상을 새롭게 보는 재미를 느끼고, 아이는 완소 영우와 친해지면서 학교다닐 용기를 얻는다.
“구입해서 소유하는 재미와 행복은 순간이고 그렇지 못할 때 불행을 느끼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에 빠져 얻는 그것은 오래도록 지속되고, 추구하고자 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어서 인생을 사는 동안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몰입>의 대가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는 말했다. 살아가는 재미란 좋아하는 일을 해야 잘할 수 있고, 내가 잘하는 모습을 스스로 느낄 때 비로소 재미를 느낀다. 일상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소소한 재미’를 느낄 때 하루가 즐겁고, 그 하루 하루가 모여 결국 인생이 즐겁고 행복해 지는 것임을 세명의 가족은 말해준다. 그리고 서로 다른 삶을 사는 것처럼 추구하는 ‘재미’ 즉 삶을 즐기는 방법도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끼리 대화가 어려운 이유는 인정보다는 이해를 앞세우기 때문이다. 먼저 상대를 인정해야 대화할 수 있고, 타인과의 소통도 원만해진다.
어쩌면 우리는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재미’를 희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일이 되면 또 다시 ‘내일’이 반복되서 결국은 내가 손으로 만질 수 없는 행복인데도 말이다. 내가 만질 수 있는 행복은 ‘오늘’에 있다. 오늘의 ‘재미있는 하루’가 어제 꿈꾸던 ‘내일의 행복’은 아니었을까? “탄생과 죽음은 돌이킬 방법이 없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막간을 즐기는 일이다.”고 미국의 철학자 산타야나는 말했다. 우리가 가능한 유일한 일은 매일같이 오늘을 열심히 재미있고, 즐겁게 사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을 두고 삶이 준 선물present 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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