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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암투병 중인 최인호, 5월 말 장편소설 출간!

by Richboy 2011. 5. 9.

 

 

 

 

  어느 날, 소설가 최인호가 집필을 중단했다. 최소한 ‘샘터사’에 매월 402회를 연재하며 36년 하고도 반년을 이어온 장수연재소설 <가족>만은 그랬다. 원인은 ‘암’이었다. 2008년 연재를 잠시 중단했다가 지난 해 3월 재개했었지만 10월호를 끝으로 연재를 끝냈다. 그리고 지난 해 1월 조용히 책 한 권으로 그 변辨을 대신했다. <인연因緣>이었다.

 

 

<인연>에 대한 리치보이의 리뷰 : http://blog.daum.net/tobfreeman/7163200 

 

  최인호에게 ‘인연’은 그리움이다. 스치고 지나갔던 순간의 기억이 시간이 흐르고서야 인연인줄 새삼 깨닫고 그리워진다. 몸에 병을 달고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기 시작한 그에게 세상은 모두가 인연이고 담고 싶은 그림이었다. 그가 돌아본 인연들은 모두가 아름답고 소중했다.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는 역시 ‘가족’이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연인의 그것보다 더 지극하고 간절했다. 세상 어느 자식 안 그럴쏘냐마는 기억이 정말 날까 싶은 ‘당신(어머니)과의 소중한 순간’들을 묘하게도 기억하고는 서술하는 것만으로도 둔해서, 뚱해서, 혹은 창피해서 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우리네와는 사뭇 달랐다. 아버지와 형제들, 그리고 아내에 대한 마음은 단 몇 줄에도 사랑이 뚝뚝 뭍어난다.

 

  “그래도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인사와 동시에 다리를 주무르는 일은 언제나 되풀이되었는데, 그때마다 내가슴이 아팠던 것은 어머니의 다리가 점점 더 말라간다는 사실이었다. 다리를 못쓰시게 되고부터는 말라가는 속도가 더욱 빨라져서 돌아가실 무렵에는 뼈만 남아 있었다. 다리를 주무르다가 나는 몇 번이고 울곤 했다. 어머니의 다리에서 생명이 희박해져가고 있는 걸 나는 손바닥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두 사람은 내 곁을 떠났다. 내가 사십여 년 동안 줄곧 안마로 모시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제 내 곁에 없다. 아직도 내 손에 남아 있는 그 촉감, 그 살의 느낌, 살아 숨 쉬던 그 생명력, 어머니의 부드러운 살결, 매듭을 꺾을 때마다 뼈마디가 분질어리는 그 경쾌한 소리, 유난히 따뜻하던 어머니의 체온, 그 모든 감촉들이 내 손안에 분명히 남아 있는데도 두 분은 내 곁을 떠나고 안 계신다.

“인호야, 어디 있니? 다리를 좀 주물러다오.”

  가끔 한밤중 잠에서 깨어 멀건 얼굴로 창밖을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아버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본문 275 쪽

 

 

  리뷰의 마지막에 나는 최인호 선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최인호에게 요구한다. 일어나시라. 천막 안에 청중이 그득한데 연사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혼이 나야 한다. 단 한 명의 청중이라고 천막 안에 있다면 연사는 아플 자격도 없다. 당신은 아직 토하고 쏟아내야 할 말들이 많다. 툭툭 털고 일어나 당신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로 천막안으로 들어오시라 요구한다. 어서 빨리 돌아오시라."

 

  화답이라도 하신 듯 올 해 1,200장 분량의 장편을 쓰셨단다. 그리고 5월 하순에 출간을 예정중이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지난 주 어느 신문의 3회 연속 인터뷰 기사는 더 반가운 선생에 대한 근황이었다. 서경덕을 만난 황진이의 마음, 버선발로 달려가 냉큼 읽었다.

 

  "이번에 쓴 장편은 아내에게 바치는 책이야. 아프고 나니까 제일 미안한 게 와이프더라고. '나는 이 작품을 평생 동안 스승이자 벗이자 수호신인, 사랑하는 내 아내 황정숙 아나스타샤에게 바칩니다.' 정식으로 작가의 말에다 썼어. 내 작가 인생(44년) 동안 책에 쓰는 '작가의 말'에 아내 얘기 쓴 건 처음이야."

  이번 책에 대해 갖는 선생의 의미였다.
궁금해 하실 분들을 생각해 링크를 걸었으니 전문을 살펴보시길... 

뵈서 반가웠고, 새 소설을 만나니 더 반갑다. 읽기도 전 다음 소설을 주문하고자 한다. "쾌차하시라. 그래서 또 한 편 써 주시라!"

 

-Richboy

 

인터뷰 1   인터뷰 2   인터뷰 3

 

 

 

 

 

 

―언제 어떻게 발병했는지 직접 발언한 적이 없다. 시작은.

"2008년 5월. 갑자기 목에 혹 같은 게 났다. 병원에 가서 알아보니 암세포라더라. 바로 수술했다. 그런데 완치가 안 되고 번졌다. 항암치료도 계속 했고. (지금은?) 터널의 출구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절망적도 아니다."

―매체에 알려진 대로 침샘암이었나.

"애매하다. (웃으며) 나한테 확인하지도 않고 낸 것 아닌가. 혹이 침샘 밑에 났다. 의사들도 정확히는 모르더라. 물론 그 부위이기는 하고. 그게 번져 가지고 항암치료하고. 현재도 투병하고 있다. 그 정도다."

―암이라는 사실을 처음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뭐, 사람들이 암을 너무 그렇게 무슨 청천벽력으로 받아들이는데, 내 보기에 마땅치가 않아. 미화시키는 게 아니다. 분명 놀랐지만, 그렇게 큰 충격을 받은 건 아니다."

―도인이신가. 어떻게 충격을 안 받나.

"놀랐지만 담담했다고. 그러니까, 사형선고처럼 받아들인 건 아니라는 뜻이야. 암이나 감기나 똑같은 병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이 들던가.

"물론 아니지. 내가 3년이나 소위 투병해 왔다. 암환자뿐만 아니라 모든 환자는 육체적으로는 병과 싸운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아니 중요한 것은, 정신적·영혼적으로도 병과 싸운다는 거다. 모차르트 얘기를 해보자. 모차르트가 레퀴엠을 작곡했다고. 그런데 미완성인 채로 죽었다고. 알겠지만 레퀴엠이 진혼(鎭魂)곡이다. 여기엔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얼마나 많은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가.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다. 또 하나는 자비로운 예수님. 예수님이라면 보편적이지 못하니까, 자비로운 신이라 하자. 하루에 수백 번씩 모차르트처럼 두려움에 떤다고. 그와 똑같이 하루에 수백 번씩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거지. 어차피 사람은 죽는다. 죽음의 공포에 벌벌 떠는 고집불통의 나, 그리고 나를 버리고 온전히 그에게 의탁하는 나, 이 두 가지가 하루에 수백 번씩 교차된다고. 나뿐만 아니라, 모든 환자들이 그럴 거야. 그런데 작년 초부터 점점 나 자신이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쪽으로 가고 있어. 처음에는 두려움과 불안의 비중이 컸다고. 그런데 지금은 7대3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마음대로 하소서. 그런 쪽이 7이 됐어, 7."

―사람이 약해지면서 외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걸까.

"옛날 얘기 하나 하지. 내가 여섯 살 때(6·25 전쟁 당시), 변호사 하던 우리 아버지가 공산당이 내려와 가지고 청계산으로 피란을 가셨어. 천막 치고 산속에 한 달 동안 숨어 사셨지. 그때 피란 간 아버지를 만나려고 어머니와 함께 길을 떠났어. 수레를 끌고 갔어. 우리가 을지로에 살던 시절이야. 한여름이야. 계속 걸었어. 아주 고통스러웠어.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건넜고, 날이 저물어 잠실에서 하룻밤을 잤지. 가도가도 끝이 안 나. 잊어먹지를 않아. 우리 어머니가 그러는 거야. 이 길 하나만 건너면 아버지가 있다. 하나만 더 건너면 아버지가 있다. 그 한마디를 믿었다고. 그때는 두려움이 없었어. 그런데 지금 두려워. 다시 그때를 생각해. 엄마 말을 믿었구나. 그리고 조금 철이 드는 거야. 하늘에 대고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의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 겁니다. 그런데도 두려워. 아직도 '대가리'가 벗겨지려면, 철이 들려면 멀었어."

☞소설가 최인호는…

1967년 연세대 영문과 재학 중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타인의 방' 등 초기 단편소설은 문단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별들의 고향' '겨울나그네' 등 신문연재 장편소설은 발표 족족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70년대 청년문화의 대변자. 당시 그의 소설은 물론 원작이나 시나리오를 통해 그가 관여한 영화는 '무조건' 흥행에 성공한다는 신화를 낳았다. "1987년에 가톨릭에 귀의"한 뒤에는 '잃어버린 왕국' 등 역사소설과 종교소설 '길 없는 길' 등을 발표하며 문학의 다른 영역으로 건너갔다. 이 시기의 작품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갈리지만, 그의 등장과 성공 이후 시장의 유혹과 문단의 승인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일은 후배 작가들의 일반적 관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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