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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ome place../오늘의 책이 담긴 책상자

리치보이가 주목한 오늘의 책-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푸른숲)

by Richboy 2010. 10. 25.

 

 

 

 

 88만 원 세대, 루저, 잉여의 이름으로 익숙해진 20대들의 구체적인 경험과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들의 삶을 인문학적으로 성찰한 엄기호의 책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가 푸른숲에서 출간되었다.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이라는 부제처럼 저자 엄기호가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우리 시대의 20대에 대하여, 그리고 이들이 겪고 바라보는 이 세상에 대하여 함께 질문하고 토론하면서 길어올린 반짝이는 성찰을 담은 책이다.

 

 1부 ‘어쨌거나 고군분투’에서는 지성인에서 잉여가 된 대학생, 대학 서열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 우리 사회의 대학생의 현실을 드러낸다면, 2부 ‘뒷문으로 성장하다’에서는 교육, 대학, 민주주의, 돈, 사랑, 가족 등과 맞닥뜨리면서 쌓아온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을 낱낱이 보여준다.

 

  이들이 삶에서 체득한 통찰은 낯설지만 명쾌하다. 이들은 민주주의가 되든 혁명을 하든 내 삶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에 냉소한다. 최저임금과 알바 등 자기 경험을 통해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돈이 없으면 자유마저 빼앗긴다는 사실을 체득한다. 열린 교육이라고 하지만 단 한 번도 자신들에게 열린 적이 없었던 교육 속에서 폭력과 권력관계를 체득하며 갇혀 자랐다고 항변한다.

저자는 삶에 대한 입장의 차이는 서로 다른 삶의 조건에서 비롯한다고 말한다.

  지금 20대 삶의 조건이란 한마디로 예측 불가능, 기획 불가능이다. 이 시대에 이들은 ‘잉여’, 쓸모없는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자학 속에서 밖으로의 탈주가 아니라 안으로의 편입을 위해 기를 쓰고 살아야 한다. 저자가 발견한 것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분투를 하는 청년들의 모습이다. 다만 “청년이 서야 조국이 산다”는 말에 끌려 야만의 시대와 싸웠던 이전 세대와는 삶의 모습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조건이 다르기에 다르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추억, 논리, 언어에 기대어 지금의 20대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온당하지 못하다고 일침을 놓는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20대들이 가장 치밀하고 가장 속 깊게 그린 삶의 세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책은 20대들의 증언을 중계하며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 아니다. 대신 그동안 20대를 ‘위한’, 20대에 ‘대한’ 담론으로부터 소외되었던 이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이자,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회가 이들과 함께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아름답지 않은 청춘의 시절이란 없다, 다만 보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인문학의 눈으로 20대를 바라보다

‘김예슬 선언’은 우리 사회에 많은 성찰과 말들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정작 대학생들 반응은 달랐다고 한다. “명문대 중퇴가 보통대 졸업보다 훨씬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고 생각하니”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게 후회스럽다, ‘글 잘 쓰는 학생이라 자기소개서도 잘 쓸 테니 부럽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취업을 위한 스펙 7종 세트(학벌, 학점, 영어, 자격증, 해외연수, 외모관리, 성형)를 갖춰야 하는 지금 20대들에게는 “글 솜씨든 꿀벅지든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 모두가 탐해야 하는 아이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응 또한 기성세대들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왜 자기 문제인데 ‘짱돌’을 들지 않느냐고.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지금 20대를 둘러싼 논쟁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한다. 지금 20대를 비난하는 이른바 386들이 용감하고 순수하게 싸울 수 있었던 사회적 조건은 무엇이었는가? 지금 시대는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그렇다면 지금 20대의 입장을 이해할 언어를 가졌는가? 이 책은 전작 《닥쳐라! 세계화》,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등에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등의 담론을 현장과 일상, 개인의 삶 속에서 탐구해왔던 저자 엄기호가 이를 위해 역시 저자가 강의하는 연세대 원주캠퍼스, 덕성여대 학생들과 영화를 보고 페이퍼를 주고받으며, 이들의 구체적인 삶을 통하여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하여 함께 토론한 성찰의 산물이다.

 

“사람은 성장해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교육을 받고 사람을 만나고 자기 일을 하는 이유는 성장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성장하지 않는 삶을 비난한다. 그리고 그 비난은 대학생, 20대들에게 쏟아진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곧 성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인은 자립하여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참고, 즉각적인 욕망을 억누르며 자기의 인생을 기획하고 계획하는 삶이 바로 성장하는 삶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지금의 대학생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이들이 여전히 유아적이고 의존적이며 주체적이지 못하다고 말한다. 좌와 우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성장’에 대한 이야기에 기대어 현재의 대학생들을 비난하고 있다. _12쪽

 

우파들은 힘든 일을 하기 싫어한다는 점을 들어 지금 20대가 철이 없다고 비난한다. 좌파들은 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점을 들어 역시 철이 없다고 비난한다. 저자는 이것이 오독일 뿐이라고 말한다. 또한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 없는 비난은 모독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학생들이 증언하고 있는 것은 20대는 “성장에 대한 신화”에 기댄 비난, 비판, 세대론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다.

 

각 장을 이루는 대학, 민주주의, 교육, 가족, 사랑, 소비, 돈, 열정 등의 주제에 대한 20대의 글에서 이들이 다르게 성장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놓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품평의 시대”를 살아가기에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김예슬 선언’을 두고 글 솜씨를 부러워하거나 다이어트에 목숨을 걸듯 필사적으로 아이템을 탐할 수밖에 없다. 또한 서사가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가기에 이들은 뭘 해도 자기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냉소를 배우고, 자신이 세상을 바꾸기보다 세상에 자신을 맞추려는 생존의 법칙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저자: 엄기호

  “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라!”라는 말처럼 지금 선 자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겪어 글을 쓰는 정신노동자이자 활동가다. 세계화를 공부하기 위해 세계를 떠돌다가 2001년부터 3년간 필리핀에 사무실을 둔 국제가톨릭학생운동 아시아·태평양사무국에서 일했다. 교육을 성찰하기 위해 역시 대안학교와 강단에서 사람을 만나다가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 글로벌학교 팀장으로 일했다. 고담준론이 되어버린 신자유주의, 세계화, 교육 같은 말들을 현장에서 성찰한 이야기로 바꾸어 ‘낮게 더 낮게, 쉽게 더 쉽게’ 전달하려고 애쓰는 인문학자다.

  이 책 또한 지난 2년간 덕성여대와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서 학생들과 함께 쓰고 토론하고 강의한 내용이다. 즉 지금의 대학생들이 세상, 즉 정치와 경제, 가족과 연애, 돈과 소비, 때로는 생명에 대해 어떻게 경험하고 어떤 언어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공유한 지적 대화의 기록이다. 이것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시대,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1971년 울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을 마쳤고 같은 대학 문화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덕성여대, 연세대 등에서 강의하며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인권연구소 '창'의 연구활동가로 일한다. 《닥쳐라 세계화》 《포르노, ALL BOYS DO IT》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거꾸로 생각해 봐! 2》(공저)를 썼다.

 

청춘들, 세상과 삶에 대한 뜻밖의 성찰을 드러내다

-20대가 보는 정치, 돈, 사랑, 가족, 우리 시대의 자화상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한편으로 ‘우리가 몰랐던 20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계기가 된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이 바라보는 이 시대에 대한 통찰을 통해 우리 사회를 다른 시각에서 읽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을 통해 발언하는 20대들은 이들의 정치적 입장과는 무관하게 공통적으로 정치와 민주주의, 혁명에 냉소한다. 이들이 교과서를 통해 배우고 현실로 겪는 정치에서 체득한 정치성이다. 이승만 정권은 4·19혁명으로 이어졌으나 결국 5·16쿠데타를 맞지 않았는가? 마찬가지로 전두환 정권-87년 6월 항쟁-노태우로,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이명박 정부로 이어지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들은 되묻는다. “우리가 왜 싸워야 하는가?”

‘20대의 정치적 무관심’에 대해 쏟아지던 비판이 갑자기 ‘20대와 트위터가 선거를 바꿨다’는 흥분으로 뒤바뀐 것 또한 20대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20대들은 정말 불의한 시대를 바꿔보겠다고, 혹은 이 시대를 지켜내겠다고 결연한 마음으로 투표한 것일까?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그런 행위들이 재미있다는 게 이유일 뿐이다.

트위터가 새로운 정치의 도구가 되었다기보다는 트위터를 통한 정치가 일종의 오락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증샷을 찍어서 올리고 트위터로 개념놀이를 하는 것, 그것에 동참하는 것이 게임만큼이나 재미있어서 움직인 것이다. 이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장면이 개표가 진행 중이던 새벽녘의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트위터에서는 강남 3구의 개표율과 전체 투표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산수로 계산하여 결과를 미리 예측하는 그런 놀이가 줄을 이었다. 누구나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으면서도 밤을 새면서 그 ‘시뮬레이션’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검토하고 시시각각으로 새로운 계산 결과가 올라왔다. 이것 자체가 게임이지 않은가? _92~93쪽

사랑에 대해서도 우리가 속단한 것과는 달리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대에 관대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지나치게 쿨한 이들의 사랑에는 관용을 베풀지 못한다. 그런데 이러한 도덕적 비난은 이들의 삶에 서사가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무시한다. 또한 이들의 사랑법과 사랑의 현실마저도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부터가 세대론이 가진 한계일 수밖에 없다. 각자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는 세대론 대신 저자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사랑 때문에 좋아하는 문학을 포기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 학생, 서로의 곤궁함을 배려하여 등가교환이 사랑의 방식이라고 말하는 학생.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삶이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되었는데 어떻게 사랑이 임시적이지 않을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임시적인 사랑, 그것은 왜 또 사랑이 아니란 말인가?”

교육과 학교에 대한 학생들의 비판은 서늘하기까지 하다. 저자는 일본 영화 <P짱은 내 친구>를 학생들과 함께 보고 토론했다. 이 영화는 일본의 한 초등학교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기 위해 돼지를 기르던 학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이 돼지를 어떻게 처리할까를 토론하고 고민하다가 결국은 잡아먹는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교육 | 학교라는 이름의 정글, 98쪽) 그런데 학생들은 예상치 못한 반응들을 내놓는다. 학생들이 동일시하는 것은 바로 P짱, 돼지다. 기를까 말까, 먹을까 말까를 논의하는 가운데 돼지는 그저 그 결정에 따라 운명이 결정될 뿐이다. 지금 대학생들은 이른바 ‘열린 교육’ 세대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학교에서 경험한 교육이 바로 P짱의 운명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들이 말하는 것은 학교가 폭력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넘어 폭력적이지 않은 교육이 과연 가능한지를 되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