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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ome place../Richboy, 책방을 뒤지다!

추석 연휴를 즐겁게 해 줄 금주의 추천 인문 교양서!

by Richboy 2010. 9. 18.

 

 시대와 인간을 통찰하는 날카로운 시선

'우상 파괴자', '반反휴머니즘의 기수', '염세주의자', 서구 계몽주의 유산에 노골적인 불신을 드러내고 있는 저자 존 그레이 앞에 늘 따라 붙는 수식어다. 또한 존 그레이는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학술적 경력을 막 쌓아 나가던 1970년대 중반, 그는 하이에크의 자유주의에 경도되어 대처 정부의 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데 앞장선다. 그러다가 1990년대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으로 돌아서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다. 신자유주의 이론가에서 비판가로 급격한 방향 선회를 하게 된 배경과 이유는 전 세계 14개 언어로 번역된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환상False Dawn』(1998/1999)에서 엿볼 수 있다. 신노동당과의 동거는 토니 블레어 정부가 이라크 침공을 결정하기 전까지 계속된다. 이후 현실 정치 운동과 분명한 선을 긋고,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과 반反휴머니즘에 천착하는 독자적인 저술 활동에 매진한다.
우에서 좌로, 그리고 급진적 생태주의자로 사상적 이주를 감행하면서 그의 저술 활동도 기존의 정치 이론과 철학적 전통을 넘어서 ‘문명 비판’으로까지 확장된다. 때로는 이처럼 파격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행보 탓에 진정성을 의심받기도 하지만, 이는 부분적으로는 거대 정치 기획과 유토피아적 이상을 일관되게 비판해 온 그의 정치적․이론적 입장을 오독한 결과다. 존 그레이는 우리 시대 독창적인 사상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는 그러한 존 그레이의 관점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저서다.

인간은 '지푸라기 개'에 불과하다.

이 책의 원제인 '지푸라기 개Straw Dags'는 고대 중국인들이 제사를 지낼 때 신에게 바치기 위해 만든 희생물이다. 이 개는 제사가 끝날 때까지는 최고의 예우를 받았지만 제사가 끝나면 내팽개쳐졌다. 존 그레이는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인간의 오만과 편견이 지구를 위협하고 있으며 인간이 스스로를 자정하지 않으면 가이아(지구)가 자정 능력으로 인간을 '지푸라기 개'처럼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인간을 '지푸라기 개'로 보는 관점은 단순히 인간 종 중심주의를 공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존 그레이는 서구 문명의 핵심에 자리한 휴머니즘을 인간 종種 중심주의를 지탱하는 원천으로 보고 휴머니즘의 핵심 관념인 "진보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를 낱낱이 파헤친다. 그 과정에서 인간과 세계에 관한 우리의 편견과 고정관념 모두가 비판의 칼날을 피해 가지 못한다.

반反휴머니즘의 편에서 인간을 성찰하다

휴머니즘은 인간은 동물과 달리 주어진 본성을 초월할 수 있으며 자기 운명과 환경을 통제함으로써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존 그레이는 이러한 진보에 대한 확신이 경험적으로 증명된 바 없는, 맹목적인 종교적 구원의 교리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확실하다.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고 말한 테르툴리아누스의 비합리적 교리처럼 말이다.
지금까지 진보에 대한 신념은 과학과 철학, 종교와 도덕의 든든한 지지를 받으며 유대-기독교 전통 안에서 보존되어 왔다. 그러나 과학은 진보는 물론 진리에도 봉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학 발전으로 등장한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늘 통제를 벗어나 우리 삶을 위협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인간의 이성을 과신하는 철학 역시 마찬가지다. 존 그레이는 특히 서구의 지배적인 철학 전통에서 세계의 관찰자이자 해설자로서 인간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선사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발견한다. 기독교의 일신론은 배타적이고 절대적인 도덕 원칙을 확립해 다양한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의 가능성을 차단해 버렸다. 또한 도덕적 판단의 근거가 되는 자율성과 자유의지 역시 인간의 삶 대부분을 조건 짓는 우연과 필연 앞에서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이렇듯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바람은 인간의 삶, 더 나아가 지구 환경 자체를 위협할 뿐이며 인간의 삶 자체도 우리가 진眞, 선善, 미美라고 생각해 온 것들을 배반하는 방향으로, 습관과 임시변통에 의해 좌우될 뿐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인간은 우연한 유전적 사고의 결과 지구상에 출현하게 된 고도로 약탈적이며 파괴적인 동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인간은 '하찮은 호모 라피엔스(homo rapiens, 약탈하는 자)'일 뿐이다. 서구 철학의 지배적인 견해는 이러한 인간의 실체를 무시하고 인간은 자기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종이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기만한다. 이에 따라 인간의 탐욕은 견제 장치를 상실해 왔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주장은 간결하면서도 명확하다. "진보는 신화다. 자아는 환상이다. 자유의지는 착각이다. 도덕성은 일종의 질병이며 정의는 관습의 산물일 뿐이다." 그러니 "목적의식적 삶에서 벗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

인간과 세계에 관한 진실

존 그레이는 시공간과 장르의 구애를 받지 않고 다양한 참조틀을 활용해 글을 쓰면서도 방대한 철학적 문제제기를 짧은 문장 안에 밀도 있게 담아 내는 작가로 유명하다.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에서도 철학과 과학, 종교 경전과 문학 작품을 종횡무진하는 가운데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과 J. G. 발라드의 묵시론적 세계관, 그리고 장자의 ‘나비의 꿈’ 등에서 얻은 영감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사상의 향연을 통해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는 인간과 세계에 관한 진실을 마주하자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 책이 "겸손"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인간에 대한 신랄한 관점에 분노하며 성급하게 책을 덮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저자가 던져 준 성찰의 지점들을 다시금 곱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존 그레이는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사유의 지평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 꼭 만나 봐야 할 저자다.

 

 

 

“인문학이 당신에게 알려주는 세계를 읽는 39가지 프레임”
래리 킹과 영어 교육, 리어왕과 고령화 사회, 마리안느와 비정규직 문제, 우익 정치인 기시 노부스케와 좌익 테러리스트 에키다 유키코를 불러 일본 우경화를 논한다. 이렇게 역사와 고전과 문학속의 소재들은 지금 대한민국을 읽는 훌륭한 코드가 된다.

추천의 글
그의 가상 인터뷰는 술술 읽혔고, 재미나게 읽혔다. 나만이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이 가상의 대화가 활자를 입었던 날들을 기다렸으리라. 그 이유는 크게 둘일 것이다. 첫째는 언어의 부력(浮力). 이재현은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경쾌하게 실어 나를 줄 안다. 이런 언어실천은 재주이기도 하고 취향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 미덕일 수도 있고, 악덕일 수도 있다. 이 ‘대화’에서 그 재주와 취향은 대체로 미덕 노릇을 한 듯하다.
그의 더듬이가 향하는 쟁점들은 흔히 너무 무거워, 그의 언어가 그리 경쾌하지 않았다면 쉽게 들여다보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신세대 독자들에게도 넉넉한 소구력을 발휘할 이재현의 언어의 부력에 떠밀려 ‘대화’는 지표면의 논리적, 윤리적 구성물을 넘어서 대기권의 여러 고도를 오르내리는 미적 구성물이 되었다. 그리니까 ‘대화’의 미학을 낳은 것은 (무거운) 내용과 (가벼운) 형식 사이의 긴장 또는 어긋남이다.
둘째는 시의성. 장기 연재물의 필자는 체계의 유혹에 휘둘려 저널리즘(어원적으로 ‘나날의 기록’)의 현실구속에서 일탈하기 쉽다. 그러나 이재현은 ‘대화’를 쓰면서 자신이 성실하고 유능한 저널리스트임을 입증했다. 그가 역사와 텍스트와 현실로부터 불러낸 사람과 사물과 관념들은 너무나 다양해 설핏 난데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그가 그(것)들과 나누는 대화는 거의 어김없이 나날의 쟁점들과 밀착해 보였다.
이를 테면 그는 한국에서 미국이 지닌 의미를 캐기 위해 박정희, 밴 플리트, 박현채, 피카소, 래리 킹 등 수많은 사람을 불러냈다. (······)
이재현이 수행한 ‘대화’는 지금 이 곳의 문제를 두고 벌인 대화였다. (·····)그래서 한편의 ‘대화’를 일고 나면 그날 그가 초대한 게스트가 그 즈음의 ‘시사’를 실속 있게 체현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화’는 그러므로 골계와 기지와 반성의 언어로 쓰여진 시사연감이기도 하다. -고종석

인문학적 교양으로 한국 사회를 읽는다
래리 킹에게 영어 권력을, 리어왕에게 고령화 사회를 묻는다. 프랑스 혁명의 상징 마리안느를 불러와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하고, 우익 정치인 기시 노부스케와 좌익 테러리스트 에키다 유키코를 불러 일본 우경화를 논한다. 클라우제비츠와 핵전쟁을, 벅시와 강원랜드를, 축구공과 월드컵의 그늘을, 된장녀와 성차별을, 키케로와 인문학의 위기를 블랙홀과 사회주의를 프리모 레비와 레바논 문제를 말한다. 아부 바크르, 이시와라 간지, 밴 플리트, 여론 조사, 올더스 헉슬리, 효도르와 크로캅, 박현채, 존 도우와 전국책, 시마 과장과 20세기 소년, 시애틀 추장과 선재동자, 토머스 제퍼슨과 유스타치아, 파블로 피카소와 수전 손택 등 39가지 역사와 텍스트와 문학 속 소재들은 지금의 한국을 읽는 키워드로 거듭난다.
고전은 정치적이다. 역사 또한 정치적이다. <두더지 지식 클럽>의 고전, 역사, 문학 등의 인문학적 텍스트들은 주어진 일방적 지식이 아니라 지금 2000년대의 한국과 시대적 증후들을 읽는 상호 소통적인 텍스트로 독자들과 소통한다. 저자가 가상 인터뷰의 형식을 빌러 역사적 인물(혹은 사물)과 나누는 대화는 작가 고종석의 말대로 “나날의 쟁점들과 밀착해” 있고, 2000년대 한국을 읽는 훌륭한 “지식시사연감”의 역할을 수행한다.

세대를 잇는 젊은 언어와 사유의 계곡
그의 언어(말, 글)은 젊다. 저자 자신은 한자가 아닌 본격적인 모국어 1세대인 4.19세대와 386세대, 그리고 ‘신세대’로 불렸던 지금의 30대와 10대 사이의 언어적 계곡에 위태롭게 걸려있다고 했다. 언어는 사유이기도 하다. 인문학 텍스트와 시사를 읽는 그의 사유 또한 언어만큼 세대 사이를 오가며 자유롭다. 리어왕은 재산을 빼앗긴 고령화 사회의 노인의 한탄을 토로하고, 프랑스 공화국의 상징 마리안느는 흑인이라고 주장되고, 시마 과장과 샐러리맨의 승진 중독을, 기시 노부스케와 아베 신조 등의 일본 거물 정치인 가문과 박근혜, 박정희, 김일성, 김정일의 가문을 비교하기도 한다. <두더지 지식 클럽>은 인문학을 재미있고,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열린 텍스트이다.

 

 

 

악의 유래와 신의 정의로움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다!!!
인간 잔인성 연구의 선구자 롤프 데겐, 인간의 유전적 메커니즘 최초로 정리

세상이 온통 범죄의 소굴이 된 듯하다. 악이 활개치고 있는 우리 사회가 그렇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어린이 성폭행, 연쇄 살인 등의 무섭고 끔찍한 사건들로 시끄럽다. 세계적으로도 무차별 테러와 대량 학살 등이 고상하고 이상적으로 비쳐진 동기들에 의해 ‘오도된 선’으로서 자행되고 있다. 당장 누구라도 반사회적 인격 장애인 사이코패스 테스트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강박감에 휩싸일 지경이다.

그렇다면 대체 ‘선을 원치 않는 의지’인 악이란 무엇인가? 또 인간에게 원래 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납득할만한 동기도 없이 평화와 질서를 암흑 속으로 몰아넣는 초자연적인 힘인가. 인간의 얼굴을 한 ‘악’의 존재는 인류에게 가장 중대하고, 오랜 문제였다. 역사 과정의 여러 해석과 부단한 설명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다. 이같은 미제 해결에 있어, 현대의 과학적 성과를 최초로 정리 소개한 인물이 바로 유럽 최고 수준의 과학저널리스트 롤프 데겐(독일). 따라서 이 책은 유전적 메커니즘을 통한 악에 관한 ‘종합탐구서’이자, 이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논란 종언서’와 같다.

특히 기독교는 악(죄)의 유래를 인간 시조의 원죄 사건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그러기에 인간의 죄에 대해 신에 대적하는 ‘초자연적 존재’에 떠넘기는 일을 당연하고 마땅한 것으로 가르쳐 왔다. 그러나 창조주로서 절대 선의 주체인 신에 있어 악마라는 존재는 결코 용인할 수 없는 문제다. 또 하나의 초월적인 악의 존재를 인정할 경우 선 대 악이라는 이원론이 성립되며, 선악은 결코 초극할 수 없는 영원한 대립 개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독교의 주류인 근본주의적 관점은 전통처럼 공고하다. 경전인 성서의 단 한 글자도 틀림이 없으며, 역사와 과학적으로도 사실이라고 말한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참된 믿음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도그마가 되고만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리처드 도킨스의 책들만큼이나 폭발적인 무신론적 파괴력을 지닌다.

저자 롤프 데겐이 말하듯, 지금껏 종교를 제외한 학문에서도 우호적 입장에서 인간을 보지 않았다. 진화생물학은 약육강식을 말하고, 경제학은 영리를 추구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인)으로서의 인간을 논했다. 또 심리학은 인간을 쾌락만 탐하고 손해는 피하는 이기적인 피조물로 그렸다. 그런데도 인간은 왜 친절하고 남을 잘 도와주며 연대의식을 발휘하고 심지어 도덕적이기까지 할까? 이에 대한 최근의 과학적 연구 결과들은 일치된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하였다.

독일의 심리학 및 뇌 연구 분야의 권위자인 롤프 데겐이 인간의 잔인성 분야 최초로 관련 연구와 실험에서 발견한 학술적 지식들을 종횡무진 풀어내 악도 도덕(선)도 인간의 유전자에 내재되어 있다는 중대한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이같은 결론 도출에는 현대의 진화생물학, 행동생물학, 뇌과학, 심리학 전문가들의 연구가 동원되었다. 결론은 선 · 악을 구별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사회적 산물이나 종교적 성취가 아니라, 인간의 없앨 수 없는 본능이라는 얘기다.

이처럼 악의 유래와 신의 정의로움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하는데 공헌한 저자 롤프 데겐은 독일의 심리학과 뇌 연구, 진화 분야의 저명한 과학저널리스트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이기적 성향을 억제하고 자신의 안녕을 타인의 안녕과 연결시키는 생물학적 원동력의 매혹적인 메커니즘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며, 인간의 피할 수 없는 본능을 제대로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통해 설득과 소통의 숨겨진 비밀을 만난다
원리를 알아야 실전능력을 높일 수 있다, 2500년을 건너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득 원리를 배워라

설득과 소통은 인류의 오래된 주제다. 문명이 탄생한 이후 인류가 겪은 모든 문제들 뒤에는 설득과 소통의 갈등이 버티고 있었다. 전쟁, 정치적인 연대와 해체, 종교적인 대결, 사랑과 우정 그리고 결별과 배신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과 상황, 처지를 설득시키고 소통하기 위해 목청을 높였고, 안간힘 쓰며 괴로워했다. 정치권에서는 소통정치를 구호로 삼고, 기업에서는 소통경영을 말한다. 일상으로 돌아와 주변을 돌아보면 늦은 밤까지 소주잔을 기울이며 직장동료나 지인들에게 열변을 토하고, 내 진심을 몰라주는 상대를 붙잡고 서로 소통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설득의 원리』는 설득과 소통의 답을 찾기 위해 안간힘 쓰는 세상에게 던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답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에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일컬어지는 인류 최고의 지성 아리스토텔레스. 그는 소피스트들에게 사기 당하지 않기 위한 교본이자 이론서로 <수사학>을 정리했다. 이 책의 저자 강태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대한 글 속에 다소 느슨한 형태로 산재해 있던 설득의 여러 이론과 기법을 ‘설득의 9가지 원리’로 재구성한 뒤, 주변의 다양한 사례와 결부시켜 흥미롭게 설명하였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설득의 이론적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실제로 통하는 불변의 실용전략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2500년을 건너온 설득에 관한 불변의 진리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를 마련하라 _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효과적인 설득의 기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그는 설득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자신의 주장을 근거를 통해 입증하는 것을 들고 있다. 근거가 수반된 주장을 접할 때, 사람들은 그 주장이 진실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말의 기술을 동원하여 제시할 수 있는 세 가지 근거로는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가 있다.
먼저 에토스는 품성이 좋은 사람으로 보임으로써 말의 설득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매우 강력한 설득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을 한 번 신뢰하기 시작하면 말하는 사람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파토스는 듣는 사람의 마음에 호소하는 것으로, 듣는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근거를 통해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결혼식을 진행하는 주례가 하객들의 기뻐하는 마음을 반영하여 축하하는 메시지를 펼칠 때, 듣는 사람들은 쉽게 주례의 주례사에 공감하게 된다. 그러나 말하는 사람이 청중의 감정을 반영하기보다 조작할 경우, 청중은 기쁨, 슬픔, 사랑, 미움과 같은 정서로 덮여서 합리적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기술에 천착한 이들이 소피스트들이라고 보았다.
로고스는 말 자체로 주장을 증명하는 기술이다. 다시 말해 이야기 자체에서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경우로,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과 무관하게 자기증명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어느 누군가가 다른 누구에게 같은 근거를 제시해도 진실임직하게 보이는 근거가 바로 로고스인 셈이다.

장소와 상황이 다르면 설득과 소통의 전략도 달라진다 _ 숙의적, 사법적, 과시적 장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뜻대로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설득의 장을 구분하고 거기에 맞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고 보았다. 말을 전달하는 장이 달라지면, 그 말을 듣는 수용자가 달라지고, 수용자가 달라지면 설득의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는 얘기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설득의 세 장르는 말을 듣는 청중을 기준으로 숙의적, 사법적, 과시적 장르로 구분된다.
숙의적 장르는 미래에 실현될 정책적 대상을 현재 시점에서 숙의하고 판단하는 장르를 말하는데, 숙의라는 말속에는 심사숙고하여 의논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오늘날 정치 분야와 같이 한 사회의 미래 방향을 심사숙고하며 논의하는 장르가 여기에 속하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사법적 장르는 과거의 잘잘못을 놓고 정의의 관점에서 판단을 내리는 분야이다. 과거에 잘못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있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이며 잘못의 크기는 어떠한 지 등을 가리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오늘날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검사와 변호사의 공방이 이에 속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과시적 장르는 결혼식장이나 집회, 기념식 등에서 그 자리를 만끽하려는 청중들을 대상으로 한다. 과시라는 표현에는 찬사하거나 비난하는 대상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결혼식장이나 기념식장에서 신랑신부나 기념의 대상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어떻게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표현할 것인가 _ 착상법, 배열볍, 표현법
상대를 설득하고 서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뜻을 담은 메시지를 구성해야 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메시지 구성과 관련하여 <수사학>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비중 있게 다루었다. 그가 전한 메시지 구성전략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방법인 착상법, 구상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표현할 지를 결정하는 표현법, 착상과 표현의 결과로 도출된 메시지를 배치하는 배열법이 그것이다.
착상법은 어떤 아이디어로 메시지를 구성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지를 고민하는 단계이다. 착상이 메시지 전략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적인데, 착상을 잘하면 표현이나 배열은 그냥 따라오지만, 착상이 잘못되면 아무리 포장 배열을 잘해도 좀처럼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표현법은 좁은 의미에서의 수사적인 기법을 놓고 고민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문체로 표현하는 것이 상대를 설득하는데 효과적일 지를 고민하고 결정하는 단계인 셈이다. 수사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대표적인 표현기법으로는 생략삼단논법, 예증법 그리고 과장법이 있다.
배열법은 착상과 표현의 결과로 도출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배치하여 설득의 힘을 배가시키는데 동원되는 원리를 일컫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메시지의 배열을 설명하면서 ‘서론부-진술부-증명부-결론부’의 4분할 구조로 배열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설명하였다.

이 책《설득의 원리》는 오래된 원전을 해석하고 그 안에 담긴 설득의 원리를 정리하는 어렵고 힘든 작업의 결과물이다. 2500년이나 된 원전에서 찾은 것들이지만, 그 안에서 찾은 묵직한 진리는 긴 세월이 지난 첨단의 시대에 적용해도 한 치의 틀림이나 부족함이 없다. 이 책에 정리된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설득과 소통의 오래된 원리를 발견할 수 있고, 그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면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설득과 소통의 통로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행복은 뇌가 말하는 정보일 뿐?
마음은 심장이 아니라 뇌에 있다!


‘마음’이란 무엇일까? 또 그 ‘마음’은 어디에서 나오고, 어디에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 인간의 마음에 대한 탐구는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이미 보편적인 마음의 이론을 정리하는 심리학이 있으며 이는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어 ‘A는 B다.’라고 정의 내리기 쉽지 않다. 따라서 최근 감정의 발생 과정을 눈으로 명확히 포착하고, 인간의 마음을 좀 더 과학적으로 정의 내리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바로 뇌과학이다.
국내 최고 뇌 전문가인 연세대 김재진 교수는 ‘뇌를 경청하라(21세기북스|김재진 지음)’에서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 생각, 감정, 의지 등 모든 마음의 요소들을 모두 ‘뇌 기능 매핑’을 통해 보여준다. ‘뇌 기능 매핑’이란 사람들이 어떠한 생각이나 감정을 가질 때 뇌의 각 영역이 어떤 식으로 활동하는가를 첨단 시각 영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다. 따라서 마음의 변화에 따라 뇌가 어떻게 다르게 활동하는지 영상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책은 이 작업을 통해 즐거운 상상을 할 때,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 헤어진 사람을 그리워할 때, 배우자의 외도를 상상할 때, 분노를 느꼈을 때, 칭찬을 받을 때, 용서할 때 등의 행동에서 우리의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분석하고, 행복의 근원을 과학적이고 구체적으로 찾아간다. 물론 과거 인간의 마음은 과학의 영역보다는 종교의 영역에서 이해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을 단지 뇌 기능의 차원에서 이해한다는 사실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마음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종교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의 마음을 과학으로 해부한다고 해서 신이 달라진다면 그 신은 진정한 신일 수 없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뇌를 경청하라’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뇌는 우리가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마음을 결정하는 전두엽, 변연계, 쾌감보상회로 등의 역할을 이해하게 되면 이러한 세팅을 자연스럽게 인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세팅이 갖추어져 있다는 사실과 이러한 세팅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대부분 사람에게 뇌 기능이란 먼 나라 이야기와도 같아서, 자신에게 갖추어져 있는 효과적인 세팅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할뿐더러 안다고 해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사랑도 증오도, 관용도 편견도, 쾌락도 절제도, 배려도 시기도 모두 다 가꾸기 나름이다. 뇌 안에 감추어진 긍정적 요소를 강화시켜 사회 친화적으로 나아갈 것인지, 부정적 요소를 강화시켜 사회 이반적으로 뒷걸음질할 것인지는 각 개인에게 달려 있다.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미완성의 진화는 인간에게 축복일 수 있다.”라고 말하며 이 책을 통해 뇌 영역들이 전하는 궁극의 행복, 뇌 과학이 삶에 밀접하게 닿아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인생과 행복의 비밀,
그 모든 답이 뇌 안에 숨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효과적인 세팅을 어떻게 적절히 사용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방법을 총 4PART로 설명하고 있다.
먼저 PART.1에서는 뇌는 우리가 행복해지도록 세팅되어 있으므로 진정한 행복은 뇌 안에 있다고 말한다. 인생사에서 부정적 사건을 경험해도 우리의 뇌는 그런 기억을 빨리 잊도록 세팅되어 있으며, 미래 상황이 안전 아니면 위험 두 가지로 불확실할 경우 위험 쪽을 예견해서 미리 대비하도록 세팅되어 있다. 이렇듯 우리의 행복을 위해 뇌가 얼마나 합리적으로 세팅되어 있는가를 보여준다. 또한 과거를 회상하거나 음악을 들을 때,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울 때 등에 뇌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지를 보여준다. PART.2에서는 스트레스 중에서도 가장 흔하고 심각한 스트레스는 다름 아닌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갈등이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한다.

‘아버지는 나에게 ○○○같은 존재다’ 혹은 ‘어머니는 내가 힘들 때 ○○○다’와 같은 미완성 문장을 보여주고 마음속으로 완성하도록 했다. 이에 대한 답은 실험 참가자들의 성장 배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부모에 대한 양가감정이 강할수록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은 긍정적인 내용과 부정적인 내용이 뒤섞일 것으로 예상했다. 실험 결과, 가장 뚜렷하게 활성을 일으킨 영역은 안쪽 전두엽이 아니라 안쪽 두정엽이었다. 안쪽 두정엽의 일반적인 기능은 기억회상과 심상 형성이다. 실험 참가자들이 실험 과제를 수행하면서 부모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며 자연스레 과거의 경험을 동영상처럼 머릿속에 떠올렸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고 본다. 부모를 향한 표현되지 않은 애증의 마음이 뇌 어딘가에 깊이 숨어 있다가 회상의 시간이 될 때 안쪽 두정엽의 강한 활성을 통해 감정의 일단을 표출했던 것이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마음은 무조건적이지만, 자식의 부모에 대한 마음은 다분히 계산적이다.

이렇듯 부모와 자식의 관계 외에 친구, 연인 등의 ‘관계’에 대한 뇌 실험들을 보여준다. PART.3에서는 타인과의 ‘공감’을 강조하며 다양한 실험들을 소개하고 있다.

연구 대상으로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정신지체 장애자를 돌보는 봉사자들이었고, 기능MRI 촬영 때 수행한 과제는 연속적으로 제공되는 정신지체 아이들의 사진을 보면서 평소의 느낌을 살려보는 것이었다. 그 결과 장애아동을 보는 동안, 뇌섬엽 중간, 두정엽 위쪽, PAG*, 중뇌의 VTA, 안쪽 전두엽 등의 활성이 관찰되었다. 옥시토신이 풍부한 애착의 중추인 PAG와 희열감의 중추인 VTA를 포함해 여러 변연계 뇌 영역들이 활성을 일으킨 뷰레가드 박사의 실험 결과는 바텔스 박사의 사랑 연구에서 연인들이 파트너를 대할 때와 어머니가 아기를 대할 때의 기능MRI 촬영 결과와 아주 흡사하다. 경이롭게도 자원봉사자들이 정신지체 아이들에게 갖는 느낌이 물불 가리지 않는 연인들의 무조건적 끌림이나 어머니들의 본능적인 자식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저자는 어떻게 진정한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지, 어떻게 하면 이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지, 어떻게 사회관계를 잘할 수 있는 지 등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PART.4에서는 타인의 마음을 잘 읽는 방법, 즐거운 상상을 통해 긍정적 자의식을 형성하는 방법, 효과적인 동기부여 기술 등을 통해 인생의 지혜에 관해 알려준다.

 

 

 

밥맛, 입맛, 손맛으로 돌아보는
한국인의 밥상문화 5,000년

우리에게 ‘밥’의 의미는 각별하다. “밥 먹었니?”로 인사하고 “밥이나 같이 먹자”로 사람을 만나며 백일상, 돌상, 생일상 등으로 날을 기념한다. 심지어 죽어서도 망자와 후손이 제삿‘밥’을 사이에 두고 만난다. 『식전』은 바로 이러한 우리 밥(食)의 장구한 역사를 그린 전기(傳)다.
우선 이 책은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음식, 즐기는 입맛이 언제부터 생겼으며 시대에 따라 문화적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본다. 거기에다 인류가 처음 등장한 사바나의 초원, 로마제국, 십자군전쟁, 몽골제국, 신대륙 발견, 산업혁명 등 다양한 역사의 시공간을 연결하여, 그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우리 음식 문화에 어떤 과정을 통해 무슨 영향을 미쳤는지를 그려낸다. 그리하여 우리 밥상에 오른 음식 하나하나에 담긴 전 인류적 역사의 흔적을 찾아냄으로써 결국 음식의 진화가 곧 인간 문화의 진화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현재 지호출판사의 대표인 글쓴이는 한때 요리사를 꿈꿀 만큼 음식에 관심이 많아, 그동안 음식의 역사와 효용에 관한 온갖 책과 자료를 찾아보았고 실제로 직접 요리도 해보았으며, 때로는 몇몇 음식 관련 책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긴 ‘음식 여행’에도 여전히 자신의 “허기를 다 채우지 못해” 직접 글을 쓰기로 결심했고, 그간의 여정 동안 음식에 관해 보고 들은 지식 모두를 이 한 권의 밥상 위에 정성껏 차려놓았으니, 지금 우리가 먹는 음식과 그 문화 전반에 대해 빠짐없이 돌아보며 즐기기에는 두루 넉넉한 상차림이 될 것이다.

밥 한술에 담긴 천년 사연

여기, 얼핏 보기에도 지금의 밥상과는 다른 옛날식 상차림으로 여러 음식을 그러모은 밥상이 하나 있다. 자, 이 밥상을 찬찬히 살펴보며 그 역사의 흐름을 곱씹어보자.
우선 밥은 쌀밥이다. 쌀이 보리, 조 등을 제치고 주곡이 된 것은 고려시대 이후의 일이다. 상 한가운데에는 두부조치가 놓여 있다. 두부는 고려 후기부터 먹었다. 배추김치는커녕 배추로 만든 음식이 안 보이는 것으로 보아, 배추가 전국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16세기보다 앞선 시기인 듯하다. 숟가락의 모양을 보더라도, 지금 우리가 흔히 쓰는 형태와는 달리 숟가락의 끝이 뾰족하고 손잡이가 굽어 있다. 밥을 제대로 떠먹을 수 있을지가 의심스러운 이런 숟가락 모양도 이 밥상의 시기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임을 알려준다.
이 밥상의 차림새로 알 수 있는 게 그 시기만이 아니다. 양고기가 놓여 있으니, 궁중이나 상류층의 밥상임이 틀림없다. 양고기는 우리나라에서는 양이 잘 자라지 않아 요리를 위해 중국에서 수입해다 먹을 정도로 귀한 고기였다. 몇몇 반찬에 후추가 뿌려진 점이나 설탕이 든 백설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무척이나 잘사는 집안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당시에는 설탕이나 후추가 무척 귀한 수입품이었으니 서민의 밥상은 아닌 것이다. 더욱이 귀하디귀한 식용유와 밀가루로 만드는 약과가 수북이 쌓인 것만 보아도 이는 왕공귀족이 아니면 엄두를 못 낼 상차림이다.
밥상의 풍경은 어제오늘로는 그다지 바뀌지 않으니 50년 전, 100년 전도 오늘의 밥상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처럼 몇백 년을 건너뛰면 재료 하나하나까지도 지금과 다르다는 게 확연하다. 느리고 작은 변화도 긴 세월이 누적되면 큰 변화로 나타나니, 이처럼 전혀 다른 모습의 밥상이 우리 앞에 놓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생물의 진화와도 같은 ‘문화의 진화’다.

사람이 흐르면 음식도 흐른다

흘러야 문화다. 음식 문화는 한 지역 내에서 자체적으로 변화하기도 하지만, 음식의 역사를 둘러보면 오히려 다른 지역의 여러 이질적인 문화들이 흘러들어와 서로 교류하고 충돌하면서 변화가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먹는 것들은 어떠한 문화적 교류와 충돌 속에서 진화해왔는가?
한식 세계화의 중심에 있는 배추김치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한민족의 자존심’으로까지 여겨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책에서는 배추김치 속에 들어가는 고춧가루와 배추, 젓갈 등 여러 재료의 유래를 추적하면서, 결국 그 역사가 불과 100년밖에 되지 않았음을 밝힌다. 그리하여 가깝게는 을사늑약 이후 일제에 의한 육종 연구, 멀게는 ‘콜럼버스의 발견’이 없었더라면 배추김치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것이다.
특히, 문화적 교류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사람의 교류다. 예컨대, 우리나라 벼농사의 기원을 중국 닝보 지역 특유의 설떡[寧波年羔]과 우리 설날의 가래떡, 이 두 설날풍습의 유사성에서 찾는다. 풍습은 단시간에 전래되는 것이 아니기에 교류가 꾸준해야만 하며 그 교류는 단순한 물품 교류가 아닌 사람 사이의 교류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벼농사에는 볍씨뿐 아니라 농법도 전래되었어야 했을 테니 닝보 지역 사람들이 이 땅에 건너와 살면서 벼농사와 함께 풍습도 전해진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뿐 아니라, 중국 사신의 동선을 따라 만두가 전파되었다든지, 북경식 자장면이 산동화교의 창의성에 힘입어 오늘날의 우리 자장면이 되었다든지 하는 것도 사람을 따라 음식이 흐른 좋은 예다.
결국 음식의 변화는 재료를 선택, 조합하며 조리방법을 정연하게 다듬는, 상당히 고난도의 창의적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서 재료와 창의성의 숙성이 특히 중요하며, 이는 시대에 따라, 지리적 환경이나 문화적 풍토에 따라 더 나은 음식을 만들고자 애쓰는 인간의 다양한 노력과 정성 없이는 발현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음식은 실제로는 정치, 경제, 사회, 기술 등 여러 요소가 혼합된, 그야말로 인간 문화의 정수다. 그렇기에 우리 밥상을 새로이 톺아보는 일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인 것이다.

 

 

 

“우리는 정말 사랑하는 걸까?”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놀라운 사랑’이 당신을 찾아갑니다!


‘사랑’은 우리 모두에게 그 의미가 똑같은가? 또는 우리는 사랑에 대해 모두 다르게 생각하는가? 모든 인간은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다. 인간의 심장에는 아주 강한, 즉 중독과도 같은 그리움이 있다. 심장은 스스로 찾고 있는 것이 발견될 때까지 평온해지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정해지고 우리의 심장이 평온해지는 사랑을 발견하기 위해 움직이며 지구 끝까지 달린다. 하지만 밖에서의 이러한 여행은 우리를 지치게 한다. 어느 날 우리는 몸과 마음이 탈진되고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의 저자 피에르 프랑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러한 공허함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사랑의 외침이 외적인 것으로 결코 만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헌신해야 하고, 자기만족을 위해 세상을 샅샅이 뒤지지 말고 한 사람에게 우리를 선사해야 한다.”
이 책은 사랑이라는 모험을 매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수많은 오해와 편견으로 뒤엉켜 있는 사랑에 관한 진실들

‘사랑이란 무엇인가?’ 독일의 유명 배우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알려져 있는 피에르 프랑크는 이 질문에 대해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고 삶에 밀접한 대답을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다. 우선 그는 사랑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서 벗어나길 희망한다. 사람들이 사랑에 관해 얼마나 잘못된 정의를 내리고 있는지, 그리고 항상 사랑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고 찾아다니기만 할 뿐 진정한 사랑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고 꼬집는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은 상처, 배신, 잃어버린 헌신, 또한 완전한 거부로 이루어진다. 항상 이미 견본에 되었던 것을 따라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사랑은 우리 자신의 본래 모습을 끄집어내지 않으면 불가능하며, 그것은 개인적인 경험의 보물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각 장을 통해 무언가를 기억하도록 도와줌으로써 자신의 내면 깊숙이 묻어두었던 본래의 사랑에 가까이 다가가게 해준다. 어쩌면 이 책에 나오는 접근법이나 논리 중 몇 가지는 왠지 낯설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은 지금 당장 실행하면 효과적이고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방법이다. 또한 이 책은 자신과 밀접하거나 흥미로운 내용만 몇 번을 읽든 맨 앞에서 끝까지 훑어 읽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책을 읽으면서 시시각각 느끼는 감정에 충실하라는 것. 그러면 당신 본연의 모습인 사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처음 사랑에 빠지면서 또는 실연의 아픔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수많은 망상과 착각에 사로잡힌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얻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사랑은 상대방에게 요구하고 분노하며 항상 불평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충족시키는 데 중독되어 있는 한 절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다. 자신의 파트너에게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것이 떠오르지 않는데도 함께하는 사랑에 충만함을 느낀다면 그 사람은 진실로 깊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사랑은 절대적인 자유 아래서만 생성되고 서로 독립적일수록 더 풍부해진다.

“사랑에 빠지기는 쉽다. 왜냐하면 우리는 진실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실이 드러날 때 비로소 사랑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사랑의 문을 어떻게 열고, 잃어버린 사랑을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그런데 뜻밖에도 저자는 사랑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찾을수록 오히려 발견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체험, 즉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과 절망의 순간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새로운 삶과 진정한 사랑은 슬퍼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을 때 깊고도 충만한 사랑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또한 삶에 가장 빨리 사랑을 초대하려면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대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에서 최고의 파트너를 만나고 싶어한다. 그래서 매번 이 사람, 저 사람으로 교체하는 오류를 범한다. 하지만 사랑은 항상 당신 안에서 끝난다. 자기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랑의 진실을 알지 못하면 파트너 관계는 항상 얼마 지나지 않아 쉽게 끝나버린다. 상대방을 용서함으로써 스스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용서의 힘과, 사랑을 되찾고 유지시켜주는 최고의 수단인 육체적인 사랑에 관한 조언은 파트너 관계에서 흔히 생기는 갈등과 불화, 다툼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실천적인 ‘사랑을 초대하고 유지하는 21가지 방법’은 복잡한 파트너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고 흔들림 없는 토대 위에서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형태인 행복으로 이끄는 지침이 될 것이다.

이것만 따라하면 당신이 그토록 원하던 사랑과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
-인생에서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고 지켜나가는 데 유용한 방법과 원칙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그냥 당신의 연인을 왜 사랑하는지 적어봐라. 아주 즉흥적이고 빠르게, 오래 생각하지 말고. 목록을 만들었다면, 이제 당신이 왜 자신의 연인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이 목록은 당신에게 편안한 감정을 가져다줄 것이다.
#용서하기|아직도 당신은 파트너가 어떻게 당신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생각하는가? 화가 나는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가 용서하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것이다. 당신 내면의 평화를 잃어버리게 된다. 당신 안에 미움이 가득하면 파트너 관계가 더 이상 즐거워질 수 없다.
#새로운 습관 만들기|식사할 시간도 없으며 너무 피곤해서 대화할 시간도 없다-이러한 상황은 장기적으로 파트너 관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함께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서로 자주 안아주고, 긴장을 풀고 안락함을 느끼며 소파에서 함께 책을 읽는 습관은 평화로움과 여유를 다시 가져다준다.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함께 요리를 하고 바쁜 중에도 짬을 내어 함께 외식을 하면 하루의 조화를 느끼고 새로운 공동의 감각을 발견하게 된다.
#‘아니요’라고 말하기|당신이 파트너 관계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당신의 삶이 어떻게 계속 진행되어야 하는지 정확히 생각해봐라-그리고 그에 맞게 반응하라. 당신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라. 그러지 않으면 당신은 다른 사람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좀더 강렬하게 살기|가끔 자기 자신에게 ‘내가 오늘 하루만 살 수 있다면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질문해봐라. 아마도 남아 있는 하루를 완전히 달리 보내게 될 것이다. 좀더 의식적으로, 좀더 강렬하게 파트너를 대할 것이다.
#선물하는 것의 선물|‘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선물하지 않아요. 모든 것을 가지고 있거든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연인들이 있다. 그런데 선물은 단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다. 선물로 우리는 파트너에게 감사하는 것이다. 변덕이 심한 나의 옆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 있어준 것에 대해, 또한 그가 함께 삶을 나누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파트너를 기쁘게 하기 위한 모든 가능성을 이용하고 그에게 선물하라. 그러면 당신의 삶도 하나의 선물이 된다.
#비판하지 않고 감사하기|상대방이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하는지 다시 의식적으로 인지하라! 당신이 1주일 내내 파트너에게 무엇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지 직접 기록해봐라. 그러면 감사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이 기꺼이 가졌으면 하는 것에 주목하기 때문에 부족한 점을 더 명확하게 인식한다. 그래서 우리는 비판하고 투덜거린다. 한번 당연하다고 여기는 작은 것들에 감사하라. 그러면 파트너 관계에 에너지와 관심이 넘쳐나고, 서로를 인정하게 되며, 무엇보다도 관계가 쉬워진다.
#다시 키스하기|보통 파트너 관계의 초기에는 자주 키스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입은 게을러진다. 이전의 달콤함이나 흥분도 사라지고 섹스를 위한 도입으로, 또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파트너 관계에서 친밀함을 나누는 데 키스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키스할 이유가 없을 때 한번 키스해보라. 지속적으로 오랫동안, 사랑스럽게 키스하고 전적으로 몰두하라. 왜냐하면 키스는 사랑을 촉진하고 두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침묵하기|침묵 속에서는 수천 가지의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체험하게 된다. 왜냐하면 침묵 속에서 가장 깊은 감정과 느낌이 생성되고 다른 사람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감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함께하는 침묵은 에너지가 가득할 수 있다. 우리가 자주 파트너 관계에서의 깊이를 허락한다면 수많은 오해와 마찰은 생겨나지 않는다. 함께하는 깊이를 느끼는 가운데 우리는 다시 함께 보낸 과거, 함께 극복한 폭풍우와 위기, 소속감, 그리고 사랑의 결속을 감지하게 된다. 침묵을 통해 우리는 파트너 관계의 진정한 존재를 체험하게 된다.
#마음으로 생각하기|생각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말 한마디로 인해 부정적인 생각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면 갑자기 질투가 생겨나고 다툼으로 이어지면서 ‘그는 나를 정말로 사랑할까?’, ‘그의 말이 진실일까?’, ‘지금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등과 같은 추론을 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어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항상 당신의 직감을 들어라. 생각하지 말고, 계산하지 말고, 저울질하지 마라. 그냥 사랑하라. 마음과 관련된 모든 것은 모두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당신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좋은 것만 보기|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항상 바라보는 관점에 달려 있다. 파트너 관계에서 작은 위기가 닥쳤거나 사랑을 의심하기 시작할 때면 상대방의 결점을 더 많이 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에도 아주 의식적으로 그의 능력, 강인함, 재능, 그리고 잠재력을 기억하도록 하라. 그냥 한번 시험해봐라. 오늘 당신의 삶에서 아름다운 것을 보도록 계획해봐라. 긍정적인 것만 관찰해봐라. 당신이 삶을 충만하게 보내고 싶다면 삶에 이미 작동 중이고 멋지게 진행되는 것들에 집중하라. 그러면 당신은 행복이 이미 그곳에 있고 항상 그곳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영어로 쓰인 책 중에서 ‘셰익스피어’와 ‘성서’ 다음으로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자주 인용되는 고전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유쾌한 모험 속에는 삶에 대한 진지한 의문과 성찰, 그리고 이를 관통하는 다양한 인문학 지식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문 지식의 보고’라 할 수 있는 원작에서 철학, 심리학, 과학 등 인문학 코드 12가지를 선별하여 앨리스와 더불어 다양한 분야의 인문 지식을 흥미롭게 접하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상한 나라’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인문학적 사고의 기틀을 갖추게 한다.

인문 지식의 보물상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혼자서 낯설고 복잡한 길을 지나 새로운 곳을 찾아가야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도와 나침반이다. 물론 지도와 나침반을 손에 쥐고 있다고 해서 단번에 목적한 곳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헤매느라 지칠 수는 있어도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들은 끝내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고야 만다.
우리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삶의 과정 곳곳에는 막다른 골목이 아닌 체하며 우리를 유혹해 헛심 쓰게 만들기도 하고 탈출구를 가늠할 수 없는 미로가 발목을 잡아채 털썩 주저앉게도 만든다. 이와 같은 삶의 복잡하고도 위험한 함정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려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와 나침반은 바로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고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훌륭한 안내자이지만 우리를 둘러싼 현실 여건은 주머니 하나 가득 황금이나 채우는 게 좋다고 유혹한다. 게다가 막상 다양한 인문 소양을 쌓으려 해도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할지 막막할 뿐만 아니라 ‘이상한 나라’처럼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 앞에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이가 함께 한다면 어떨까?
이 책의 저자는 우리에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함께 하는 인문학 모험을 권한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였던 루이스 캐럴이 쓴 이 작품은 동화, 애니메이션, 영화 등의 다양한 변주로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고전 문학이면서 그 의미가 알쏭달쏭한 ‘이상한’ 문학이기도 하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 ‘앨리스는 어른만 읽어라’라고 말할 정도로 겉에 드러나 있는 즐거움의 이면에는 철학, 정신분석학, 심리학, 논리학, 언어학,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문학 지식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삶과 맞물려 있는 12가지 인문 지식의 유쾌한 향연

20세기 형이상학을 대표하는 철학자 질 들뢰즈는 그의 저작 의미의 논리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주는 가장 심층적인 즐거움은 의미와 무의미의 놀이,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얽힘’이라 평하면서, 철학과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텍스트를 다각도로 분석하였다.
또한 20세기 전반기에 이성 중심의 사고체계에 의미 있는 균열을 만들어낸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앨리스 이야기에 드러난 꿈과 환상의 세계를 새로운 창조의 모티프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앨리스 이야기는 그만큼 다양한 방식의 접근과 활용이 가능한 열린 텍스트이다.
오랫동안 심리학과 인지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와 집필에 힘써온 저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다양한 인문학의 관점으로 접근한다.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서 던지는 다양한 질문과 이상한 나라를 모험하며 만나는 비현실적인 캐릭터, 그리고 계속되는 난해한 주변상황들에 담겨 있는 의미를 찾아내어 이를 우리 삶과 맞닿아 있는 인문 지식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활용한다.
전체 12장으로 구성된 원작의 흐름을 따르면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얽히고설킨 세상과의 관계망 속에서 자아정체성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정치권력의 거듭되는 속임수에 왜 매번 속을 수밖에 없는가, 이기적인 인간의 욕심을 넘어선 정의로운 사회는 구현 가능할까’ 등 다소 무거울 수 있지만 세상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질문부터, ‘텔레파시는 존재하는지, 유머는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등의 발랄한 질문까지 폭넓게 묻고 답한다.
앨리스와 함께하는 유쾌한 인문학 탐험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세상을 한층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인문학적 사고의 기틀 위에 올라선 스스로를 만나게 된다.

우리는 이미 토끼를 쫓아 토끼굴 속 깊이 들어와 있다

앨리스는 회중시계로 시간을 보고 말을 하는 하얀 토끼를 쫓아 토끼굴 속 이상한 세계와 만난다.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말 그대로 ‘이상한’ 세계이다. 그런데 앨리스는 그 세계의 존재 자체에 별 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 세계를 수용한다. 여기서 기본적인 의문이 하나 생긴다. 작중 인물인 앨리스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왜 우리는 이상한 세계의 존재 여부나 그곳에서 벌어지는 묘한 상황에 특별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그곳을 나름의 체계가 있는 세계로 인정하고 이해할까? 게다가 책을 읽으면서 ‘실재’하지 않는 허구 세계가 보여주는 ‘현상의 치밀성’에 빠져들어 이상한 나라에 마치 현실 속 세계처럼 자연스레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는 왜 아무 의심 없이 이상한 세계를 받아들일까?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이미 토끼굴 속에 깊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20세기 형이상학을 대표하는 들뢰즈와 보드리야르의 철학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사회의 삶은 눈앞에 존재하는 실체보다는 미디어 등을 통해 생산된 가상의 원본 없는 이미지가 실체적 현실을 대체하고 있으며, 현실은 그 이미지에 지배받아 살아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례로 우리는 ‘딸기’ 대신 ‘딸기 색깔을 내는 연지벌레와 딸기 향이 첨가된’ 우유를 마시면서 마치 실제 딸기가 들어간 우유를 마시는 것처럼 받아들인다. 그리고 바나나를 갈면 노란색이 나오지 않는데 사람들은 바나나 주스나 우유는 노란색을 띠어야 더 먹음직스럽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 머릿속에 각인된 가상의 이미지에 의해 엄연히 존재하는 실체가 그 가치를 평가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보드리야르는 이를 가리켜 현대 사회에서서는 기존에 인류가 갖고 있었던 의미 생성의 논리가 전복되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와 관계 맺는 방식에 질문을 던져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 우리의 삶은 실체뿐 아니라 이미지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조금 색다른 관점을 알려준다. 그리고 실체가 아닌 이미지를 소비하면서 사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환상을 좇고 이미지를 소비하면서 점점 실제 현실 속 문제에 무감각해지는 오늘날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것을 권한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 누구인가
이상한 나라에 들어간 앨리스는 무언가를 먹을 때마다 키가 커지거나 작아지는 다소 황당한 상황에 빠진다.
“도대체 나는 누구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세요.”
앨리스는 ‘키가 커진 자신’과 ‘키가 작아진 자신’을 놓고 심각한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또래 친구와의 차이를 떠올리며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내려 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발아래 물웅덩이를 채운 눈물뿐 아무도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저자는 앨리스의 간절한 외침에서 나이를 불문하고 불쑥 찾아오는 불편한 손님이자 현대인의 공통분모인 ‘자아정체성의 위기’를 본다. 그리고 한발 앞서 고민했던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 칼 융, 애브라함 마슬로우 등의 체계적인 이론을 통해 우리가 정체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와 편견을 조목조목 짚어내며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생각의 전환을 제안한다.
사실 정체성은 앨리스가 울부짖으며 찾으려 했던 것처럼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고정불변의 무언가가 아니다. 개인의 정체성은 오히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회적 관계가 쌓이면서 그에 따라 함께 변화하고 성장해가는 삶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대개 자아정체성 발견이라고 하면 어딘가 숨겨진 보물이라도 찾듯이 생각하고, 사회적 요소를 무시한 채 개인적인 것만 강하게 고민하고 추구하기 때문에 정체성만 생각하면 이내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저자는 원작 속 어린 소녀인 앨리스조차 자신이 누구인지 수시로 물으며 모험을 계속 했음을 상기하며, 자아정체성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하루빨리 벗어던지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할 것을 권한다. 자아정체성 발견이 자아정체성 실현이자 행복한 삶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앎의 지식’을 넘어 ‘삶의 지식’으로
이처럼 저자는 우리에게 친숙한 원작을 발판 삼아 자칫 낯설고 어렵게만 생각될 수 있는 다양한 인문 지식을 앨리스의 입과 눈을 빌어 섬세하게 포착해내고,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나 다양한 생활 속 사례를 통해 명쾌하고 유쾌한 설명으로 독자들을 인문 지식의 세계로 이끈다. 그리고 그 지식이 단순한 ‘앎의 지식’을 넘어 우리의 삶을 색다른 관점에 바라보고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삶의 지식’이 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한다.
철학, 심리학, 언어학, 법학, 정치학 등 지적 경계를 넘나드는 앨리스와의 인문학 탐험은 독자들에게 꼭 필요한 인문 지식과 그를 통한 사유의 폭을 유쾌하게 확장시켜줄 것이다.

 

 

 

밥상이 세상을 바꾼다!
쌀, 고기, 채소, 과일…
나와 우리를 살리는 올바른 먹을거리에 관한 이야기


2010년 오늘, 우리에게 ‘쌀’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지난 9월 8일, 한 일간지에 ‘쌀 80㎏ 한가마가 12만 원대를 기록했는데, 이는 2년 사이에 가격이 20퍼센트나 폭락한 것’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쌀 소비량이 너무 많이 줄어 올해에도 엄청난 쌀이 남아돌 것이라는 점, 정부에서 쌀을 무제한 수매하기로 결정했으며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방안, 쌀 소비 촉진을 위해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쌀 가공식품을 개발 검토 중이라는 점 등이 기사의 주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기사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예전과 같은 충격을 주지 않았다. 인터넷에도 ‘농민들이 안됐다’, ‘오늘 저녁에는 집에서 밥을 지어 먹어야겠다’ 정도의 댓글이 달렸을 뿐, 농촌의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댓글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굳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1998년 99.2킬로그램에서 2008년 75.8킬로그램으로 10년 사이에 25퍼센트나 감소’했다는 통계자료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 국민들이 예전처럼 ‘쌀(여기서 말하는 쌀은 국산쌀이다)’을 먹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아침은 거르거나 빵이나 음료수로 간단하게 때우고, 점심과 저녁은 대부분 밖에서 다양한 외식 메뉴로 간편하게 해결하는 것이 보편화된 요즘 시대에 밥과 국, 찬을 곁들인 식사를 하루 세 번 꼬박꼬박 챙겨먹는 일은, 번거롭고 미련하며 시간 낭비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드라마나 CF에서도 길거리나 사무실에서 샌드위치나 빵과 커피를 먹으며 일하는 젊은 직장인을 ‘21세기를 살아가는 경쟁력 있는 인재’로 묘사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 쌀은 더 이상 따뜻한 가정, 엄마의 사랑과 정성, 외할머니의 손맛이 아닌 ‘다이어트를 위해 가장 먼저 섭취량을 줄여야 하는 탄수화물 덩어리’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쌀이 처한 현실이다.

밥상으로 세상을 바꾸자!
어느 평범한 주부가 발로 뛰어 완성한 ‘생명의 밥상’ 보고서

평범한 주부가 있었다. 그는 여느 주부들처럼 집 근처 아파트 단지 입구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쌀을 배달시키며 ‘나름 괜찮은 방식으로’ 살림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1994년의 어느 날, 집에서 멀지 않은 새 도시에 대형할인점이라는 것이 생겼다. ‘신천지로 원정을 가듯’ 그곳을 찾은 날, 그는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듯 대형할인점의 매력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주말이면 신문보다 두꺼운 전단지를 비교하며 최저가 상품을 찾아내는 재미에 빠졌고, 일주일치 장을 보고 대형할인점 내 푸드코트나 주변 식당에서 외식을 하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합리적인 쇼핑을 하고 가족과 행복한 시간도 보내는 경쟁력 있는 삶’을 살게 된 것을 뿌듯해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세상은 점점 노골적으로 ‘부자되세요’라고 유혹했고, 소득이 없는 대학생들에게까지 카드를 발급해주며 소비를 부추겼고, 대출을 받아 집을 산 뒤 몇 년, 몇 십 년 동안 갚기‘만’ 하면 누구나 내 집 마련에 성공할 수 있다고 속삭였다. 작은 마당이 있는 시골집에서 흙을 밞으며 아이들을 키우지 않으면, 도시에서 탈출하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
신용카드를 조각낸 그녀와 IMF 구제금융으로 구조조정이 시작되기 전 회사를 그만둔 그녀의 남편은 그렇게 도시를 떠나 경기도 광주의 작은 산골마을에 정착했다. 어쨌든 밥은 먹고 살아야 했기에 하루 네 시간씩 걸리는 출퇴근 시간을 감당해야 했지만, 정신없는 도시를 떠난 것만으로도 꽤 만족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 선후배들, 심지어 양가 가족들에게조차 ‘철없고 경쟁력 떨어지는’ 사람 취급을 받았고, 친구들이 새 도시에 남은 친구들의 아파트 값이 폭등해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그렇지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물을 댄 논에 비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풍경과, 해질녘 아이들과 강아지와 함께 논두렁을 산책할 수 있는 덕분이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스콧과 헬렌 니어링 부부, 윤구병 선생, 이대철 선생의 책을 통해 얻게 된 새로운 삶에 대한 영감도 이들 부부에게는 큰 힘이었다. 이렇게 자연과 가까워지면서 밥상에도 생각이 머물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에 ‘쌀’을 집들이 선물로 받게 되면서 ‘밥상’에 대해 진지하게, 또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밥상을 알면 알수록 도무지 안심하고 먹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밥상에 숨겨진 자본의 음모에 분노했고, 인류를 불행하게 만든 먹을거리를 저주했던 주부는, 하지만 농부들을 만나면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진실을 알게 될수록 절망과 증오가 넘쳤지만 땅에서 씨를 뿌리는 사람을 만나면 새로운 희망이 솟았다. 그것이 씨앗의 힘이라는 것도, 농부들의 땀방울이 세계를 지배하는 거대 기업의 자본과 맞서 싸우는 눈물이라는 것도, 우리 눈에는 고단하고 불쌍해 보이지만 정작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이들은 씨 뿌리는 사람들이라는 것도, 농부들을 만나면서 깨달았다.
《살림의 밥상》은 이렇듯 밥상을 통해 깨달은 현실과 농부들과의 만남을 통해 발견한 희망을 정리한 책이다. 위험한 먹을거리는 여전히 도처에 널려 있고 사람들도 더 이상 먹을거리를 신뢰하지 않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에게는 희망이 남아 있다는 것을, 목숨을 걸고 신앙생활을 하듯 땅을 섬기는 착한 농부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차라리 아이를 굶기라’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먹지 않고 살 수는 없는 일, 그렇다면 ‘이것도 먹지 말라, 저것도 먹지 말라’고 공포심을 심어주기보다 ‘생명을 살리는 좋은 먹을거리’들을 구별하고 이것들을 먹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길이 보다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주부로서 다소 부끄러울 수도 있는 개인의 살림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낸 것은, 내 가족이 먹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진정한 밥상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도, 아산, 괴산, 눈비산마을, 옥천 등 전국을 누비며 농부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까지 담은 것은,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정부의 지원은커녕 있는 재산까지 날려가며 땅과 뭇 생명을 살려온 그들의 삶과 생명의 먹을거리를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생활의 근본인 밥상이 바뀌지 않으면 현실을 너무 쉽게 잊고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기농 농부들을 찾아다녔다. 목숨을 걸고 생명의 농사를 짓고 있는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갔다. 그렇게 진도, 괴산, 옥천, 해남 등 전국을 누비며 완성한 이 책에 생명을 살리는 밥상, 하늘과 땅, 강과 바다, 산과 논과 들판, 동물과 지구 반대편의 가난한 이웃들까지 살릴 수 있는 밥상을 어떻게 하면 차릴 수 있는지 담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서 제안하는 ‘생명의 밥상 차리기’에 동참한다면, 분명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믿으면서.

생명의 밥상 차리기 하나, 어떤 밥을 먹어야 할까?
- 쌀과 잡곡, 밀에 관하여

‘어떤 쌀을 먹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하지만,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라는 말의 의미를 곱씹어보면 쌀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어떤 쌀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저자의 조사에 의하면, 아직까지는 20킬로그램 단위로 쌀을 구입하는 가정이 전체 가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 수치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우리 국민들이 쌀을 구입하는 기준은 맛 > 가격 > 안정성 순이다.

자신이 구입하는 쌀이 몇 킬로그램인지도 정확하게 모를 만큼, 사람들은 쌀에서 멀어져 있다. 건강을 위해 유기농 쌀을 구입한다고 하지만 저농약과 무농약, 전환기유기농, 유기농의 차이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도 드물다. 그저 인증마크가 붙어 있으면 안심하거나, 다른 것보다 비싸면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뿐.
그렇다면 유기농 쌀은 다른 쌀과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 저자는 자신이 조합원으로 있는 생협에서 주최한 ‘논 생태교육’과 ‘현장교육’에 참가하고 나서 그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쌀 한 톨의 무게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벼 세 포기가 자라는 공간에 살고 있는 수많은 뭇 생명을 위해 남들은 친환경이라고 주장하는 오리와 우렁이조차 거부한 채(오리농법과 우렁이농법이 친환경적이기는 하지만, 이들이 다른 생명체를 먹이로 삼기 때문) 손으로 벌레를 잡고 피를 뽑으며 농사를 짓는 이들. 이들이야말로 생명을 살리는 농부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유기농 쌀은 비싸다’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막상 비교를 해보면 유기농 쌀과 일반 쌀의 가격 차이는 몇 천 원에 불과하고, 100그램당 가격으로 비교하면 40원이 채 되지 않는다(64쪽, ‘유기농 쌀, 진짜 비쌀까?’ 참조).
더 큰 문제는 ‘일반 쌀 먹어도 안 죽는다’며 우리가 계속 값싼 쌀을 찾는 동안 힘없고 늙은 농민들이 하나둘 논을 포기하게 될 것이라는 것. 예순 살 농민이 동네에서 ‘젊은이’ 축에 속한다는 농촌의 현실을 감안하면, 우리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언제까지 살아남아 벼농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쌀 종주국 필리핀이 무너지게 된 경위를 생각한다면, 폭락하는 쌀값과 추수 때마다 울분을 토하며 논을 갈아엎는 농부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농부들을 살려야 하니 삼시 세 끼 쌀밥만 먹자’고 주장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빵이 제2의 주식이 된 오늘날의 식생활과, 건강을 위해 점차 많은 사람들이 잡곡밥을 선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밀은 어떨까? 사실 비싸도 우리밀 제품이라 믿고 산다는 소비자들은 있지만, 우리밀이 왜 비쌀 수밖에 없는지 궁금하게 여기는 소비자들은 많지 않다. 정말, 우리밀은 도대체 왜 비싼 걸까?
분식장려운동으로 자란 세대인 저자는 빵이 밥을 밀어내고 우리의 또 다른 주식으로 자리 잡게 되는 과정에서 수입 밀이 우리 농가의 밀을 어떻게 깡그리 사라지게 만들었는지, 정부가 왜 그런 일을 주도했는지, 그 결과 우리 농촌이 어떻게 피폐해졌고, 평범한 농민들이 우리밀을 되살리기 위해 얼마나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는지를 밝히고 있다. 쌀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나라에서 강제로 혼분식 장려정책을 펼치고, 특정 요일에는 쌀로 요리한 음식 판매를 금지시키고, 쌀밥을 먹는 집은 촌스럽고 빵을 먹는 것이 세련된 선진국민이 되는 길인 양 국민들을 세뇌시킨 이유가 우리나라에 쌀이 부족한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넘쳐나는 밀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던 미국’을 위한 정책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정부 주도하에 이루어진 ‘수입밀먹기장려운동’으로 우리밀이 사라져버렸다면, ‘우리밀살리기운동’을 벌인 것은 평범하고 힘없는 보통 사람들이었다. 저자는 우리밀 1킬로그램을 소비하면 밀밭 3.3제곱미터가 늘어나고 산소 2.5킬로그램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알고서, 우리밀이 수입 밀보다 비싸지만 우리밀을 구입함으로 인해 우리가 마시는 산소가 늘어나고, 수입 밀을 국내에 들여와 밀가루로 가공하기까지 들어가는 석유와 화학약품을 생각하면, 눈에 보이는 가격만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잡곡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잡곡밥을 먹는 인구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지만, 고기나 김치의 원산지는 따져도 식당이나 급식업체에서 제공하는 그 많은 잡곡이 어디서 왔는지 따져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사실 우리나라의 잡곡 자급률은 10퍼센트 내외. 자급률이 가장 높은 조, 수수 등도 9.7퍼센트에 불과하고 옥수수는 고작 1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쌀을 주식으로 삼았던 우리 민족이 쌀을 지키려는 노력은 기울여도 잡곡에까지 관심을 기울일 여건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차조의 경우, 종자를 찾기 위해 전국을 뒤지다 제주도에서 겨우 구할 수 있었다고 하니105쪽 참조, 이제라도 사람들이 잡곡을 주목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 같다는 저자의 주장은, 잡곡을 ‘잡것’으로 치부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든다. 하지만 무농약이나 유기농은 고사하고 국산 잡곡을 구경하는 것조차 힘든 것이 현재 상황이니 쌀농사, 밀농사보다 훨씬 힘들다는 잡곡농사를 튼튼하게 뿌리 내리게 하는 길 역시 소비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된다.

생명의 밥상 차리기 둘, 어떤 과일과 채소를 먹어야 할까?
- 제철에 난 가까운 먹을거리로 지구를 살리기

싱싱한 쌈채소와 오이, 토마토, 딸기 등을 사시사철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축복일까? 매스컴에서 ‘귀농해서 부자가 됐다’고 소개하는 부자 농부들의 대부분은 유리온실이나 비닐하우스에서 채소나 과일을 재배하는 젊은 사람들이다. 이를 두고 “세상 좋아졌다”, “나도 귀농해서 농사나 지어볼까?”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자는 이런 현실을 두고 “오히려 제대로 철들기 어려워진 세상”이라고 말한다.
흔히 유리온실이나 비닐하우스는 연중 내내 일정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해주어 농민들이 날씨 피해 없이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도와주는 ‘착한 조력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전에 이들 시설이 석유를 ‘젖줄’삼아 유지되고 있고, 대한민국이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임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왜 농민들은 이러한 부담을 감안하면서까지 시설재배 농사로 몰리게 된 것일까? 단지 소비자들의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일까? 책은 우리 농가에 비닐하우스가 늘어나게 된 시기가 ‘1990년대 이후 우루과이라운드와 WTO 체제의 출범으로 우리 정부가 쌀을 포기하면서부터’라고 지적한다. 농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각종 농업구조 개선정책을 쏟아내면서 늙은 소농들은 도태되도록 만들고, 여력이 있는 농민들에게는 고수익을 보장할 수 있다며 시설원예농업에 뛰어들도록 부추긴 것이다.
결국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과 시도 때도 없이 먹고 싶은 것을 먹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욕심이 우리 농민들을 ‘석유가격’의 늪에 빠뜨린 것이다. 과일과 채소에 저마다의 ‘제철’이 있다는 것은, 때가 될 때까지 참고 기다려달라는 자연의 뜻은 아닐까.
그래서 저자는 생명의 속도대로, 자연의 섭리대로 철 따라 키운 농산물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되, 농작물 가격 폭락으로 멀쩡한 밭을 갈아엎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너도나도 나서서 김치도 한두 포기 더 담그고 과일 선물도 많이 해서 농가에 부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우리가 이듬해에도 지속적으로 안정된 가격으로 국산 농산물을 사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재배되지 않아 ‘제철’이 없는 수입 농작물의 경우는 어떨까. 저자는 바나나, 파인애플 같은 수입 과일을 먹기 전에 이 과일이 생산지에서 우리나라까지 오게 된 경위를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13.3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전용선으로 농장에서 가정까지 2주 만에 안전하게 배달’된다는 돌Dole 사의 수입 유기농 바나나가 우리 밥상에 놓이기까지는 첫째, 바나나가 익기 전에 수확한 다음 둘째, 빨리 익지 않도록 성장억제처리를 한 다음 셋째, 돌 사의 전용선으로 한국까지 원거리 수송을 마친 뒤 넷째, 바나나가 다시 빨리 익도록 약품 처리를 하게 된다. 비록 바나나 자체의 품질만을 생각한다면 안전할 수도 있지만, 바나나 하나를 먹기 위해 이렇게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면, 바나나만큼 영양이 풍부한 우리 과일로 대신해서 농가와 자연도 함께 살리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어제의 만남이 내일의 역사가 된다! 한국사를 바꾼 운명적 만남 30장면
‘중앙SUNDAY’에 절찬리 연재된 화제의 역사 교양서


역사는 언제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어제의 만남이 내일의 역사가 된다.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고대의 환웅과 웅녀에서 현대의 김대중과 김정일에 이르기까지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만남들이 무수히 많다. 이 책은 서기 630년경 김유신과 김춘추의 만남에서 2000년 김대중과 김정일의 만남까지, ‘만남’이란 키워드를 통해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역사 교양서다. 프리미엄 주간지 ‘중앙SUNDAY’에 절찬리에 연재되며 화제를 모았던 글들을 대폭 수정, 보완하여 새롭게 묶어냈다.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라이벌 관계를 다룬 책은 많다. 그러나 역사 저술가인 저자는 기존의 접근법을 살짝 비틀어 ‘만남’이란 키워드에 집중하며, 이러한 만남들을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첫째,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만남을 통하여 비로소 역사에 큰 획을 긋게 된 <물과 고기의 만남>. 김유신-김춘추, 장보고-흥덕왕, 정도전-이성계, 신숙주-수양대군 등이 그 예다.
둘째, 만남 이후 서로 용납할 수 없는 사이가 됨으로써 당사자들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고 역사의 물줄기까지 바꿔놓은 <불과 얼음의 만남>. 연개소문-김춘추, 정지상-김부식, 인현왕후-장희빈, 김재규-차지철 등이 그 예다.
셋째, 만나자마자 서로에게 죽고 못 사는 존재가 되고 그 열정이 지나쳐서 시대의 틀마저 불태우거나 그을음을 잔뜩 묻혀버린 <불과 나무의 만남>. 진성여왕-김위홍, 정난정-윤원형, 나혜석-최린, 박마리아, 이기붕 등이 그 예다.
넷째, 서로 만나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를 존중하며 좋은 영향을 남기고 돌아선 <산과 바다의 만남>. 서희-소손녕, 이제현-조맹부, 소현세자-아담 샬, 김대중-김정일 등이 그 예다.
다섯째, 한때는 단짝이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의 갈 길로 떠나가버려, 그 때문에 많은 기회와 희망이 아쉽게도 스러지고 만 <구름과 구름의 만남>. 공민왕-신돈, 남곤-조광조, 이광수-안창호, 이승만-김구, 김대중과 김영삼 등이 그 예다.

선덕여왕이 김춘추 등의 귀족들와 함께 남산에서 꽃놀이를 즐기고 있을 때, 김유신이 누이를 불태워 죽이는 ‘불쇼’를 벌인 것은 왜일까. 고려 광종이 한낱 중국의 지방 관리에 불과했던 쌍기를 따로 접견한 후 개혁의 선봉장으로 내세운 것은 왜일까. 수양대군이 중국 사절단에 신숙주를 데리고 가 영락제의 능에 참배시킨 것은 왜일까. 연개소문이 평양성으로 찾아온 김춘추의 동맹 제안을 받아들였더라면 이후 삼국 그리고 중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 역사에 ‘당쟁’을 만들어낸 장본인들로 유명한 김효원과 심의겸이 영의정 윤원형의 집에서 만났을 때 서로를 오해하지 않았더라면, 북경에서 예수회 선교사인 아담 샬과 만남을 통해 서구 문물을 적극 받아들인 소현세자가 귀국해 정권을 잡는 데 성공했다면 이후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들은 왜, 어떻게 만났을까? 만나서 무슨 얘기를 나누었을까? 그리고 그들의 만남은 역사에 어떤 파장을 미쳤을까?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그들의 만남을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설적 형상화를 통해 생생히 되살려냈다는 점이다.

독자들 중에는 각 장마다 빠지지 않는 ‘소설적인 서술’에 당황하거나 의아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서술이 기존의 문헌 자료에 글자 그대로 있지는 않으며, 상당 부분 상상력을 덧붙여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그 만남의 성격과 의미를 최대한 생생하게 전달하게끔 쓴 방법임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그렇다고 전혀 상상력만으로 묘사하지는 않았다. 가령 쿠빌라이와 왕식의 만남에서 왕식(고려 원종)이 하고 있는 차림새의 묘사는 이제현의 『낙옹비설』에서 그대로 취했으며, 인현왕후가 장희빈의 종아리를 때리는 장면은 『조선왕조실록』과 기타 문헌의 묘사를 취합하여 재구성했다. 이 책의 마지막 만남으로 제시된 김대중과 김영삼의 고려대 시국토론회에서의 만남은 필자가 그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낀 내용에 근거하고 있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기존 문헌자료에 기초를 두되 소설 기법을 적극 차용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새로운 역사적 디테일들을 알아가는 지적 자각과 함께 마치 역사소설을 읽는 듯한 소설적 재미를 안겨준다.
이 책은 ‘역사를 바꾼 운명적 만남’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며, 이후 세계편, 중국편, 일본편 등을 차례대로 펴낼 계획이다. 책에 등장하는 우연한 만남과 계획적인 만남, 가슴 벅찬 만남과 가슴 저린 만남, 불가능해 보였던 꿈을 이루는 만남과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기는 만남, 서로에게 도움을 준 만남과 해를 준 만남의 사례들은 개인과 사회와 세계의 역사를 만드는 ‘운명적 만남’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해줄 것이다.

 

 

 

 

9월입니다. 날씨가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지고 있네요.

책 읽기 딱 좋은 시기가 온거죠.

 

'책읽는 직장인'이 되고 싶은데 무슨 책을 읽을지 모르겠다고요?

우선 이 책으로 시작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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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경제연구소가 선정한 2010년, ‘CEO가 휴가 때 읽을 책 14선’

 

 

 

 

한국경제신문이 선정한 2010년 상반기 우수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