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호텔』우리 시대 의료의 본질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너무도 중요한 책. 라구나 혼다에서의 생활에 스며들어 있는 정신적 풍요로움, 그리고 그곳의 환자와 직원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강한 공동체 정신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써 내려갔다. …… 누구나 읽어보아야 할 필독서다.
-올리버 색스, 의학박사,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저자
자본과 경제효율이 가장 중요시되는 미국 시자주의 의료의 홍수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인간적인 지역공공병원 라구나 혼다의 이야기는 한국이 맞닥뜨리고 있는 의료민영화 문제에 대해 귀중한 통찰을 제공해준다. 그러나 이 책은 딱딱한 교과서도, 대체의학을 주장하는 책도 아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기술보다 인간이 중요하다는 의료의 ‘오래된 미래’의 모습을 치매, 뇌졸중 등 다양한 환자와 최신 의료지식을 갖춘 의료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전한다.
-우석균, 의사,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신의 호텔》은 걸작이다. ……수세기에 걸친 균형감 있는 관점을 동원해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인상적으로 의료 문제의 핵심을 파고든다. -《뉴욕 타임스》
의학적으로 정확하고, 심리학적으로 분별력 있으며, 실용적이면서도 영적이고, 따뜻하면서도 재미있는 일화들이 가득한 책. -《북리스트》
이 책은 의사, 간호사, 병원 행정관리자, 정책입안자 들이 멈춰 서서 그들의 핵심적인 믿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도록 만드는 도전적인 책이다.-《헬스 어페어》
신선한 방식으로 의학의 현재와 과거 사이에 가교를 놓아주는 책이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빅토리아 스위트의 따뜻한 일화들이 빛을 발한다. -《커커스 리뷰》
만성적으로 아픈 환자들, 노후한 빌딩, 끝없는 예산 재앙을 짊어지고 운영되는 이 병원은 역설적이게도 신의 선물이다. 이 아름답고 독특한 책에서 그녀는 관대하게 자신의 재능을 나눠주고 있다.
-《보스턴 글로브》
의학은 여전히 근본적으로 신선한 소명이라는 진실을 보여줌으로써, E고자들에게 위안과 영감을 불어넣는다. -제롬 그루프먼,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 《닥터스 싱킹》 저자
이 책은 의학과 의료체계, 병원과 의사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한 에세이이다. 병원이 변화되고 진통을 겪는 일련의 과정과, 이에 맞서 병원의 인간 중심적인 환경과 정신을 지켜내려는 의료진들을 분투를 생생하게 기록한다. 그럼으로써 의사, 간호사, 병원행정관리자, 정책 입안자뿐만 아니라, 언제든 환자 혹은 그 가족이 될 수도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의학과 의료제도의 문제에서 가장 중심에 둬야 할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오래된 지혜를 일깨운다.
첨단 의료기기 하나 없는 라구나 혼다 병원은
어떻게 의사와 환자가 함께 치유되는 ‘신의 호텔’이 되었을까?
의료민영화 문제가 본격화되며 보건의료계가 술렁이고 있다. 의사협회는 총파업과 휴진을 선언하며 정부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국민들은 정부가 내세우는 의료민영화의 청사진과 의사협회에서 주장하는 파국적 결말을 두고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선뜻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런 시점에서 의학과 의료체계, 병원과 의사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한 에세이 《신의 호텔》이 발간되어 의료민영화 문제에 대해 귀중한 통찰을 제시해주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지역 공공병원 라구나 혼다. 이곳은 17세기 아픈 이들을 대가 없이 돌보던‘파리시립병원(일명 신의 호텔, H?tel Dieu)’의 후손격 병원으로, 미국 최후의 빈민구호소다. 이곳에는 노숙자, 극빈자 등 사회소외계층을 비롯해 알코올중독자, 치매 ? 뇌졸중을 앓는 노인 등 까다로운 만성질환자들이 몰려든다. MRI 하나 없는 노후한 시설에 매년 예산부족과 씨름하고 있지만, 이곳은 사회도 다른 여느 병원도 포기한 환자들이 서서히 회복되는 곳이며, 의료진의 만족도와 근속률이 그 어느 병원보다도 높은 곳으로, 의사들과 환자들에게 진짜 ‘신의 호텔’처럼 기능한다.
이 책은 단 두 달만 일하기로 마음먹고 라구나 혼다에 왔다가 이곳만의 인간 중심적 분위기, 충분한 시간을 들여 환자의 몸과 마음과 환경까지 돌보는 ‘느린 의학’에 매료돼 20여 년을 이곳에서 헌신한 어느 내과의사의 회고록이다.
뇌졸중으로 모든 기억을 잃고 홀로 남겨진 교수, 정치문제로 망명길에 올랐다가 이국땅에서 암투병을 하는 경제학자, 자신을 자판기로 생각하고 동전을 집어먹다 실려온 정신질환 노숙자 등등. 저자는 라구나 혼다에서 다양한 인생사연과 병력을 지닌 환자들을 진료하며 겪은 놀라운 일화들을 마치 한편의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엮어낸다. 한편 현대의학과 보건의료체계가 간과하고 있는 의학과 병원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늘 고민하던 의학도로서, 저자는 심도 있게 의학의 역사를 공부하며 그 진실을 풀어나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라구나 혼다만이 가지고 있는 저력, 즉 환자와 의사를 만족시키고 궁극적으로, 치유하게 하는 ‘인간 중심적 진료환경’ ‘느린 의학’은 12세기 근대이전의학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라구나 혼다에도 결국 자본 및 경제효율의 압력이 들이닥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책입안자, 경제학자, 의료컨설팅회사의 관점으로 대대적으로 변모하게 된다. 병원은 시간당 생산효율 준수, 과학적 경영관리와 첨단시설 설립 등으로 21세기 보건의료기준을 채워간다. 반면 이런 변화를 거치는 동안 의료진은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환자들은 더 빈번히 사고에 노출되고 치유는 더뎌진다.
이 책은 병원이 변화되고 진통을 겪는 일련의 과정과, 이에 맞서 병원의 인간 중심적인 환경과 정신을 지켜내려는 의료진들을 분투를 생생하게 기록한다. 그럼으로써 의사, 간호사, 병원행정관리자, 정책 입안자뿐만 아니라, 언제든 환자 혹은 그 가족이 될 수도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의학과 의료제도의 문제에서 가장 중심에 둬야 할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오래된 지혜를 일깨워준다.
“의료의 가치를 과연 엑셀 스프레드시트 상에서 보여줄 수 있을까?”
비효율성에서 숨겨진 라구나 혼다만의 ‘인간적 효율성’
요즘 병원에서 찾기 힘든 라구나 혼다만 중 대표적인 속성은 바로, 병원의 인간적 분위기, 풍요로운 시간, 지극히 사소한 것에 대한 배려다.
라구나 혼다는 무척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머리맡에 큰 창문이 있는 환자의 침상 30여 개가 일렬로 늘어 선 개방형병동 한켠에서 수간호사가 24시간 이들을 관찰하고 돌본다(19세기 간호사 나이팅게일의 권고에 따른 방식이다). 온실과 과수원과 동물농장을 환자들이 직접 돌보고, 에이즈병동에는 환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크는 암탉이 있다. 교회예배당에서는 병동의 모든 의료진과 환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환자들의 결혼식이 열리고, 넓은 홀에서는 환자들이 포커를 치고 얘기를 나누는 등 인간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무기력한 환자들이 수용된 장소가 아니라, 각 병동이 하나의 마을처럼 기능하며 특유의 활력과 공동체정신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다.
주요 기기라곤 엑스레이뿐이지만, 라구나 혼다에는 요즘 병원에서도 보기 힘든 강력한 무기가 있다. 바로 ‘시간’이다. 수간호사들이 하루 종일 환자들 곁을 지키고, 의사들은 매일같이 환자의 침상 옆에서 환자를 오랜 시간 면밀히 관찰하고 얘기를 나눈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이지만, 이런 방식으로 정확한 진단과 처방의 확률은 높아지고, 오진을 비롯해 불필요한 약물과 시술, 임상검사는 대폭 줄어든다. 이는 만성 ? 복합질환자들이 흔히 겪는 약물오남용이나 그로 인한 합병증까지 예방해준다. 그리고 여기에서 절약된 시간과 비용은 결국 환자를 위한 양질의 환경을 만드는 데 투자됨으로써 병동에는 선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라구나 혼다의 또 다른 저력 중 하나는 ‘작지만 중요한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환자의 삶의 질을 개선해나가는 노력이다. 라구나 혼다에 정착한 첫해, 저자는 눈 뒤쪽에서 암덩어리가 자라나 눈 밖까지 뚫고나온 심각한 말기암 환자를 지켜본다. 그러다 어느 날 용기를 내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묻는다. 환자의 대답은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사실은 여기 음식이 좀 맘에 안 들어요. ……혹시 식단을 좀 바꿀 수 없을까요? 그리고 한 가지 더요. 안과의사 선생님을 뵐 수 없을까요? 안경이 새로 필요해서요.”
그동안 과학적인 의료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던 저자는, 이 일을 계기로 작고 사소해 보이지만 환자들에겐 중요한 일상의 것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런 작은 것들까지 챙기고 개선시켜주는 인간적인 진료 분위기가 라구나 혼다에 바이러스처럼 널리 퍼져 있음을 목격한다. 일례로, 한 의사는 의료보호기관에 신청한 특수신발이 나오지 않아 오랫동안 퇴원하지 못하고 있는 재활환자를 발견하고는 그길로 마트로 달려가 신발 한 켤레를 자비로 사와서 환자에게 신겨주고 퇴원시킨다.
한편 HMO(건강관리기구, 미국의 민간의료보험 제도)와 보험회사의 감시망에서 빗겨난 이곳에도 결국 자본화와 산업화의 물결이 덮친다. ‘충분한 시간과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던 진료환경은 ‘시간당 생산성과 효율’을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한다. 정책입안자, 의료컨설팅회사, 경제학자, 보건의료행정관료 등의 눈에 이 병원은 비효율투성이다. 수간호사 수는 다른 병원에 비해 곱절로 많고, 개방병동은 환자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보고체계는 허술하며, 단기 치료 및 단기 퇴원환자가 드물어 생산성은 떨어진다.
이런 평가 하에 과학적 경영관리체계를 가동시켜 라구나 혼다를 경쟁력 있는 헬스케어시설로 만들려는 일련의 변화가 일어난다. 실무를 담당하는 수간호사와 의사들은 줄어들고, 남은 의료진은 상부에 보고할 파워포인트 혹은 컴퓨터문서 작성 등 행정업무에 더 매달리게 되었으며, 병원은 경영을 튼튼하게 할 행정인력들로 채워진다. 그러나 환자들은 더 아파지고 침대 낙상 등의 사고 및 욕창 발병이 더 증가했으며, 의료진은 스트레스와 병가, 부상장애가 늘고 은퇴시기가 빨라지기 시작한다. 결국 의도했던 비용과 효율 추구가 병원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행정당국의 제재는 라구나 혼다 특유의 정신적 풍요로움도 앗아간다. 라구나 혼다의 간호사들은 환자들을 한눈에 지켜볼 수 있어서, 환자들은 오랜 병동생활의 외로움을 덜고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어서 ‘개방형병동’을 더 선호한다. 그러나 법무부는 환자 사생활보호 권리를 들어 21세기 기준에 맞게 병실을 새로 지을 것을 권고한다. 에이즈병동을 뛰어놀며 환자들에게 생명의 신비와 활기를 전하던 암탉은 ‘비위생적’이라는 의료관리국의 판단 하에 처분된다. 환자에게 직접 신발을 사주고 퇴원조치를 해 보건의료당국에 수천 달러를 절약해준 의사의 행동 또한 경제학자나 의료컨설팅 회사의 입장에선 그저 고급인력의 허드렛일 혹은 시간낭비로 치부된다.
이 책은 라구나 혼다의 개선조치 과정과 이를 둘러싼 의료진들의 분투를 생생하게 기록한다. 그리고 경제학자의 시각이나 엑셀 스프레드시트 상에서는 지극히 ‘비효율적’인 라구나 혼다의 많은 것들이 결국 놀라운 치유와 정신적 풍요로움을 가져온 ‘역설적 효율’이자이자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효율’임을 보여준다.
“의사는 환자가 가진 초록의 생명력을 돌보는 정원사다.”
시간의 손길을 거치는 ‘느린 의학’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
저자는 내과전문의이자, 역사학 박사학위 소유자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현대의학으로는 풀리지 않는 의학적 통찰이나 지혜를 찾기 위해 저자가 오랫동안 의학사를 공부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특히 근대이전의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의학자이자 12세기 독일 빙엔의 수녀인 힐데가르트(Hildegard)의 의학을 심도 있게 연구한다. 힐데가르트는 동식물이 성장하고, 자손을 번식하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힘을, ‘초록의 생명력(viriditas, 비리디타스)’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환자를 계절과 상황에 따라 가꾸고 돌보아야 할 정원으로, 의사는 정원을 가꾸는 원예사로 보는 관점의 의학론을 펼친다. 힐데가르트 의학의 핵심은 환자를 오랫동안 환자를 관찰하고 그에 맞는 다양한 치료법을 동원하며, 환자의 ‘초록의 생명력’이 활성화되도록 돕는 것이다.
힐데가르트 의학 연구는 단절된 과거 의학을 재조명하는 과정이자, 라구나 혼다만이 가진 저력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현대의학은 환자를 수리가 필요한 기계로 보는 관점이지만, 라구나 혼다는 환자를 정원처럼 정성껏 돌보는 근대이전의학의 관점까지 수용하였고, 결국 ‘의학, 인간성, 시간과 환경’의 접점을 찾아내 놀라운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라구나 혼다에는 근대이전의학 속담에 등장하는 ‘의사 아닌 의사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제대로 기능한다. 바로, 잘 먹기 선생(Dr. Diet), 잘 쉬기 선생(Dr. Quiet), 잘 웃기 선생(Dr. Merryman)이다. 의사 수에 맞먹는 많은 영양사들이 정성껏 짠 맛있고 영양가 풍부한 식단(비록 예산 문제로 시정되긴 했지만), 햇볕이 충분히 들어오며 수간호사가 깨끗하고 쾌적하게 관리하는 침상과 병동, 국경일에는 칠면조와 돼지 등 동물들이 선글라스와 모자로 멋을 내고 침상에 누운 환자들을 방문하는 등 명랑한 분위기 등, 병동 곳곳에 이 ‘세 의사’가 함께한다.
라구나 혼다에서의 진료 경험과 의학사 연구 과정에서 찾아낸 저자의 통찰은 현대 의료에 큰 시사점을 제공한다. 특히 급격한 고령화로 만성질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첨단기술을 이용한 단 한 번의 검사와 진료가 아니다. 환자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돌보는 과정에서 정확한 진단을 유도하고, 최소한의 처방과 시술로 환자 고유의 생명력을 돌보고, 즐겁고 쾌적한 환경, 적절한 운동과 영양가 있는 식단 등으로 생활습관과 환경자체를 개선하는 일련의 노력들이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통합적, 장기적 치료는 결국 환자와 환자 간에, 그리고 환자와 의료진 간에 ‘인간적인’ 소통과 관찰, 유대감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런 인간적인 진료환경의 토대를 만드는 것은 환자에게도 의사에게도 ‘넉넉한 시간’임을 역설한다.
의사, 환자, 병원을 함께 살리는 해결책은 없을까?
의학 및 보건의료 역사를 넘나들며 대안을 찾는 한 의사의 분투
그러나 산업화, 자본화된 현대 보건의료 체제에서 시간은 곧 ‘돈’이다. 어느 병원도 자금과 경제효율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이런 문제는 라구나 혼다를 뒤흔드는 개선조치로 이어진다. 저자는 이런 변화에서 병동의 심장과 영혼으로 존재하는 인물들, 즉 ‘의료진, 환자와 그 가족’의 관점이 배제되고, 정책입안자, 경제학자, 의료컨설팅회사라는 ‘외부시선’에 의해 추진되는 것이 큰 문제점임을 지적한다. 따라서 최신 약물과 검사, 기계에는 아낌없이 자금이 투자되지만, ‘좋은 식단, 쾌적함, 충분한 시간’ 등 인간적 환경에 대한 투자는 낭비로 취급된다.
이 책에서는 좋은 취지로 발효되었지만, 외부의 시각과 의료계 내부의 시각이 부조화되어 결국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온 정책도 언급된다. 1980년대, 미국에서는 ‘환자가 지역사회에서 생활하고 보호받을 권리 보장 및 비용절감’이라는 취지하에 국립정신병원들이 폐쇄되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재정위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왔다. 외래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사용하기로 한 예산은 자꾸만 깎이고 축소되더니 결국에는 아예 삭제돼버렸다. 사회복귀시설 중 상당수가 문을 닫았고, 보호시설에 수용돼 있던 환자들은 약도, 관리도, 쉼터도 없이 거리로 나앉게 되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자신의 병을 코카인이나 헤로인 혹은 알코올로 해결하려다 결국 온갖 합병증만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다.
라구나 혼다에는 이런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는 환자들이 많다. 자신을 자판기로 생각하고 동전을 집어 삼키며 공원에서 노숙하는 정신질환자 터너 씨도 그 예다. 아연중독으로 심각한 빈혈 및 섭식장애가 찾아와 생명이 위독했지만, 라구나 혼다에서 세심한 간호와 치료를 받은 덕분에 그는 간신힌 건강을 되찾는다. 게다가 정신도 멀쩡해져서 퇴소하여 독립적으로 살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 이는 항정신성 약물을 복용한 일시적 결과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1980년대에 바뀐 의료방침은 그의 위험한 주장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설사 미쳤더라도 약물치료를 거부할 당시에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위험이 될 정도로 심하게 미쳐 있지만 않다면, 심지어는 그가 더 이상 동전을 먹지 않는 이유가 법원의 명령에 의해 항정신성 약물을 복용한 덕분인 경우에라도, 그는 정신과 약물치료를 거부할 권리가 있었다.” 결국 터너 씨는 의사들의 만류와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뿌리치고 거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 주 후 공원 빈터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저자는 예방할 수 있었던 이 죽음을 통해 이상적 제도와 의료의 실제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일의 필요성을 고민하는데, 이는 의료제도 큰 틀의 변화를 목도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큰 시사점을 제공한다.
의학사 연구를 위해 유럽에서 체류하는 기간 동안, 저자는 프랑스와 스위스의 병원 및 의료체계를 직접 관찰하고 경험할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여기에 자극받아 숱하게 봐왔던 만성 ? 복합질환자 의료의 문제점들을 개선하고 환자와 의료진과 병동은 물론, 자금흐름까지 개선시킬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불필요한 약물과 치료, 인력 투여비용을 줄여 절약한 돈과 시간을 좋은 음식과 환경에 투자하고, 환자 몸이라는 생태계, 병동이라는 생태계 등 모든 겹의 생태의 안녕이 고려하는 병원, 즉 생태의료병동이 바로 그것이다.
“보통 내 환자들은 처음 들어올 때는 15~20가지 정도의 약물을 복용하는데, 나중에는 보통 6~7가지 정도로 줄어든다. 그 자체로는 아무리 값싼 약이라 해도 사실 따지고 보면 비싸다. 부작용에 따르는 비용이 들 뿐 아니라, 임상검사, 역효과 등으로 인한 비용이 추가되고, 약사, 의사, 간호사가 약물을 처방하고, 준비하고, 복용시키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다 따지면 각각의 약물에 하루 6~7달러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 ……라구나 혼다의 느린 의학은 효율적이라는 보건의료보다 적어도 하루에 70달러 정도 더 효율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 책은 의학적으로 흥미로운 임상사례와 휴머니즘이 가득한 병동의 일화들, 의학과 의료의 본질을 찾아가는 역사연구, 그리고 보건의료계 최전방의 문제들을 유려한 문체의 소설처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의료계 종사자는 물론, 정책입안자, 환자와 그 가족까지 우리 모두가 생각해봐야 할 의료의 진정한 가치와 방향에 대해 길잡이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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