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위기 극복할, ‘주식회사’의 대안 ‘협동조합 기업’
“사람 간 신뢰에서 나오는 협동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의 원천”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는 협동조합 형태의 기업을 주식회사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협동조합 기업’은 무한경쟁, 승자독식, 양극화 등 ‘1%의 탐욕’이 빚은 자본주의 경제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UN은 2012년을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선포했는가 하면 우리 국회는 2011년 12월 ‘협동조합 기본법’을 제정해 ‘협동조합으로 기업하기’의 물꼬를 텄다.
국제사회는, 그리고 한국은 왜 한때 좌·우파 모두의 공격 대상이었던 협동조합에 주목하는가? 이 책은 협동조합의 원리가 무엇이고, 세계의 협동조합이 어떻게 발전했으며, 협동조합이 번성한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이를 통해 사람 간의 신뢰에서 나오는 협동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저자는 협동조합이 시장경제를 전제로 탄생해 성장해온 기업 형태라는 점을 강조하며, 특정 분야에서는 자본주의적 기업보다 강한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을 예리하고 풍부하게 논증한다.
2012년 협동조합의 새로운 전기를 맞아 한국협동조합연구소와 북돋움이 공동으로 기획한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는 새로이 촉발될 협동조합 운동에 유용한 참고서가 될 것이다.
경제적 민주주의를 이루는 대안, 협동조합 기업
“신뢰에서 나오는 협동으로 경제 효율의 단순 논리를 뛰어넘는다”
국내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협동조합으로 기업하기’ 물꼬 터
“협동조합은, 다른 사람의 재산에 손대지 않는다; 강탈하지 않는다;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을 곤란하게 하지 않는다; 비밀 결사를 만들지 않는다; 노동조합을 결성하지 않아도 된다; 폭력에 빠지지 않는다; 질서를 파괴하지 않는다; 자존감을 다칠 일이 없다; 공짜로 받거나 특혜를 구하지 않는다; 게으른 자와 거래하지 않고, 근면한 사람과의 신뢰를 깨지 않는다; 구걸하거나 비열하거나 무례하지 않다; 협동조합은 자조와 자립이다. 육체노동이나 정신노동으로 정당한 자기 몫을 누린다.” (협동조합의 역사, 1906)
우리는 대부분 기업이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주식회사를 떠올린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을 운영할 수 있다는 생각은 생경하거나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이야기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는 ‘협동조합’이라는 기업 형태를 주식회사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 책은 협동조합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꼽히는 스테파노 자마니와 그의 부인 베라 자마니가 쓴 책이다. 자마니 부부는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교의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볼로냐는 경제 활동의 40%가 협동조합을 통해 이루어지는, 협동조합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이다.
협동조합은 주식회사보다 먼저 생겨난, 기업의 ‘맏형’
‘경제적 성과’와 ‘사회적 책임’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협동조합은 어찌 보면 두 얼굴의 야누스이다. 뚜렷이 구분되는 두 개의 차원이 결합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은 시장 안에서 작동하고 그 원리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경제적 차원의 기업이다. 동시에, 경제 외적인 목적을 추구하고 다른 경제 주체와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사회적 차원의 조직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중적인 성격 때문에 협동조합은 설명하기도 다루기도 매우 어렵다. 이를테면, 통상적인 경제학으로는 이기적인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 경제 주체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통상적인 경제학의 틀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해서, 협동조합이라는 대안이 현실적인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협동조합을 주식회사의 대안이라고 소개했지만, 사실 협동조합은 오히려 주식회사보다 긴 역사를 갖는다. 협동조합 기업은 산업혁명 시기에 생겨났지만, 서로 연대하고 가난을 배려하는 문화는 그 수 세기 전부터 있었다. 중세 사회에서는 상인과 장인 같은 생산 계층이 모여 각자의 이해를 협력적 방식으로 관리하는 길드와 상인회의소 조직을 만들었다. 생산 계급에 속하지 못하거나 일시적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는 병원, 보육원, 공공대부기관, 빈민보호소 같은 조직도 세웠다. 이런 조직들은 시장의 관계망 속에 운영되면서도, 어떤 구성원도 배제하지 않고 도시의 일상생활과 조화를 이루었다. 상장 회사 같은 ‘자본주의’ 기업 형태가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은 오히려 18세기 산업혁명기에 들어서면서였다.
썬키스트 등 세계적 기업도 협동조합 … FC바르셀로나, AP통신도?
핀란드, 스웨덴 등 협동조합 활발한 나라는 경제와 복지도 뛰어나
협동조합은 오늘날에도 활발히 기업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여러 나라에서 경제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는 전 세계 91개국의 227개 협동조합연합체가 참여하고 있으며, 조합원은 총 8억 명에 이른다. 협동조합이 가장 강한 나라는 핀란드, 스웨덴, 아일랜드, 캐나다로 이들 국가에서는 국민 절반이 조합원이다. 다음으로 노르웨이, 덴마크, 프랑스, 일본이 꼽히고, 놀랍게도 미국 역시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조합원이다. 모든 경제 부문으로 협동조합이 진출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협동조합이 왕성한 부문은 농업 및 식품 가공, 소매업, 그리고 은행 및 보험 쪽이다.
뉴질랜드 경제를 끌어가는 최대 기업, 폰테라(낙농)와 제스프리(키위)도 협동조합이다. 리오넬 메시의 FC바르셀로나, 미국 언론의 대표주자 AP통신, 캘리포니아 오렌지의 대명사 선키스트, 프랑스 최대은행 크레디 아크리콜, 이런 세계적 기업들도 협동조합이다. 국민소득에서 협동조합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나라는 핀란드, 뉴질랜드, 스위스, 네덜란드 및 노르웨이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협동조합 운동이 가장 활발히 벌어지는 나라가 뛰어난 경제 발전과 복지 수준을 동시에 보이는 나라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원칙, 정치뿐 아니라 경제와 기업에도 적용돼야
‘협동조합 기업’, 사회 민주화 등 긍정적 외부효과 커
그럼에도, 협동조합은 시장경제와 양립할 수 없는 ‘비효율적’인 조직 형태로 폄하 받아왔다. 사실 ‘효율성’이라는 개념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어떻게 주식회사와 협동조합이라는 두 가지 기업 형태를 효율성 측면에서 비교하는 것이 객관적이며 가치중립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이런 관점은 모든 인간을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호모에코노미쿠스’로 바라보는 주류 경제학의 시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경제적 이해관계뿐 아니라, 다른 가치와 신념에 따라 움직이기도 한다. 나아가, 각 경제 주체가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벌이는 행동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오히려 저해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협동조합이라는 기업 형태를 올바르게 평가하려면, 협동조합이 가진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그중 가장 큰 것이 사회의 민주화이다. 생산 현장에서의 민주주의가 정치 제도의 민주화를 강화하고 지지하는 결과를 이끌어 낸다. 이 책에서는 ‘정부의 체제에서 민주주의가 정당화된다면, 기업의 체제에서도 민주주의는 똑같이 정당화된다’라는 로버트 달(Robert Dahl)의 말을 소개한다. 민주적 원칙이 오직 정치에서만 적용되는 한, 그 사회는 완전히 민주적일 수가 없다. 좋은 사회라면, 시민이자 유권자로서는 민주적이고, 노동자이자 소비자로서는 비민주적인 그렇게 당황스러운 분열상을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UN, 2012년 ‘세계 협동조합의 해’ 선포
국내서도 ‘협동조합 기본법’ 제정, ‘협동조합 기업’ 물꼬 터
협동조합은 불가분의 두 가지 독특한 차원이 결합한 경제 주체라고 요약해 말할 수 있다. 하나의 차원은 연합주의로, 사회적 동기를 공유한 여러 사람이 혼자서는 이루기 어려운 목적을 향해 자유롭게 뭉치는 정신이다. 또 다른 차원은 기업가정신이다. 공동의 목적 달성을 위해 시장 지향적으로 생산 활동을 하는 안정적인 조직인 기업을 세우는 것이다. 협동조합 운동의 선구자인 상조회, 오늘날의 복지기관이나 자선 단체에는 일반적으로 두 번째 요소인 기업가정신이 빠져 있다. 오늘날의 복지기관이나 자선 단체도 마찬가지이다. 자본주의 기업은 첫 번째 요소인 연합주의가 없다. 협동조합이 생겨나고 잘 뻗어나가려면 강력한 연합의 동력을 갖추어야 하며, 동시에 시장에서 제구실을 해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모두 구현되어야만 협동조합이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2012년은 UN이 정한 ‘세계 협동조합의 해’이다. UN은 2009년 12월 18일 총회에서 ‘사회 발전에 있어서의 협동조합’이라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세계 협동조합의 해를 제정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이와 관련해 “협동조합은 경제적 성과와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일깨워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때를 같이해, 2011년 12월 말에 협동조합기본법이 우리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이 발효되는 2012년 12월부터는 5명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이제까지 우리나라는 법제도가 미비해 참신하고 창의적인 협동조합 설립이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었다. 새로이 제정된 법은 그 내용이 비록 충분하진 않지만,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는 물꼬를 트는 구실은 할 수 있을 것이다.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는 협동조합이 시장경제를 전제로 탄생, 성장해온 기업 형태이며, 특정분야에서는 자본주의적 기업보다 강한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을 예리하고 풍부하게 논증한다. 또한, 협동조합은 그 사상과 구조에 걸맞은 방식으로 운영되고 평가되어야 함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협동조합이 새로운 전기를 맞은 2012년,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는 새로이 촉발될 협동조합 운동에 유용한 참고서가 되어줄 것이다. 협동조합 활동가는 물론 협동조합에 가입하려는 사람부터 박원순 서울시장처럼 지방자치단체의 사회적 경제를 키우려는 사람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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