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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모음 - Readingworks/철학·예술·교양

천하를 얻은 글재주 - 지식인들이여, 개인적 공명 때문에 변절하지 말라!

by Richboy 2009. 11. 29.

 

 

 

 

중국 고대 문인들은 자신의 공명을 위해 변절하거나 타협하지 않았다!

 

  혹시 이중텐(易中天)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가? 이 학자는 오랫동안 문학, 예술, 미학, 심리학, 인류학, 역사학 등의 분야를 두루 연구했고, 해당 분야에 대한 학제 간 연구를 통해 탁월한 글을 써온 학자로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본의 다치바나 다카시, 한국의 도올 선생과 같은 지성인에 비교할 수 있는 중국의 국보급 학자다. 그는 지난 2006년 CCTV의 '백가강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삼국지’를 강의하면서 일약 중국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비슷한 시기에 도올 선생이 TV 특강을 한 것이 우연일까 궁금하다). 고급지식의 대중화를 모트로 진행했던 백가강단 프로그램과 더불어 ‘논어’를 여러 주제로 나눠 작가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현대생활과 접목시켜 일반대중의 시각에서 읽기 쉽게 서술했던 위단의 논어심득論語心得 역시 중국에서 화제를 낳은 책이었다.

 

  공산주의 이외의 사상과 철학은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며 ‘현대판 분서갱유’로 불리는 문화혁명을 일으켰던 중국 정부가 21세기 들어 공맹을 논하고, 위인들을 살펴봄은 놀랄 만큼 의외다. 그에 더해 중국 정부가 적극 협조하여 공영방송을 빌려온 국민이 볼 수 있도록 지원했다하니 더더욱 놀랍다. 이유인 즉, 금세기 들어 어설픈 자본주의에 깊이 물들어 ‘물질만능풍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국민들을 계몽하기 위해서였다. 현재에 반기를 들어 이대로 가다가는 ‘차라리 굶주리던 모택동 시절이 더 낫겠다’는 원성이 나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근본根本이 없음은 말 못하는 금수禽獸와 다를 바가 아니다. 더욱이 중국의 사상체계라는 것이 왕조의 정통성을 수립하기 위한 실용의 사상이 아니던가? 현대에 들어 그런 실용주의적 사상마저 없던 중국 정부는 역사에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쉽게 말해 중국정부가 거들어 이중텐과 위단을 스타로 만들고 그들의 책을 초장기베스트셀러로 올린 것은 쉬운 말로 ‘이제 굶어죽는 시절을 면했으니 사람다워지자’는 일종의 범국가적 캠페인을 벌인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민들은 살림이 힘들어 양파 몇 뿌리라도 팔러나갈라치면 행여 누가 볼세라 이쪽저쪽을 살피며 마음을 조려야 했다. 개혁개방의 구호 아래 경제가 고속행진하면서 오늘날 중국은 놀랄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면서 억압으로 쪼그라든 욕망은 상품의 물결과 함께 팽창되고 또 팽창되었다. 쪼그라든 욕망도 문제였지만 부풀대로 부푼 욕망은 더 큰 무제가 되었다. 가치적 이성은 도구적 이성의 위협을 받은 지 이미 오래며, 이제는 비이성적 욕망만이 어지럽게 춤추고 있다. 돈이 생의 목적이 된 지금, 욕망으로 우리의 영성은 피폐해졌다. 욕망이 클수록 감사할 것은 줄어들고, 감사가 없으니 시흥詩興도 저만치 달아나고 말았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더 이상 시적 감동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본문 8 쪽

 

  책 <천하를 얻은 글재주> 역시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책이다. 약간의 차이는 있다. 앞선 국보급 학자들이 국민의 근본사상을 재수립하고자 했다면, 2008년에 출간된 이 책은 잠들어 있는 고대 문인들을 깨워 그들이 사랑한 자연과 욕망을 억누를 수 있는 통제력을 밝혀 ‘그 시절의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책이다. 해서 ‘천하를 얻은 글재주’라 해서 중국 최고의 문장가들의 글솜씨를 가르치는가 싶어 이 책을 집어들었던 나는 톡톡히 ‘사기’를 당한 셈이다. 하지만 원제목 또한 品中國文人, 즉 ‘중국최고의 문인‘란 뜻이어서 오십보 백보여서 괴씸했지만, 딱히 화가 나진 않았다. 그간 알지 못했던 중국 최고의 문인들의 짧은 전기와 그들의 名文들을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맛은 우선 저자에게 있다. 시와 인물에 정통한 저자는 단순히 명문가들의 전기를 읊은 것이 아니라, 동서고금의 문학을 접목해 현 시점에서 그들을 평가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과장을 빼놓으면 말이 안 되는 중국문학을 비평하는가 하면, 후대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과 아쉬운 점도 언급했다. 소설가인 저자의 문학적 감각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가독성 높은 스토리텔링을 갖춘 점은 중국문학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이 책을 읽는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해 줬다. 특히 이 책은 자국의 저자로서 문학의 최고봉에 있는 인물들의 작품들을 자신의 문학적 지식을 동원해 원전元典들을 찾고 비교해 사실 확인을 검증하고 있다는 점은 다른 책에서는 찾을 수 없는 차별성을 지녔다.

 

  그렇다면 이 책에 등장하는 기라성 같은 명문가名文家들은 과연 누구일까? 간략히 소개하자면 중국최초의 자유사상가 굴원屈原, 진정한 지식인의 초상 사마천司馬遷, 고대의 지식 장사꾼 사마상여司馬相如, 당대 최고의 풍류 명사 혜강嵆康, 자연을 닮은 영성주의자 도연명陶淵明, , 광기와 야성의 유랑 시인 이백李白, 속세의 고통을 대변한 관음보살 두보杜甫, 귀족과 평민을 오간 문학거장 백거이白居易, 어질고 따뜻했던 국왕 시인 이욱李煜 과 작품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저마다 성격이 다른 이들에서 호연지기와 자연주의라는 공약수를 찾아 소개했다.

 

  그 시절의 문인들은 한가로이 초야에 묻혀 시詩나 쓰는 문학가文學家가 절대 아니었다. 지식이 궁하고 책이 궁했던 그 때, 그들은 책 한 권을 내면 온 국민이 필사를 해낼 만큼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였고, 수많은 추종자들을 몰고 다니는 정치세력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한마디는 국민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기에, 여러 나라에서 제후로 스카우트 요청을 할 만큼 유명한 오피니언 리더였다. 군주의 귀에 거슬리는 진언을 하면 그 자리에서 목숨을 내놔야 했던 때였기에 신하들은 군주의 질문에 전전긍긍해야 했고, 마지못해 입을 열 때는 한 마디 한 마디 입술 밖으로 나오는 말들은 그야말로 ‘칼을 입에 무는 심정’으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 살벌한 시절에 굴원이 군주의 아둔함을 꼬집는 글을 살핀다면 명문가의 면모를 이해할 수 있다.

   

무리 짓기 좋아하는 이들 쾌락만 좇으니

길은 마냥 어둡고 험난하구나.

어찌 내 일신의 재앙만 꺼리랴.

임금의 수레 엎어질까 두려워라.“ 본문 56 쪽

 

  지금의 중국이라도 대놓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미디어가 있을까 싶다. 틀림없이 평생을 숨어 살아야 하던지, 붙잡히면 치도곤을 당할 것이다. 굴원의 삿됨이 없는 시詩만큼이나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사마천이다. 남성男性을 잃어버리는 궁형宮刑의 치욕을 당하면서까지 사기史記를 완성한 사마천에 대해 이 책은 많은 부분을 할애해 언급했다. 사기가 단순히 역사학서가 아니라 역사성을 갖는 철학서이자 문학서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사마천이 민중의 언어로 집필했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민중의 언어로 ‘사기’를 집필했다. 그는 궁정에서 일하는 사관이었지만 지배층이 언어 체계에 함몰되지 않았다. 권력과 언어의 함수관계, 지배자와 언어가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음을 잘 알았던 사마천은 일관되게 민중의 입장에서 역사를 기록했다. 지배 언어의 영향권 아래서 자기 언어를 갖고 또 지키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통치 권력의 나팔수 노릇을 자처하며 시대에 영합하는 어용학자들을 생각하면 사마천의 지성과 용기가 더욱 위대하게 느껴진다.”

본문 98 쪽

  그들은 스스로를 왕의 신하가 아닌 ‘주체’로 여겼다. 잘못을 보면 그름을 이야기하고, 듣지 않으면 귀에 대고 말했다. 군주가 뒤로 앉아 아예 쳐다보질 않으면 돌아서서 하늘을 보며 ‘군주의 무지함’을 시로 읊고 나왔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의 군주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군주를 움직이는 자신의 한마디가 온 나라 온 백성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진언이 먹혀들지 않으면 스스로 군주를 버리고 나라를 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소용을 감당할 군주가 나타날 때까지 초야로 들어가 자연自然이 되었다. 저자는 이들 명문가名文家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사람은 사람답게 자연은 자연답게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인간은 어쩌면 가장 힘없고 미약한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무엇이든 지배하려는 탐욕을 버릴 때 자연은 인간에게 화해의 손을 내민다는 것을 이들을 통해 배우라고 이 책을 통해 권하고 있다. 저자의 요구는 비단 중국의 독자에게만 쓸모가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오늘날의 지식인 특히 위정자나 오피니언 리더들은 자신의 공명을 위해 원칙을 버리는 변절이나 어떠한 타협도 거부하는 중국 고대 문인들을 살피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