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시절부터 감독을 하고 있는 지금까지 나를 지켜보고 있는 ‘육상 왕초 기자’이다.
돌아가신 정봉수 감독님과 손기정 선생님을 가장 오랫동안 스킨십하며 취재한 기자도 바로 그다. 2006년 손기정 선생님이 달렸던 베를린 코스를 김 기자와 함께 더듬었던 일이 떠오른다. 베를린스타디움 트랙엔 손 선생님의 골인 지점이 표시돼 있었다. 그곳에 선 나는 울컥했다. 김 기자의 눈에도 물기가 어렸다.
―황영조 국가대표 마라톤경보위원장
코오롱 팀을 떠나 후배들과 여관밥을 먹으며 훈련할 때였다. 여론은 ‘이봉주는 이제 끝났다’고 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은 다가오는데 하루하루가 막막하기만 했다. 그때 김 기자가 배시시 웃으며 나타났다. ‘지구가 무너지기라도 했느냐’며 등을 두드려줬다. 난 다시 신발 끈을 질끈 조여 맸다.
2001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한 후 김 기자와 거나하게 마셨다. 나도 취했고, 그도 취했다.
―이봉주 전 마라토너
스포츠 전문 기자이자 저술가인 김화성이
원시 사냥부터 현대 육상 영웅들의 레이스에 이르기까지
인간들의 땀과 열정의 역사에 관해 풀어놓는다.
이번 여름, 달구벌이 달구어진다.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1896년 이 땅에 근대 육상이 도입된 이래 115년 만에 열리는 세계 육상인들의 축제이다. 한국은 10번째 개최 국가.
한국 육상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면 반드시 나타나는 ‘육상 왕초 기자’ 김화성이 육상에 관한 자신의 모든 지식과 경험과 사유를 풀어놓았다. 선사시대부터 미래의 육상 전망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대 육상의 시작부터 마라톤 중흥시대까지, 아프리카에서 전 세계까지 동서고금을 아울러 “인간이 달리고 넘고 던진다는 것”에 대해 말한다. 전문 기자답게 육상에 관한 지식도 균형 있게 반영했음은 물론, 인간의 달리기, 뛰어넘기, 던지기 행위를 인문적 사유의 깊이와 구수한 입담으로 집필해 육상 이해의 폭을 확장시켜 준다.
무엇보다, 이 책에는 자유와 해방, 황홀감을 맛보는 매력의 스포츠인 육상에 대한 찬사가 담겨 있다. 저자는, 육상 종목의 테크닉과 규칙과 기록을 설명해 주기 위함이 아니라, 육상이 얼마큼 매력 있는 스포츠인지를 인간의 무늬와 결, 도전자들의 땀과 열정을 통해 보여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저자는, 스피드와 지구력이 곧 생존이었던 원시 사냥에서 인류 육상의 기원을 보고, 오늘날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육상의 의미를 살피며 동시에 세계 육상 산업과 아프리카 지역의 문화인류학적 상관관계에 대해서 날카로운 세평을 내놓았다. 걷고 달리는 것이 오늘날처럼 자기 극복의 의미를 갖기 이전 생존 조건이었던 때부터 귀족과 백인 중심의 기록 깨기 도전 시기를 거쳐 오늘날처럼 되기까지 어떤 변화를 거쳐 왔는지, 또 아프리카 대륙 출신의 선수들이 최근 세계 육상을 휩쓰는 배경으로 문화인류학적, 경제적 이유를 제시한다.
2부에서는 한국 육상의 어제와 오늘을 두루 살피며 각 시기의 육상이 대중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말하고 있다. 우선 여러 사료를 통해 1896년 조선에서 처음으로 열린 운동회인 화류회를 비롯, 애국의식을 고취시켰던 관공립소학교 운동회 등 당대 체육대회 풍속과 유교 문화 아래 벌어진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그로부터 반세기 후 올림픽에서 꽃을 피웠으나 일제 강점기 하에서 울분을 삼켰던 베를린의 손기정 스토리에 이르러서는 당시 광화문 거리에 NHK 라디오의 올림픽 마라톤 중계를 스피커로 거리에 내보냈던 장면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오늘날 축구 응원 열기를 방불케 하는 시민들의 환호가 광화문 네거리에 울려퍼지기까지, 장대비 속에서 순사 몰래 ‘조선 만세’를 외치며 기뻐하기까지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그 승리 이후, 일장기 말소 사건과 시상식 내내 고개를 숙였던 손기정의 일화에선 KOREAN으로서의 자부심을 육상의 승리를 통해 드러내려 했던 열망을 전해 준다. 이후 몬주익의 황영조, 한국 마라톤 최고기록 보유자 이봉주 그리고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이르기까지 한국 육상의 만상을 담아냈다.
앞서 1,2부를 통해 육상이 그저 기록을 깨고 매달을 거는 경쟁이 아니라 어떤 인류학적 의미를 지니는지 말했다면 3부에서는 실제로 경기 관람에 좋은 팁이 될 상식들을 소개하고 있다.
자세한 종목별 규칙 및 해설, 종목별 최고기록 보유자와 기록 내역(날짜, 기록, 선수 국적, 대회 개최지), 종목별 육상 영웅에 대해서는 별책부록인 <육상 종목별 관전 가이드북 육상홀릭>에 실었다. 이 책은 오는 8월 27일부터 9월 4일까지 9일 동안 열리는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즐기며 보는 데에 유익할 것이다.
자유와 해방의 스포츠, 육상에 취해 놀다
먹잇감을 쫓다 보면, 개울을 훌쩍 뛰어넘어야 하고, 강을 건너, 돌을 던지거나 창 혹은 화살을 날려야 한다. 그뿐인가. 때론 먹잇감과 드잡이를 벌여야 하는 상황도 닥친다. ‘달리고, 뛰고, 던지는’ 동작 없이 이루어지는 스포츠는 거의 없다. ‘Citius!(보다 빨리), Altius!(보다 높이), Fortius!(보다 힘차게)의 올림픽 모토도 결국은 육상의 정신과 똑같다. 걷거나 달리다 보면 머리가 맑아진다. 마음이 활짝 열린다. 걷기나 달리기는 한 가지에서 난 잎이다. ‘자유’와 ‘해방’의 스포츠이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준다.
육상만큼 매력 있는 스포츠가 또 있을까? 육상만큼 자유와 황홀, 해방이라는 말과 어울리는 종목이 있을까? 인간 한계에 도전하여 기록을 고쳐 가며 성취와 만족을 느끼는 많은 스포츠 종목들보다, 육상이 더 원초적이고 더 매력적인 종목인 까닭은 무엇일까?
김화성 기자의 말처럼, 인간의 등 뒤에는 보이지 않는 끈이 달려 있는데, 육상은 이 끈을 한순간 베어내는 단칼이기 때문이다. 찰나에 그칠지라도 그 순간만은 해방을 맛본다. 도구를 사용하는 여러 스포츠(주로 공)들은 남보다 우월한 점수를 내면 이긴다. 즉, 타인과 경쟁을 전제로 한다. 그에 비해 육상은, 자기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스포츠이다. 저자 말로는, 인간에 달려 있는 보이지 않는 끈을 베어내려는 스포츠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육상의 매력’을 말한다. 지구의 중력은 질긴 끈이다. 아무리 높이 나는 새도 결국은 ‘중력의 법칙’에 무릎을 꿇는다. 그런데 높이뛰기는 ‘중력에 반항하는 인간의 몸부림’이다.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쇠줄보다도 더 강하고 질긴 그 끈을 베어내기 위한 부질없는 짓이다. 그 부질없는 짓을 되풀이하는 것이 인간이다. 왜 그런가?
“던져보면 느낀다. 높이 뛰어보면 깨닫는다. ‘아, 내가 살아 있구나!’ 소리치게 된다.”는 것이다. 어릴 적 뒷동산에서 뛰어놀던 그 몸짓들이 하나하나 육상 아닌 게 없었다고 한다. 막대기를 들고 도랑물을 건너뛴 것도, 들개처럼 온 들판을 뛰어다닌 것도, 돌을 던져 물수제비를 끈 것까지 모든 게 육상이었다.
저자는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가지게 되는 테제를 하나 던져준다.
“나는 던진다, 고로 숨을 쉰다. 나는 몸을 솟구쳐 뛰어넘는다, 고로 피가 끓는다. 나는 달린다, 고로 나는 살아 있다.”
왜 세계 육상은 흑인들 세상인가?
육상과 축구는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밥이요 빵이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들판을 달리며 넘고 던진다. 그리고 공을 찬다. 가난한 그들이 운동을 잘하면 부족 전체에 부를 가져다준다.
달리기는 이제 흑인들 세상이다. 단거리는 중서아프리카 출신과 미국 그리고 카리브 연안 흑인들이 펄펄 날고 있다. 장거리는 동아프리카와 남아공 흑인들이 우승을 휩쓸고 있다.
그렇다면, 왜 흑인들은 달리기에 뛰어날까?
최근 미국의 생물학자 빈센트 사리히가 재미있는 통계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수 년간 세계 각종 육상 대회 성적을 토대로 케냐 인들의 중장거리에 대한 우수성을 입증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뛰어난 마라토너가 나올 확률은 “케냐의 칼렌진 부족이 100만 명에 80명 꼴이라면 그 이외 다른 국가는 인구 2000만 명에 1명 정도”라는 것이다.
케냐의 칼렌진 족에는 ‘캐틀 라이딩(소 도둑질)’ 전통이 있다. 그들은 수백 년 동안 다른 부족이 기르는 가축을 도둑질하면서 살아 왔다. 만약 훔치다 걸리면 곧바로 죽음이다. 칼렌진 남자들은 결혼을 하려면 소 두세 마리는 훔쳐 와야 했다. 결국 최고의 마라토너만이 아내를 얻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수백 년 동안 최고로 잘 달리는 유전자만 남게 됐고 오늘날 케냐 선수들이 바로 그 유전자를 이어받았다는 논리다. 물론 역사생물학자의 설명이다. 케냐 선수들은 대부분 칼렌진이다.
흑인들 엉덩이는 빵빵하다. 허벅지 뒤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부분이 늘씬하고 팽팽하다. 그래서 잘 달린다. 이 빵빵한 엉덩이에서 순간적인 강력한 힘이 분출된다. 학자들은 이 빵빵한 엉덩이 근육을 파워 존이라고 부른다. 파워 존이 잘 발달해야 빠르게 달릴 수 있다. 흑인들의 파워 존은 백인종이나 황인종에 비해 눈에 띄게 잘 발달돼 있다. 게다가 흑인들은 단거리에 적합한 속근 섬유질 근육이 상대적으로 더 발달돼 있다. 그에 비해 아시아인들이나 서구인들은 오래 달리는 데 적합한 지근 섬유질 근육이 흑인에 비해 잘 발달돼 있다. 한마디로 흑인들은 단거리, 아시아인이나 서구인들은 마라톤 체질이다.
그렇다면, 왜 세계 마라톤 대회마다 흑인들이 우승을 밥 먹듯이 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현대 마라톤의 스피드화와 관련돼 있다. 마라톤도 이제 100m 달리듯이 빨리 달리지 않으면 우승할 수 없는 시대에 온 것이다.
아프리카 육상과 축구는 서구 자본의 투기 대상이다. 작은 돈을 들여 큰돈을 벌 수 있다. 케냐, 에티오피아, 남아공의 어린 육상 선수들은 대부분 미국 자본으로 키워진다. 이탈리아나 일본 자본도 기웃댄다. 축구는 유럽의 ‘현대판 축구 노예 상인들’이 설쳐댄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가난을 벗어날 마지막 탈출구로써 달리기와 축구를 꿈꾼다. 서구 자본은 아프리카의 유망한 꿈나무들을 헐값에 사서 종신 계약을 맺는다. 해마다 수천 명의 아프리카 청소년들이 꿈을 위해 유럽 무대를 노크해 보지만, 이중 선택된 사람은 극히 드물다. 나머지는 유럽 뒷골목을 떠도는 불법체류자로 남는다.
민족영웅 손기정 그리고 한국 마라톤 중흥 시대
“나라 없는 백성은 개와 똑같아. 만약 일장기가 올라가고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가 연주되는 것을 알았다면 난 베를린 올림픽에서 달리지 않았을 거야.”
손기정은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시상대에서 시종 고개를 숙이고 땅바닥을 내려다봤다. 가슴의 일장기를 월계수 화관으로 가린 채. 그리고 그 생애에 다시는 일장기를 달고 달리지 않으리라 굳게 맹세했다. 그리고 실제 해방되기까지 단 한 번도 마라톤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할 말은 많은 것 같은데 머릿속이 텅 비어 아무 가닥도 잡을 수 없었다. 태극무늬를 가슴에 단 선수가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것을 본 순간 나는 두 다리에 힘이 빠져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1992년 바르셀로나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가 1위로 결승선에 들어온 뒤 기진해 쓰러진 모습을 관중석에서 지켜보며 손기정은 속울음을 삼켰다. “더 이상 여한이 없구먼. 이제는 맘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아.”라며.
한국 마라톤은 딱 두 번, 올림픽을 제패했다. 그렇지만 올림픽이 아닌 셰계 마라톤 제패의 역사는 더 화려하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그의 제자 서윤복은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세계최고기록으로 우승했다. 1950년 보스턴 마라톤에서는 손 선생이 길러낸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이 1,2,3위를 휩쓸었다. 이 모두가 1945년 광복 후 손기정 선생이 묵묵히 마라톤 후진 양성에만 매달렸던 결과인 것이다.
한국 마라톤의 중흥을 이끈 두 명의 영웅은 황영조와 이봉주이다. 두 동갑내기 친구는 서로 친하다는 것을 빼고는 모든 점에서 대조적이었다. 황영조가 천재형이라면 이봉주는 은근과 끈기형이다. 황영조는 1992년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이봉주는 2004년 아테네에서 은메달에 머물렀지만, 한국 최고기록을 갖고 있다. 한국 마라톤의 전성기는 반 세기가 넘는다. 1935년부터 1952년까지 무려 17년 동안 세계최고기록을 손기정과 그의 제자 서윤복이 갖고 있었다. 1935년부터 1992년 황영조의 금메달과 2004년 이봉주의 은메달까지, 한국 마라톤은 세계 마라톤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세계 마라톤의 스피드화 추세(평평한 코스 개발, 운동화 개발 등)에 의해 점차 아시아인들은 흑인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현대 마라톤은 단거리의 확대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처절한 스피드 레이스이다. 한국 마라톤 최고기록은 2000년 2월에 도쿄 마라톤에서 이봉주가 세운 2시간 7분 20초이다. 이 기록은 1985년의 세계최고기록에 해당한다. 지금 세계최고기록을 가진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2시간 3분 59초)에 비해 약 4분가량 늦으며, 세계무대의 기량과는 약 15년 정도 늦은 셈이다.
한국 마라톤의 중흥시대를 이끈, 코오롱 팀의 정봉수 전 감독(2001년 작고)이 가장 가슴 아파하는 일은 1996년 황영조의 은퇴와 1999년 이봉주가 자신의 품을 떠났을 때였다. 그 시점에서 몇 년이 지나지 않은 사이에 한국 마라톤은 점차 세계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었다.
걷기와 달리기에 미쳐 사는 육상 왕초 기자가 전하는
한국 육상에 대한 기억과 기록
저자는 손기정 선생의 살아생전 때부터 줄곧 취재와 인터뷰를 해온 인연이 각별했다. 그 인연 때문에 작고하신 이후에는 손기정기념재단 이사를 맡았었다. 황영조와 이봉주가 갓 전국체전을 통해 등용문을 통과했을 때부터 현재까지 육상 왕초 기자로서 이들과 교류를 해왔다.
이봉주와는 그가 코오롱 팀을 떠나 후배들과 여관밥을 먹으며 훈련을 할 때에, 하루하루가 막막한 시절에 용기를 주기도 했었다. 황영조와는 2006년에 손기정 선생이 달렸던 베를린 코스를 함께 더듬었던 일이 있다. 베를린 스타디움 트랙에 손 선생의 골인 지점을 보면서, “나도 울컥했고, 김 기자의 눈에도 물기가 어렸다”고, 황영조 위원장은 말한다. 또한 <육상월드> 편집위원으로도 활약하면서, 척박한 한국 육상계에 쓴소리 단소리 해가면서 육상의 오늘과 내일을 챙기기도 하였다.
이 책은 지금까지 저자가 육상에 대해 쓴 글들을 한데 모으면서, 육상의 기원과 본질에 대해 깊이 성찰한 내용과 한국 육상의 역사를 본 책에 담았고 그 외에 실용적인 정보들은 별책에 담아 독자들에게 선보였다.
손문상 화백은 솜씨 좋은 카툰을 그려 넣었고, 표지 디자인까지 맡아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자유와 황홀 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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