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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모음 - Readingworks/자기계발

[책리뷰]그들의 생각을 훔치다 - 내러티브가 있는 18편의 수필 같은 인터뷰

by Richboy 2011. 4. 29.

 

 

 

 

내러티브가 있는 수필 같은 인터뷰집

 

  “동시대 사람의 얘기를 듣고 글로 남기는 것만큼 인문학적인 게 어디 있습니까?”  인터뷰어 지승호의 한마디 짜리 '인터뷰 예찬'이다. 생각해 보면 인터뷰처럼 애매모호한 장르가 또 없는 것 같다. 대화상대의 말을 온전히 받아적은 대필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자가 제 생각을 오롯이 담았다고 하기에도 뭐한...말 그대로 애매모호하다. 하지만 산해진미에 쌀밥이 없으면 안되는 것처럼 모든 장르의 글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글이 바로 인터뷰다.

  특히 사실을 담은 글에 있어 인터뷰의 중요성은 더욱 빛을 발한다. 정확하고 알찬 뉴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터뷰 과정은 필수. 취재원인 당사자에게 가장 자세하고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글'은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으로부터 좀처럼 대우를 받지 못한다. 그건 왜 일까?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몇 마디 질문으로 캐내 글로 옮겨야 하는 이 일은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 이라 글쓰기가 결코 쉽지 않다. 설령 어렵사리 글을 썼다고 하더라도 글(기사)이 나간 후 인터뷰를 한 사람, 즉 인터뷰이들이 '진의가 왜곡되었다'며 항의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어디 그 뿐인가. 비슷한 이유(인터뷰 함부로 하면 안된다)로 인터뷰이의 섭외도 어렵다. 

 

  최근 인터뷰 책이 쏟아지고 있다. TV의 어느 토크쇼 프로그램에서 핫 이슈가 되는 '인물人物'들이 출연해 인터뷰를 해서 인기를 얻더니 신문 매체 할 것 없이 당사자의 목소리로 직접 듣는 '대담 형식의 글'이 늘었다. 급기야 단행본도 늘고 있다. <그들의 생각을 훔치다>도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좀 특별했다. 

 

 

 

 

  이 책은 세 명의 동아일보 파워인터뷰팀이 인터뷰를 한 열 여덟 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매체들의 형사의 취조 같고 녹취록같은 인터뷰 기사에 정나미가 떨어져 이런 글을 읽는 것을 일부러 피했었는데, 평소 좋아하는 '시골의사 박경철'의 인터뷰가 책의 가장 먼저 들어 있어 처음 몇 장을 펴다가 마지막장까지 읽어 버렸다. 세 명의 인터뷰어 중에서 누가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PART 1' 강렬한 자극으로 자신을 바꾸고 싶을 때'를 쓴 인터뷰어가 가장 인상적이다(그 중에서 박경철과 김창완은 정말 최고 였다).

 

  인터뷰어의 질문은 전혀 보이지 않고 내러티브, 즉 인터뷰이와 함께 한 현장과 순간에 치중한 이야기가 대신했다. 대략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내게 닿지 않는 것에 갖는 선의',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호의'를 달리 표현하면 학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습'이다. "아기 새가 어미 새가 나는 것을 보는 것을 배움學이라 하고, 아기 새가 날 수 있을 때까지 수 백 번 반복하는 것을 익힘習이라고 한다."는 시 구절처럼 배움은 익힘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이다. 그는 '습'에 매우 충실한 삶을 살아왔다. 그의 관심사는 미추美醜와 호오好惡를 가리지 않는다. 대신 단순히 소비할 것이 아니라면 철저히 연구해 반드시 정복한다. 그가 낚시에 입문한 과정은 '습'에 대한 그의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30대 초반 대전에서 고용의사를 하던 무렵이에요. 금강에서 누군가 대낚시로 잉어를 잡아 올리더군요. 저도 꼭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곧장 '찌맞춤의 원리' 등 10여 권을 사고 낚시 전문지 구독을 신청했어요. 빨간 줄 그어가며 이론서들을 독파한 거죠. 낚시의 원리를 깨우치고 나서야 낚시대를 구입했어요."

  얼마 동안의 인터뷰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얼마나 흥겨운 인터뷰 였을까 짐작하고 남는다. 책에서 인터뷰어는 귀를 열고 말동무가 되고, 또한 그(인터뷰이)가 되었다. 그리고 귀로 들은 이야기를 녹이고 내 생각을 담아 종이에 내려앉혔다. 함께 했더라면 좋았겠다 싶었다(인터뷰 글에서 이보다 더 나은 칭찬은 없으리라). 

 

  가수 김창완, 패션 디자이너 최범석, 수학자 김정한, 배우 안성기, 공무원 김가성 등 이어지는 인터뷰를 통해 배우고 얻는 것은 습習이란 무엇인가, 죽을 힘을 다해 배반할 것, 자학, 사랑, 한결같이! 와 같은 한 가지 화두들이었다. 화두를 받아들임은 둘째였다, 글맛에 취해 part 1 거듭 거듭 읽어야 했다. 글 속에서 리드하는 인터뷰어의 이야기는 옆에서 듣는 듯 했고, 인터뷰이들의 명쾌한 답변들은 빛을 발했다.

 

  일본에서 지의 거장으로 알려진 논픽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의 인터뷰 에피소드 중에 '한 번의 인터뷰를 위해 60만 엔어치 책을 구입해 읽어가며 준비를 해서 인터뷰했더니 원고료가 60만 엔이더라'는 말은 꽤 유명하다.

  인터뷰에 임하는 인터뷰어의 자세를 잘 말해 주고 있는데, 인터뷰이에 대한 철저한 준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열린 귀'와 '열린 질문'일 것이다. 익히 준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독자보다 못한 멍청이'가 되어 “그 이야기부터 해주시죠.” “제가 그 부분을 잘 몰라서요.” “그게 어떤 모양이었나요?”와 같은 질문으로 상대방이 스스로 이야기를 풀어내도록 유도해야 편하게 대답을 할 것이고, 기대 이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인터뷰들을 보면 '아는 체'를 하는 인터뷰어들이 많다. 그래서 질문을 하는 것인지, 인터뷰이에게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는 것인지 헛갈릴 정도이다. 인터뷰 <그들의 생각을 훔치다>는 수필 같은 인터뷰 글의 진수를 보여준다. 최근 읽은 몇 권의 인터뷰 책중에서 으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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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생각을 훔치다

저자
동아일보 파워인터뷰팀 지음
출판사
글담 | 2011-04-1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길을 가는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자신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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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임 저/나성엽 저/정호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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