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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nd)책 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에게/책 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에게

[전경련 기고]CEO 스토리 #3. LG그룹 구인회와 청쿵그룹 리자청에게 배우는 도전과 개척정신

by Richboy 2015. 6. 27.

 

구인회 회장, 대한민국에 플라스틱 시대를 열다!

 

“따르르릉!”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은 구인회는 순간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화장품 크림 통 뚜껑이 절반 이상 깨져 크림이 쏟아지는 바람에 팔 수가 없다는 화장품 도매상 주인의 항의 전화였습니다. ‘안 깨지는 뚜껑을 만들어낼 방법이 없을까?’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던진 이 질문 하나가 락희화학공업사의 운명을 돌려놓았습니다. 바로 한국에서 플라스틱 산업이 태동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LG의 창업주인 구인회는 스물네 살에 마산에서 처음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1931년에 ‘구인회 상점’이라는 포목점을 운영했지만, 중일전쟁이 터지면서 곧 장사를 접어야만 했습니다. 부산으로 넘어간 구인회는 사동인 허 씨 집안의 허준구와 함께 ‘조선흥업사’를 설립한 후, 화장품 판매를 제안받았습니다. 지금껏 포목이나 생선 등을 다뤘던 조선흥업사가 경험도 기술도 없는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망할 수도 있다고 다들 말렸습니다. 하지만 구인회는 생각을 살짝 달리했습니다. 미군이 진주하면서 미제 화장품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보고 ‘값비싼 미제 화장품을 쓰는 사람은 부자들이다. 내가 중산층을 대상으로 화장품을 만들면 어떨까?’하고 생각한 겁니다. 


며칠 동안 고민하던 구인회는 “틀림없이 많은 고생을 할 거고, 경우에 따라선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화장품은 지구 상에 여성이 있는 한 필수품이다. 남이 손대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해보자.”라며 화장품 사업을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동동구리무’라는 크림을 수입하여 가져다 팔았습니다. 그러다 1947년에 락희화학공업사를 차리고 자체 브랜드인 ‘럭키크림’을 개발하여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럭키그림이 꽤 잘 팔려 성공을 거두는 듯했으나 얼마 안 있어 유리병에 담긴 화장품 뚜껑이 자꾸 깨지는 제품 불량으로 위기를 맞게 된 겁니다.



 

 



구인회는 이를 보완할 방법이 없을까 하여 찾던 중에 미군이 가지고 있던 플라스틱 통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그전까지 플라스틱을 만들 기술도 장비도 없었기에 구인회의 눈에 플라스틱은 매우 획기적인 물건이었습니다. 구인회는 곧바로 플라스틱에 대한 자료조사에 나섰고, 곧이어 전쟁통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모아둔 전 재산 3억 원을 투자해 국내 최초로 플라스틱 생산에 필요한 사출성형기계를 들여왔습니다. 이로써 플라스틱으로 크림 통은 물론이고 빗, 비눗갑 등 우리 생활에 유용하게 쓰이는 갖가지 생활용품들을 만들어냈고, 이로써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인 플라스틱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후 구인회는 혁신이 필요할 때마다 직원들에게 “남이 미처 안 하는 것을 선택하라. 국민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착수하라.” 요구했습니다. 플라스틱은 전쟁으로 인해 불편하기 짝이 없는 환경에 처한 많은 사람에게 너무나도 편리한 제품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고객의 니즈(needs)를 제대로 짚었던 겁니다.
 

리자청 회장, 중국의 화왕(花王)이 되다!

플라스틱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또 한 명 있습니다. 바로 홍콩의 최고 갑부이면서 아시아 최고 갑부인 홍콩 청쿵(長江) 그룹의 리자청(李嘉誠, 홍콩명 리카싱) 회장입니다. 1928년생으로 올해 나이 88세인 리자청의 재산은 240억 달러로 “홍콩 사람이 1달러를 쓰면 그중 5센트는 리자청의 호주머니에 들어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합니다. 홍콩 상장기업의 4분의 1은 리자청의 소유이며 전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의 10%를 그의 회사가 처리하고 있다니 어마어마한 재산을 충분히 짐작하게 합니다.

유서 깊은 선비 집안 출신으로 태어났지만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는 집안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학업을 포기하고 일찍부터 찻집 종업원, 임시직 공장 노동자, 시곗줄 행상, 플라스틱 벨트 영업사원 등을 전전하며 생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어린 리자청의 한 가지 기특한 점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습관이 있어 열심히 일하는 가운데에도 틈만 나면 책을 읽었고, 책을 손에 들면 언제나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고 합니다. 그는 동료들이 하루 8시간 일할 때 16시간씩 일하며 악착스럽게 사는 법, 그리고 돈을 버는 법을 책으로 배우며 때를 기다렸습니다.



 

 


 

청쿵그룹 창업주 리자청 회장, 출처 : 위키피디아


리자청 사업의 전환점은 1950년대 후반 어느 날이었습니다. 소규모 플라스틱 공장을 운영하던 리자청은 늘 그렇듯 새로운 사업 구상을 위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잡지를 들추다가 우연히 본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리자청은 커다란 망치로 뒤통수를 맞는 듯한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진은 한 장짜리 꽃 그림이었는데요, 꽃이 생화가 아닌 조화(造花) 즉 플라스틱 꽃이었던 겁니다. 사진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세계 최초로 플라스틱 조화가 개발됐다는 기사를 읽은 리자청은 중국인의 화려한 풍습과 많은 축제, 습한 아열대 기후의 홍콩 날씨를 떠올리며 플라스틱 조화를 들여오면 큰돈을 벌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곧바로 이탈리아로 날아가 어렵게 수년간 플라스틱 조화 기술을 배우고 홍콩으로 돌아온 후 자신의 공장에서 본격적으로 플라스틱 조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그가 만든 플라스틱 조화는 유럽에서 생산되는 그것보다 더욱 값이 싸면서도 진짜에 가까워 본고장 유럽에까지 알려지고, 많은 양이 수출되면서 엄청난 매출을 올렸습니다. 이때 리자청은 플라스틱 꽃으로 ‘화왕(花王)’이란 별명을 얻었고 그의 사업은 굳건한 발판을 마련해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리자청을 두고 ‘잎만 보고도 가을이 올 것을 간파할 줄 아는 기업인’이라고 부르는데요, 그를 지금의 아시아 최고의 부자로 이끈 것이 우연히 읽은 잡지였던 것처럼 남보다 한발 앞서 시장을 읽는 능력은 그의 문학, 사회, 철학, 과학기술과 경제방면의 책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어내는 독서력에 있다고 합니다. 

 

 

 

 

 

원문 바로 가기 - http://www.freedomsquare.co.kr/2963#.VY5AVbkw_I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