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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모음 - Readingworks/경제마인드

[책리뷰]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 착한 경제를 찾기 위한 여행

by Richboy 2012. 4. 27.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 착한 경제를 찾기 위한 여행 

 

   시골에 자식을 셋 둔 가난한 부모가 있었다. 장남이 성공하면 두 동생들을 보살펴줄 것으로 믿고, 어려운 살림에 논밭 팔고 소 팔아 장남을 의대까지 보내 의사로 만들었다. 그러나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성공한 장남은 자기 먹고살기도 힘들다며 부모 형제를 외면한다. 장남 때문에 부모의 지원도 받지 못한 채 가난만 물려받은 두 동생들은 당장 입에 풀칠하며 아등바등 살아가느라 바쁘게 살아가고 부모는 맏아들을 믿은 자신들을 하늘보며 원망만 하고 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몇 달 전 출간된 <가난한집 맏아들>(한국경제신문)의 주된 내용이다. 가난한 부모의 도움으로 성공한 맏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성공한 기업들의 도덕적 의무, 경제적 의무에 대해 다루었는데, ‘가난한 부모'는 1960~70년대의 '대한민국 정부'로, '성공한 맏아들'은 '기업'으로, '소를 팔아 보탠 학비'는 '각종 특혜'로 바꾸어 논리를 펼쳐내고 있다. 그렇다. 대한민국 정부는 과거 성장격동기에 재벌과 대기업 집중육성 정책을 펴왔다. 정부는 재벌 대기업을 위주로 성장시키면 국민들도 같이 잘 살게 되리라는 기대하고 그들에게 세금, 차관, 법률적 지원 및 국가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한 여러 특혜를 제공했다. 특혜 받은 재벌 대기업들은 이러한 적극적 지원 속에서 성장을 거듭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뤄낸 성공의 열매는 그들만의 것이 되어버렸다. 그들에게 양보하느라 성공의 기회를 뺏긴 국민들은 이뤄낸 부를 같이 누리는 것이 아니라 심화되는 부익부빈익빈을 겪는 등 더 어려워지고 있다. 유진수 교수는 부모가 뒷바라지 해준 가난한 집 맏아들처럼, 정부의 온갖 특혜를 받아 성공한 기업들이 분배는 내 일이 아니라며 외면하고 있는데, 그들(대기업) 때문에 기회조차 얻지 못한 사람들이 보상받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이독경(牛耳讀經), 소귀에 경 읽기와 같았다. 맏아들은 난 ‘법대로’ 열심히 일했을 뿐이라며 가족의 수고를 외면한다. 안타까운 것은 선택권도 없이 희생을 강요당한 99%의 자식들(국민)은 맏아들로부터 보상받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성공한 맏아들의 천국, 이상한 나라 대한민국 

 

   ‘착한 경제, 좋은 경영’을 지향하는 경제학자 이원재가 만약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아예 고민조차 하지 말라. 답은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우리가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서다.

 

 

 

 

 

   “우리는 99명이 1명의 경제를 자신의 경제로 착각하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경제에서 주인공은 1명뿐이다. 나머지 99명은, 자신의 삶과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는 1명을 열심히 응원하는 관객이 되어버렸다. 주인공은 풍요를 누리지만 관객들은 고단하다.” 8 페이지

 

   루이스 캐럴이 쓴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다 보면 조끼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보며 “늦었네, 늦었어.”를 외치며 바쁘게 돌아다니는 흰 토끼가 등장한다. 재미있는 설정과 개성 넘치는 캐릭터, 다음을 짐작할 수 없는 기발한 스토리에 빠져 읽을 때는 몰랐지만, 책을 덮고 보면 토끼가 조끼를 입은 것도, 시계를 보며 말하는 것도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장면이다. 이원재는 우리나라 대한민국 역시 살고 있어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이상한 나라’라고 말한다.

 

   “만약 한국이 100명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라면, 이 마을 사람들은 어디서 어떤 경제활동을 하고 있을까? 이 마을 사람들 가운데 취업해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59명이다. 28명은 취업해 살고 있으며, 14명은 비정규직이다.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자영업자가 17명이다. 그런데 정규직 가운데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안정적인 상장 제조기업에 다니는 정규직은 단 1명이다.” 6 페이지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어크로스)는 이상한 나라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경제상황을 조망하고 갈수록 곤궁하고 불안해지는 대다수 국민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있다. 그리고 이 나라가 ‘이상한 나라가 된 원인’을 찾고 새로운 해답을 모색하고 있다. 21 세기 들어 급변했던 국내외의 경제 상황들을 한 가지 대표적인 사건과 사례를 들어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어 유익하다. 인상적인 것은 제목은 경제학인데 숫자나 그래프는 몇 개 없고, 계산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이야기로 가득하다.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쑤욱~‘ 하고 빠져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뒤통수를 맞는다. 그리고 곧 ’아뿔사!‘ 독자는 지금껏 앨리스가 다녀왔던 나라만큼 정말 ’이상한 나라‘에서 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트리클 다운은 없다 

 

   맏아들(대기업-저자는 ‘국가대표‘라고 불렀다)은 결코 나머지 동생들을 구할 수 없다. 아니, 아예 그럴 생각이 없다. 21세기의 10년 동안 2000대 한국기업은 규모와 재무건전선이 두 배나 좋아졌지만, 일자리는 2.8% 밖에 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돈은 900조 원 가량을 더 벌었는데, 고용한 인원은 딱 5만 명, 그것도 비정규직을 포함한 수치니, 오히려 줄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한국 대표 기업이 돈을 벌어도 고용은 결코 늘지 않는다. 이 말은 곧 낙수효과로 불리는 ‘트리클 다운은 없다‘는 뜻이다. 기업들은 지금 일자리를 늘리지도 않고, 투자하지도 않는다. 늘어나는 것은 외국공장이요, 사내하청과 비정규직뿐이다. 그래야 생산성이 높아지니까. 그러니 부의 분배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렇다면 높은 생산성으로 얻어지는 과실은 어디로 갈까? 애플의 경우를 살펴보면 금방 알게 된다.

 

   아이폰은 미국 기업 애플에서 기획되지만, 생산은 대부분 중국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아이폰을 생산한 중국 노동자에게는 1만 원이 채 가지 않고, 재료비도 11만 5천 원밖에 투입되지 않는다. 가장 많은 몫을 가져가는 곳은 애플 본사다. 50만 원 중 30만 원 가량이 애플 본사로 간다. 그럼 애플 직원들만 대박이 난 걸까? 그렇지 않다. 애플 직원들은 이 중에서 6만 7천원을 가져가고, 미국 정부에 내는 세금은 5만 8천 원이다. 가장 큰 몫은 애플의 주주들에게 돌아간다. 그들의 몫은 50만 원의 제품 가격 중 18만 원이 넘는다. 이것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이익을 많이 낸다는 평가를 받는 기업, 애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어디 애플 뿐인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지난 해 각각 16조 원과 18조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반면 평균적 한국인의 오늘은 갈수록 빠듯하고 내일은 더 불안하다. 이것이 바로 주주자본주의다. 주주에게 최대한 이익을 실현시켜주기만 하면 장땡인 이 시스템은 주주의 탐욕을 부추긴다. 그리고 작금의 금융위기와 재정위기는 이런 탐욕에서 비롯되었다.

 

 

탐욕덩어리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몰락 

 

   뉴욕발 글로벌 금융위기와 작금의 유럽 재정위기, 그리고 분배의 양극화는 개인의 금전적 이해관계를 의사결정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삶의 태도를 지니고 있는 인간들, 호모 이코노미쿠스들이 만들었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월가의 은행가들이었다. 그들의 시장 원리의 우월성을 절대시하는 태도와 제도는 무분별한 규제 완화를 불렀고, 보수적 미디어와 언론, 학계는 이들에게 동조했다. 이러한 시장만능주의는 금융인이나 기업가 뿐 아니라 빈곤층과 자영업자 그리고 학생과 주부까지 전염시켰다. 그리고 그 거품으로 모두 파산하고 말았다.

 

   99%의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시위대에게 월가가 점령당한 이유, 세계적인 경제학 교과서 <맨큐의 경제학>의 저자 그레고리 맨큐 교수의 강의가 자신이 가르치는 하버드 대학생들에게 거부당한 이유는 바로 ‘시장만능주의’ 때문이었다. 금융위기에 책임이 있는 기업과 금융인들이 정부가 준 구제금융으로 보너스 잔치를 벌인 도덕적 헤이는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만드는 탐욕이 부른 습관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탐욕을 정당화 시키는 교과서가 ‘맨큐의 경제학’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1%에 대한 99%의 움직임은 시장만능주의 체제에 대한 반감이며 다른 경제를 찾는 모색이라고 진단했다.

 

 

착하고 더 나은 자본주의 

 

   시장만능주의의 원인이 되는 탐욕에 대한 국민의 대답은 공분(公憤)이었다. ‘이기심은 공익을 낳는다’는 애덤 스미스의 경제논리는 오늘날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제빵업자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이기심 때문이라는 것은 이해했다. 하지만 제빵업자와 푸줏간 주인은 점점 더 부자가 되는데, 우리 집 저녁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의 양과 질은 점점 더 초라해지는 사실에 국민들은 화가 났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로서 자기의 이익에 충실하다 보니 결국 전례 없이 거대한 금융위기와 환경위기만 부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에 대한 해답을 지극히 ‘상식적’인 것에서 찾았다.

 

   “협력업체 및 노동자들과 공생하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라는 게 상식이다. 경제성장률은 높지만 소수에게만 부가 집중되는 경제는 좋지 않다는 게 상식이다. 동일 노동에는 동일 임금이 지금 되는 게 상식이고, 뇌물이나 학연이나 지연에 의존하지 않는 거래 관행이 정착되어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171 페이지

 

   저자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착한 소비, 윤리적 소비와 협동 소비를 대단으로 내놓았다. 그리고 구체적인 대안으로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들었다. 우리가 ‘이익’ 대신 ‘제품’이라는 산출(output)을 경영의 지상과제로 놓고 실천한 스티브 잡스에 열광하고, 안철수 연구소를 영혼이 있는 기업으로 만들고 탐욕이 없이도 기업가로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롤모델이 되어준 안철수를 존경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자본주의, 더 나은 자본주의로 변화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아울러 저자는 저성장 시대의 도래를 내다보고 낮은 성장률 아래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으로 ‘탈성장’을 제시하고 있다. 탐욕으로 비어있는 곳간을 ‘선의와 합동’으로 채우는 것이 금융 위기와 환경 위기 이후 새롭게 경제를 움직일 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자의 주장이 현실성이 없는 대안이라 생각된다면 다음을 주목하자.

 

   2011년 11월 5일 ‘월가를 점령하라’시위대는 금융권 탐욕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은행 계좌 옮기는 날(Bank Transfer Day)'로 정하고 대형 은행 계좌를 해지하고 지역 공동체가 운영하는 협동조합은행 같은 곳으로 돈을 옮기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리고 한 달 만에 신용협동조합에 65만 명의 신규 계좌가 개설됐고, 무려 45억 달러가 새로 흘러들어 왔다고 한다. 원래 문제라는 것은 인식하는 순간부터 풀리는 법이다. 그리고 해답의 선택권은 우리(소비자)에게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 나은 자본주의로의 변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이 리뷰는 전국은행연합회가 발행하는 <월간 금융>(2012년 4월호)에 기고된 리뷰 입니다.

 

 

 

이 책에 대한 북트레일러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저자
이원재 지음
출판사
어크로스 | 2012-02-20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왜 경제는 성장했다고 하는데 삶은 더 팍팍해지고 어려워질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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