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 선생의 소설이 드디어 출간되었네요.
지난 5월 초 선생의 출간 소식을 전한 적이 있는데요(http://blog.daum.net/tobfreeman/7164017) 투병 중에 쓴 장편소설이라 더욱 반갑습니다.
책의 뒷편에서는 이번 그의 소설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했습니다.
" 육체는 고통스러웠으나 타오르는 열정 속에서 작가 최인호가 쏟아낸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독자를 의식해서 쓴 작품이 아니라 작가 혼자만을 위한 최초의 전작 장편소설인 동시에 고통의 축제 속에서 완성한 최인호 문학의 결정체이다."
소설가인 오정희님은 이 소설을 읽고 서평을 하셨더군요. 전문보기: 클릭!
꾸물꾸물한 초여름의 주말,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와 함께 보낼까 합니다. -Richboy
<<책소개>>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 그가 들고온 5년만의 신작 소설!
청년작가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며 언제나 세계에 대한 의문을 놓지 않았던 최인호의 5년만의 신작소설이다. 저자는 이번 소설 통해 등단 이후 왕성하게 활동을 했던 ‘제1기의 문학’과, 종교·역사소설에 천착했던 ‘제2기의 문학’을 넘어, ‘제3기의 문학’으로 귀착되는 시작을 알리고 있다. 기존의 질서를 부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그의 문학은,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변신하고 자리를 바꾸는 작중 인물들과 맞닿아 있다. 작가의 손끝에서 펼쳐진 수많은 과거의 인물과 사건은 이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 나오는 ‘뫼비우스의 띠’가 현현한 길을 따라 끊임없이 등장하거나, 완전히 종적을 감추어 버리고 만다. 소설 속에는 지나치게 익숙한 일상이 뒤틀려버린 현실에 자신의 실체를 찾아 떠나는 주인공 K의 여정을 그려진다. 작가는 자신이 믿고 있던 모든 실재(實在)에 배신을 당한 K가 또 다른 실재를 찾아 방황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현대인이 맺은 수많은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 최초의 전작 장편소설
너무나도 익숙한 일상에서 길을 잃은 한 남자의 영원한 사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가 5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지난 30여 년 동안 몰두했던 역사·종교소설 스타일을 과감히 버리고, ‘최인호’라는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린 현대소설로의 회귀를 선언했다.
백제와 가야, 조선을 넘나들던 작가의 상상력은 다시 현대로 돌아와, 뒤틀리고 붕괴된 일상 속에 내몰린 주인공 K의 ‘영원한 사흘’이 상징하는 질서와 무질서가 뒤섞인 혼돈의 시공간을 창조해냈다. 작가는 자신이 믿고 있던 모든 실재(實在)에 배신을 당한 K가 또 다른 실재를 찾아 방황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현대인이 맺은 수많은 ‘관계의 고리’의 부조리함을 묘파한다.
최인호,
시들지 않는 문학의 숲으로 다시 출발점에 서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암이 내게 선물한 단거리 주법의 처녀작이다.
하느님께서 남은 인생을 더 허락해주신다면 나는 1987년 가톨릭에 귀의한 이후의 ‘제2기의 문학’에서 ‘제3기의 문학’으로, 이 작품을 시작으로 다시 출발하려 한다. 남에게 읽히기 위한 문학이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한, 나중에는 단 하나의 독자인 나마저도 사라져버리는 본지풍광(本地風光)과 본래면목(本來面目)의 창세기를 향해서 당당하고 씩씩하게 나아갈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나의 십자가인 원고지 위에 못 박고 스러지게 할 것임을 나는 굳게 믿는다. _「작가의 말」에서
■■□ 때때로 삶은 잠시 머물다 가라 한다
; 최인호의 투병과 문학적 회귀
2010년 새해 벽두에 우리 문학계는 한 가지 우울한 소식을 접했다. 2006년 장편역사소설 『제4의 제국』 이후 소식이 뜸했던 소설가 최인호가 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워낙 왕성한 필력을 자랑해온 그였기에 4년 여의 침묵으로 그동안 갖가지 소문이 무성하던 중에 날아든 이 소식은, 1975년부터 34년 6개월 동안 이어져온 연재소설 『가족』의 연재를 중단한다는 갑작스러운 그의 선언과 함께 사태의 심각성을 부추겼다.
최인호의 투병은 우리 문학계로서도 큰 손실이었지만, 한 작가의 문학적 완성에 있어서도 엄청난 좌절과 고통을 안겼다. 1985년 『잃어버린 왕국』을 시작으로 역사와 종교를 다룬 장편소설에 치중해왔던 그가 『제4의 제국』 이후 자신의 본령인 현대소설과 단편으로 복귀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던 중에 찾아온 불행이었기 때문이다.
1963년,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8세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한 최인호는 대학 재학시절부터 본격적인 집필 활동을 시작한 이래 근대와 현대, 농업과 공업의 시대적·사회적 경계에서 표류하는 도시인들의 왜곡된 삶을 도시적 감성이 담긴 필체로 그려낸 대한민국 현대소설의 대표적인 기수였다. 하지만 1985년 『잃어버린 왕국』 이후, 2006년 『제4의 제국』까지 최인호 문학의 절대적인 비중은 역사와 종교를 다루는 장편ㆍ대하소설이 차지해왔다. 그러나 그렇게 20년 넘게 대하소설에 천착하는 동안에도 현대소설이라는 본령을 잊지 않았던 듯, 작가는 2002년에 출간된 중단편전집의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다.
이번 기회에 과거에 쓴 중단편을 새삼스럽게 읽어보는 동안 나는 문득 작가로서의 남은 인생을 또다시 숨 한 번 쉬지 않고 단숨에 백 미터를 달려가는 치열한 스프린터로 살아가고 싶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대하소설 집필을 마라톤의 주법에 비유했던 작가는 초기에 보여주었던 팽팽한 긴장감이 담긴 현대소설과 단편으로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여기에 더해 작가는 2005년 『유림』을 출간하면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다시는 역사소설이나 대하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덜컥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와 그의 육신과 문학적 이상을 가로막고 말았다.
이후 최인호는 잠행에 들어갔다. 극히 가까운 지인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의 근황을 알 길이 없었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듯 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했지만, 그의 실질적인 창작 여정은 거기에서 마침표를 찍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투병 중에도 숨 고르기를 잊지 않았다. 아니, 그의 병이 그를 다시 현대소설로 복귀하게 만들었다. 2006년 『제4의 제국』 이후 5년 만에 새롭게 펴낸 신작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의 「작가의 말」에서 밝히듯, 그는 일상이 탈 없이 흘러갔다면 요원한 일이었을 그 ‘숨 고르기’가 오히려 병으로 인해 완성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암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최인호를 위해 쓴, 최인호 최초의 전작 현대소설
; 신작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가 갖는 의미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1. 현대소설로의 복귀
첫 번째 의미는 이 작품이 작가가 자신의 본령으로 여겼던 현대소설로 회귀하는 신호탄이라는 사실이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초기 중단편을 중심으로 전개했던 현대소설과 역사, 종교를 다룬 장편ㆍ대하소설을 지나 소설가 최인호의 ‘제3기의 문학시대’가 열리는 시발점이 되는 기념비적 작품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장편의 분량과 형식을 취하면서도 간결한 구조와 압축된 문제의식으로 인해 단숨에 읽히는 ‘단편의 콘텐츠’를 취하고 있다.
2. 최인호 문학 최초의 전작 장편소설
두 번째 의미는 작가 자신이 이 소설 「작가의 말」에 밝힌 것을 직접 읽는 것으로 선명하게 와 닿을 것이다.
문단에 데뷔한 이래 50년 동안 나는 헤아릴 수 없는 수십 편의 장편소설과 대하소설을 집필하였다. 그 모든 소설은 외부의 청탁에 의해 쓴 신문이나 잡지의 연재소설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쓴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누군가의 청탁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아닌 스스로의 열망으로 쓴 최초의 장편소설이다. 독자를 의식해서 쓴 작품이 아니라 나 혼자만의 독자를 위해 쓴 수제품인 것이다.
대부분의 문학작품은, 특히 최인호와 같은 인기 작가의 작품은 발표할 지면이 미리 확보된 상태에서 집필에 들어간다. 그러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병과 싸우며 잠행했던 시기에 뇌우와 같은 순발력으로 두 달 만에 써낸 최인호 문학 최초의 비연재작이자 신작인 전작장편소설이다.
■■□ 유실된 기억 속의 진실을 찾아가는 한 남자의 모험과 추적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줄거리
토요일 아침, 시계의 자명종 소리에 눈을 뜬 K는 휴일 아침에 왜 자신이 알람을 맞추어놓았는지 의문을 갖는다. 어딘지 모르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일상의 흐름을 느끼던 K는 지난밤의 발기 불능, 평소와는 다른 아내의 태도, 지금까지 써온 스킨의 브랜드가 달라진 것 등을 확인하면서 ‘조작’의 기미를 눈치챈다. 타인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에게는 낯설기만 한 미세한 변화에서 익숙한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음을 직감한 것이다. 그리고 삶에 엄격한 평소의 K답지 않게 간밤 정신과 전문의인 친구와 가진 술자리에서의 기억이 어느 시점부터 끊긴 것과 휴대폰을 분실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면서 혼란은 가중된다.
처제의 결혼식이 있는 그날, K는 잃어버린 휴대폰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지난밤 술자리에서 끊겨버린 기억과 자신의 행적을 추적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K는 계속해서 역할을 바꾸며 등장하는 같은 얼굴의 사람들과 부딪히고, 시공간적으로 전혀 개연성을 찾을 수 없는 지난밤 자신의 행적을 확인하면서 자신이 발을 딛고 선 현실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깨닫는다.
가족을 만나보라는 정신과 전문의 친구의 조언을 따라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누이를 찾은 K는, 누이와 자신이 공유하고 있는 기억이 미세하게 어긋나고 있음을 발견한다. 특히 몇 년 전 자신이 누이에게 돈을 부탁하면서 보냈다는 편지의 필적은 분명 자신의 것임에도 K에게는 전혀 그런 기억이 없다. 그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 K는 조작과 속임수의 실체가, 사실은 뒤틀리고 어긋난 일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이 모든 의혹을 풀기 위해서 그는 몇 년 전 누이에게 돈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던 ‘나’를 만나러 가는데…….
■■□ 뒤틀리고 붕괴된 현실의 틈새에서 발견한 진실
;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조금 깊이 들여다보기
이 작품은 특이한 구조와 그로테스크한 작중인물의 설정, 환상주의와 사실주의를 넘나드는 이야기 전개만큼이나 다층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때문에 빠르게 읽히면서도 한편으로는 강한 여운을 남긴다.
1. ‘역할’로 점철된 현대인의 우울한 초상을 그리다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모범적인 가장으로서, 의사 친구와 가깝게 지내며 번듯한 직업을 가진 사회인으로서, 스스로의 도덕적 결함을 견디지 못하는 제도적 인간으로서, 그리고 주일마다 미사에 반드시 참석하는 견실한 신앙인으로서 K는 생의 의무에 충실한 사람이다. 하지만 일상이 조작되고 현실에 균열이 생기며, 그로 인해 환상과 실재의 공간을 오가면서 K는 사실 조작된 것은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주변 세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는다. 그리고 급기야 처음에는 자신의 행세를 했을 것이라 믿었던 또 다른 ‘K’에게 순순히 ‘참 자아’의 자리를 내주고 만다. 자신이 쌓아온 견고한 삶이 생의 진짜 모습은 아니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생은 때때로 허물어지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입기도 하는 것. 자신이 만든 견고한 삶은 하나의 무대에 지나지 않았으며, 거기에 ‘진짜 삶’은 없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K는 자신의 배역과 역할에 충실한 동안 정작 자신의 시간을 누리지 못하는 현대인의 ?습을 상징한다. 도덕적이고 합법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세상에 떳떳하다는 것은 인간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 제도에 순응함으로써 갖게 된 스스로의 착각일 뿐이다. 그 단단할 것 같은 일상에 금이 가면서 K는 자신을 의심한다.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 그는 자신의 계획과는 다르게 진행된 또 다른 삶을 목격하는 것이다.
2. 일상과의 이별을 통해 본래의 자신을 회복하다
이 책의 발문을 쓴 소설가 김연수는 이 작품을 이해하는 독법의 열쇠를, 작가가 1972년에 발표한 단편 「타인의 방」에서 찾고 있다. 김연수는 「타인의 방」을 두고 쓴 문학평론가 남진우의 “그는 타자가 기획한 무대에 등장한 어릿광대이며 속임수에 빠진 가련한 희생자에 불과하다”라는 글을 인용하면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K가 처한 상황 역시 왜곡되고 뒤틀리면서 일상의 공간이 비일상의 공간, 연극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본래의 우리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이 일상의 틈을 통해서다. K가 또 다른 자신을 만나는 순간은 지진의 균열이 일어날 때와 일치한다. 디디고 선 땅이 물렁해지는 이 의심의 순간은 진실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심을 통해 만나게 되는 진실은 무엇일까? 그건 일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견고하지 않다는 사실이리라. (…) 현실은 언제든 그처럼 붕괴될 수 있다는 점, 그게 바로 진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거대한 별사(別辭)인 동시에 어떤 붕괴에 대한 보고서랄 수 있다.
_「발문」, 김연수(소설가)
그리고 이 작품 후반부에서 K는 월요일 아침 출근을 위해 지하철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서 지난 이틀 동안의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인물들과 인사를 한다. 이 ‘거대한 작별의 장면’을 두고 김연수는 현실이 붕괴된 뒤 K 자신과 함께 사라질 현실의 꼭두각시들과 작별하는 의식이라고 말하면서, 이 모든 것과 작별한 뒤에야 우리는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밝힌다.
3. 현실의 균열 속에서 진실과 구원의 희망을 발견하다
이 책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작가가 성경 「탈출기」의 내용을 장치해놓은 것 역시 이 작품을 해석하는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이 모세에게 이르는 “나는 곧 나다”라는 말은 이 작품의 끄트머리에서 K가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K1’과 합체되는 장면과 연결되고 있다. K는 주말 이틀 동안의 카오스와 붕괴를 겪은 뒤 맞는 월요일 아침에 자신이 맡아온 배역의 캐릭터를 완전히 변화시키면서 ‘온전한 나’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것은 구체적인 세상과 현실과 일상에 오염되기 전, 창조주의 계획으로만 존재하던 ‘나’의 신성을 회복하는 순간이다. 작가는 수없이 많은 ‘나’들이 만든 세계를 무너뜨림으로써 ‘나’를 구원하는 희망의 전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을 어떤 시각과 관점으로 바라보든,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최근 작가에게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논해야 할 화학적 반응의 결과물이다. 소설 속 주인공 K는 사흘 동안에 일어난 비현실적인 사건을 통해 변신한다. 세상의 잣대로는 비극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K의 결말은, 결말인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다. 작가 역시 어떤 이별을 통해 원점으로 회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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