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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모음 - Readingworks/경제마인드

[책리뷰]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도덕성을 잊은 시장사회를 경계하라

by Richboy 2012. 7. 18.

 

 

 

 

도덕성을 잊은 시장사회를 경계하라 

 

   지난 6월 1일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 열린 행사에 1만 5천명의 군중이 운집했다. 한 달 전 방한했던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콘서트만큼이나 열기가 뜨거웠다는 평가를 받은 이 행사는 다름 아닌 ‘마이클 샌델의 출판 강연회’였다. 2010년 10월 출간되어 사회과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120만부나 팔린 ‘정의란 무엇인가’는 한국사회 지성계에 새로운 담론을 제공하며 ‘정의’에 대한 사색에 몰입케 했던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정치철학)는 이번에는 지난 수십 년 간 가족, 교육, 환경과 같은 우리의 전통적 가치까지 깊숙이 파고든 시장지상주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우리 삶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과연 무엇인지 고민했다. 원제목 역시 ’WHAT MONEY CAN'T BUY이다. 

 

 

교도소 감방 업그레이드 - 1박에 82 달러

 

나홀로 운전자가 러시아워에 카풀차로를 이용하기 - 8달러

 

인도 여성의 대리모 서비스 - 6,250 달러

 

미국으로 이민하는 권리 - 50만 달러

 

대기에 탄소를 배출할 권리 - 1톤에 13 유로 

 

 

   세상에는 엄연히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오늘날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거의 무엇이든 사고팔 수 있는 시대, 원인은 시장지상주의에 있다. 시장 메커니즘을 수용하는 국가에서는 시장가치가 사회생활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점점 커져서 돈이면 무엇이든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고 시장지상주의는 시장이 과연 위험을 효율적으로 분산하는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시장지상주의의 핵심에 담긴 도덕적 결점이 탐욕이었다며 금융산업종사자들의 금욕과 책임감을 비판했다. 하지만 샌델 교수는 이번 금융위기에는 탐욕보다 더 큰 원인이 있는데, 바로 시장과 시장가치가 원래는 속하지 않았던 삶의 영역까지 팽창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즉 우리 사회가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사회에서 시장가치 즉, 돈이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가 일종의 생활방식이 되어버린 ‘시장사회’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 해답은 없다. 하지만 시장사회의 면면과 현실을 살펴보고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공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으로 가치는 충분하다.

 

 

 

 

 

   우선 살펴본 것은 ‘선착순’이다. 미국의 유나이티드 항공은 덴버를 출발해 보스턴으로 가는 승객이 39달러를 추가로 지불하면 보안검색대 통과와 탑승에 우선권을 부여한다. 유니버셜 스튜디오 할리우드 입장권 중에는 149 달러짜리 ‘줄의 맨 앞으로 가는 허가증’도 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일인당 45달러를 지불하면 줄서기에 상관없이 보안검색대와 엘리베이터를 먼저 이용할 수 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미국에서 실행 중이다. 돈만 있으면 ‘새치기’도 합법이 된다는 소리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미국이 시장사회이기 때문이다. 가격체계가 수요와 공급을 조절한다고 믿는 경제학자의 눈에 ‘줄서기’는 낭비이자 비효율적 행동 그 자체이다. 그래서 그들은 공항, 놀이공원, 또는 고속도로에서 돈을 낸다면 시간을 벌 수 있도록 했다. 줄서기 윤리가 돈에 흐려진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암표 거래도 합법이고, 영화 <라이터를 켜라>에서 백수였던 주인공 김승우처럼 고소득직업인을 대신해 일당을 받고 예비군 훈련을 뛰어줘도 괜찮아야 한다.  

 

   이 뿐만 아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을 시장논리로 설명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사회문제를 금전적 인센티브로 해결하려는 시도들이다. 미국의 어느 자선단체는 마약 중독 여성이 불임시술을 받거나 장기간 피임하면 현금 300달러를 지급한다. 학교는 시험에 합격하는 학생에게 용돈으로 100달러 짜리 지폐를 주고, 영국 국립보권원은 다이어트를 해서 살을 빼도 최대 425 파운드의 돈을 줬다(프로그램 이름이 ‘파운드에는 파운드로Pounds for Pounds’다).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이는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 이는 불공정한 보상이요, 어쩌면 납세자가 낸 세금을 이런 곳에 쓰는 것은 낭비다.

   한편 벌금과 요금의 차이는 뭘까? 벌금은 도덕적으로 승인 받지 못하는 행동에 대한 비용이고, 요금은 도덕적 판단이 배제된 단순한 가격일 것이다. 이릍 테면, 도서관 연체료는 벌금이고, DVD대여점의 연체료는 요금이다. 하지만 부자와 부국(富國)은 이것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부자가 장애인 주차공간에 주차하고 벌금을 주차요금으로 여긴다면 어떤가?

 

   지하철 무임승차를 밥먹듯하다가 한 번 들켜서 35배를 물면서 ‘재수 없이 걸려서’ 그 동안 밀린 요금을 낸다고 투덜대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무엇이 부족한가? 문제를 확장시켜서 온실가스와 탄소배출권을 사고파는 일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뭔가 부족하다면 과연 무엇일까? 바로 도덕성의 결여다.

 

 

   저자는 경제학자들이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려면 어떤 활동에 가격을 매기는 것이 비시장 규범 즉, 도덕을 밀어내는 것인지 아닌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려면 주어진 활동에 담긴 도덕적 이해를 살펴봐야 하고, 재정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불이익을 안김으로써 해당활동을 상품화하면 그 같은 도덕적 이해를 밀어낼지도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어떤 경우라도 우리가 도덕적 영역 안에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재정적 인센티브에 의존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려면, 이러한 인센티브가 보호해야 할 태도와 규범을 변질시키는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려면, 시장논리가 도덕논리로 되어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결국 ‘도덕적으로 거래’해야 한다.”

 

   그 밖에 샌델 교수는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신장(콩팥), 성(性), 학위 등 돈으로 사고팔 때 분명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지는 이유, 전통적으로 금기시되어온 영역인 삶과 죽음까지도 사고파는 시장 등 수많은 사례를 통한 치밀한 논증으로 돈으로 사고팔 때 원래의 가치와 목적이 훼손되는 재화의 경우에는 시장에 맡기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책을 덮을 즈음이 되면 ’뇌물, 주지도 받지도 맙시다’라는 표어처럼 독자 스스로 ‘돈으로 사서도 팔아서도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책에 언급되는 시장지상주의 미국의 다양한 사례들은 충격적일 만큼 인상적이다. 특히 유가족에게 재정적 안정망을 제공하고자 마련된 생명보험이 투기 목적으로 악용되어 청소부 보험이라는 이름으로 증서가 매매되고, 생명을 담보로 자금을 당겨쓰는 말기환금 시장의 실태, 유명인사의 사망 시기를 추측하는 게임인 데스풀 등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실재한다는 것에 경악했다. 저자는 시장의 무한한 확장에 도덕성을 잃어가며 속절없이 당할 것이 아니라 공적 토론을 통해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알았다’기 보다는 ‘실컷 고민했다’고 대답하는 것이 더 편하다. 샌델 교수 특유의 교수법으로 서술된 토론 형식의 문장을 따라 마음껏 고민해 보는 이 시간 역시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이 될 것이다.

 

 

 

 

 

<이 리뷰는 코오롱 그룹 사보 7월호에 실린 칼럼입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저자
마이클 샌델 지음
출판사
와이즈베리 | 2012-04-24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시장은 과연 항상 옳을까? 모든 것을 사고파는 사회를 ‘마이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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