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유 논설위원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신속하고 민첩한 데다 길목을 잘 안다. 제철인 요즘 물을 만났다. 바늘구멍인 교시(敎試)를 통과한 이들도 그들 앞에선 작아진다. 입시에 관한 한 그들은 스타다. 정보에 목마른 수험생과 학부모는 물론 교사들도 그들의 ‘입’을 쳐다본다. 책임을 통감하지만 기자 또한 그랬다.
이영덕·이만기·임성호·이종서·김희동…. 대한민국 입시의 ‘빅 마우스’다. 올 수능이 치러진 11월 12일을 전후로 거의 모든 언론에 등장했다. 12월 2일 수능 성적표가 발표되면 5인방은 올 농사의 정점을 찍을 게다. 교직 경력은 둘뿐이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중학교에서 도덕을,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이사는 고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다 사교육으로 전향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와 이종서 이투스청솔 교육평가연구소장, 김희동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은 기업체 등에서 일했다.
사교육 간 경쟁은 치열하다. 수능 땐 매 교시 문제가 공개되면 강사들이 풀어본 뒤 난이도와 경향을 즉각 발표한다. ‘입’들에는 많게는 10명까지 전담 직원이 붙는다. 기자가 몇 년간의 가채점 등급 컷을 실제 수능 성적과 비교해 봤더니 상당 부분 비슷했다. 수능 성적 발표 전 치르는 수시에선 최저 등급이 적용돼 사교육 가채점이 응시 대학 선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교육부는 공교육이 사교육에 종속되는 모순을 알면서도 뒷짐을 진다.
사교육 입김이 세진 것은 수능 시행 이후 복잡해진 대입 탓이 크다. 수능은 김영삼 정부 초기인 1994학년도에 도입됐다. 교육 대통령을 자처했던 YS는 “우리의 아들딸들을 입시지옥에서 해방시키고 국민의 사교육 부담을 없애자”고 강조했다. 그러곤 95년에 이른바 ‘5·31 교육개혁’을 선포했다. 수요자 중심 교육, 자율화·다양화·특성화, 열린 교육, 세계화·정보화가 핵심이었다. 지금까지 교육정책의 준거가 된 개혁이었다. 하지만 정권을 거듭할수록 입시지옥은 외려 심해졌다. 수능에다 내신·논술·입학사정관제 등이 뒤범벅됐다.
30년 동안 입시로 먹고산 이영덕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시가 바뀌니 공교육이 어려움을 겪는 건 당연하다. 5년, 10년만이라도 입시를 놔두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된다.” 고맙게도 정부가 입시를 누더기로 만드니 사교육이 살고, 영향력이 유지된다는 뜻 아닌가. 정부와 대학이 교사를 돕기는커녕 거꾸로 한다는 걸 빗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교사의 실력은 세계 최고다. 대입에서 사범대의 인기는 월등하고, 중등교사 임용고시 경쟁률은 20대 1을 넘기도 한다. 처우도 나쁘지 않다. 초임은 적지만 15년 차 국공립 교사의 연간 급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1만 달러 많고, 법정 근무시간은 80시간 적다(2015 OECD 교육지표). ‘교사 며느리를 얻으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오겠는가.
한데 입시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교육에 맞서 고교 교사들도 2010년부터 ‘대교협 대입 상담교사단’을 가동했다. 전국에서 해마다 240명이 참여해 온라인·전화 상담과 자료집 제작, 대입 박람회·설명회 등을 연다. 애쓴 덕분에 많이 알려졌고 효과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애로가 많다. 수업과 잡무를 다 하면서 짬짬이 하는 데다 1년마다 교사가 바뀌고, 입시는 춤을 추니 데이터 공유와 축적이 어렵다. 전문성을 쌓을 여유도, 기회도 없다.
그렇다고 움츠러들면 안 된다. 사교육은 단순 보완재일 뿐 결코 공교육 상대가 될 수 없다. 교사들의 열정과 실력을 공교육에 녹이려면 누더기 대입부터 추방해야 한다. 일관되고 예측 가능한 입시가 필수다. YS가 말한 입시지옥 해방의 출발점도 거기에 있을 게다. 전국 2300곳의 고교 교사들이 소통하며 뭉치면 못할 게 없고 스타도 키울 수 있다. 공교육 입시 전국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가채점 등 각종 정보와 노하우를 신속하게 공유하는 통합망이다. 교육부와 교육청이 도와야 하고, 이념 곁눈질만 하는 교원단체도 정신 차려야 한다. 공교육 스타가 많아질수록 사교육 입들은 심심해질 것이다. 그러면 이기는 것이다. 그런 날이 와야 한다.
양영유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서소문 포럼] 언제까지 사교육 ‘입’만 쳐다보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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