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한 한국 소비자의 마음을 읽으면, 세계시장이 보인다!
세계적인 마케팅 구루, 베스트셀러 작가인 세스 고딘Seth Godin은자신의 책 <마케터는 새빨간 거짓말쟁이All Marketers Are Liars>에서 오늘날의 마케팅은 제품에 관한 객관적 사실정보만을 제공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고 진심이 담긴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마케터들이 돈을 버는 이유는 소비자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사는 대신 원하는 것을 사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는 것은 실용적이고 객관적인 것이지만, 원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며 주관적인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팔든, 그리고 그 상대가 기업이든 일반 소비자든 간에 이윤과 성장으로 가는 지름길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는 데 있다.”
마케팅을 뒤흔드는 소비자의 힘
그렇다. 오늘날 우리는 객관적인 '필요'보다는 비합리적인 '욕구'에 의해 선택이 많이 좌우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일용품을 만들어 팔면 돈이 되던 시절이었다. 그 때는 제품이나 오로지 서비스를 더 좋게, 싸게 만드는 것이 성장과 수익을 향한 확실한 길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규칙이 바뀌었다. 시장은 커지고 훨씬 더 넓어져서 더 싼 값에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넘쳐나고, 같은 값에 월등히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강점은 오래도로고 수익을 유지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기업이 소비자의 욕구를 먼저 알고, 한 발 더 앞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만이 살아남는 이른바 ‘소비자 주권’ 시대가 온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은 "소비자가 특정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유권자가 특정 후보에 투표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소비자는 자신의 소비 즉, '화폐 투표'로 어떤 제품이 얼마만큼 생산될지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소비자가 돈을 투표용지처럼 사용해 경제 주권을 행사한다는 얘기다. 소비자 주권은 자유시장 경제에서 주도권이 소비자에게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다시 말해 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만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 프로슈머prosumer라는 말이 있다. 이 용어는 앨빈 토플러가 1980년에 쓴 책 <제3의 물결>에서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소비자이면서 생산자로서 ‘판매나 교환을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의 이용이나 만족을 위해 제품이나 서비스 또는 경험을 생산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과거에는 물건을 파는 기업의 광고물이나 홍보전략이 매우 중요했지만, 이제는 자생적으로 발생하는 프로슈머들의 콘텐츠가 다른 고객의 물건 구매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급속한 발전은 프로슈머의 위상을 한층 돈독하게 만들었다. 제품과 서비스를 구입한 소비자가 상품평이나 이용 후기, 리뷰 등을 통해 능동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마케팅의 핵심으로 소비자들의 평가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기업이 소비자 주권 시대의 프로슈머로 대변되는 깐깐한 소비자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니즈와 욕구’를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소비자는 과연 무엇을 원하는가? 그에 대한 대답이 되어줄 예가 있다.
2009년 말 영화 <아바타Avatar>가 처음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역시 제임스 카메론이다’고 열광했다. 헐리우드에서 7억 6,0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국내에서도 외국영화로는 처음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석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총 1,330만 명을 동원해 국내 최다 관객 기록을 경신했다.
또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를 꼽으라면 단연 아이폰i-phone이다. 애플Apple은 2007년 6월 말 아이폰을 판매하기 시작해 3년 만에 5,000만대를 판매했고, 어플리케이션 구매액은 80억 달러에 달해 세계 IT 시장에 대변혁을 일으켰다. 2009년 11월 조금은 늦게 국내에 판매되기 시작한 아이폰은 국내 도입 100일 만에 40만 대를, 그리고 6개월 만에 70만 대를 달성했다. 이는 하루 평균 4천 명이 아이폰을 구매한 셈이다.
소비자들이 ‘아바타’와 ‘아이폰’에 이토록 열광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바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아니, 아바타와 아이폰은 소비자가 어떤 욕구를 느끼기도 전에, 제품을 내 놓아 소비자가 나중에 스스로 ‘욕구가 있었음’을 알게 했기 때문에 더욱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한 아바타와 아이폰은 기존의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패러다임을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바타는 기존 영화의 한계를 뛰어넘어 컨텐츠와 테크놀로지 산업이 결합된 3D, 4D의 입체영상으로 소비자의 인식을 변화시켰고, 아이폰은 통화기능 중심의 휴대전화를, ‘미니 컴퓨터’로 대변되는 스마트폰으로 변화시켰다.
다시 말해 소비자를 기술 혁명의 대전환기에 서 있게 함으로써 증인으로서 이것을 직접 경험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소비자의 욕구와 니즈에 한 발 앞선 혁신적인 기업의 혜안 덕분이었다.
아이폰과 때를 같이 해서 국내 전자업체에서도 스마트폰을 만들고, 아이패드i-pad의 대항마로 태블릿 PC를 내놓았지만, 성능과 가격의 우수함을 비교하기에 앞서 국내 소비자들이 국내업체에 아쉬워하는 것은 애플처럼 소비자보다 한 발 앞서 ‘다르게 생각하는think differently’ 혁신innonation의 부재일 것이다. 소비자들은 지금 ‘신제품’이 아닌 ‘내가 원하던 제품’을 바라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이 한 권의 책에 그들의 생생한 욕구를 담았다
그런 점에서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한경BP)는 국내 기업들과 직장인들에게 반가운 책일 것이다. 이 책은 소비자 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동안 10억 원이 투입되었고, 데이터 신뢰도 확보를 위해 국내 최대 소비자 패널을 보유한 기업의 58만 패널이 참여하여 도출해낸 소비자 리서치 결과물로 만들어졌다. 이 방대한 데이터들은 다시 권위 있는 트렌드 전문가로 잘 알려진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와 그의 연구팀이 참여하여 분석되어 깊이를 더하고 있다. 한마디로 ‘시간, 비용, 규모 면’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책이다.
지금껏 소비자의 소비 심리와 시장 트렌드의 흐름에 대해 언급된 책이 없지 않지만, 우리와는 환경이 다른 해외의 통계 자료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이들 외국 자료를 통해 국내 소비자들을 어림짐작으로 재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간혹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자료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데이터를 도출하려면 많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인력이 소요므로 고객의 채 1%도 되지 않는 트렌드 리더(트렌드세터trendsetter라고 불린다)들을 표본으로 조사하곤 했었다.
그에 반해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는 소수의 특정부류가 아닌 전체 시장을 구성하는 일반 소비자mass consumer의 생생한 욕구와 니즈를 담고 있다. 소비자와 시장 환경의 정확한 분석을 위한 방법론을 개발하는 전문가들답게 심도 깊은 질문과 내용들은 여느 설문지들과 다르고 매우 인상적이다.
점점 더 까다로워진 소비자와 시장의 불확실성까지 더해진 요즘 정확한 ‘소비자 정보’는 기업과 개인에게 가뭄철 단비와 같다. 수십 만 소비자 패널을 활용한 이러한 ‘소비자 정보’의 데이터는 희망사항이 더해진 예측이 아닌, ‘엄연한 사실fact'이고, 이것은 다시 소비자의 강력한 요구로 해석된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업군을 IT/자동차, 미디어/여가생활, 건강/라이프스타일, 학습/투자, 소비/행복 등 5개 영역으로 나누고, 각 영역에 대한 소비자의 니즈가 무엇인지 접근할 수 있도록 다시 17개의 아이템으로 세분화해서 질문한 내용과 응답을 독자들이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표와 그래프로 설명했다. 아울러 데이터로 도출된 사실들을 잘 이해하고 예측도 할 수 있도록 스토리로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그 중 인상 깊었던 항목의 결과 몇 몇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스마트폰 열풍이 불고 있는 <이동통신>에서 소비자들은 휴대폰은 여전히 전화기인 반면, 스마트폰은 휴대폰이 아닌 ‘미니 컴퓨터’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저자들은 스마트폰이 휴대폰을 대체하는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거라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만약 휴대폰과 스마트폰이 동시에 존재한다면, 양손에 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환골탈태해야 하지 않을까?
한편 <휴대용 디지털 기기>에서 아이패드는 소비자 역시 스티브 잡스의 생각대로 넷북과 전자책 단말기의 중간으로 여기고 있다. 안방용 아이패드냐, 휴대용이라며 7인치로 줄여 대항마로 등장한 삼성전자의 갤럭시 탭이냐 세간의 시선이 주목되지만, 아직 소비자의 선택은 미지수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소비자의 필요를 만들어내는 것이 제품의 ‘지속성’이라면 어느 제품의 ‘어플리케이션’이 우위를 점하는가에 승패는 갈릴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트위터Twitter로 대표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는 스마트폰의 보급에 비례해서 애용될 것이다. 특히 트위터는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SNS이기에 더욱 인기를 구가할 전망이다. 한편 양방향의 소통 관계를 전제로 한 SNS가 홍보의 수단으로 사용되는데 대한 효과는 온전히 소비자인 유저들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기업은 홍보에 앞서 ‘관계의 유지와 관리’ 그리고 ‘관계의 확장’을 고민해야 한다.
<경차와 에코차>에서는 유가상승과 경기불안으로 소비자의 관심이 경차와 에코차에 쏠려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경차의 경우는 안정성, 에코차의 경우는 높은 차량 가격과 기술에 대한 불신이 취약점으로 남아 있다. 또한 한정적인 경차와 에코차의 종류는 상대적으로 먼저 참여해 다양한 기술력과 종류를 보유하고 있는 수입자동차 브랜드들에게 시장을 잠식 당할 우려감도 없지 않다. 국내 자동차기업의 발 빠른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소비자의 <건강관리>는 의외로 게으르다. 건강하고 싶지만, 몸과 머리를 움직이기는 귀찮아 한다. 소비자들은 편리함을 추구한다. 다이어트와 운동대신 굶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보다 쉽고 편리한 건강관리법이 필요하다.
이외에도 <커피>에서 커피전문점의 증가는 ‘커피 맛’이 아닌 소비자들이 일으키는 ‘관계의 중요성’ 때문이고, <유통채널>은 인터넷 쇼핑몰과 TV홈쇼핑의 등장으로 구매패턴이 완전히 바뀌었지만, 그들이 가진 한계가 있으므로 대형 할인마트나 편의점 등 오프라인 유통채널은 더 나은 혜택을 주는 변화가 요구된다.
한국 소비자를 읽으면 세계 시장이 보인다
이 책은 자영업자를 비롯해 비즈니스맨은 물론 기업의 CEO까지 ‘내 고객의 생각’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라면 일독할 만하다. 특히 자금도 없고 방법도 몰라 ‘소비자 조사’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CEO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자료가 되기에 권하고 싶다. 5가지 영역에 속하는 17개 분야의 상품군의 소비 조사는 개별적으로도 유익하지만, 서로 복합적으로 결합해 보면 새로운 소비 심리와 시장 트렌드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을 놓고 어떤 독자는 전 세계를 상대로 ‘글로벌 마켓’을 구상해야 하는 요즘 ‘기껏 한국 소비 시장조사냐?’고 과소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대한민국 소비자만큼 ‘깐깐한 소비자’는 세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소비자의 경우 유행과 트렌드에 민감하고 구매력이 크며, 기대 수준이 높기 때문에 테스트 마켓으로 최적이라는 게 외국 기업들의 평가다. 그래서 외국 기업들이 현지화 전략(Localization)의 일환으로 한국인의 취향에 맞춰 개발한 제품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로 역수출되고 있다. 이를 증명하는 사례는 다양하다.
세계적인 주방기기 업체인 테팔은 우리나라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해 만든 한국형 불고기 그릴을 만들었다. 테팔의 한국형 불고기 그릴은 우리나라에서 큰 성공을 거뒀을 뿐 아니라 이제 전세계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비누가 주력이었던 도브는 샴푸도 만들어 달라는 한국 소비자들의 요청에 따라 ‘도브크림샴푸’를 개발했다. 국내에서 출시되자마자 국내 헤어케어 시장의 판도를 바꾸기 시작, 현재 시장점유율 15%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다. 도브 본사에선 이러한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도브크림샴푸를 글로벌 브랜드로 내 놓았고 현재 대만, 싱가포르, 홍콩,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시장점유율이 상승하고 있다.
패밀리 레스토랑 아웃백스테이크는 1999년 통고구마 메뉴를 한국에서 미국으로 역수출한 뒤 김치볶음밥을 응용한 ‘아델레이드 라이스’, 한국식 갈비구이를 변형한 ‘카카두 갈비 스테이크’ 등을 미국, 일본, 영국, 캐나다,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판매하고 있다. 한편 피자업체로는 피자 가장자리에 고구마 띠를 두른 ‘리치골드’를 개발한 한국피자헛의 경우 일본과 중국 기술팀이 방한해 기술을 전수해 갔을 정도다.
이처럼 까다로운 소비자들이 있는 한국 시장에서 먹힌다면, 세계 시장에서도 성공할 가능성도 높을 터, 국내 소비자에 대한 방대한 자료와 과학적인 설문조사로 만들어낸 이 책이 갖는 의미이기도 하다. 단행본이 아닌 매년 시리즈로 출간 된다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리뷰는 11월 23일 교보문고 북모닝 CEO의 '오늘의 책'에 실린 리뷰 입니다.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2011 대한민국 소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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