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섭 교수(싱가폴 국립대학교 교수)의 신간이 나왔습니다. 제목은 <금융전쟁, 한국경제의 기회와 위험>(청림출판)이네요. 신장섭 교수는 지난 해 <한국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청림출판)이란 책을 내서 국내에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어느 TV 프로그램에 나와 강연을 하는 모습을 뵌 적이 있는데 스스로 나폴레옹을 빗대어 단신(나폴레옹이 178센치 정도였다는 일설도 있더라만)이라며 농담으로 시작한 강연은 그가 '작은거인'으로 느껴질 만큼 훌륭했습니다.
리치보이의 리뷰: http://blog.daum.net/tobfreeman/7162606
신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 빠진 현실(2008년)에서 대한민국 경제가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경제 패러다임을 고쳐야 한다고 일갈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경제 강대국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면서 고정환율제와 보호무역을 주창하기도 했죠. 저는 그 강연을 들으면서 신교수의 남다른 당찬 기세는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했습니다. 외국에서 교수를 역임하며 생활하고 있어서 일까? 아니면 전직 기자출신이라는 지식인으로서의 소명일까? 이번 책을 살펴보니 그의 당참은 '한국경제를 우려함'이었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이번 책에서도 그는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경제의 실상을 파헤치고 우리가 개선해야 할 <<새로운 5대 금융명제>>를 제시합니다.
우리가 경제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국내 경제를 보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서 입니다. 생선의 비늘처럼 흩어져 있는 신문, 뉴스의 기사들을 한국경제라는 하나의 물고기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뼈대가 되고, 내장이 되는 '경제구조'를 먼저 파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 교수는 지리적으로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 있는 경제전문가들보다 3자적 위치에서 한국경제를 바라볼 수 있겠다는 얕은 생각을 해 봅니다. <한국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 책에 주목하는 이유 역시 그 때문입니다. 명쾌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까 합니다. 자세한 책 소개는 출판사의 서평으로 대신합니다.
“왜 한국경제는 금융위기 때마다 패배하는가?”
세계적인 경제학자 신장섭 교수의 한국 금융 처방전
지난 해 『한국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2008)를 펴낸 싱가폴국립대 경제학과 신장섭 교수가 『패러다임 2탄』이라고 할 수 있는 새 책을 내놓았다. 책을 연이어 내놓는 이유를 저자는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한국경제가 OECD에서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인다는 등 경기회복 기대로 들떠 있지만 한국은 이번 금융전쟁에서도 사실상 패배자라는 것이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그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않으면 한국은 주기적으로 금융위기에 빠지고 손해만 많이 보는 경제구조를 갖고 간다고 주장한다.
둘째, 이번 세계금융위기는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받아들인 IMF패러다임이 완전히 실패작이었다는 사실이 입증된 계기였는데도 대다수 사람들은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IMF패러다임이 유일하게 내세우던 논거가 ‘금융안정성’이었는데 이번에 다시 외환위기를 당한 것을 보면 한국은 금융안정성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성장률이 떨어지고 투자도 부진하고 값나가는 자산을 외국인들에게 많이 팔아넘기기만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현실과 논리를 함께 살핀다. 먼저 각 나라들의 성적표를 다시 본다. 이번 세계금융위기 과정에서 (1) 외환위기와 경기침체를 동시에 당한 나라, (2) 경기침체만 겪은 나라, (3) 경기둔화만 겪은 나라의 세 그룹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한국은 불행히도 첫 번째 그룹에 들어갔다고 말한다. 정부에서는 경기회복세만 놓고 비교하는데 저자는 외환위기를 겪었는지 여부가 금융전쟁에서 승패를 가르는 데에 중요한 변수라고 밝힌다. 단순히 계산해도 한국은 2008년 중에만 국부(國富)의 가치에서 900조 원가량 손해를 봤다고 말한다. 그 외에 헤지용 파생상품에서의 손실, 외환시장 개입과정에서의 손실 등을 감안하면 손해액은 훨씬 더 크다고 밝힌다.
저자는 이렇게 큰 손해를 보고도 한국이 경기회복세에만 도취되어 있는 ‘착각’의 뿌리를 파헤친다. 저자는 이 뿌리에 5가지 잘못된 ‘금융상식’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금융상식을 해부하고 비판해서 국제금융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5대 금융명제를 도출한다.
ㆍ 몸통이 꼬리를 흔든다 - 투기가 몸통이고 펀더멘틀은 꼬리에 불과하다
ㆍ 돈은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흐른다 - 신흥국에 돈이 들어오는 것보다 빠져나가는 것이 훨씬 쉽다
ㆍ 버블은 터지기 마련이고 새로운 버블을 만들어서 해결한다 - ‘버블 만들기’가 자본주의 발전과정이다
ㆍ 음모론을 믿어라 - 어느 음모론을 믿을지가 중요할 뿐이다
ㆍ 성장률 숫자에 현혹되지 말라 - 자산가치가 더 중요하다
저자는 IMF패러다임을 ‘펀더멘틀론’으로 규정한다. 경제가 튼튼한 ‘펀더멘틀’을 갖춰놓으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여기에 신뢰를 보내 투자하고 경제가 잘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국제금융시장의 ‘몸통’은 투기라고 지적한다. ‘꼬리’인 펀더멘틀을 보고 돈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투기 논리에 따라 국제자금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흔히 ‘투자자 신뢰’라고 하는 것은 ‘투기꾼 신뢰’가 더 정확한 표현이 된다. 또 선진국이 신흥국으로부터 자금을 빨아들이는 힘이 더 강하다고 밝힌다. 그래서 신흥국에 외환위기가 빈발한다. IMF패러다임은 위기가 벌어지면 고금리, 구조조정을 통해 펀더멘틀을 강화하라고 ‘권고’하지만 실제로 역사를 보면 선진국에 버블이 터졌을 때에는 IMF프로그램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풀어 새로운 버블을 만드는 ‘케인지언 방식’을 적용해왔다. 이번 세계금융위기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IMF패러다임은 ‘음로론’으로 해석하는 것이 낫다고 밝힌다. 자신들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것을 왜 남에게는 적용하는가, 또 “국제투자자에게 좋은 것 = 금융위기국에 좋은 것”이라는 등식(等式)이 과연 얼마나 설득력 있느냐고 반문한다. 저자는 국제금융시장에 각종 음모와 작전이 횡행하는데 이런 것들이 없다고 생각하기보다 어떤 음모가 맞을지를 살피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한편 이런 ‘음모’에 정책담당자들이 쉽게 넘어가는 한 이유는 국제투자자들은 자산가치에 관심을 두는 반면 정책담당자들은 성장률 등 유량지표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정치가들이나 정책담당자들은 자산에서 손해 보더라도 성장률 높아지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5대 금융명제를 바탕으로 세계금융위기와 한국금융위기를 재해석한다. 이번 세계금융위기도 버블이 만들어지고 터지는 과정이었는데 ‘파생상품’이라는 새로운 몸통이 급격히 커지다가 터졌기 때문에 충격이 컸다고 말한다. 한국의 경우는 버블이 터질 때면 금융위기에 취약해지는 3가지 구조적 약점을 안고 있었고 이를 악화시킨 2가지 상황적 요인이 있었다고 밝힌다. 특히 국제자금유출입에 완전히 손 놓고 이에 따라 환율이 즉각 영향 받는 시스템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환율전쟁이 벌어지면 한국은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전에는 외국인들이 주식·채권시장에서 600억 달러 이상을 빼냈고,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 4개월 동안 한국에서 빠져나간 돈 465억 달러 중 절반 이상을 외국은행 국내지점들이 본점으로 송금했다. 아무리 세계 6위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어도 이렇게 급격히 자금이 빠져나가는 것을 방치하면 경제가 충격을 쉽게 받고 좋은 환투기 대상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외환위기의 구조적 요인들을 다스리는 경제 패러다임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정부에서는 단기외채를 축소하고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등 상황적 요인에 대한 대책만 내놓고 있다고 비판한다. 패러다임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 실패한 패러다임 내에서 대응하려다 보니 돈만 더 들어가고 실효성 없는 대책만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투기라는 ‘몸통’에 외환거래의 97%가 넘는 상황을 고려할 때에 돈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고 제도로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실물경제의 필요에 맞춰 환율을 조정할 수 있도록 ‘바스킷 방식’으로 환율 제도를 바꾸고 자금유출입에 대해서도 선택적 통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새로운 경제 패더다임의 또 다른 축으로 ‘금융-산업 동반성장’ 방안을 내세운다. 금융과 산업이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시각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과 산업이 ‘유착’되어야만 산업투자에 따라오는 위험성을 할인할 수 있다면서 ‘한국적 관계금융체제’을 구축하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한다. 저자는 또 한국이 개방체제로 나가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최대한 개방’보다는 ‘적절한 개방’을 해야 한다며 한국이 ‘중심국’보다는 거간꾼인 ‘중간국’으로서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장섭 교수는 금융전쟁터에 있다는 생각을 제대로 갖고 있어야만 국익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생각이 잘못되니까 ‘투기꾼 패러다임’에 따라 구조조정하고 값비싼 재산 많이 내놓았는데도 투기꾼의 성공을 한국경제의 성공으로 착각하고 방어와 공격을 소홀히 하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국제금융시장을 새롭게 바라보는 독창적 시각과 세계경제의 흐름 속에서 한국금융위기를 설명하고 구체적 대안을 제시한 역작이다. 음모론에 관한 그의 논의는 중량급 경제학자가 체계적으로 내놓은 음모론이라서 관심이 끌린다. 저자는 또 5대 금융명제에 입각해서 세계경제와 한국경제가 생각보다 빨리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을 2008년 말부터 내놓았다. 한 기업전략담당자는 2009년 초에 닥터둠으로 유명한 루비니 뉴욕대학교수의 글과 신장섭 교수의 글을 책상에 붙여놓고 누구 주장이 맞는지를 살펴보기도 했다고 한다. 금융전쟁에서 승자가 되고 싶어 하는 투자자, 기업인, 금융인, 정책담당자들에게 모두 도움이 될 수 있는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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