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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모음 - Readingworks/경제마인드

[책리뷰]노동의 배신 -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우울한 워킹 푸어

by Richboy 2012. 6. 9.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우울한 워킹 푸어

 

   지난 달 나는 부산으로 가는 6시 46분발 KTX를 타려고 광명역에 있었다. 출발까지는 아직 30여 분이 남아 역내에 있는 뚜레쥬르 빵집

을 들어가 샌드위치와 따뜻한 아메리카노 커피를 주문했다. 선남선녀라 부를만한 젊은 청춘들이 카키색 유니폼을 입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보기 좋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저들은 대체 몇 시에 출근한 걸까’ 궁금해졌다. 나아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그들은 무엇을 타고 출근했는지,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근무를 한다면 도대체 시급은 얼마일지도 궁금했다. 묻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밝게 웃는 미소로 일하는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만큼 난 뻔뻔하지 않아서다.

 대신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봤다. 2012년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4,580원이다. 주 40시간을 일하면 겨우 월 95만 7,220원을 벌 수 있다는 소리다. 우리나라의 사람값은 헐값이다. 한 시간 일하면 3,700원짜리 맥도널드 빅맥버거 1.2개 밖에 못 사먹는다(다른 나라 애들은 좋겠다. 일본은 2.4개, 호주는 3.5개나 먹을 수 있단다).

 

   이태백, 사오정, 오륙도처럼 취업난과 고용불안을 반영하는 말은 이미 옛말이 되었다. 대신 삼포세대(직장이 없어 연애,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청년층), 거마대학생(등록금을 벌기 위해 서울의 거여동과 마천동 일대 다단계업체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학생들), 청년실신(청년 대다수가 졸업 후 실업자나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뜻), 스펙리셋족(취직을 위해 편입학 등을 거듭하며 기업이 요구하는 스펙을 맞추려는 사람), 청백전(청년백수 전성시대), 행인(행정 인턴), 장미족(장기간 미취업 상태인 대학졸업생들), 십장생(10대도 장차 백수가 될 생각을 해야 한다) 등 청년 실업난을 빗댄 신조어들이 끝없이 생겨나고 있다(선대인씨, '문제는 경제다'에서 이 신조어들을 잘 정리해줘서 고맙소).

 

   어렵사리 일을 구한다 해도 걱정은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사람값이 헐값인지라 죽어라고 일을 해도 민생고를 해결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저축을 하기 빠듯할 정도로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근로빈곤층을 우리는 워킹 푸어working poor라 부른다. 2012년 4월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人 은 직장인 1406명을 대상으로 ‘빚 현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 직장인 10명 중 7명은 현재 빚(평균 3,831만원)이 있고, 자신이 워킹 푸어라고 대답했다. 문제는 의미대로 따져보면 우리나라 근로자가 너나할 것 없이 워킹 푸어라는 것이다.

 

   지난 해 책<긍정의 배신>(부키)을 써서 근거 없는 긍정주의를 실랄하게 비판했던 미국의 저널리스트 바버라 애런라이크가 이번에는 <노동의 배신>(부키)을 통해 빈곤에서 허덕이는 미국 워킹 푸어의 현실을 고발했다. IT붐이 한창이던 2000년 어느 날 바버라는 ‘시간당 6, 7 달러 하는 최저임금으로 온전한 생활이 가능할까? 통념처럼 가난은 게으름과 무능의 소치일까?’하는 의문을 품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현실로 뛰어들어 체험 취재를 했다. 그리고 식당 웨이트리스, 호텔 청소부, 월마트 직원 등 워킹 푸어로 일한 3년간의 체험을 녹여 책에 담았다.

 

 

 

 

   이 책은 전형적인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영국의 TV 프로그램 ‘언더커버 보스’를 닮았다. 전체적인 내용은 매주 일주일간 자기회사의 말단 직원으로 입사한 CEO가 현장직에 있는 고충과 애환을 느끼고, 회사에 필요한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는 스토리인데, 이 프로그램의 백미는 CEO가 실제로 이러한 경험으로 통해 얻은 깨달음을 나중에 복귀한 후 회사경영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면서 직원들의 니즈가 충족되면서 작은 감동을 준다는 점이다.

 

   하지만 <노동의 배신>의 결말은 그 반대다. 저자는 체험을 통해 끝없이 높아져가는 물가와 집값(임대료) 때문에 시간당 5달러 남짓의 최저임금만으로는 먹고 잠자는 최소한의 생활조차 힘들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아울러 ‘가난은 게으름과 무능의 소치‘라는 생각은 편견일 뿐, 한 번 빈곤의 늪에 빠지면 좀처럼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게 되고, 부가 되물림 되듯 빈곤 역시 되물림 된다는 맥 빠지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그녀가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떠한 에피소드들이 있었고, 얼마를 받았는지 하는 다소 뻔한 정보들은 궁금하지 않았다.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최저임금노동자로서 그녀가 일하는 고충 정도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 일들이기 때문이다(전혀 짐작이 안 간다면, 당신은 복받은 사람이다). 나도 대학시절 방학 때면 등록금 마련을 위해 학교에 근로 장학생을 신청해서 학생회관 식당에서 그릇을 닦거나, 학교 앞 지하철 공사 복공판 위에서 막노동을 했었다. 주말 새벽에 청과물시장에 가서 트럭에 과일을 실어 나르기도 했다(20년 전만 해도 두 달 정도 열심히 일하면 등록금 정도는 마련되는 시절이었다).

 

  오히려 나는 그녀가 위장취업을 한 후 매일 만나는 자괴감에 주목했다. 워킹 푸어의 핵심이자 가장 우려되는 점이 아무리 일을 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낳는다는 점이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그 해결책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자리를 갖는 것 뿐 아니라 좋은 일자리, 즉 고용 안정성 및 근로 조건 등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일텐데, 언감생심. 최저임금일망정 공정하게 받기조차 힘든 것이 현실이다.

 

   오늘날 워킹 푸어가 급속하게 늘어난 것은 비정규직이 등장한 때문이다. 실업자와 근로자 사에 비정규직이라는 어중간한 일자리 개념이 생겨나면서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이동했거나, 구직자들이 비정규직으로 시작하고, 한번 비정규직에 속하면 정규직으로 이동하지 못하게 되면서 근로조건은 끊임없이 열악해지고 있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열악한 근무환경을 알면서도 어쩔수없이 비정규직을 택하다보니, 인생조차 비정규직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워킹 푸어가 비정규직으로 들린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말이 있다. 워킹 푸어는 엄연히 이 땅에서 같은 공기를 나눠 마시는 사람들, 우리의 형제이자 이웃이다. 저자는 독자들을 향해 워킹 푸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스스로 수치심을 가져야 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느껴 마땅한 감정은 수치심이다. 다른 사람들이 정당한 임금을 못 받으며 수고한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살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여자가 배를 곯는 덕분에 당신이 더 싸고 편리하게 먹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여자가 먹고살기에도 형편없이 모자란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면 그 여자는 당신을 위해 지대한 희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동의에 의해 ‘워킹 푸어‘라고 불리는 그들은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박애주의자들이다.”

 

   갓 뽑아진 커피를 받던 배부른 아저씨 손님이 잘못해 커피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알바생인 듯한 청년은 순간 당황해 하는 손님에게 예의 함지박한 미소를 띠고 “죄송합니다, 손님. 얼른 다시 뽑아드리겠습니다.” 하며 고개를 숙였다. 배부른 아저씨는 사과 한마디 없이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온전한 커피를 가져갔고, 알바 청년은 커피를 빨리 닦아내지 않으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듯 대걸레를 들고 부지런히 젖은 바닥을 닦아내고 있었다.

   나는 정장 양복을 입어도, 의사 가운을 입어도, 법관 옷을 입어도 어울릴 것 같은 저 믿음직한 청년이 대걸레질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또 다시 궁금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묻지 못했다. 웃는 미소 뒤에 숨은 그의 속마음을 충분히 미루어짐작할 것 같아서였다. 왜 모르겠는가, 나도 지금 워킹 푸어인데...

 


노동의 배신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출판사
부키 | 2012-06-08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긍정의 배신』의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 푸어 생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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