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전까지 나는 삶이라는 것에 크게 집착하지 않았고,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는 소리까지 하고 다녔다. 하지만 이는 자살욕구와는 다르다. 딱히 제 발로 기꺼이 죽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나에게 주어진 무거운 짐에서 언제 해방되든 상관없다는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구사일생이라 할 만한 상태에서 살아 돌아오고 보니 '간단히 자기 짐을 내려놓고 죽을 수는 없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냐'라고 누군가가 말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하나.
그래서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기쁘지도 않아도 가치는 있다. 살아 있다는 가치 말이다. 그렇게 다행이라거나 행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쨌든 살아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도록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거기서 실패하면 다시 살아난 의미가 없어진다. 끊임없이 그런 생각만 맴돌았다. 본문 17 쪽
일본에서 왕년의 최고 코미디언이었던 배삼룡, 이기동 만큼이나 인기를 구가하는 기타노 다케시(우리에게는 영화, <하나비>, <기쿠지로의 여름>으로 잘 알려진 배우입니다)가 큰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습니다.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상처투성이에 얼굴도 찌그러진 인형 옷'이 되어 죽다 살아간 다케시가 병상일기를 썼습니다. 책 <죽기 위해 사는 법>이 그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쨌든 살아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도록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라는 말이 뇌리에 남습니다.
'짐을 지고 살아간다'는 표현처럼 우리의 삶은 원래 고단한가 봅니다. "인생은 두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말했죠. 최소한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 것 같아 살짝 위안이 됩니다. 그제가 어제같고, 어제가 오늘 같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날들'을 살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기타노 다케시와 잠깐 이야기를 해 보시죠. 그와 대화를 마치는 순간 '그래, 세상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니까~'하고 새삼 깨닫게 될 겁니다.
리치보이가 추천하는 2009년을 빛낸 책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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