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김용석 교수의 신간이 나왔습니다. 저는 예전 <두 글자의 철학>이라는 책에서 이 분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그 때 읽었던 리뷰를 잠깐 옮기면 이렇습니다.
"'관념적인 단어에 대한 철학적 해석'에 대해 어려워서 포기하지 않을까 했던 선입관으로 비롯된 두려움을 몇 장을 넘기면서 어리석인 기우杞憂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늘 내가 사용하고, 옆에 두었던 말들(단어들)이었는데, 이렇게 깊은 뜻과 이야기가 숨어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느낌은 감탄이 되고, 오해가 풀려 이해로 변했다. 정말 재미있는 과정이었다. 여느 책을 읽을 때와는 다르게 형상화되지 않은 관념들이 머리속을 떠도는데도 즐거움은 더했다.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리라. 더우기 뜻하지 않게 선택한 책 속에서 이런 재미를 느끼기란 실로 오랜만이었다. 저자의 책을 좀 더 찾아 읽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그리고 바람이 있다면 인류 최대의 화두이자 이 책에는 있을 법하지만 없는 '사랑이라는 두 글자의 철학'을 또 다시 저자의 손을 빌어 읽고 싶다."
이번에는 과학적 관심과 신화적 은유를 철학적 성찰에 연계하는 내용으로 <메두사의 시선>이라는 책을 폈군요. 다소 관념적이고 어려울 수 있는 철학을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잘 설명하고 있는 '김용석' 교수의 새 책을 소개합니다.
첨단 과학-기술이 시공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인간과 사물의 관계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 나아가 인간의 존재 자체까지 새롭게 정의하는 시대에 철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과학-기술이 이끄는 변화를 분주히 뒤쫓는 인간에게 그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만이 철학의 역할인가? 철학의 비판적 기능 이상으로 창조적 기능을 중요시하는 철학자 김용석은 첫 책《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이후로 줄곧 과학과 기술이 결합해 낳은 문명적 성과물이 우리 일상과 문화에 초래한 변화를 직시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현재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미래적인 문화 이론을 제시해왔다.
《메두사의 시선》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현대 과학이 구축한 새로운 삶의 조건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로 변해갈지, 또 그 변화한 인간은 세계를 어떤 모습으로 창조해갈지를 예측하고 전망하는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쏟아져 나오는 미래 예측서들과는 전혀 다른, 철학자만의 고유한 이야기 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구체적인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들을 신화 속 상징과 은유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독자 스스로 익숙한 이야기 속에서 질문하고 성찰하고 상상해볼 수 있도록 ‘생각의 장(場)’을 마련하고 있다. 이 책에서 신화는 단지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급격히 변화하는 인간의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변화, 변신의 서사로서 훌륭한 사유 매체의 기능을 하고 있다.
이 책은 메두사의 상징을 통해 자연의 모든 현상을 하나의 이론으로 통합하려는 과학의 욕망을 보여주는 1장과 과학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 광기에 이를 가능성이 그 모체인 철학, 즉 지혜를 사랑하는 행위에 원초적으로 내포되어 있음을 ‘사랑의 신’ 에로스를 통해 지적하는 2장에서 과학과 철학의 본질적 속성, 필연적인 전개 방향을 제시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이어지는 열 개의 장에서는 가치중립성을 고수하며 인간을 바라보지 않고 질주하는 ‘과학’을 향해, 끊임없이 인간의 길을 묻는 ‘철학’의 모습이, ‘신화’의 상징을 통해 펼쳐진다. 신화, 과학, 철학이라는 이 책의 세 주인공은 ‘과학-기술이 예술과 결합해 창조한 실재와도 같은 세계는 인간에게 어떤 기회와 위기를 가져올 것인가?’, ‘로봇이라는 새로운 타자를 인간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뇌과학의 시대, 영혼의 탐구는 유의미한가?’ 등등 21세기의 두 번째 ‘십년기’에 들어선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날카롭게 제기하고 있다. 독자는 그 질문들을 숙고하여 자신의 답을 찾아가는 동안 실험적 사유를 즐기는 철학 에세이의 정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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