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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보이가 주목한 오늘의 책 - 선악의 경제학(토마스 세들라체크)

by Richboy 2012. 7. 20.

 

 

 

 

   ‘경제학’이라는 말이 들어간다고 이 책을 내려놓는다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허세를 부리는 대부분의 책과 달리 이 책은 매우 탁월한 저작으로 처음 3분의 2를 읽을 때까지 책을 내려놓거나 한눈을 팔 수 없었다.
- <파이낸셜 타임스>

   현대의 노동과 풍요에 대한 세들라체크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너무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너무 많이 일한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아멘’이라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뉴욕타임스>

   인류의 문화사에서 경제의 근원을 찾으며, 경제학에 대한 경계와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내미는 책!
- <슈피겔>

   40년 오랜 전체주의 공산 정권에서 벗어나 당대의 산적한 과제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경제학자다. 경제학을 둘러싼 경계를 넘어 경제학과 역사, 철학과 심리학, 고대신화의 연결고리를 찾아 떠나는 여정은 신선할 뿐 아니라 21세기를 이해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 바츨라프 하벨(Vaclav Havel), 전 체코 대통령

   세들라체크는 사람의 이야기와 철학을 고려함으로써 인간의 숙명을 바라보는 다름 아닌 ‘인간경제학’을 제시한다. 경제학자들은 그동안 학문적 협소함으로 인해 ‘과학적’ 무시를 당해왔다. 그러나 길가메시에서 영화 <매트릭스>까지 아우르는 세들라체크에게 학문의 폭이 좁다는 비판은 당치 않다. 경제학의 정신까지 파고드는 학문적 깊이가 무엇보다 인상적이다.
- 디어드리 맥클로스키(Deirdre McCloskey), 일리노이대학교 시카고캠퍼스 경제학 교수

 

저자는 성장과 탐욕의 역사를 파헤치며 주류 경제학이 외면했던 도덕의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성장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설파하는 주류 경제학을 비판하며 “선(善)의 극대화가 수반되지 않는 이익의 극대화는 무의미하다”며, 도덕성이 배제된 시장경제란 좀비 시스템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학문 분야를 나누는 경계를 벗어난 저자의 뛰어난 통찰이 돋보이는 이 책은 독자들을 참신한 인문학적 경제학의 세계로 안내할 것이며, 우울한 경제위기 시대를 헤쳐 나갈 지혜를 선사할 것이다.

 

유럽을 이끄는 새로운 리더로 주목받는 젊은 경제학자의 도발적 질문!
“경제학은 어떻게 도덕을 밀어냈는가?”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를 잇는
위기의 시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를 묻는 인문학적 통찰력이 돋보이는 수작!

신화에서 종교, 철학, 문학, 영화에 이르기까지
경제학의 기원을 찾아 떠나는 방대한 지적 탐험

숫자와 확률의 세계라고 생각했던 ‘경제학’이 사실은 인류의 지혜가 집대성된 풍부한 ‘이야기’임을 보여주는 매혹적인 경제서가 출간되었다. 《선악의 경제학》의 저자 토마스 세들라체크는 체코의 제1대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의 경제자문으로 발탁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유럽을 이끄는 차세대 리더로 꼽히며 <예일 이코노믹 리뷰>에서 “경제학계 유망주 Top 5”로 선정되기도 한 젊은 경제학자다. “경제학의 모든 것은 결국 선과 악의 문제”라고 처음으로 주장한 이 책은 체코에서 처음 출간된 이래 놀라운 판매량을 보이며 전 유럽, 미국에서 연이어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뿐 아니라 연극으로 각색되어 체코 프라하국립극장에서 매진 행렬을 이어나갔다.
흔히 경제학은 가치중립적이고 수학적인 연구 분야이자 과학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세들라체크는 경제학을 문화적 현상이자 문명의 산물로 본다. 그에 따르면 수리과학으로서 경제학의 개념이 출현한 것은 18세기 후반이며, 그 이전에는 신화와 종교, 철학 속에 경제학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학 작품 <길가메시 서사시>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서사시 어디에도 뭔가를 사고파는 행위, 즉 거래는 등장하지 않지만 천연자연과 노동력을 최대한의 효율로 활용하는 문제, 인간의 감정이 노동력에 미치는 영향 등 중요한 경제 개념을 다루고 있다. 이후로도 저자는 경제학의 기원을 찾아 구약, 기독교 사상, 아르스토텔레스, 데카르트, 《반지의 제왕》, 영화 <매트릭스>를 종횡무진하며 창의적이고 활기찬 여정으로 독자를 이끈다.
저자는 성장과 탐욕의 역사를 파헤치며 주류 경제학이 외면했던 도덕의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성장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설파하는 주류 경제학을 비판하며 “선(善)의 극대화가 수반되지 않는 이익의 극대화는 무의미하다”며, 도덕성이 배제된 시장경제란 좀비 시스템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학문 분야를 나누는 경계를 벗어난 저자의 뛰어난 통찰이 돋보이는 이 책은 독자들을 참신한 인문학적 경제학의 세계로 안내할 것이며, 우울한 경제위기 시대를 헤쳐 나갈 지혜를 선사할 것이다.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슈피겔>이 극찬한
유럽의 젊은 경제학자의 인문학적 통찰력이 돋보이는 새로운 경제학!

토마스 세들라체크의 《선악의 경제학》을 읽는 독자는 책장을 들추고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반사적으로 앞으로 돌아가 책 제목과 저자 이력을 다시 살피게 될지도 모른다. 분명히 경제학자가 쓴 책이 확실한데, 서문에서부터 느닷없이 ‘시’와 ‘신화’가 등장한다. 그리고 인류가 남긴 최초의 문학작품,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시작하여 기독교, 철학, 심리학, 문학, 영화 등의 영역을 종횡무진하며 창의적이고 활기찬 여정으로 독자를 이끈다.
저자인 세들라체크는 프라하 카를대학에 재학중이던 스물네 살 어린 나이에 작고한 체코 제1대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의 경제자문으로 발탁되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현재는 체코의 주요 은행인 ?SOB의 수석 거시경제 전략가이자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이며, 카를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선악의 경제학》은 체코에서 처음(2009년) 출간된 이래 놀라운 판매량을 보이며 전 유럽, 미국에서 연이어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연극으로 각색되어 프라하국립극장에서 매진 행렬을 이어나갔다. 경계를 넘나드는 매혹적이고 포스트모던한 전개를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지금껏 숫자와 확률의 세계라고 생각했던 ‘경제학’이 인류의 지혜가 집대성된 풍부한 ‘이야기’의 세계로 확대될 것이며, 끝없는 우울의 터널, 위기의 시대를 지나는 현대인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경제학의 탄생을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학은 이야기이다”
인류 최초의 신화 <길가메시 서사시>와 최초의 경제학

흔히 경제학은 가치중립적이고 수학적인 ‘과학’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세들라체크는 경제학을 문화적 현상이자 문명의 산물로 본다. “아무리 복잡한 수학적 모델도 우리 주위의 세계를 (이성적으로) 포착하기 위한 노력에서 나온 사실상의 이야기이자 우화”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수리과학으로서 경제학의 개념이 출현한 것은 18세기 후반이며, 그 이전에는 신화와 종교, 신학, 철학 속에 경제학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기원전 2000년 무렵에 쓰인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학 작품 <길가메시 서사시>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서사시가 인류 문명 최초의 경제적 고찰을 마주할 수 있는 기록이라고 주장한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천연자원과 노동력을 최대한의 효율로 활용하는 문제 등 중요한 경제 개념을 처음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이 노동력에 미치는 영향을 놓고 제기되는 딜레마, 그리고 문명 이전의 자연 상태와 ‘진보’라는 용어, 노동력의 포괄적인 분배와 같은 문제가 모두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오는 최초의 도시 건설과 연관되어 있다.
또한 이 서사시에서 우리는 인간성에 대한 탐구, 욕구에 대한 고찰을 마주할 수 있다. 인간은 자연 상태 그대로 완벽한 인간인가, 아니면 도시 문명의 체계 속에서 완벽한 인간이 되는 것인가?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역사적으로 이런 질문은 경제 정책의 핵심을 이뤄왔다.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믿는다면, 즉 인간이 동물처럼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라면 지배자의 강력하고 엄한 통치가 요구될 것이다. 인간 자체의 본성이 선을 향한다고 믿는다면, 좀 더 자유방임주의에 가까운 사회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저자는 이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경제사상으로 구체화된 원리가 길가메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제시한다. 길가메시에서 그것은 엔키두를 통해 야생의 악에 고삐를 매어 결국 인간에게 이익을 주도록 길들인다는 형태로 나타난다.

“선은 이익이 되는가?”
경제학은 철학 혹은 윤리학의 일부였다

길가메시 서사시 다음으로 저자가 눈을 돌린 것은 구약성서이다. 유명한 요셉의 꿈과 파라오의 이야기를 보자. 요셉은 일곱 마리의 살진 암소와 비쩍 마른 일곱 마리의 암소에 대한 파라오의 꿈이 7년간의 풍년과 7년간의 빈곤에 대한 예언이라면서 풍년이 들 때 식량을 저장해두어 흉년에 대비하라고 조언한다. 이 이야기는 경기순환에 관한 인류 최초의 발상이자 요셉의 제안은 ‘케인스의 반경기순환 재정 정책(anticyclical fiscal pdicy)’이라고 볼 수 있다.
경기순환에 관한 수많은 이론이 존재하지만, 오늘날에도 경제학자들은 그 원인에 대해서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심리학적 요인을 탓하며, 어떤 이들은 저축과 투자의 불균형을 꼽는다. 또 어떤 이들은 태양의 흑점을 거론하기도 한다. 히브리인들은 경기순환, 즉 풍년과 흉년의 이면에는 도덕이 있다는 생각을 제시했다. 도덕은 경기순환에 책임이 있는가? 인간의 행위가 주위 현실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도덕이 미래에 영향을 끼치는가?
이로써 우리는 윤리학과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질문에 이르게 된다. 바로 “선은 이익이 되는가?”라는 질문이다. 이것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까다로운 도덕적 질문일 것이다.
논의는 자연스럽게 그리스 철학의 세계로 연결된다. 저자에 따르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를 이해하지 못하면 현대의 경제 개념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훗날 벤담과 밀이 경제적·수학적으로 엄밀화한 개념의 시초도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였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 특히 플라톤의 가르침에서는 합리적 이상화의 토대와 수학으로 표현된 과학적 진보라는 주제를 찾아볼 수 있으며, 이 둘은 경제학의 발전 과정을 규명하는 데 기여했다.
그리고 데카르트, 맨더빌을 거쳐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를 살피는 장에서 저자는 고전적인 스미스 경제학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현대의 주류경제학이 윤리학을 경시하는 풍조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한다. 선악의 문제는 고전적인 논쟁에서는 핵심 주제였지만, 현대에는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이단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저자는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이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탄생 이상으로 경제학에 훨씬 광범위한 기여를 했다고 분석한다. 애덤 스미스와 토머스 맬서스, 존 스튜어트 밀, 존 로크까지 고전 자유주의 경제학의 위대한 아버지들은 최고의 도덕철학자들이기도 했다.

“탐욕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욕망의 경제학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저자는 엔키두의 욕망에 주목한다. 그는 짐승과도 같았다. 문명 없이 살았고, 문명화되지도 않았다. 그의 욕구는 최소한으로만 존재했다. 동물의 욕구는 인간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반면 사람들의 욕구는 21세기의 부와 과학기술로도 충족될 수 없다. 엔키두는 그의 모든 욕구가 충족되었으므로 자연 상태에서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인간 세상에서는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발전하고 부유해질수록 욕구도 늘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소비자가 물건을 사면 이론적으로 그의 수요는 한 가지가 없어져야 한다. 즉,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의 총합에서 한 가지가 줄어들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의 총합은 ‘내가 가진 것’의 늘어나는 총합과 함께 확대되기만 할 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위를 통해 욕구가 충족된 상태에 이르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현대 사회가 전례 없이 과도한 풍요를 누리면서도 과도한 채무에 허덕이는 데서도 드러나듯, 이는 중대한 착각이었다. 수요는 다만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낼 뿐이다. 공급은 수요를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수요를 새롭게 만들어낸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스미스 요원은 모피어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최초의 매트릭스가 완벽한 인간 세상으로 설계되었다는 것을 아는가? 아무도 고통 받지 않고, 누구나 행복한 세상이었지. 그건 재앙이었어. 아무도 그런 프로그램을 받아들이지 않았지. 어떤 자들은 우리에게 너희들의 완벽한 세상을 그려낼 프로그램 언어가 없다고 생각했어.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인간이라는 종족은 현실에서 고통과 불행을 통해 스스로를 규정하기 때문이야.”
새롭게 충족된 모든 욕구는 새로운 욕구를 낳으며 우리는 계속해서 뭔가를 원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성취하는 모든 새로운 욕망을 조심해야 한다. 그것은 새로운 중독이며, 소비는 마약과 같기 때문이다.

“부채는 성장을 추구하기 위한 스테로이드”
GDP 최소화에서 채무 최소화로 경제 정책 목표 수정 필요

체코의 전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은 경제위기에 대응해 성장의 의미를 물었다. “왜 모든 것은 끊임없이 성장해야 하는가? 왜 산업과 제조업과 생산력은 증가해야 하는가? 왜 도시는 한 폭의 풍경도, 한 포기의 풀도 남지 않을 때까지 무조건 모든 방향으로 성장해야 하는가?”
아마도 우리 시대는 역사적으로 빚의 시대라고 기록될 것이다. 최근 수십 년간 우리의 빚은 결핍 때문이 아니라 과잉 때문에 증가했다. 최근의 세계 경제위기는 우리가 성장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GDP의 0.1%포인트에 연연하면서 GDP 감소를 거의 종교적 실망감으로 받아들이는지를 드러냈다. 마치 경제성장이 우리를 지상천국에 더 가깝게 인도하기라도 할 듯이, 진보나 성장에 대한 보장은 시장과 국가와 과학, 때로는 이 모두가 공동으로 추구하는 관심사가 되었다.
GDP 성장에 대한 논쟁은 종종 무의미하다. GDP 성장은 단순히 채무에 따라(또는 적자나 흑자예산 형태의 재정 정책을 통해) 좌우될 수 있다. 이면에 몇 배나 더 큰 적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GDP 성장률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케인스주의는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취약한 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책으로 다시금 부상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취하는 경제 정책은 케인스주의와는 전혀 다르다. 저자는 “현재의 재정 정책을 묘사하는 가장 적합한 단어는 거짓 케인스주의”라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우리는 케인스주의의 한 부분(적자는 허용된다)만을 받아들이고, 두 번째 부분(흑자를 만들어야 한다)은 잊어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흑자가 나는 때조차 빚을 허용하고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경우 적자 감축은 다만 빚더미에 올라앉는 속도를 늦추는 미봉책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빚을 천천히 늘리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빨리 줄이는 것이다. 저자는 앞으로 GDP 성장의 일부를 희생하고 인위적으로 경기를 둔화시킴으로써 에너지를 회복해 빚을 축소하는 데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속도 최대화에서 채무 최소화로” 경제 정책의 목표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러한 채무위기에 대해 제안하는 재정 원칙을 간단히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GDP 성장과 총예산적자를 합한 값은 가령 GDP의 3퍼센트보다 커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경제가 6퍼센트 성장한다면, 최소 3퍼센트의 흑자예산을 내야 한다. 경제가 3퍼센트 감소한다면, GDP의 최대 6퍼센트까지 적자를 낼 수 있다. 불황기에는 적자가 허용되지만, 호황기에 반드시 이를 벌충해야 한다.” 그리고 저자는 강력하게 경고한다. 우리가 지금처럼 빚을 짊어진 채 다음에 올 위기를 맞이한다면 한 세대나 두 세대 뒤에 닥칠 다음의 위기는 참으로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말이다.

“도덕성이 배제된 시장경제는 좀비 시스템”
수치경제학에서 인간경제학으로

유감스럽게도 계량경제학적 분석은 종종 쓸모없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이유에서 수학은 경제학자들에게 중요한 보조수단일 뿐이다. 경제학자는 보다 폭넓은 사회적 지식과 역사적 지식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제야 경제학자는 그런 부조리와 ‘보다 그럴듯한’ 인과율을 구별할 수 있다. 우리를 컴퓨터와 구별짓는 것은 우리 안의 인간이다.
인간의 행동은 예측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반 대중들의 믿음에 따르면 두터운 경제학 책과 방정식과 노벨상과 권위 있는 대학 학위에 둘러싸인 경제학자들은 경제위기가 언제 끝날 것이고, 어떤 수단을 써서 가능한 빨리 위기를 끝낼 것인지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때때로 경제학은 자연과학처럼 행동하기는 하지만 자연과학이 아니라 사회과학이다. 경제학자들이 수학을 많이 사용한다고 해서 경제학이 정확한 과학이라는 뜻은 아니다.
저자는 현대의 주류경제학이 기초로 삼아야 할 도덕적 원칙을 떨쳐버렸고, 그런 원칙에서 탈피한 경제 정책의 결과는 막대한 채무를 낳은 적자병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경제학자들이 “우리는 인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의 질문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제 활동은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는 자전거 타기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걷는 것과 더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넘어지지 않고 멈춰 서서 있을 수 있죠.”
학문 분야를 나누는 경계를 벗어난 저자의 뛰어난 통찰이 돋보이는 이 책은 독자들을 참신한 인문학적 경제학의 세계로 안내할 것이며, 우울한 경제위기의 시대를 헤쳐 나갈 지혜를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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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경제학

저자
토마스 세들라체크 지음
출판사
북하이브 | 2012-07-25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저자는 성장과 탐욕의 역사를 파헤치며 주류 경제학이 외면했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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