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재테크 도서의 변화
재테크하려거든 우선 불신不信부터 하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년 가까이 ‘재테크’라는 단어는 터부시되었다. 어느 대화에서건 이 말만 꺼내기만 하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미간이 구겨지고, 입술이 씰룩거려서 분위기가 험해지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 재테크에 대한 이러한 푸대접은 출판시장에도 마찬가지였다.
금융위기 2년 동안 재테크 도서의 매출은 거의 반토막이 났다. 경제경영서 매출에서 재테크 도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정도이니 경제경영서의 매출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금융위기 이후 급속히 얼어붙는 경기에 국내외 투자수단의 지수들이 하나같이 마이너스를 향해 곤두박질쳐서 ‘재테크’에 이가 갈릴 지경이니 책이 팔릴 리 만무했다.
하지만 재테크 즉, ‘개인이 재산을 관리하는 기술’은 불황에도 필요한 법, 사람들은 스멀스멀 다시 재테크 코너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다. 단 돈 천 원짜리 커피 한 잔을 마시려 해도 지갑을 열기 전 효용을 따지게 된 그들은 주식-펀드-부동산-저축 상품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나열하는 현실성이 떨어지고 실용성이 없는 옛날 재테크 도서에는 더 이상 흥미를 두지 않았다.
또한 이번 금융위기로 수익률에 내포된 리스크(위험)를 배웠기에 무조건 ‘높은 수익률’이 예상된다고 해서 모두 ‘좋은 투자’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금융위기 이전의 재테크 성향이 ‘꿈이 더해진 공격적인 재테크’였다면, 이후의 재테크는 ‘철저하게 100% 팩트fact에 근거한 보수적인 재테크’로 변했다. 그리고 몇 달, 몇 년짜리 행운 같은 재테크 계획 대신 80년 생애를 생존가능하게 할 수 있는 재무설계, 즉 재산의 장기적인 청사진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에 재테크 도서들도 재빨리 변화하기 시작했다.
금융위기 이전 코스피가 2000 포인트를 넘나들던 2007년 11월까지 서점가 베스트셀러 1위는 단연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한스미디어)였다. 이 책은 이제 막 취직한 20대 직장인에게 직장 5년 만에 1억이라는 종잣돈을 모으고 싶다면 5년간 미치도록 돈을 모아야 한다고 설득했다.
소비를 할 때는 항상 절약을 염두에 둬라, 지출을 위해 백해무익한 담배를 끊어라, 술값을 절약하기 위해 모임도 줄이고, 심지어 1억을 모으는 5년간은 아예 연애도 하지 말라는 책 속의 뻔한 내용들은 엄마의 잔소리 같았지만, 현가와 복리 개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인상적이고 생활 속에서 목돈 만드는 습관 키우는 요령 등은 실행 가능해 보였다.
비슷한 시기에 <대한민국 2030 재테크 독하게 하라>(미르북스)도 출간되었는데, 대한민국 No.1 재테크 커뮤니티 20만 회원의 노하우가 집대성되었다는 선전에 많이 팔려 그 해 올해의 책이 되기도 했다. 이 책 역시 재테크의 기초 마인드 확립부터 출발해서 금융 지식, 펀드, 주식, 보험, 내 집 마련에 대해 두루 설명하고 성공사례들을 수록했다.
이 책을 읽은 수많은 20대들이 투자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 후 글로벌 금융위기로 쓴 맛을 톡톡히 봤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투자자들에게 IMF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변화를 가져왔다. 부자들은 전문가에게 의존하는 ‘묻지마식 재테크’ 대신 스스로 재테크에 참여하며 본인의 역할을 중시하는 경향을 띠기 시작했다. ‘모르는’ 자산관리에서 ‘아는’ 자산관리로 트렌드가 변화한 것이다. 갈 곳을 찾지 못하는 자금이 은행으로 몰리고 적금까지도 늘어났다. 구식 재테크 수단으로 취급받던 정기적금은 금융위기 이후 안전자산 선호 속에 증가세를 보였다. 서민들도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재테크 수단으로 다시 적금 같은 고전적인 방법으로 돌아갔고, 2009년 통장만 잘 굴려도 목돈을 모을 수 있다는 <4개의 통장>(다산북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재테크 분야 올해의 책에 올랐다.
<4개의 통장>(다산북스)은 ‘자동 돈 관리 시스템’이라고 해서 급여 수령 및 고정 지출 관리용인 급여 통장, 변동 지출 관리용인 소비 통장, 예비 자금 관리용인 예비 통장 그리고 투자 관리를 위한 투자 통장, 이렇게 통장 4개를 이용해 돈의 용도를 구분하여 활용하면 자동으로 돈이 쌓이고 불어나게 하는 통장 관리의 기술을 담았다. 아울러 지출을 통제하는 지출 관리, 예비자금을 보유하는 예비자금 관리, 장기간 투자하는 투자 관리의 3단계 돈 관리법을 통해 저축하고, 대비한 후 투자하라고 권했다.
<4개의 통장>이 부자가 되기 위해 저축을 통한 충실한 돈 관리를 강조했다면, <부자통장>(청림출판)은 재테크나 통장관리에 앞서 ‘돈을 대하는 태도’부터 고치라고 강조했다. 저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번번이 재테크에 실패하는 이유는 바로 ‘양철냄비 근성’에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무엇을 시작하면 빨리 이루고 싶어 하고, 이루어낸 성과를 어서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안달복달하는데 우리의 그런 성향이 재테크에 그대로 적용되어 투자하기만 하면 손실을 본다고 꼬집었다. 저자는 근시안적 안목대신 일생이 늘어난 만큼 투자에 있어서도 장기적인 관점으로 봐야 한다며 재무설계를 권했다.
재테크에 있어 1~5년짜리 단기적인 전술이 아닌, 10년 이상의 중장기 전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은 이영권의 <부자가족을 가는 미래 설계>(국일증권연구소)이 먼저였다. 저자는 가정성공학의 관점에서 행복한 노후설계를 위해 직장대신 직업을 갖고, 주가를 관리하듯 가족행복도 관리하며, 부동산보다 든든한 자녀교육에 투자하고, 재테크하기 전에 경제를 배우라고 강조했다.
출생률 저하와 노령인구의 증가로 대한민국은 지금 2005년 이후 8명의 젊은이가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다. 그러나 2020년에는 젊은이 4.6명이 노인 1명을 책임져야 하고, 2050년에는 젊은이 1.4 명이 노인 1명을 책임져야 한다.
지금의 40~50대가 자식에게 부양을 의지하지 못하는 첫 세대가 되고, 지금의 젊은이들은 부모 대신 생면부지의 노인들을 세금으로 모시는 첫 세대가 된다는 저자의 주장은 미래가 결코 핑크빛이 아님을 실감하게 했다.
한편 <통장의 고백>(더난출판)과 <재테크의 거짓말>(위즈덤하우스)처럼 금융전문가들이 투자자의 편에 서서 ‘당신은 지금껏 돈을 잃는 재테크를 하고 있다’고 고백한 책들도 등장했다. 적은 돈이지만 꾸준히 저축을 하고 있지만 나아지기는커녕 수많은 사람들의 삶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참다못한 주부들이 맞벌이를 위해 저임금의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벌고 있다. 힘들게 모아 만든 주식 부동산 등 피 같은 재산은 인플레와 대출이자, 그리고 세금으로 점점 줄어들거나 금융위기 같은 악재로 10년 동안 오른 가격이 순식간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다. 다들 열심히 투자하는데, 돈을 번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저자들은 금융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이 투자자들이 알기 어렵고 현혹되기 쉬운 금융거래의 맹점들을 지적하며 지금껏 언론과 금융기관을 믿고 투자했던 우리의 재테크는 ‘투표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지는’ 뻘짓이었음을 밝혀낸다. 아울러 더 이상 현명한 금융소비자가 되고 싶다면 스스로 금융지식을 충분히 익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재테크의 변화 바람은 부동산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5월 25일 한국은행은 “3월 말 현재 가계부채가 801조 3,900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주택수요가 큰 30~40대의 7가구 중 1가구꼴로는 아파트값 상승기에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한 후 빚 부담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들이다. <하우스푸어-비싼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더팩트)는 가처분소득의 40% 이상을 주택 담보대출의 원리금 상환에 쓰고 있는 69만 세대의 하우스푸어들의 실상을 낱낱이 분석해 지난 해 출간되었다.
2008년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한경BP)와 <위험한 경제학 1,2>(더난출판) 등을 연이어 출간하며 가계대출과 PF 대출로 인한 암울한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을 예견했던 선대인은 주택소유자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하우스푸어>는 리서처들을 동원해 등기부등본을 열람, 복사하여 철저한 팩트fact를 근거로 치솟는 아파트가격을 둘러싼 거대한 거짓과 음모에 대해 낱낱이 파헤치며 아파트는 더 이상 투자 대상이 아님을 역설했다.
얼마 전 출간된 <빌딩부자들>(다산북스)은 부동산 투자의 대세는 아파트가 아닌 ‘빌딩(수익형부동산)’이라고 주장했다(이 책에서 말하는 빌딩이란 ‘건물의 형태를 갖추고 매달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부동산’이다). “남의 돈 천 냥보다 제돈 한 양이 더 가치 있다.”는 말이 있다. 금융위기 이후 매 달 천만 원씩 떨어지는 아파트 매매가를 보고 아파트는 더 이상 ‘부동산 불패신화’가 아님을 알았다. 아파트 투자의 대안으로 수익형부동산이 주목되면서 <빌딩부자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인 로버트 기요사키는 <부자들의 음모>(흐름출판)에서 요즘과 같은 불황에는 ‘수익형부동산’을 통해 현금흐름을 위한 부동산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부동산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도널드 트럼프 역시 ‘수익형부동산’을 주종목으로 하고 있다. 이들의 부동산 투자방식을 우리나라에 대입한다면 ‘사람이 많이 몰리고 있는 수도권의 신흥도시에 연립주택이나 상가를 경매로 낙찰 받아 리모델링을 한 후 임대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 재테크 도서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여기서 독자이면서 투자자인 여러분이 명심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투자하려거든 뉴스도 의심하고 신문 기사도 의심하자. 은행, 은행, 주식시장 등 투자대상은 무엇이든 일단 의심하자. 이번에 터진 부산저축은행 사태만 하더라도 피해자는 저축은행을 믿은 ‘순진한 투자자’들이 아니던가?
재테크를 하려거든 ‘맡기지 말고, 직접 투자하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안 먹고 못 입으며 번 피 같은 돈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지금은 배워서 아는 만큼 돈 버는 세상이다. 저축 상품 하나라도 충분히 배우고 익힌 후에 선택해야 할 것이다. 남에게 맡길 바에는 어느 책 제목처럼 차라리 ‘다 쓰고 죽는’ 편이 낫다.
재테크에 관련된 책들을 실컷 뒤져본 결론이 ‘아무나 믿고 함부로 투자하지 말자’이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소설보다 더 아이러니한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 아니던가.
이 글은 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출판전문잡지 [기획회의](297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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