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자 김경집, 융합의 시대에 새로운 생각의 길을 말하다
상상력이 강조되고 창조와 융합이 요구되는 시대다. 급속한 기술의 진보와 가치의 변화 속에서 인간의 두뇌는 더 이상 속도와 효율 면에서 컴퓨터 알고리즘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고, 기존의 사고체계로는 더 이상 인간의 미래가치를 만들어내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에 학계는 물론, 정부관료나 기업가들 모두 ‘융합’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심지어 교육계에서는 미래의 융합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문과와 이과의 통폐합까지 논의되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모두들 어떻게 상상하고 창조하며 융합해야 하는지 경험해보지 않은 까닭에 그저 구호와 선언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인문학자 김경집의 신작 『생각의 융합』은 최근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융합적 사고에 대한 시대적 요구들을 인문학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그런 융합적 사고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흥미롭고 다양한 지식과 생각의 이야기들을 통해 엮고 있으며 이런 지적 자유로움의 과정들이 얼마나 사고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기존의 인문서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대부분의 인문서들이 지식을 얕고 넓게 횡으로 나열해왔다면, 이 책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종으로 횡으로 가로지르며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 영역을 넓혔다. 100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을 뛰어넘어 콜럼버스와 이순신을 만나게 했고, ‘자유로운 개인’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렘브란트와 거스 히딩크와의 교차점을 발견한다. 또한 한국의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과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같은 듯 다른 역사의 장면들을 목격하게 한다.
이 책은 결코 엄청난 지식의 양을 자랑하거나 현학적 지식으로 일관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 다양한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기존에 알고 있었던 단편적 지식들의 연결고리를 심도 있게 찾는다. 그 과정에서 읽는 이들은 새로운 관점과 낯선 진실들을 만나게 되고, 그 길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새로운 생각의 지도를 갖게 된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미래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생각의 융합’임을 발견하게 한다.
콜럼버스와 이순신, 코페르니쿠스와 백남준,
히딩크와 렘브란트, 호메로스와 제임스 조이스, 정약용과 김수영…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생각의 점을 잇다
저자 김경집은 다양한 강연과 방송, 저술활동은 물론, 지역사회 문화운동에 참여하며 인문학의 나눔과 대중화에 힘쓰고 있는 인문학자다. 서강대학교 영문과와 동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가톨릭대학교 인간학 교육원에서 인간학과 영성 과정을 가르치며 아카데미 인문학의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스물다섯 해를 끝으로 강단을 떠나면서 그의 인문학에 대한 열정과 진정성은 대중을 향하기 시작했다. 여러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끊임없는 글과 강연은 인문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접근방식을 전환시키기 위한, 그의 작지만 강한 실천 방식이었다.
인문학에서 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인문학에 대한 접근방식이다.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위키피디아식 지식은 더 이상 필요없는 시대로,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연결하고 융합하느냐다. 그는 인문학이야말로 휴먼웨어Humanware에 대한 가장 확실한 투자이며,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융합하는 인문학’은 세상을 이해하고 편집하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 준다고 말한다. 시간을 역사로, 장소를 공간으로 만드는 ‘융합하는 인문학’을 통해 사고는 멈추거나 갇히지 않게 되고, 인식의 지평은 넓어지며, 거기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창의성이 발현된다. 그것이 바로 저자가 “인문학은 지금 우리 삶에 가장 필요한 실용”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다양하면서도 하나의 맥을 이루는 그의 책들은 여러 단체들로부터 좋은 책으로 인정받았다. 『책탐』으로 2010년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고, 『생각의 인프라에 투자하라』『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마흔 이후, 이제야 알게 된 것들』 등이 문화관광부우수도서로 뽑혔으며, 생각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쓴 『거북이는 왜 달리기 경주를 했을까』(공저)와 『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철학교과서, 나』(공저)는 올해의 청소년도서로 선정되었다. 그 밖에 『나이듦의 즐거움』『생각의 프레임』『완보완심』『위로가 필요한 시간』『지금은 행복을 복습하는 시간』 등을 썼으며, 인문학의 대중화를 위한 『인문학은 밥이다』를 펴냈다.
자신의 삶을 세 등분으로 나눠 25년은 배우고, 25년은 가르치고, 25년은 글 쓰며 살기를 꿈꾸는 그는 현재 충청남도 해미에 있는 작업실 수연재樹然齋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삶의 세 번째 단계를 채워나가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텍스트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콘텍스트로 엮어보고 해석하는 과정에 있다.
< 1장 콜럼버스, 이순신을 만나다>에서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해인 1492년과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이 두 숫자의 연결지점을 찾기 위해 두 사건의 시간적 간격인 100년의 시간에 주목한다. 그 시기는 대항해의 시기였다. 그 역사 속에서 총을 지닌 한 포르투갈인이 일본인과 조우하게 되고 일본은 그 총의 제작기술을 받아들여 결국 조선을 침략하기에 이른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1392년 조선의 건국으로까지 그 사고의 영역을 확장시킨다. 모든 역사의 순간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 6장 나이팅게일, 코코 샤넬과 푸틴을 만나다>에서는 인간사 최악의 참극이라고 할 수 있는 전쟁이 어떻게 여성해방을 이끌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최초로 간호부대를 이끌고 전쟁에 참전한 나이팅게일과 여성을 억압된 의상에서 벗어나게 한 코코 샤넬을 약 100년의 간극을 두고 ‘전쟁’이라는 교차점에서 만나게 함으로써, 저자는 전쟁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가장 통제되고 억압된 형태로 진행되지만, 오히려 그런 과정을 통해 억압과 통제의 두려움에 대한 저항을 이끌어낸다고 말한다. 또한 세계 역사 속에서 상당히 많은 전쟁이 자유와 해방을 낳아왔는데, 우리나라의 임진년 조일전쟁(임진왜란)의 경우도 기존의 질서에 대한 복종적 태도를 누그러뜨렸으며, 해방 이후 치러진 한국전쟁도 반상(班常)의 계급제도를 급속하게 무너뜨렸다고 말한다.
저자는 역사, 과학, 신화, 미술, 예술, 철학 등 다양한 인문학 분야들을 아우르면서, 하나의 사건을 그것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거기서 새로운 가치를 지속적으로 도출해내려고 했다. 이것은 요즘 말하는 새로운 ‘케미’의 탄생으로, 모든 창의의 시작인 것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생각의 무한한 확장성은 융합적 사고와 교육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확실한 이유가 될 것이다.
생각의 융합,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거기서 새로운 가치를 도출해내는 것
이 책은 방대한 분량에 비해 많은 소재를 다루지 않는다. 그 이유는 마치 한정된 재료를 다양한 레시피로 요리하듯이, 한 가지 소재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탄생하고 그것은 다시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분야에 있어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요즘, 생각의 융합이 현실적으로 더욱더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생각의 융합은 방대한 양의 빅데이터 속에서 예상치 않았던 결론을 추출하는 것과도 흡사하다. 그 양으로 따진다면 컴퓨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지만, 그동안 배운 많은 지식들을 재구성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결론을 얻게 되고 그것은 우리의 호기심과 상상력 속에서 다시 또 다른 데이터가 되어 새로운 결론을 낳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문학은 질문이고 상상력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책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 책이 자신의 아들 셔츠에 적힌 ‘1492MILES’에 주목하면서 시작되었듯이 말이다. 저자는 자신의 해석이 모두 옳다고, 또는 모두 새롭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의 틀을 벗어나려는 꿈틀거림이었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앎과 삶은 훨씬 농밀해졌다고 말한다. 끝으로 저자는 이렇게 결론을 맺는다.
“갇힌 틀에서 벗어나는 꿈틀거림이 나를, 미래를 살려낼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내야 할 용틀임이다. 21세기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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