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사용한전기압력밥솥이 수명을 다했다.
밥솥의 고장은 여느 가전제품과는 다른 마음이 든다. 우선 앞에서처럼 사용했다고 말하기 보다는 '함께 했다'고 말하고 싶을 만큼 정이 들었다. 이유도 명백하다.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을 식구(食口)라 했던가. 압력밥솥은 식구를 영속하게 한 매개이자 구심점이었다.
비록 쌀을 씻고, 밥물을 재고, 스위치를 누른 사람은 나였지만 '잠시 후면 당연히 따뜻하고 맛난 밥을 만들어 주겠지'하는 내 굳은 믿음을 오랫동안 묵묵히 지켜준 것이 압력밥솥이었다. 내 배를 불리고, 사랑하는 내 가족의 배를 불려준 정말 고마운, 가족같은 기기가 압력밥솥이었다.
어제 마지막으로 맹글어낸 밥은 밥물을 충분히 쟀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딱딱함을 느낄 만큼의 된밥을 지어냈다. 하지만 실망감보다 안타까움이 앞섰다(기계 앞에서 뭐하는 짓이냐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이다). 그 밥을 한입 한입 입 떠먹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기계든 '생로병사'를 겪는구나 하는 생각, 기계일망정 내가 살아나간 세월을 함께 했던 정(情) 비슷한 무엇이 생기는구나 하는 생각들이었다.
새로 주문한 밥솥이 오늘 도착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더욱 훌륭한 성능으로 더 맛난 밥을 지어주리라. 하지만 낯선 이밥솥에 익숙해져 아무렇지 않을 때까지는 헌밥솥에 대한 생각을 계속될 것 같다. 세상 모든 것의 만남과 헤어짐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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