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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ome place../오늘의 책이 담긴 책상자

리치보이가 주목한 오늘의 책 - 모든 상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량원다오)

by Richboy 2013. 2. 7.

 

 

 

 

  가장 무덥고 나른한 한여름에서 가장 춥고 쓸쓸한 한겨울까지 계절의 변화처럼 매일 그 모습을 달리하는 내면의 파동을 보고, 듣고, 깨달은 량원다오의 생각들을 쫓아가다 보면 우리 역시 사랑과 이별을 하면서 품는 갖가지 불가해한 감정들에 관해 깊은 사유를 할 수 있다. 지나치게 가벼운 텍스트들이 넘치는 요즘, 사유의 깊이가 남다른 독서 체험을 열망하거나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희망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특별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슬픈 존재다. ‘쇠함’과 ‘사라짐’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지닌 존재다. 인간의 삶이란 조금씩 사라지는 과정이다. 그래서 슬픈 것이다. 호모 트리스티아Homo Tristia.
삶의 깊이란 곧 슬픔의 깊이다. 그 깊숙한 곳에 우리가 놓쳐버리는 무수한 슬픔의 아름다움이 있다. 반면 웃음에는 깊이가 없다. 아무리 파고 들어가도 한 번의 파안대소로 끝나버린다. 삶은 절대 웃음으로 규정하거나 파악할 수 없다. 오히려 슬픔과 그것이 만드는 아름다움의 깊이로 규정된다. 이 책은 슬픔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유형을 보여준다. (들어가는 글 중에서)

중국의 알랭 드 보통 ‘량원다오’
상실에 대해 깊고 감성적인 철학적 사유를 전하다


‘중화권 젊은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철학자’ ‘현대 중국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젊은 논객’ ‘철학적 분석과 문학적 글쓰기를 겸비한 중국의 알랭 드 보통’으로 꼽히는 량원다오. 이 책은 그가 연인을 잃은 상실의 슬픔에 빗대어 하나의 세계가 닫히는 고통을 그린 산문집이다.
이 책에 담긴 글은 대부분 홍콩의 한 유력 일간지에 2년간 연재한 글을 모은 것이다. 차가울 정도로 이성적이며 투사에 가까울 정도로 맹렬한 이미지의 그가 ‘사랑과 이별’에 관한 글을 쓴다는 사실만으로도 중국 문학계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중화권 젊은이들은 지독한 독감에 전염되듯 앞다투어 그의 글을 읽기 시작했으며, 량원다오 특유의 도시적 감성은 큰 공감과 지지를 이끌었다. 당시 해당 일간지는 발행부수가 줄어들며 거의 파산 위기까지 몰렸지만 량원다오의 칼럼을 실으면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이처럼 량원다오는 중화권에서는 매우 유명한 지식인이자 철학자이며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지만 우리에게는 사실 생소하다. 우리 사회와 중화권의 문화적 접촉이 좁고 제한적인 까닭이다. 서구의 문학, 미술, 음악 등 서구 문화에 지나치게 눈과 귀를 기울인 나머지 동아시아, 특히 중화권에 대해서는 등을 돌리고 있지는 않았는지. 현대 중국의 문화 수준은 이미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기에 충분할 정도로 웃자라 있다. 바로 이 책《모든 상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에서 량원다오가 보여주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고 넓은 사유의 문장들이 그 실례라고 할 수 있다.

상실감은 너무 깊이 사랑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사랑을 잃고 나서야 자아와 욕망의 대상이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그’ 사이에 거리도 없고 구별도 없어졌다.
그는 사라졌다. 나도 그렇다.
8월 1일에서 12월 31일까지
상처를 헤집고 슬픔의 깊이를 재는 치유의 시간


《모든 상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8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153일간 만남과 이별, 고독과 번뇌, 고통과 성찰 등에 대한 단상들을 일기 형식으로 써내려간 자기 해부의 시문(詩文)이다. 10여 개의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인기 칼럼니스트, TV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는 유명 언론인, 화제의 베스트셀러 작가 등 겉으로는 어떤 일에서든 성공한 ‘위너’의 삶을 살던 그가 사랑의 범주 안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패와 좌절을 맛보는 ‘루저’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는 자신의 과오를 후회하고, 떠나간 연인을 원망한다. 연인이 떠난 집에 홀로 남아 그가 남긴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다 허무감에 빠지기도 한다. 또 언제일지 모를 우연한 재회를 꿈꾸고, 절망과 슬픔 가운데 종교에 의지하는 등 상처에 몸부림치면서도 글쓰기를 계속한다. 그 일상과 상념을 묵직하고 담담한 텍스트로 담은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좋겠어.” 얼마나 많은 부부와 연인, 또는 친구들이 이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나간 과거를 전부 지워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철저히 변화해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담배를 끊거나 술을 줄이는 것처럼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에게 주었던 자기 삶의 일부, 상대방의 손에 넘겨 주었던 자기 생명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이다.
_본문 중에서(46p)

량원다오는 그에게 상처를 준 연인을 기억에서 지우거나 섣불리 치유나 회복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도리어 집요하리만큼 자신의 연애와 옛 연인 그리고 그와 관련한 책, 영화, 역사 속 인물까지 끄집어내어 상처를 헤집는다. 슬프다고 말하기보다는 슬픔의 근원과 출처를 철저히 밝히고 그 깊이를 재는 것. 그것이 량원다오만의 치유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모두 허구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만남과 이별, 갈등과 화해 등 사랑의 전 과정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섬세한 이야기를 보면 과연 허구일지 의심이 든다.

나는 하룻밤 사이에 셀 수 없이 많은 신호를 보냈다. ‘그’가 답장을 보내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말라고 말할 때까지. 확실히 나는 기다림의 예술을 배워야 했다. 인내라는 식물을 키워야 했다. 나는 절박해져서는 안 된다. 나는 그저 계절성 강우를 기다리는 한 그루 사막식물이 되어야 한다.
_본문 중에서(314p)

그는 잃어버린 사랑의 대상, 즉 헤어진 연인을 ‘그’라는 대명사를 통해 곳곳에 등장시킨다. 그러나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말하는 화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분명하게 알 수 없다. 진실과 허구, 현재와 과거, 기억과 상상의 경계를 허문 그의 글쓰기는 내면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그리하여 독자들이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자신의 상처를 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준다.

사랑과 이별을 하면서 품는 갖가지 불가해한 감정과 마주보다

날카로운 통찰력과 시대에 대한 비판정신을 앞세운 량원다오의 지적 커리어는 이 책으로 그 정점을 보여준다. 이전에 시사, 음식, 영화, 음악, 서평, 문화평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현란한 문체와 풍부한 지식, 철학적 분석으로 문단과 대중의 지지를 받았던 그가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한 영역이 바로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사랑을 꼽은 것은 사랑이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경험이자 끝없는 해석을 낳고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랑의 노래는 연인을 위해 부르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위해 부르는 것인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관계가 가능한가. 상실감은 너무 깊이 사랑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사랑을 잃고 나서야 자아와 욕망의 대상이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고독과 상실감 속에서 비로소 투철하게 사랑의 핵심과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이란 완전한 만족에 대한 추구이고, 그 핵심은 결핍이다.
-저자의 말 중에서

가장 무덥고 나른한 한여름에서 가장 춥고 쓸쓸한 한겨울까지 계절의 변화처럼 매일 그 모습을 달리하는 내면의 파동을 보고, 듣고, 깨달은 량원다오의 생각들을 쫓아가다 보면 우리 역시 사랑과 이별을 하면서 품는 갖가지 불가해한 감정들에 관해 깊은 사유를 할 수 있다. 지나치게 가벼운 텍스트들이 넘치는 요즘, 사유의 깊이가 남다른 독서 체험을 열망하거나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희망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특별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