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병두 편집장을 만난 건 내게 행운이었다.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인데 그 속은 '내 아저씨 뻘'되는 응큼한 사람, 우연히 만난 술자리에서 두세 순배의 술이 돌고 나는 그와 책을 짓기로 결심했다. 지음知音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그를 통해 나는 체감했다. 그와의 대화가 즐거워 나는 귀가를 잊고 종로통에서 밤을 새우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책을 내기로 약속하고 근 2년 동안 수십 차례를 만나면 식사를 하고 술을 마셨다. 어쩌면 나는 책짓기보다 친구가 고팠는지도 모르겠다.
원고독촉 대신 표정좋은 넉넉한 웃음으로 '이번 밥은 얼마나 맛있을라고 이리 뜸이 길답니까?' 되물어주던 그가 있어 <책 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에게>가 나올 수 있었다. 글짓기가 인간의 영역이라면 편집은 신의 영역이라 했던 스티븐 킹의 말에 나는 백 번 공감한다.
지난 주 나는 그를 만나 1시간 짜리 짧은(?) 대화만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또 다른 책짓기에 대한 약속을 했다. 또 몇 년이 걸릴까 모르겠지만 그와 다시 어울릴 생각에 흥이 절로 난다. 절친한 친구만큼이나 반갑고 좋은 편집자를 만난 나는 복많은 사람이다.
최고의 작가를 만나다 - 지식공간 편집팀장 권병두
2년 된 출판사와, 무명에 가까운 저자의 만남은 별로 흥미로운 이슈는 아니다. 누구나 예상하듯 이 만남은 의욕 넘친 시도가 될 가능성이 높고, 아쉬움만 남긴 채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농후했다. 통계가 옳다면 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통계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었다.
세상과 오랫동안 담 쌓고 지내온 나는 세상이 두려웠다. 직장은 낯설고 사람들은 어색했다. 특히 차를 마시며 사람을 만나는 일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은 술자리에서 저자들을 만났는데 김은섭 선생과도 그렇게 약속을 잡았다.
두 번째 술자리로 기억한다. 우리는 아직 속마음을 털어놓을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나는 원고 이야기로 화제를 제한하며 거리를 두었지만 그는, 신경질적이고 빼빼 마른 나와 달리 통나무처럼 우직한 몸매만큼이나 적극적이었다. 그날 우리는 퇴근 시간보다 조금 일찍 광화문의 닭집으로 향했다. 술집은 텅 비어 있었다. 우리는 맥주잔을 계속 들이켰고, 그 사이 해는 뉘엿뉘엿 졌다. 술이 얼큰히 달아올랐다.
아마 내 마음이 허했던 모양이다. 난데없이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독한지 아십니까?’ 그리고 돈 때문에 병원 가자는 말도 못하고 끝내 쓰러진 아버지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떠들었다. 묵묵히 듣던 김 선생의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그가 말문을 열었다.
“인디언 어머니 이야기 아세요?”
들을 생각은 없었다. 이미 나는 취했고 답답한 속을 풀어놓는 게 목적이었다. 세상을 원망하고 싶었고 고개를 끄덕여줄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다. 하지만 김 선생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역시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
“어느 인디언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어요. 그런데 죽을병에 걸렸어요. 의사를 찾아갔더니 어머니의 심장이 필요하대요. 아들이 고민하다가 어머니에게 부탁했지요. 심장이 필요하다고. 아들이 금방 죽을 것 같으니까 어머니가 심장을 내주었어요. 심장을 들고 여자를 구하러 헐레벌떡 뛰어가는데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어요. 그런데 그 심장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나는 이미 다 들었다. 김 선생이 말했다.
“아들아, 어디 다친 데는 없니.”
나는 그 문장의 의미보다, 그가 있는 힘을 다해 나를 위로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의 떨리는 목소리가 내 어깨를 감싸고 있음을 느꼈다. 그가 붉게 물든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술기운이 오른 우리는 부끄러움도 모른 채 눈물을 흘리며 잔을 부딪쳤다가 서로 안주를 먹여주었다가 다시 울고 웃었다. 그리고 기억도 없이 헤어졌다.
……그때 우리 출판사는 불과 2년 차의 출판사였지만 나는 우리가 최고의 작자를 만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김 선생은 비록 무명의 작가에 가까웠지만 나는 그가 독자와 함께 울 수 있는 사람임을 알았다. 그는 나의 최고의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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