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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보이가 주목한 오늘의 책 - 약탈적 금융사회(제윤경, 이헌욱)

by Richboy 2012. 9. 18.

 

 

 

못 갚을 줄 알면서도 빌려 준 약탈적 금융을 고발한다!
 
『약탈적 금융 사회』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금융의 약탈적 행태를 고발한 책이다. 서민 경제 전문가인 저자 제윤경, 이헌욱은 이러한 금융 시스템이 만들어진 배경을 외환 위기 이후 본격화한 신자유주의에서 찾는다. 지금까지 금융권이 어떤 식으로 이득을 취하면서 소비자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겼는지, 그 결과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까지 우리 사회의 대부분이 금융의 노예가 되었음을 낱낱이 보여준다. 그리고 ‘빚의 노예’가 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다시 ‘자유인’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암울한 현실을 이겨 낼 희망도 제시한다.
 
 

대한민국 서민 경제 전문가 제윤경, 이헌욱이 우리 사회 대다수를 빚의 노예로 전락시킨 ‘약탈적 금융’을 고발한다.
가계 부채 1000조, 집에 과도한 빚이 딸린 하우스 푸어가 150만 가구, 대한민국 가계의 60퍼센트가 빚을 진 시대. 어떻게 해서 우리는 이토록 헤어날 길 없는 빚의 굴레에 빠져들게 되었을까?
저자들은 약탈적 금융 시스템을 그 배후로 지목한다. 외환 위기 직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하에서 약탈적 금융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며, 지금까지 금융권이 어떤 식으로 이득을 취하면서 소비자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겼는지, 그 결과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까지 우리 사회의 대부분이 금융의 노예가 되었음을 낱낱이 고발한다. 그리고 ‘빚의 노예’가 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다시 ‘자유인’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암울한 현실을 이겨 낼 ‘희망’도 제시한다.

갚고 싶어도 못 갚는 건 내 책임이 아니다
못 갚을 줄 알면서도 빌려 준 약탈적 금융을 고발한다!


학자금 대출로 대학을 졸업했다
현금 쓰면 손해라기에 신용카드를 긁었다
집값이 치솟기에 대출 받아 아파트 샀다
이자율이 낮아서 예금 대신 펀드로 갈아탔다
생활이 빠듯해도 아이들은 학원에 보냈다
부자를 꿈꾸던 나는 지금 빚쟁이가 되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친절하게 빚 권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저축의 중요성을 노래하던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빚을 예찬하는 곳으로 바뀌었을까요? 그 변화 속에서 이득을 본 사람과 ‘푸어’로 전락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책은 이 같은 이야기를 참으로 쉽고 야무지게 알려 줍니다. 성실하게 오늘을 살고 있는 모든 서울시민과 늘 시민의 목소리를 전달해 주는 저자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 응원을 보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이 책은 풍부한 사례와 설득력 있는 언어로 가계 부채가 구조화된 원인을 드러내고 대안을 제시한다. 어떤 경제학자도 제대로 접근하지 않았던, 한국 경제의 현실을 미세하게 드러낸 보물 같은 작업이 이 책의 각 장에 담겨 있다. ­박원석, 국회의원(기획재정위)

이 책은 폭발 직전에 이른 가계 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과도한 빚을 권해 온 금융회사들과 정부, 정치권, 언론의 책임을 먼저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부채 시한폭탄이 째깍거리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책이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

민생 문제의 핵심이 실제로는 ‘약탈적 금융’에 있음을 잘 보여 준다. 책을 읽고 나면 ‘가계 부채 공화국’ ‘빚쟁이 공화국’ ‘고리대 공화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실상을 생생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

<화차>보다 더 무섭다! ‘약탈적 금융’에 사로잡힌 현실
“하느님 아버지, 저를 가엾게 여기신다면 제발 저희 아버지 좀 죽여 주세요!”
영화 <화차>에서 여자 주인공은 한밤중에 이렇게 기도를 올린다. 철없는 하소연이 아니라 더할 나위 없이 절박하고 간절한 기도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화차>는 아버지가 쓴 불법 사채로 인해 딸은 물론 딸의 가족까지 송두리째 파괴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암울한 이 영화가 예상 밖의 흥행을 거둔 것은 영화 속 이야기가 생각보다 우리 현실과 가깝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우리는 이미 엄혹한 금융의 ‘약탈’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다만 그것이 불법 사채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은행이라는 이름을 가진 전문가이기 때문에, 감독 기관이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믿고 있을 뿐이다.
『약탈적 금융 사회』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금융의 약탈적 행태를 고발한다. 은행, 카드사, 보험사, 저축은행 등 우리가 굳게 믿어 왔던 금융권이 사실은 우리를 철저히 약탈하고 있다고 폭로한다. 어려울 때는 국민의 혈세로 회생시켜 주었더니, 우리 사회의 99퍼센트가 빚의 노예로 전락한 지금은 위기는 나 몰라라 하고 수익 잔치를 벌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서민 경제 전문가인 저자 제윤경, 이헌욱은 1000조라는 지금의 어마어마한 가계 부채를 만든 주범이 바로 이 같은 약탈적 금융임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런 현실을 바꿀 대안도 함께 제시한다.

화창한 날 우산 주고 비 오는 날 뺏어 가는 약탈적 금융의 행태
우선 ‘약탈적 금융’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가장 먼저 ‘약탈적 대출’을 꼽을 수 있다. 이는 채무자가 상환 능력이 부족한 걸 뻔히 알면서도 돈을 빌려 주고 이익을 얻으려 하는 것인데, 빚을 제날짜에 갚지 못하면 가슴살 1파운드를 도려내겠다던 ‘샤일록’의 셈법이 깔려 있는 약탈 행위이다. 대표적인 예로 2008년 금융 위기 전, 소득도 직업도 자산도 없는 사람에게까지 돈을 빌려 주었던 미국의 닌자(NINJA, No Income No Job No Asset) 대출을 들 수 있다.
2003년 카드 대란 때 금융권은 소득이 낮거나 불규칙한 이들에게까지 무분별하게 카드를 발급해 주었다가 400만의 신용 불량자를 양산했다. 그 난리를 겪고도 지난 몇 년 동안 가계 대출을 늘리겠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런데 이제 부동산 시장이 하락하니 얼굴을 싹 바꾸고 채권을 회수하겠단다. 은행으로서는 어떻게 해도 남는 장사다. 채무자가 돈이 있을 때는 대출이자와 원금을 챙기면 되고, 돈을 갚지 못할 때는 담보물건을 경매에 넘기면 되기 때문이다.
약탈적 금융 행위는 대출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금융 약자인 서민이나 중소기업인, 자영업자들에게 관행으로 이른바 ‘꺾기 판매’를 하거나, 국내 중소기업에 3조 1000억 원의 피해를 입힌 키코(KIKO) 사태처럼, 금융 상품을 판매하면서 그 위험성이나 계약 조건을 소비자에게 제대로 이해시키지 않는 ‘불완전 판매’ 등도 크게 보면 약탈적 금융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도덕적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방식으로 소비자의 돈을 취하는 행태 역시 ‘약탈적’이다. 자의적으로 신용 등급을 매기고 금리를 올린 시중은행의 행태가 이에 해당한다. 제한 이자를 연 39퍼센트의 고리로 규정한 대부업법 등 법과 제도 역시 이 같은 ‘약탈’에 한몫한다.
약탈적 금융 행위를 일찍부터 경계한 미국은 1994년 주택 소유권 및 자산 보호법(HOEPA)을 통해 ‘약탈적 대출’ 등을 규제하고 나섰지만, 금융권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관계 법을 피해 새로운 금융 상품을 만들고 금융 약탈의 영역을 넓혀 왔다.

저축률 세계 1위에서 가계 부채 천국으로, 99퍼센트를 빚쟁이로 만드는 사회구조
『약탈적 금융 사회』는 이 같은 약탈적 금융 시스템이 만들어진 배경을 외환 위기 이후 본격화한 신자유주의에서 찾는다.
사실 외환 위기 직후인 1998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저축률은 23.2퍼센트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비록 소득은 적을지언정 가정은 월급에 기대어 살았고, 열심히 일한 만큼 저축해서 밝은 미래를 설계하는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어떻게든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채무 노예’는 아니었다. 하지만 효율과 경쟁을 앞세운 신자유주의가 들어오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안전한 보금자리를 지탱해 주던 평생직장, 고용 안정은 시장에 역행하는 비효율적인 낡은 이념으로 전락했다. 노동조합과 정부의 복지 정책 덕분에 신분을 보장받던 중산층은 시장의 냉엄한 평가에 맨몸으로 노출되었다.
은행은 안전을 추구하는 기업 대신 가계 대출로 눈을 돌렸다. 정부는 경기를 부양하겠다며 사람들의 손에 일자리 대신 신용카드를 쥐어 주었다. 외환 위기는 대한민국의 중산층이 믿었던 안전한 보금자리를 급속히 해체해 버렸다. 그러나 중산층은 분노하는 대신 그 빈자리에 들어온 금융을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이고 재테크에 안주했다. 우리 사회를 휩쓴 부자 열풍은 중산층이 노동시장의 구조 조정에 맞서 연대와 저항을 선택하는 대신 머니게임과 소비 확장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중산층이 안락해졌던가? 아이러니하게도 재테크에 올인한 지난 10년간 중산층은 오히려 줄었다. 한국은행이 2012년 2월 발표한 「한국의 경제성장과 사회지표의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에 75.3퍼센트이던 중산층 비율이 2010년에는 67.5퍼센트로 8퍼센트포인트 가까이 줄었다. 중산층 내의 적자 가구 비중도 1990년 15.8퍼센트에서 2010년 23.3퍼센트로 높아졌다. 한마디로 경제성장과 재테크 열풍에서 이득을 본 것은 애초부터 거대 자본을 가지고 있던 금융자본가들과 부자 계층뿐이라는 말이다.
가계가 저축한 돈을 기업에 투자하고, 그 투자의 결실이 가계로 돌아와 다시 저축으로 연결되는 우리 사회의 선순환 구조는 끊어졌다. 이제 평범한 가정은 빚을 내서 소비를 하고 그 소비 때문에 다시 빚을 내는 악순환의 굴레에 갇히고 말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세대를 넘는 빚의 대물림
최근 한 취업 포털 업체가 설문조사를 했는데, 직장인의 60퍼센트가 ‘월급고개’를 겪는다고 응답했다. 통장 잔고는 바닥나고 아직 월급은 나오지 않은 이 시기를 대다수 직장인(60.2퍼센트)은 신용카드로 버티고 있다. 그렇게 쓰고 나면 그 카드값을 다음 달 월급으로 메워야 한다. 빚내서 빚을 갚고 또 빚을 빌리는, 한마디로 빚쟁이 인생이다. 그래서 요즘 대다수 직장인은 월급날이 되어도 보람을 느낄 수 없다. 월급이 통장에 들어오자마자 카드 대금, 대출이자, 각종 보험료와 할부금 등으로 순식간에 빠져나가고 돈이 빠져나간 빈자리는 다시 신용카드로 채운다.
현재와 같은 약탈적 시스템 안에서는 국민 대다수가 이처럼 빚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다. 빚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일상이 이 시대 대한민국 중산층의 슬픈 자화상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빚의 사이클이 대물림되는 것, 아이들의 미래마저 빚에 종속된다는 것이다. 『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의 저자 마틴 린드스트롬에 따르면 성인의 53퍼센트, 10대 청소년의 56퍼센트가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브랜드 제품들을 사용한다. 성인이 된 후에도 어릴 때의 소비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가 카드 결제와 빚에 의존하는 모습을 간접 경험했기 때문에 소비 욕구를 충족시키는 신용카드 결제가 고정관념이 되어 버릴 위험이 크다. 실제로 지금의 어린이, 청소년 들은 부모가 돈이 없다고 하면 “카드 있잖아.”라고 말한다. 버는 범위 내에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카드만 있으면 소비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갖고 자라는 것이다.
대부업체 광고가 수시로 TV에서 나오다 보니 어린아이들이 대부업체 CM송을 동요처럼 흥얼거린다. 세뇌적인 광고에 노출된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대부업을 친숙하게 느낄 것이고, 성인이 되면 별 거부감 없이 대부업체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아이들의 삶이 우리보다 더 끔찍한 빚의 굴레에 갇히는 것만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 가계 60퍼센트가 빚쟁이, 생계형 대출이 전체 부채의 절반
이처럼 빚이 일상화된 결과, 현재 우리나라의 가계 부채는 1000조 원을 넘어섰다. 전체 가계의 60퍼센트가 빚이 있으며, 하우스 푸어가 150만 가구에 이른다. 저소득층은 물론 중상위 계층도 80퍼센트 이상이 빚을 지고 있다. 최근에는 『워싱턴 포스트』 『파이낸셜 타임스』 등 해외 주요 언론마저 금융 위기 당시의 미국보다 지금 우리의 가계 부채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지적할 정도다.
물론 경제 규모가 성장하면서 가계 부채도 늘어나니 가계 부채가 큰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현 상황은 언제든 가계 부채 부실로 악화될 수 있는 상태다. 심지어 기존 대출이자를 내고 나면 생활비가 부족해 다시 돈을 빌리는 ‘생계형 대출’ 가구가 늘고 있다. 2012년 1분기 한국은행이 잠정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가계 대출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뺀 ‘생계형 대출’에 해당하는 기타 대출 잔액은 471조 원으로, 전체 가계 부채의 절반에 이른다.
더 심각한 것은 부채가 악성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 계층에서 은행뿐 아니라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의 신용 대출까지 연체율이 늘고 있으며 대부업체 이용률이 늘고 있다. 저소득층의 상황은 더 암담해서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이미 지난해에 200퍼센트를 넘어섰다. 2년 정도의 소득을 모두 쏟아부어야 빚을 갚을 수 있다는 것이니,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리 없다. 저소득층에게 지원되는 정부의 서민 금융도 연체율이 급증하고 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한마디로 상위 1퍼센트를 제외한 99퍼센트 모두가 금융 부채로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와 언론, 약탈적 시스템에 동참한 공조자들
어쩌다가 우리가 이렇게 빚에 지배당하는 잠재적 노예의 삶을 살게 된 것일까?
‘총칼을 들지 않은 강도’나 다름없는 금융과 거기에 일조한 다른 공조자들이 있었다. 저자들은 이 공조자들이 우리로 하여금 빚을 빚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하고, 금융이 무조건 좋은 것이며, 이제는 신용 없이는 살 수 없는 사회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1차적으로는 금융기관을 관리 감독해야 하는 금융 감독 당국에 책임이 있다. 저축은행 사태에서도 관리 책임을 가진 금융감독원 직원들이 오히려 저축은행의 부실을 방조하고 묵인했다.
정부 역시 책임을 피할 길 없다. 복지나 사회 안전망을 이른바 ‘서민 금융’으로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가가 폭등하자 전세난 대책으로 전세 자금 대출을 확대하고, 대학 등록금이 치솟으니 학자금 대출을 확대해 준다. 일자리가 부족해 실업률이 오르니 햇살론이나 미소금융 같은 무담보 대출을 제공하고,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니 ‘생애 첫 내 집 마련 대출’ 같은 상품을 내놓는다. 대부업체의 폭리가 기승을 부리자 연 10퍼센트가 넘는 고금리 전환 대출 상품을 제시한다. 무슨 정부 정책이 문제만 생기면 돈 빌려 주겠다는 것밖에 없는지, 하나하나 열거하다 보면 분노가 솟는 게 아니라 어이가 없다.
부동산 열풍, 펀드 열풍, 재테크 열풍이 불 때 냉정한 시각을 견지하지 못하고, 금융권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좋은 빚, 나쁜 빚이라는 프레임을 만들고 레버리지 투자를 부추긴 언론 역시 책임을 벗을 수 없다.

채무자 책임만 있고 채권자 책임은 없나, 금융권이 주입시킨 ‘내 탓’ 이데올로기
지금의 채무 노예 사회를 만든 약탈적 금융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금융권이 심어 놓은 ‘내 탓’ 이데올로기다. 금융권은 빚을 갚지 못하는 것을 모두 채무자의 책임으로만 생각하도록 채무자는 물론 우리 사회 모두를 ‘학습’시켰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채권­채무 관계는 어느 한쪽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쌍방에 책임을 묻는 게 맞다.
금융권에서는 펀드나 주식 등에서 원금 손실이 발생하면 늘 ‘투자자 개인 책임’이라고 강조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채권­채무 관계에서는 그 반대로, 언제나 갚지 못한 채무자의 책임만을 강조한다. 잘못 ‘투자’한 채권자의 책임은 그 어디에서도 거론하지 않는다.
실제로 금융권은 항상 ‘남 탓’을 해 왔다. 2003년 신용카드 대란 때는 저소득층이 카드를 무리하게 썼다고 했고, 2008년 키코 사태 때는 뭘 모르고 투자한 중소기업 탓이라고 했으며,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때는 후순위 채권에 투자한 투자자에게 책임을 떠밀었다. 하우스 푸어를 양산한 지금의 가계 부채 상황 역시 과도한 대출을 권한 자기들 책임은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수익이 나면 주주들에게 배당하고, 망할 지경이 되면 국민의 혈세로 살아난다. 그러니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탐욕스럽게 수익을 추구할 수밖에. 지금도 가계 부채 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연일 수익 잔치를 벌이듯이 말이다. 더 심각한 것은 감독 당국마저 ‘내 탓’ 이데올로기에 학습되어, 소비자를 희생해서라도 금융권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채무자 스스로 채무 구제 제도의 이용을 부끄러워하고 꺼릴 만큼 ‘내 탓’ 의식에 젖어 있다. 우리 사회가 빚을 갚지 못한 사람에게 보내는 ‘도덕적 해이’라는 비난이 이런 죄책감을 부추긴다. 그러나 이는 채무자들에게 이중 형벌을 부과하는 부당한 행위이다.

함께하면 길은 열린다, 저항하기 위한 ‘자기 혁명’ 필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지금의 약탈적 금융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가계 부채 1000조라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객관적인 상황은 암담하기 그지없지만 저자들은 ‘저항’과 ‘연대’로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외친다. 2000년 전 로마에는 노예 반란을 일으킨 스파르타쿠스가 있었다. 2011년 가을에는 월스트리트 시위대가 등장해 금융자본으로 대변되는 상위 1퍼센트의 부자에 맞서 99퍼센트를 위한 변화를 요구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런 행동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금융권의 ‘내 탓’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자기 혁명’이다. 마틴 루터 킹은 “백인의 차별보다 더 무서운 것은 흑인 스스로의 열등감이다. 복수하지 않고도 폭력의 악순환을 깨뜨릴 방법은 흑인 스스로 권리의식을 찾는 길이다.”라고 말했다. 이제 채무자들도 죄의식을 벗어던지고 합리적으로 채무 상환을 하게 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빚을 갚으려고 애써도 갚지 못하는 것은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 사회적인 문제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동안은 몰라서 혹은 알면서도 방조해 온 금융의 약탈적 행위를 더 이상 참지 말아야 한다. 금융권에 책임을 요구하자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럴 때 다른 채무자들과 연대하는 것이 큰 힘이 될 수 있다. 저자들 역시 ‘빚을 갚고 싶은 사람들’(빚갚사)이라는 채무자 연대 조직을 만들어 함께하고 있다.
사회 전체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은연중에,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사회구조에서는 그들의 문제가 언제든지 내 문제, 우리 가정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이와 함께 제도 개선이 꼭 필요하다. 신용 회복 제도를 개선하여 채무자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자제한법, 대부업법의 제한 금리를 낮추고, 불법 사채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 ‘생지옥’ 같은 채권 추심에 시달리는 채무자들을 구제해야 한다. 특히 가계 부채 폭탄의 뇌관이랄 수 있는 주택담보대출은 대손충당금 추가 적립, 부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스 정리, 하우스 푸어 주택 매입 등 한시라도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 고통 속에서 괴로워할 채무자들에게는 격려가 필요하다. 채무자에게 손을 내밀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약탈적 금융이 지배하는 이 사회를 바꿀 첫걸음이 된다.
다시 한 번, 지금의 가계 부채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약탈적 금융 사회

저자
제윤경 지음
출판사
부키 | 2012-09-17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못 갚을 줄 알면서도 빌려 준 약탈적 금융을 고발한다!『약탈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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