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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Richboy.../영화리뷰 - moviegoer

퍼 (Fur: An Imaginary Portrait Of Diane Arbus, 2006)

by Richboy 2007.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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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내면'에 있다.
그것이 숨어 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사람들은 한정적이다.
 
또한 그 아름다움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주변의 영향으로 시시각각 변한다. 
심지어는 내가 과거에 단정지은 아름다움의 정의와 실체를 의심하고 부정한다.
 
깊숙히 숨겨지고, 다분히 주관적인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아름다움일까?
 
어쩌면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내가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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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 배우중 몇 안되는 눈으로 말할 수 있는 배우.
깊고 푸른 눈동자가 흰 피부를 더욱 희게 만드는 배우.
니콜 키드먼의 재출현에 반가움을 표한다.
 
<탄생> <도그빌> 등 최근 몇 편이 모노드라마형식을 빌려 출연중인데
그녀의 연기력을 대변하는 듯하다.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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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다이앤 아버스에 대하여...
 
 
"아버스의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예술 사진이 가장 열렬히 추구해 왔던 계획 중의 하나 (예컨데, 희생당한 자나 불행한 자를 향한 관심의 촉구)를 실행에 옮기면서도, 관람객들의 연민을 자아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녀의 작품은 혐오스럽고 측은하며 비루한 사람들을 보여주는데도 전혀 연민을 유발하지 않는다. 분열증을 연상케 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만한 시점으로 찍혔기에, 그녀의 사진은 솔직 담백하게 일체의 감상 없이 피사체에 파고들었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사실 대중이 그녀의 사진에서 공격적이라고 생각했던 요소, 즉 그녀의 사진은 관람객들이 피사체와 전혀 거리를 두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점도 일종의 도덕적 성취로 평가받아 왔다.
 
좀더 멋지게 표현해 보면 (소름끼치는 것까지 담아놓은) 아버스의 사진은 천진난만하다. 이 천진난만함은 수줍어하는 듯하면서도 악의적인 모습을 띠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천진난만함은 [피사체와의] 일정한 거리, 특권적 위치, 관람객들이 [사진에서] 정작 봐야 할 것은 다른것이라는 느낌 위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왜 영화를 만드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브뉘엘은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의 세계가 가능한 모든 세계 중 최고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아버스는 이보다 더 단순한 것을 보여주려고 사진을 찍었다. 즉, 다른 세계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아버스의 사진이 뛰어난 이유는 사진 속의 피사체가 우리의 감정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듯한 데 반해 그 분위기는 냉정하고 무미건조할 만큼 정중하기 때문이다. 직설적이고 관조적이기 그지없는 아버스의 인물 사진이 일종의 교훈극처럼 보이는 이유도 바로 이 정중한 분위기 (사진작가의 정중함, 자신이 사진에 찍힐 때 보여준 피사체의 정중함) 때문이다.
 
1971년 그녀가 자살할 무렵, 아버스의 사진은 사진 애호가들에게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실비아 플라스의 경우처럼, 그녀의 작품에 쏠렸던 관심도 그녀의 사망 뒤 다른 차원으로 넘어갔다. 즉, 일종의 신격화로. 그녀가 자살했다는 사실은 그녀의 작품이 관음증이 아니라 진정성의 결과였으며, 냉정함보다는 인정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입증해 주는 듯 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사진이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인상을 자아내기도 했다. 마치 그녀의 사진이 그녀를 자살로 이끌었다는 세인의 생각이 입증이라도 된 양 말이다.
 
아버스의 사진을 본다는 것이 일종의 호된 시련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한, 그녀의 사진은 오늘날의 세련된 도시인들 사이에게 유행하는 예술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고집스레 사람들의 참을성을 시험하는 예술 말이다. 그녀의 사진은 점잔빼지 않고 삶의 공포와 대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한때 이 사진작가는 자기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야만 했다고 한다. 좋아, 참을 만해. 그녀의 사진은 관람객들도 이와 똑같은 말을 하게 만든다.
 
아버스는 초현실주의 특유의 허세를 끝까지 고수한 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결코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것을 염두에 둔 채 피사체를 고르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그녀는 자신의 사진에 찍힌 사람에 대해서 관람객들이 이런저런 추측을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관람객들은 늘 그렇게 한다. 그리고 그녀가 선택한 피사체의 범위 자체가 그럴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수잔 손탁, on Photography,  '미국, 사진을 통해서 본, 암울한' chapter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