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스트리트 8인의 신입사원은 어떻게 그 곳에서 살아남을까?
금융위기 이후 많은 것들이 변했다지만 막상 저자가 신입사원의 눈을 통해 바라본 월가는 여전한 업무 스트레스와 구체제의 답습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또라이’ 상사, 연애는 꿈도 못 꾸는 살인적인 근무시간도 모자라 이제는 나라를 파산으로 몰고 간 약탈적 금융 회사의 일원이라는 도덕적 회의감과도 싸워야 하는 신입사원들의 고군분투가 펼쳐진다.
주당 100시간 근무, 연봉 15만 달러짜리 비정규직
월스트리트에도 ‘미생’이 산다!
2008년 불어닥친 금융위기는 월가의 지형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보너스가 줄고 고용안정성이 바닥을 치면서, 미국 엘리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성공 경로였던 월가는 예전의 명성을 잃었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한 학기를 꼬박 바쳤던 신입사원들은 이제 일주일에 100시간씩 밤낮 없이 일하면서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공포와 약탈적 자본 놀이에 동참하고 있다는 도덕적 회의감에 시달린다.
『뉴욕 타임스』, 『뉴욕 매거진』, 『타임스』 기자를 거쳐 기독교 대학의 이면을 파헤친 『이질적 사도The Unlikely Disciple』를 통해 탁월한 잠입 취재 능력을 인정받은 케빈 루스가 이번에는 월가의 신입사원이 된 미국 최고의 엘리트들과 거대 자본 사이에 놓인 욕망의 사다리를 찾아 나섰다. 그는 2년에 걸친 취재 기간 동안 8인의 신입사원과 고락을 함께하며 탐욕으로 가득한 월가를 고발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이 책은 금융위기 이후 월가 신입사원들의 고뇌와 좌절, 욕망을 직시한 최초의 작품으로 꼽히며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출간과 동시에 전미 베스트셀러를 석권했고, 현재 미국 Fox TV에서 드라마 제작을 앞두고 있다.
<출판사 리뷰>
세계 금융위기 그 후
욕망의 사다리는 무너졌을까?
대학 졸업 후 얼마 뒤 나는 맨해튼에 있는 친구의 부모님 댁에서 열린 저녁 파티에 갔다가 금융업계 위상이 얼마나 추락했는지를 처음 알게 되었다. 부모님 중 한 분이 물었다. “어느 회사라고?”
순간 안색이 붉어진 친구는 고개를 숙인 채 어렵게 회사 이름을 내뱉었다.
“저기, 골드…만…삭스요.”
대화의 주제는 곧 바뀌었고, 그녀는 파티가 끝날 때까지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마치 손님 몸에 실수로 와인을 쏟았다든지 그 집의 소중한 가보를 깨뜨렸을 때 지을 수 있는 그런 표정이었다. _ 본문 15쪽
파티는 끝났다. 샴페인과 캐비아로 대변되던 우주의 지배자들은 온데간데없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서 재현했던 것처럼 ‘스트리퍼의 엉덩이에 코카인을 길게 뿌려 놓고 흡입하는’ 보스의 모습은 이제 월스트리트에서 자취를 감췄다.
책에 등장하는 8인의 신입사원 아준, 첼시, 데릭, 제러미, 샘슨, 리카르도, 수진, 제이피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대학생에 불과했다. 이들 중 제러미와 샘슨의 입사가 예정된 골드만삭스는 하필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 사태의 정점에 있는 ‘A급 전범’이었다. 당시 『롤링스톤』지는 “거대한 흡혈 오징어가 인류의 안면을 뒤덮고서는 돈 냄새 나는 것이라면 뭐든 무자비하게 빨판을 들이대고 있다”며 골드만삭스를 비난했다. 억울한 사람은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월가에서 일한다”는 말에 껌뻑 죽던 여자들의 반응이 싸늘해 지면서, 월가의 남자 직원들은 대부분 자신의 직종이 과거의 영광을 잃어 가고 있음을 직감한다. 월가 입성을 위해 바쳤던 그들의 땀과 눈물은 글로벌 흡혈 오징어의 빨판이 되기 위한 노력으로 치환되고 말았다.
한 젊은 헤지펀드 트레이더가 내게 말했다. “난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절대 여자에게 얘기하지 않아. 2008년 그 난리 통에 무척 기분이 안 좋았거든. 헤지펀드 쪽에 관련돼 있다고 하면 우리 어머니 세대의 은퇴자금을 갈취하는 놈으로 취급당했잖아.” JP모건에 있다는 한 친구는 얼음을 넣은 메이커스 마크 잔을 휘적거리며 말했다. “난 사람들한테 뉴욕 지하철 기관사라고 말해.” _ 본문 160쪽
주당 100시간 근무, 연봉 15만 달러짜리 비정규직
당신이 몰랐던 월스트리트의 신입사원 이야기
하지만 월가가 어떻게 변했건 간에 신입사원의 일상이란 언제 어디서나 별로 다를 게 없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이곳 월가에서는 아이비리그 출신에 스펙이 차고 넘치는 엘리트가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하루아침에 잘린다는 것 정도다. 실패보다 성공에 익숙했던 엘리트 신입사원들은 시도 때도 없는 상사의 질책과 숨통을 조여 오는 살인적인 업무량에 죽을 맛이다.
▶어떤 시련을 당해도 연봉이 15만 달러면 된 것 아니냐고?
수익성 좋은 회사의 1년 차 상위 애널리스트는 정말 그런 연봉을 받는다! 그러나 고전 중인 하위 애널리스트라면 기본급 7만 달러에 1만 달러의 보너스를 더해 연 8만 달러에 그치기도 한다. 물론 다른 업계에 비하면 여전히 큰돈이지만, 월가에서 요구하는 노동 강도에 비하면 썩 많은 것도 아니다. 실제 근무 시간을 따져 보면 시급이 세후 16달러에 불과할 수도 있다. 형벌 수준의 업무량을 정당화하기에는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어느 날 밤, 리카르도는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의 바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내게 불평을 토로했다. “작년에 1년 차 보너스로 세후 대략 2만 달러를 받았거든. 이건 정말 모욕적인 금액이라고. 난 정말 1년 내내 똥줄 빠지게 일했는데 고작 2만 달러라니, 이게 말이 돼?” _ 본문 166~167쪽
▶저 차에 치이면 좀 쉴 수 있을까?
1년 차 애널리스트에게 주당 100시간 근무는 흔한 일이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근무하는 ‘투자은행식 정규근무banker’s nine-to-five’가 이어지면서 주인공들은 월가에서 가장 유명한 회사에서 일한다는 흥분 대신 절망과 우울에 휩싸인다. 이민 가정 출신으로 피나는 노력 끝에 월가에 입성한 아준의 경우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굿파스처증후군’이라는 자가면역질환에 걸리고 말았다. 그들 눈에 비친 골드만삭스 본사는 이제 영화 <해리 포터〉에 등장하는 감옥 ‘아즈카반’일 뿐이다.
동 트기 전, 거리를 걸어 출근하면서 제러미는 차에 치이면 얼마나 오랫동안 일에서 빠질 수 있을까 궁리하기도 했다. 팔다리 몇 개 부러지는 것도 차라리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 본 것이다. 전에는 매일 아침마다 골드만삭스 직원 무리에 섞여 머레이가와 웨스트가 교차로 모퉁이에 서 있곤 했던 샘슨은 이제 한 블록 더 북쪽으로 가서 길을 건넌다. 이렇게 우회하면 출근 시간이 5분 더 걸렸지만, 영혼 없는 로보트형 투자은행 직원이라는 무력감을 좀 덜어 내고 자아를 좀 더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_ 본문 174쪽
▶이렇게 바쁜데 연애는 대체 언제 해!
신입사원들은 바쁜 업무 때문에 데이트 직전 번번이 약속을 깨다가 애인에게 차이기 일쑤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바쁜 월가 남성과 안락한 삶을 좇는 패션계 여성의 만남을 주선하는 행사가 있으니 이름하야 ‘금융과 패션의 만남’이다. 2007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에는 동 세대에서 각각 최고로 잘나가는 알파 계급인 월가 남성과 패션계 여성들끼리 짝을 짓고 출산을 해서 우월한 가계를 보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추악한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이 깔려 있다.
문가에 서 있던 월가 트레이더 하나가 내게 물어 왔다. “굳이 따지자면, 이 모든 게 무얼 의미하는 것 같아?” 머리를 말끔히 뒤로 빗어 넘기고 멋진 가슴 털을 밖으로 내보이기 위해 셔츠 단추를 풀어 헤친 그 친구는 구치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는 웃으며 내게 던진 질문에 스스로 답했다.
“이건 사내들을 이용해서 팔자나 고쳐 볼까 하는 여자들하고 그런 여자들을 또 어떻게 해보려는 남자들이 떼로 모여 있는 거야. 서로 그런 상황이니 나름 완벽하지 않아?” _ 본문 159쪽
▶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첼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미친 모자장수’라는 별명을 가진 상사 밑에서 일한다. ‘미친 모자장수’는 매번 일을 몰아서 던져 놓고는 지금 당장 처리해 내라며 첼시의 뒤통수를 친다.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하고 골드만삭스에 입사한 제러미도 상사 때문에 힘들기는 마찬가지. 언제나 1등만 해 왔던 그는 고약한 미녀 상사 페넬로페에게 갖은 수모를 겪던 어느 날, 자신의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 비를 맞으며 마리화나에 불을 붙이고는 펑펑 운다.
월가의 변화와는 달리 금융인이 되는 과정 자체는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는 저자의 말처럼, 문화적 규범이나 업계의 악습은 여전히 구세대에서 신세대로 전수되고 있고 졸음을 쫓기 위해 각성제를 복용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신입사원의 모습 또한 여전하다. 이들은 억대 연봉을 받는 엘리트이기 이전에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어리고 나약한 새끼 늑대일 뿐이다.
금융위기 이후 많은 것들이 변했다지만 막상 저자가 신입사원의 눈을 통해 바라본 월가는 여전한 업무 스트레스와 구체제의 답습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또라이’ 상사, 연애는 꿈도 못 꾸는 살인적인 근무시간도 모자라 이제는 나라를 파산으로 몰고 간 약탈적 금융 회사의 일원이라는 도덕적 회의감과도 싸워야 하는 신입사원들의 고군분투가 이어지고 있다.
돈과 삶의 질 사이, 연봉과 도덕성 사이, 안정된 직장과 미래 사이에서 고뇌하는 미국 청춘들의 모습은 한국의 젊은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월가의 푸념은 과연 배부른 소리일까? 그들에게 만연한 도덕적 해이는 결국 신입사원들에게도 대물림되고 말까? 우리 사회는 그 도덕적 딜레마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자본이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도덕성 앞에서 얼마나 유효한지를 현실감 있게 조명한 이 책은 우리에게도 많은 화두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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