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기업이 위대한 기업이다!
2008년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뒤이어 닥친 대불황으로 세계의 자산은 1/3 토막이 났다. 하지만 많은 교훈을 남겼다. 우선 대마불사(大馬不死) 할 것만 같았던 리먼 브라더스, 페니메이, 프레디맥 등의 몰락을 통해 '거짓 자본주의'는 지속될 수 없으며 장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아울러 소비자의 대기업들에 대한 불신은 더욱 높아졌고, 비즈니스 리더들에 대한 신뢰 상실도 극심해졌다. 혹자들은 '자본주의는 죽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토록 사악한 자본주의를 낳은 원인을 이해하려면 프리드먼이 말한 이론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자본주의의 작동방식에 대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 이윤을 늘리는 것이다'며 주주가치 창출에 집중했다. 그의 이론은 그의 철학을 추종해온 여러 경제학자와 CEO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주식시장이 점차 단기화 되어 평균 주식보유기간이 8년에서 6개월로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금융위기의 원인이 되었다. <돈 착하게 벌수는 없는가>의 저자이자 유기농 자연식품 대형판매점 홀푸드마켓의 창업자인 존 매키는 프리드먼의 이론에 반대하며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먼은 고객이 직원에 대한 배려 그리고 자선활동에 대한 관심이 투자자의 수익을 늘리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정반대 의견을 지니고 있다. 높은 수익을 내는 것은 홀푸드 마켓의 핵심 미션을 실행하기 위한 수단이다. 우리는 질 좋고, 영양가 높은 식품을 제공함으로써 모든 사람의 건강과 행복을 증진하고자 한다. 그러나 수익을 많이 내지 못하는 한 우리는 이러한 미션을 실천할 수 없다. 사람이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듯이 기업도 수익을 내지 못하면 지속되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이 먹기 위해 살지 않듯이 기업 또한 수익을 내기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 21쪽
저자는 이른바 '깨어있는 자본주의'라고 해서 윤리와 공동체 의식에 기반한 새로운 자본주의를 실천, 확산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기업가다. 깨어있는 자본주의Concious Capitalism는 '깨어있는 기업'에서 비롯된다. 깨어있는 기업이란 모든 주요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높은 차원의 목적을 추구하는 기업, 그러한 기업의 목적에 헌신하며 기업에 관련된 사람들과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깨어있는 리더가 있는 기업, 즐거움과 성취감의 원천인 활기차고 배려 넘치는 문화가 있는 기업을 말한다. 얼핏 듣기에 '이렇게 이상적인 기업은 상상 속에서나 있지 않을까' 싶겠다만 본문에서만 홀푸드마켓을 비롯해서 컨테이너스토어, 파타고니아, 이튼, 타타그룹, 구글, 사우스웨스트항공, 스타벅스, 코스트코, 웨그먼스, 트위터 등 귀에 익은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저자가 창업한 홀푸드 마켓은 16년 연속 '포춘'이 선정한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꼽히는 유기농 자연식품 대형판매점으로 1991년에는 매장 10개에 매출액이 9천2백만 달러에서 2011년에는 300개의 매장에서 90억 달러 이상의 매출액을 올리고 있는 거대기업이다. '건강한 음식, 건강한 사람들, 건강한 지구'를 모토로 한 홀푸드 마켓이 소비자와 생산자, 그리고 공급자는 물론 지역사회가 존경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다.
1981년 5월 텍사스 주 오스틴에 70년 만의 최악의 홍수가 덮쳤을 때 이 지역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홀푸드마켓도 매장 전체가 물에 잠기고 말았다. 피해액은 40만 달러. 당시 27살 이었던 창업자 존 매키는 저축해놓은 자금이나 가입해놓은 보험도 없는 재기불능 상태로 낙담했다. 그 때 양동이와 물걸레를 든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객과 이웃이었다. 하나둘 찾아와 “그만 징징대고 매장을 치웁시다. 다시 영업 준비를 해야죠. 우리는 이 매장이 없어지도록 보고만 있진 않을 겁니다,”라며 독려했다. 직원들은 다시 임금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복구 작업에 적극 나섰고, 공급업자들은 외상으로 납품을 약속했다. 투자자들도 외면하지 않고 추가로 자금을 제공했다. 그 덕분에 홍수에 사라질 뻔했던 홀푸드마켓은 고객과 이웃, 직원, 공급자, 투자자의 도움으로 단 28일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6개월 후 모든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사업을 대하는 존 매키의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 즉 사업은 어느 누군가 이득을 챙기면 다른 누군가는 손해를 봐야 하는 제로섬게임이 아니라 기업의 모든 이해당사자가 서로 챙겨주고, 헌신하며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위대한 작업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홀푸드마켓은 기업의 이익과 소비자 만족을 살폈던 '윈윈'을 넘어 ‘윈6’를 주장한다. 즉 고객, 직원, 투자자, 협력업체, 공동체, 환경이라는 6자의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득이 되는 해답을 내놓는 것이 자본가의 본래적 역할이라는 것이다.
홀푸드마켓의 임원 연봉은 사원평균연봉의 19배를 넘지 못한다. 동료간의 위화감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창업자인 존 매키는 자신의 주식을 풀어 스톡옵션의 무려 93%가 일반직원들에게 분산돼 있다. 그래서 단기적 이익추구는 의미가 없다(보통 상장기업에서는 최고경영진 달랑 5명에게 스톡옵션의 75%가 집중돼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실적도 좋다. 예를 들어 지난 15년 동안 시장 평균 수익률은 150%를 조금 넘은 반면, '깨어있는 기업'들은 1,600% 이상 수익률을 달성하며 전체 주식시장보다 10.5배 높은 성과를 거두었다.
깨어있는 기업들은 '어떻게 돈을 버는가?'에 주안점을 두었다. 본문에 소개된 깨어있는 기업들은 모두 고객 가치 창출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기에 매우 높은 매출을 달성한다. 깨어있는 기업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평판이 더 좋아져서 더욱 빠르게 성장한다. 아울러 충성도 높은 고객, 헌신적인 직원, 우수한 공급자 덕분에 더 많은 돈을 벌고, 수익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그래서 '깨어있는 기업'은 따로 마케팅을 할 필요가 없다.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그의 역작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통해 인생을 살면서 행복을 좇으면 얻지 못하고, 대신 삶의 의미와 목적을 좇으면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존 매키는 기업도 수익을 주된 목적으로 삼지 않는 것이 수익을 달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프랭클의 원칙을 기업에 적용하면 높은 차원의 목적을 추구하고, 두려움과 스트레스 대신 사랑과 배려로 기업을 운영하며, 역경을 극복하고 성장할 때 수익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99쪽
경제 분야에서 역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중에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는 80년치 상장기업의 자료를 분석해서 15년간 시장대비 최소 3배 이상의 누적수익률을 달성한 11개 기업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실상은 11개 기업 중 서킷시티는 파산 전 경력직을 해고하고 인건비 낮은 신입을 채용했고, 패니메이는 최근 금융위기 사태의 주인공이다. 웰스파고는 2008년 250억 달러에 해당하는 구제금융을 미국정부로부터 받았고, 알트리아는 세계 최대의 담배 회사 '필립모리스'의 전신이었다. 주주이익 극대화가 낳은 위대한 기업의 말로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이 대목에서 궁금해지는 한 가지.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깨어있는 자본주의를 경험할 수 있을까? 최근 SK, 한화, 효성, CJ, 태광 등 굵직한 대기업 총수들이 소비자는 뒷전인 채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운 결과 경제사범이 되어 아예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작금의 뉴스들은 '매의 눈'으로 변한 소비자를 의식한 거대한 변화의 시작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생전에는 보기 어려울 듯싶다. 선대의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오십보 백보짜리 후임자가 나설테니 말이다.
이 리뷰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간 발행하는
출판전문저널 <기획회의>(364호) 전문가 리뷰에 기고된 리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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