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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럽게 힘든 자리, 대한민국 사장의 현실을 이야기한 책!
“넌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 고등학교를 팽팽 놀다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대학'을 들어간 동생. 두 달을 채 못넘기고 ‘너무 멀어서’ 다니기 싫다며 자퇴서를 제출한 녀석과 그날 밤 술 한 잔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물은 질문이었다. 못마땅한 심정을 싸잡아 던진 질문에 녀석의 대답은 가관이었다. “사장이요.” “사장? 뭐 하는 사장?” “그냥 사장이요. 여행사에서 여권 수속을 대행하는 알바를 하고 있는데, 우리 여행사 사장은 외제차타고 출퇴근 하고 일도 별로 안하는 것 같고 매일 밤마다 술 마시고, 골프치고 ... 폼나더라구요.” 기가 막혀서 술이 다 깰 뻔 했다. 난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선후배들과 동업으로 사업이란 걸 시작해 바로 조금 전까지 허리를 90도 아래로 절하며 거래처 관계자에게 접대하고 돌아오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월급쟁이로 살 껄’하며 거듭 후회를 했던 터 였기 때문이다. 애당초 생각부터 틀려 먹은 동생의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헛꿈일랑 일찍 깨어라, 임마. 네가 사장이면, 파리가 새다.”
모든 직장인이 한 번 쯤 갖는 꿈은 ‘사장이 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수 백, 수 천 명의 직원을 호령하면서 가장 높은 층, 가장 넓은 사무실에 앉아 세상에 이름을 날리는 이들이 사장이 아니던가? 일반 직장인 수십 명의 월급과 그 많은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이 사장이란 말이다. 일간지와 경제지에 매일 보는 수많은 CEO들의 성공스토리를 보고 있노라면 사장이라는 자리는 세상을 다 가진 사람들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보인다. 대기업의 회장은 언감생심 꿈이라 쳐도 멋진 창업 아이템으로 자수성가한 성공기업가는 누구에게나 열린 문이 아닐까? 뭐, 정 안되면 월급쟁이 사장 CEO는 어떠랴? 이런 생각 안 가져본 직장인 거의 없을게다. 나 역시도 며칠 전 읽은 리처드 브랜슨의 <내가 상상하면 현실이 된다>는 책을 읽고, 잠깐 동안 그가 되어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으니까.
그런데 정작 그 자리에 오르신 사장들 말씀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고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란다. 한마디로 ‘죽을 맛’이란다. 책 <사장으로 산다는 것>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장들은 마치 결혼한 녀석들이 총각들에게 ‘넌, 절대로 결혼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처럼 사장으로 산다는 게 그리 녹녹치 않다고 말한다. 첫 장을 펴면서 빈정이 상해 ‘엄살 좀 떨지 마시라’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섯 장 정도를 넘기면서는 조금 전의 생각을 얼른 주워 담았다. 저자가 말하는 그들의 하소연은 결코 엄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시 책의 앞표지를 살폈다. 제목을 미처 다 읽지 못했었다. <(사장이 차마 말하지 못한) 사장으로 산다는 것>이었다. 이 책은 사장이라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숨겨진 그들의 진짜 속내를 밝혀낸 책이다.
이 책을 집어든 데 에는 저자의 화려한 이력이 한몫을 했다. 일간지의 기자로 근무하다가 프랜차이즈 체인점을 운영해서 실패를 보고 곧이어 벤처기업을 차려 모두 6년 동안의 사업경험을 하다가 다시 주간경제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광원 기자가 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필력이 있는 기자가 관찰자가 아닌 당사자의 입장에서 펜을 들은 셈이다. 저자는 자기만의 사업을 꿈꾸고 있는 이들이나 꼭 사장이 아니더라도 조직의 리더가 될 사람들을 위해 CEO들의 마음을 대변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만난 CEO들 중에서 지금의 자리가 즐겁다고 한 사람은 있었어도, 쉽다고 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원고가 만들어지기까지 만 6년이 걸렸다는 저자의 고백이 무색하지 않았다. 경제지의 기자답게 수많은 기업가들의 인터뷰(기업과 실명도 거론된다)와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풍부한 자료들로 가득 했다. 내용의 특성상 인터뷰 역시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진실에 다가설 수 있었고, 사장이 되려는 이들에게는 소중한 자료로 남을 것 같았다(삼성경제연구소가 선정한 CEO가 읽어야 할 책으로 뽑힌 바 있다).
사장은 외롭다 - 사장의 자리가 외로운 것은 ‘고독한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직원이 조언을 하고, 참모가 아무리 자료를 풍부하게 마련을 한다고 해도 결국 결정은 사장이 해야 한다. 그 결정의 순간엔 아무도 없다. 결정에 대한 책임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회사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사인을 하는 순간은 직원과 그들 가족의 생존권이 위협받을까 두렵고, 사인을 안 하자니 회사 전체가 몰락할까 두려워 항상 힘들다. 특히 직원을 해고를 결정할 때가 가장 외롭다. 하지만 해고도 비즈니스다. 모택동이 대장정에 올랐을 때 나머지가 전멸할 것을 알면서도 군대를 3분의 1로 나눈 것은 중국공산당을 살리기 위해서였고, 제갈공명이 그가 아끼던 부하 마속의 목을 울면서 친 것도 군대의 기강을 위해서였다. 건물을 멀쩡하게 놔두면서 사람만 조용히 죽이는 중성자탄을 닮았다 해서 ‘중성자탄 잭’이라 불린 잭 웰치 역시 해고 역시 자신의 업무 중 일부지만 가장 싫고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장은 냉혹해야 한다. 외로움은 리더가 앓아야 할 병이다. 리더가 감내해야 할 형벌인지도 모른다. 외롭지 않으면 리더가 아니다. CEO가 된다는 것은 혼자가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경영자 10명 가운데 7명이 각종 질환으로 고생한다는 통계가 있다. 68.4%가 고혈압과 각종 질병에 시달린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더 큰 질병은 외로움일 것이다.
사장은 괴롭다 - 등대에 불을 켜고 밤새 등대를 지키는 일이 고독하고도 힘이 들 듯 사장은 회사를 지키기 위해 하루 24시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한다. 사장은 후회해서도 안 된다. 항상 앞을 보고 가야 한다. 사장이 제자리에 머물면 사원들이 앞으로 나아갈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끊임없이 나아가야 할 앞 길 역시 사장이 내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선장은 피가 나도록 혀를 깨문다”는 말이 있다. 생도에게 조종을 맡기면 더 이상의 지시를 하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어야 한다. 사장 역시 참아야 한다. 지시를 내리면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참아야 한다. 그래야 직원들이 스스로 자기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장은 무엇이든 솔선수범해야 한다. 이 말은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이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일을 자기가 하는 것이다. 무리를 이끌기 위해서는 드럽게 힘이 들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직원들에게 화는커녕 웃으면서 다독어야 하는 리더들. 겉으론 웃지만 속은 썩어만 간다. 그들은 오늘도 인내한다. 인내는 일을 느리게 하는 것도,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내가 나의 일 안에서 좌절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계속 고통을 받아도 손을 놓지 않는 것, 이것이 인내다. 사장의 길은 인내의 길이다.
사장도 때로는 월급쟁이이고 싶다 -
“ㄱ사장은 며칠 밤을 뜬 눈으로 새웠다. 한동안 입에 대지도 않던 술을 마셔보기도 하고 다리가 굳도록 달리기를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자리에 눕기만 하면 피곤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마음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참을 수가 없었다. 오른 쪽으로 눕고 왼쪽으로 눕기를 몇 십 번, 그러다가 결국 끙 하면서 일어나고야 만다. 담배를 피우면 좀 괜찮을까, 아내 몰래 저녁 무렵 사온 담배를 피워봤다. 벌써 25년이나 끊은 담배였다. 목이 컥했다. 호흡을 가다듬어 몇 모금을 빨아봤다. 휴··· 멍한 눈길에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담배연기가 들어왔다. 나도 저렇게 사라질까.“ (190 쪽)
새벽에 나가 자정에 들어오는 생활로 청춘을 바쳤던 회사의 수장을 맡아 여기저기 도장을 찍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사를 받게 된 어느 사장의 밤 이야기는 수사를 목전에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리더들의 그날 밤이 아닐까. 진실은 차지로 두고 우선 책임을 져야 하기에 그들이 갖는 비애는 무엇으로도 설명되지 않을 것이다. 성공하기 전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했고, 성공하고 나니 이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것이 리더의 삶이다. 공장 바닥에 떨어진 나사 1개에 대해서도 리더와 직원의 생각은 다르다. 직원은 달랑 20원 짜리 나사라고 보지만, 리더는 나사 1개가 빠진 채로 제품으로 팔렸으니 불량품 하나가 만들어진 셈이다. 한없는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고, 밀려오는 중압갑에서 해방되고 싶은 사람들이 리더들이다. 그들은 때로는 한 달마다 척척 나오는 월급을 받으며 즐거워하는 경리 여사원이 부럽기까지 하다. 입사해서는 사장을 부러워하며 뛰었지만, 이젠 말단사원이 부러워지는 아이러니를 겪는 사람들, 이들이 리더다. 직장인의 꿈이 결국 모순덩어리의 리더란 말인가 싶어 서글퍼졌다.
결론에 이르러 저자는 ‘사장도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리더는 너무 외롭고, 무척이나 괴롭다. 그리고 무리로 몰려다니는 직원들이 부럽다. 리더도 그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다. 리더들에게도 칭찬이 필요하고 위로가 필요하다. 아랫사람들의 칭찬은 리더도 춤추게 하고, 그들의 위로는 침몰하는 리더를 부레처럼 건져 올린다. 회사에 들어가면 ‘줄을 잘 서라’고 말한다. 그 줄에 사실 ‘리더’는 없다. 직원들은 당신이 사장감이라고 부추겨 나무에 오르게 해놓고, 땅에 서서 힘껏 나무를 흔들어 떨어뜨리려 한다는 것이다. 글을 마치면서 저자는 다시 한 번 리더(사장)을 보라며 이렇게 말했다.
“하는 일이 잘못되면 상처는 리더에게만 남는 게 아니다. 모두에게 남는다. 서로에 대해 고개를 돌리지 말아야 한다. 한 번 돌린 시선과 고개는 여간해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영어의 Think(생각하다)와 Thank(감사하다)는 같은 어간이라고 한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서로에게 감사할 일이 많다. 그들을 다시 한 번 바라보는 눈길이 필요하다. 그들도 인간이니까.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니까.” (에필로그 중에서)
호출기가 있던 시절 다방에서 ‘김 사장님’을 찾으면 열에 아홉이 일어났다고 했던가? 자영업자든 영세상인이든 무엇인가를 꾸려나가는 사람은 누구나 사장이다. 대로변에 위치한 담배가게의 주인도 사장이고, 골목 한 켠에서 호떡을 구워파는 노점상 주인도 사장이다. 차라리 제 한 몸 움직이는 작은 사장이라면 사업을 접든 펴든 제 마음대로 결정해도 상관없으니 마음이라도 편하겠다. 한 명의 리더가 제 눈으로 일사불란하게 관리할 수 있는 직원 수는 고작 스무 명이라는데, 그 이상의 수 백, 수 천의 직원을 책임진 사장들의 불안감과 고통은 어떻겠는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엄연한 현실은 리더가 직원의 입장일 수 없고, 직원이 리더의 입장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리더라는 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불평의 잣대 위에 올려놓고 그를 평가하기엔 그의 밑에서 리더를 손가락질하며 일하는 우리들이 초라해진다. 계급장을 떼고 본다면 리더는 우리의 동료다. 누군가 회사를 떠난다면 옆집 아저씨와 다름없는 사람인 것이다. 저자는 언젠가 그 자리에 올라서고 싶은 사람이라면 리더의 쳐진 어깨를 한 번 쯤은 인간적인 관심으로 봐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가벼운 위로와 칭찬이라도 건네보라고 말했다. 회사에서 가장 외롭고 불쌍한 사람은 그들일지도 모르니까.
지금껏 리더를 말한 책들이 그들의 업적과 겉모습을 이야기했다면, 이 책은 그 내면에 숨겨진 진솔한 리더의 모습을 말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는 책이다. 함부로 접근할 수 없어 뜬소문만 가득한 그들의 세계를 심도있게 조명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리더들에게는 위로를, 리더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책이었다. 직장인이라면 꼭 한 번은 읽어봄 직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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