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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nd)책 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에게/책 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에게

[전경련 기고]CEO 스토리 #5. 세계가 주목한 아모레퍼시픽과 더바디샵! 두 여성 기업가의 성공 비결은?

by Richboy 2015. 8. 17.


 

아름다움의 기준을 바꾼 5가지 이념, 아니타 로딕


“아니 화장품과 비누를 파는 가게가 수없이 좋은 자리 놔두고 하필이면 장례식장 사이에 차리고는, 또 이렇게 해괴망측한 이름으로 열어야겠소? 이건 엄연한 영업방해라고. 무슨 화장품 가게 이름이 ‘더바디샵(The Body Shop)’이냐고!“

1976년 더바디샵의 창업자 아니타 로딕은 장례식장 사이에 차린 화장품 가게의 이름이 혐오스럽다며 장례식장 주인이 상호를 반대하자, 이 내용을 역이용해서 지역 신문에 직접 알렸고 개업 첫날부터 문전성시를 이뤄냈습니다. 초라한 더바디샵의 시작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 그대로, 지금 우리가 아는 글로벌 화장품 기업으로 성장하기에 이르는데요. 그 중심에는 창업자 아니타 로딕이 있습니다.

 

 

1932년 영국의 이탈리아계 이민 가정에서 자라난 아니타 로딕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자 1960년대 말 유행이었던 히피족을 따라 여행을 떠났는데요. 그때 세계 각지에서 원주민들의 열악한 삶을 목격하고 UN의 구호활동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녀가 주로 찾던 곳은 일반인의 발길이 닿기 힘든 오지. 그곳에서 자연의 원료로 비누를 만들고 화장하는 원주민들의 방법을 자연스레 배우게 됐죠. 고향에 돌아온 그녀는 결혼을 했지만, 히피였던 남편이 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살길이 막막해졌고, 궁여지책으로 친구의 도움을 받아 비누와 25개의 순수 자연산 천연 화장품을 파는 구멍가게, '더바디샵'을 창업합니다.

로딕은 알로에, 코코아 버터 등 천연원료를 가져다가 원주민들의 방식을 차용해 바디크림, 로션, 샴푸, 향수 등을 직접 생산했습니다.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매장 인테리어는 물론 화장품 패키지도 손수 디자인하고, 패키지에 제품의 장단점을 숨김없이 표기했는데요. 이를테면 헤어트리트먼트 제품에 ‘거름 냄새가 좀 나지만 효과는 훌륭하다’고 적는 식이었는데, 이런 솔직함이 사람들에게 강한 신뢰를 주었죠.


 

 

창립 이념을 실천하고 있는 ’더바디샵 파운데이션’, 출처 : 더바디샵 홈페이지


또 사회적인 이슈에 늘 관심이 많고, 어려서부터 재활용 습관이 몸에 밴 그녀는 자신의 사업에 곧 리필 정책을 도입했는데요. 다 쓴 용기를 가져온 고객에게 그들이 필요한 만큼만 화장품을 덜어 팔았습니다. 그 덕에 사람들은 꼭 필요한 양만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었고, 이처럼 차별화된 판매 방식이 호응을 얻으면서 설립한 지 6개월 만에 두 번째 상점을 열었죠. 더바디샵은 천연 원료를 사용한 화장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단순히 ‘자연주의’를 넘어 로딕의 다섯 가지 기업 가치 ‘동물실험 반대, 공정무역 지원, 자존감 고취, 인권 보호, 지구환경 보호’라는 이념을 실천하는 사회참여 기업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남보다 앞선 시대 철학으로 ‘천연원료 화장품’의 자리를 굳힌 더바디샵은 오늘날 전 세계에 2,000여 개가 넘는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2006년, 아니타 로딕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던 회사를 11억 4천만 달러(약 1조 2,500억 원)를 받고 로레알 그룹에 넘긴 후, 자신의 지분을 팔아 생긴 수익 약 2,300억 원을 전부 사회활동에 쓰겠다고 공헌했습니다. 2007년 죽음을 맞기 전 남은 유산도 두 딸에게 한 푼도 주지 않은 채 재단에 모두 기부했죠. 자사의 상품에 '환경'이라는 상징을 함께 담아 판 기업, 더바디샵. 세계의 소비자들이 이 브랜드 제품을 쓰는 것은 아니타 로딕의 이러한 이념에 동참하고 싶어서가 아닐까요?


 

트렌드를 읽어 태평양을 넘어 세계로, 아모레퍼시픽


우리나라에도 여성이 창업한 화장품 기업이 있는데요. 오늘날 ‘제2의 삼성전자‘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아모레퍼시픽’입니다. 창업자이자 국내 화장품의 원조인 현 서경배 회장의 할머니이신 윤독정 여사. 서성환 전 회장은 “우리 회사의 모태는 나의 어머니입니다. 우리 회사는 여성이 키운 기업입니다”라고 말하곤 했죠.

1930년대 황해도 개성 남문거리의 끝자락에 이렇다 할 간판도 없는 가게를 차리고 몇몇 잡화를 도매상에서 떼어와 팔던 윤 여사는 먹고살기조차 어려운 시절임에도 여성들에게 머릿기름이 필수품이자 인기품목임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을 창업한 넷째 서성환(1924∼2003)이 만 여덟 살인 1932년 윤독정의 ‘동백기름’이 탄생했죠. 식구들을 굶기지 않으려 만든 이 동백기름이 한국 최대 화장품 회사의 모태가 되리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1938년 ‘창성상점’을 차린 후 본격적으로 ‘창성당 제품’이란 이름을 붙여 판매했던 그녀는 언제나 가장 좋은 원료를 사용하며, 최고의 품질을 유지했습니다. 거래처나 고객 모두 한 번이라도 거래를 맺으면 그녀와의 신용은 생명처럼 지켰죠. 그 영향으로 서성환 전 회장 역시 ‘인류의 미와 건강을 실현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었고, 그것이 지금의 아모레퍼시픽을 있게 했습니다.

오늘날 아모레퍼시픽은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는 회사로 꼽히며, 한국 주식시장의 상징적인 종목이 됐는데요. 한국 경제를 읽는 하나의 코드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자 화장품을 만드는 회사’ 정도로 여겨졌던 아모레퍼시픽이 한국 대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한국인 소비자’만을 바라보던 시선을 뛰어넘은 덕분입니다.


 

 

아모레퍼시픽 세계 진출 사업 현황, 출처 : 아모레퍼시픽 홈페이지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시장 개방이 가속화되기 이전인 1993년부터 선양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중국 시장을 공략해왔습니다. 상하이에 현지법인을 바로 설립할 수 있었지만, 내실을 충분히 다진 후 상하이에 진출하려, 일부러 지방도시를 거점으로 두었죠. '라네즈'의 경우 중국 시장 진출에 앞서 3년 동안 사전 시장조사 및 3,500명을 대상으로 소비자 욕구를 파악했고, '마몽드'는 중국 6대 의과대학과 함께 10년 이상 중국인들의 피부 변화와 특징을 연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제품과 전략 방향을 수정했습니다. 브랜드와 제품을 현지화하는 과정에서 서 회장은 1992년부터 2002년까지 50차례 넘게 선양을 드나들었고, 상하이에 진출한 후부터는 70번 가까이 중국 출장을 다니며 매년 2~3개월에 한 번씩 중국을 방문했죠. 현지화에 대한 노력이 이쯤 되자 아모레퍼시픽은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선물로 사갈 정도로 친숙한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결정적인 변수는 기업의 이념이 담고 있는 내용이 아니라, 그 이념을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서 얼마나 잘 믿고 표현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는 세계적인 경영 베스트셀러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Built to last)>의 저자가 글로벌 기업의 핵심 가치와 지속 가능한 수익성의 상관관계를 파헤친 끝에 얻어낸 결론입니다. 지금의 더바디샵과 아모레퍼시픽이 있기까지, 소비자를 향한 두 여성 기업가의 굳은 창업 이념이 중요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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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월 13일 Daum 메인에 소개되었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