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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모음 - Readingworks/독서법·글쓰기

<책벌레와 메모광>을 읽다가 - 정말, 가을은 독서의 계절인가

by Richboy 2016. 1. 2.

 

 

 

지난 가을 원고청탁을 받아 기고한 글이다. 청탁자는 정민교수의 <책벌레와 메모광>에 관한 칼럼을 읽다가 독서의 계절에 즈음한 비슷한 글을 만나고 싶다 했다. 며칠인가 궁싯대가가 글을 써서 보내고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책상 한 켠에 누어서 나를 응시하던 <책벌레와 메모광>을 꺼내어 읽다가 문득 예전 사실이 생각나 파일을 찾았다.

 

두 달전 기고한 글이지만, 이미 '지난 해 가을'이 되어 버려 옛날 글이 되어 버렸지만, '독서를 권함'에 때가 있던가. 더군다나 '죽어라고 책 읽지 않는 우리'에게 책읽기를 권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 믿어 포스팅할까 한다. -Richboy

 

 

정말, 가을은 독서의 계절인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도서 매출이 가장 부진한 계절이 가을이다. 온 국민이 울긋불긋 흐드러진 단풍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으로 가을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책 읽을 시간은 가장 없어서라고 한다. 추측컨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란 말도 책 짓는 이들이 이 계절 죽어라고 읽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낸 고육지책이 아닐까.

하지만 요즘 책은 단풍구경보다 더한 적을 만났으니, 바로 스마트폰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만 떠올려 보자. 열에 아홉 명은 귀에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을 두드리며 어제 못 본 드라마를 보고, 게임을 하고, 카톡을 날렸을 것이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침침한 조명 아래 고개를 늘어뜨리고 스크린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스마트폰 불빛에 겹쳐 흡사 좀비를 닮았다.

사람들이 좀비소리를 들을망정 스마트폰에 빠져드는 건 폰 속에 담긴 다양한 유무선 기술과 수많은 애플리케이션들이 혼자 있는 나를 재미나게 해서 일 것이다. 하지만 공짜는 없다. 그것들은 대신 내게서 생각하는 시간을 빼앗아간다. 그러다보니 지금 우리는 하루 종일 바쁘게살아갈 뿐, 정작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잠깐의 침묵에도 우리는 금방 외로워지고 불안해한다. 그 낯선 침묵을 이기지 못해 결국 스마트폰을 다시 켜고 만다.

세계적인 IT 미래학자이자 인터넷의 아버지라 불리는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라는 책에서 자신이 한때 독서광이었을 때는 언어의 바다를 헤엄치는 스쿠버 다이버였지만 인터넷에 빠지고 난 다음부터는 제트스키를 탄 사내처럼 겉만 핥고 있다고 고백했다. 모니터에 빠져들면 들수록 고요함 속에서 오래 집중하고 깊이 사색하게 하는 능력이 사라지더란 거다. 이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간다면, 좀비와 다를 바가 무얼까.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 나답게 살면된다. 내가 정말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디까지 견딜 수 있고, 참을 수 있고, 노력할 수 있는지 알고 나면 내가 정말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도 알게 된다. 이게 바로 소명召命이다. 이 소명을 알고 나면 눈빛에 생기가 돌고 삶에 의미가 생기고, 매일 재미있어진다. 소명을 안 사람이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느낌이 바로 사명감使命感인데, 사명감을 가진 이들의 행보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 소명은 안타깝게도 누가 콕하고 짚어주거나 알려주지 않는다. 스스로 깨닫는 방법 밖에 없는데, 그 깨달음을 얻는 방법 중에도 책읽기만한 것이 없다. 책을 통해 많이 보고, 듣고, 경험해서 느낌이 있었다면, 그래서 어제와는 다른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면 그것이 독서가 내게 주는 깨달음이다.

중국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양웅은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비록 걱정거리가 없지만, 금수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본의 다독가인 나루케 마코토 역시 <,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에서좀 심한 말이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원숭이와 다를 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고 했다. 책을 읽지 않아 쌓은 지식이 없고, 상상력이 빈곤한 데다, 자기만의 철학이나 주장도 있을 리 만무하니 그저 남의 생각을 마치 자기 생각인양 반복하는 게 아니냐는 뜻이다.

책이 꼭 읽어야만 하는필수적인 것에서 굳이 읽지 않아도 되는선택의 것으로 변해버린 세상에서 정말 그래도 되는가보다고 여기며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일침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창조성이 강조되는 요즘 읽고 생각하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변화에 대응해 자기만의 아이디어를 내고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일으키는 힘은 생기지 않는다.

 

좋은 예가 있다. 윈스턴 처칠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늘 꼴찌였지만 하루도 빼먹지 않고 독서를 한 다독가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하루 5시간가량 책을 읽었고, 그 습관은 평생 동안 지속되었다. 독서를 하면서 그는 열등생에서 사관생도로, 군인에서 정치가로의 대변신을 준비했다. 침대 머리맡에는 즐겨 읽는 책이 놓여 있었고, 노년에도 책 종류를 가리지 않고 하루에 200페이지 가량을 읽었다. 처칠은 책읽기에 머무르지 않고 글쓰기를 실천해 <2차 세계대전>을 써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고, 66세와 77세에 영국의 총리가 되었다.

세계 최고 부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전 회장도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독서광이다. 그는 미국 시애틀 교외에 있는 집에 웅장한 돔형 지붕을 가진 개인 도서관이 있다. 희귀 도서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 필사본을 비롯해 14,000여 권 이상의 장서가 이곳에 보관돼 있다. 어느 토크쇼에서 한 여학생이 만약 당신에게 초능력이 딱 하나 허락된다면 어떤 걸 갖고 싶은가요?”라고 묻자 그는 책을 빨리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빌 게이츠는 지금도 주중에는 하루 최소 1시간, 주말에는 3~4 시간을 책과 함께 보내고 있다.

 

내가 강의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왜 책을 읽지 않는가?” 종종 물으면 한결같이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답한다. 정말 그럴까? 한국인의 하루 중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시간은 평균 219, 3시간 39분이다. 30일중 4.5일을 온전히 스마트폰에 시간을 쓰고 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이전인 디지털 폰을 쓸 때 소비했던 64분 보다 세 배 이상의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그들이 바쁜 진짜 이유를 알 듯 하다.

재미라면 독서도 스마트폰에 뒤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조선시대의 3대 명필 완당 김정희가 쓴 현판 중에 일독 이호색 삼음주’ (一讀 二好色 三飮酒)‘라는 글이 있을까. 뜻을 풀어보면 세상사는 맛의 첫째는 책 읽는 맛이고 둘째는 여자와 노는 맛이고 셋째는 술 마시는 즐거움이다쯤 되는데, 책을 제대로 읽는 사람만 알게 되는 최고의 재미다. 감이 익듯 가을이 깊어간다. 책을 읽는 깊이만큼 익어가는 나를 만나는 가을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