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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ome place../Richboy, 책방을 뒤지다!

일본이 주목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사이토 다카시

by Richboy 2010. 11. 10.

 

 

 

역사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거침없는 질문과 명쾌한 답변들
“유럽에서 시작된 근대화는 어째서 필연적으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가?”, “생명이 다한 것처럼 보이는, 자본주의라는 ‘녹슨 기관차’는 왜 멈추지 않는 걸까?”, “역사적으로 문화예술의 중심이었던 곳은 브랜드가 되고, 경제의 중심이었던 곳은 브랜드가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가 제국의 야망과 하나가 되고, 기본적으로 관용적인 이슬람교가 전 세계적인 분쟁의 불씨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또 무엇인가?”…….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은 인류역사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근원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자칫 놓치고 있었거나, 혹은 짐짓 외면해왔던 질문들과 그에 대한 통찰력 있는 분석으로 빼곡하다. 그러한 통찰력은 천편일률적인 내용을 답습하는 이른 바 ‘통사(通史) 류의 역사 책’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이 책만의 강점이자 비장의 무기다.

역사의 ‘톱니바퀴’는 어떻게 굴러가는가
세계사를 사유하고 통찰하는 다섯 가지 코드
욕망 + 모더니즘 + 제국주의 + 몬스터 + 종교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이 책은 원시시대 → 고대시대 → 중세시대 → 근현대시대의 순으로, 약간씩 말만 바꿔가며 천편일률적으로 답습하고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시중에 널려 있는 이른 바 ‘통사류의 세계사 책’들과는 차원이 다른 역사서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욕망’이라는 중요한 코드에서 출발하여 커피와 차, 혹은 알코올과 코카콜라가 어떻게 세계사의 큰 흐름을 만들고 변화시켜왔는지, 사람의 욕망을 자극하는 금은 어떤 과정을 통해 세계경제의 확고한 틀을 만들었고, 욕망을 자극하지는 않지만 강함과 실용성으로 무장한 철은 또 어떻게 세상을 뒤흔들고 지배해나갔는지 차근차근 살펴본다. 또한 브랜드와 도시가 욕망을 바탕으로 한 세계사에서 왜 그토록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도 파헤친다. 더 나아가 저자는 마치 브레이크 페달이 고장 난 기관차처럼 점점 더 가속력을 갖게 된 근대문명은 어째서 필연적으로 치명적인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 날카롭게 통찰한다. 그리고 방향을 조금 바꿔, 가장 근대적인 철학자로 자타가 공인하는 데카르트 철학의 영향을 받아 신체를 경시하게 된 유럽의 근대사회가 왜 유독 ‘시각’만은 중시할 수밖에 없었는지 밝혀낸다. 또한 ‘원근법’은 왜 다른 시대 다른 공간이 아닌 바로 ‘유럽의 르네상스시대’에 발명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고찰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근대사회가 ‘보다-보여지다’라는 구조를 극대화시켜 ‘보는 자’가 ‘보여지는 자’를 지배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낸 과정도 꼼꼼히 따져본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글로벌기업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안에 ‘제국주의 메커니즘’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까닭도 밝혀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교의 관점으로 넘어가, ‘일신교 3형제(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거의 모든 인류 전쟁사의 주범이 될 수밖에 없었던 기막힌 역사와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가 제국의 야망과 하나가 되고, 기본적으로 관용적인 이슬람교가 전 세계적인 분쟁의 불씨가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역사도 짚어본다. 이 책의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세계사의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간의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이 만들어낸 다섯 가지 힘, 즉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종교’다. 무엇이 세상을 움직여왔는지, 큰 흐름으로 살펴보면 인류 역사를 좀 더 쉽고 적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학창시절 누군가에게 쫓기듯 강박관념을 가진 채 세부지식에 연연하며 세계사를 공부한 것이 전부인 사람은 이 책에서 완전히 새로운 역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사이토 다카시 サイトウタカシ,齋藤孝

 

 

  현 메이지대학교 문학부 교수. 1960년에 일본 시즈오카 현에서 출생하였고, 도쿄대학교 법학부 및 동 대학원 교육학연구과 박사 과정을 거쳤다. 2001년 출간된 『신체감각을 되찾다』로 ‘신초 학예상’을 수상한 그는 지식과 실용을 결합한 새로운 스타일의 글을 선보이며 교육전문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일본 최고의 교육심리학자이자 CEO들의 멘토로 인정 받고 있는 그가 발표한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일본어』는 150만 부 이상 판매되며 밀리언셀러가 되어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NHK와 테레비도쿄에 정기적으로 출연하여 강연과 상담을 하고 있다. 저자는 나약한 교육이 나약한 인재를 만든다는 독특한 교육관에 따라, 기본과 원칙을 중시하는 강한 교육을 지향한다. 그가 자신의 교육 철학을 가르치기 위해 설립한 ‘사이토 메서드’는 현재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저자는 ‘창조성’과 ‘자율성’만을 앞세우다 보면 나약한 인재를 양산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오히려 기본과 원칙을 충실하게 익힌 사람일수록 창조적이고 승부근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는 나약한 교육을 받고 성장한 인재들이 일본의 사회와현 메이지대학교 문학부 교수. 1960년에 일본 시즈오카 현에서 출생하였고, 도쿄대학교 법학부 및 동 대학원 교육학연구과 박사 과정을 거쳤다. 2001년 출간된 『신체감각을 되찾다』로 ‘신초 학예상’을 수상한 그는 지식과 실용을 결합한 새로운 스타일의 글을 선보이며 교육전문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일본 최고의 교육심리학자이자 CEO들의 멘토로 인정 받고 있는 그가 발표한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일본어』는 150만 부 이상 판매되며 밀리언셀러가 되어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NHK와 테레비도쿄에 정기적으로 출연하여 강연과 상담을 하고 있다. 저자는 나약한 교육이 나약한 인재를 만든다는 독특한 교육관에 따라, 기본과 원칙을 중시하는 강한 교육을 지향한다. 그가 자신의 교육 철학을 가르치기 위해 설립한 ‘사이토 메서드’는 현재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저자는 ‘창조성’과 ‘자율성’만을 앞세우다 보면 나약한 인재를 양산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오히려 기본과 원칙을 충실하게 익힌 사람일수록 창조적이고 승부근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는 나약한 교육을 받고 성장한 인재들이 일본의 사회와 경제를 침체시킬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CEO와 사회지도층을 대상으로 ‘강한 교육’, ‘가르침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의 저서 중 국내에 소개된 것으로는 『반복학습이 기적을 만든다』『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코멘트력』『절차의 힘』『질문의 힘』『말하고 듣기의 달인』『읽고 쓰기의 달인』 외 다수가 있다.

 

 다섯 가지 코드를 알면 세계 역사의 흐름이 한눈에 보인다
현대세계는 한편으로는 굉장히 복잡하게 조직화되어가면서 동시에 전 지구가 하나로 긴밀히 연결(글로벌화)되어간다. 따라서 환경문제의 경우처럼 어느 한 지역이나 국가 차원이 아닌 ‘세계’라는 거시적인 단위로 머리를 맞대 궁리하고 대처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수많은 난제들을 안고 있다. 이것이 바로 세계사의 커다란 흐름과 맥락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이에 더해 역사를 바라보는 거시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이 요구된다. 어느 한 나라나 대륙의 역사가 아닌, 인류 역사(세계사)에 대한 이른 바 통찰력과 분석력을 갖지 못하면 당면한 현실을 정확히 읽어내고 눈앞에 닥친 문제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힘이 생기지 않는다. 세계사는 암기과목이 아니다. 세계사는 수학이나 물리학 이상으로 그 근원적인 이치와 작동 원리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가 중요한 분야다. 만일 당신이 학창시절부터 세계사라는 과목을 유난히 힘들어했고, 성인이 된 지금에도 역사책이라면 쳐다보기도 싫다며 고개를 살래살래 젓곤 한다면 역사라는 외투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애초부터 세계사는 왕이나 장군들의 생몰연도나 기억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입에 잘 붙지도 않는 무슨 주문 같은 까다로운 왕조명이나 인명을 달달 외워야 하는 암기과목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세계사를 입시 준비생에게나 필요한 실용과목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느 조직이나 사회엔가 속해 있어 궁극적으로 세계를 움직이고 역사를 만들어가야 하는 성인에게 세계사는 더욱 필수적이고 절실한 분야다. 무슨 일이든 핵심을 알면 나머지는 쉬워지는 법이다. 자잘한 것들은 일단 제쳐두고 중요한 코드(관점)를 중심으로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가며 역사를 공부하면 비로소 그 재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다행히 어른에게 필요한 세계사는 그런 자잘하고 낱낱이 흩어져 있는 파편 같은 지식이 아니다. 세밀한 내용까지는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생명이 다한 것처럼 보이는, 자본주의라는 ‘녹슨 기관차’는 도대체 왜 멈추지 않는가?”, “유럽에서 시작된 근대화는 어째서 필연적으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가?”, “역사적으로 문화예술의 중심이었던 곳은 브랜드가 되고, 경제의 중심이었던 곳은 브랜드가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째서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가 제국의 야망과 하나가 되고, 기본적으로 관용적인 이슬람교가 전 세계적인 분쟁의 불씨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었는가?”와 같은 근원적인 문제를 스스로 제기해내고 나름의 답을 찾아갈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석훈 교수(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88만원세대』 저자) 해제>
백과사전적 지식의 귀환,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1. 역사학, 아주 버릴 것인가?

……
경제학자인 내가 역사학에 접근하는 첫 번째 입구는 ‘경제사’이고, 두 번째 입구는 ‘경제인류학’이다. 경제인류학 연구라고 해봐야 한국에서는 자체적인 연구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태니까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경제사는 어떨까? 한국의 경제사는 대개 철종 시대에서 시작하고, 더 올라가면 영정조 시대에서 출발한다. 2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한국 경제사에서 삼국시대는 물론이고 고려시대도 사실상 고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조선 전기에 대한 연구도 희소한 상태에서, 과연 우리가 한국이라는 실체에 대해 올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사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토지대장도 구하기 어려운 그런 오래된 얘기들은 넘어가자. 그렇다면 현대사에 대한 연구는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가? 한국의 우파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경제개발의 시대 ― 혹은 일부에서 ‘개발독재’라고 부르는 바로 그 시대 ― 에 대해서는 역사적 차원의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가? 기업사로 분류할 수 있는 1950년대에서 1970년대에 벌어진 일들 역시 사료가 대규모로 사라지고 있는 중이지만, 정작 이런 연구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도, 자금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한국 역사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마르크스주의 유물사관을 논하던 시절에 해놓은 연구가 있고, 그렇게 욕은 하지만 일제시대의 실증사학에 의한 아주 오래된 연구들이 일부 남아 있다. 그러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관점에서 새롭게 재해석된 연구, 그런 것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역사학이 필요하지 않은 것인가? 굳이 해석학을 주창했던 빌헬름 딜타이나 폴 리쾨르 같은 사람들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역사는 시대에 따라서 해석되고 재해석된다. 현대에 재해석되지 않은 역사는 죽은 것이고, 시대가 역사를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후대에 그 시대도 재해석되는 것이다. 해석이 죽은 시대는 그 시대 자체가 죽었거나, 해석이 살아 있는 다른 시대에 필연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다. 역사학을 가지지 않은 나라에서 능동적으로 시대를 열거나 주도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단언하건대, 역사적으로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 전 세계에 드러내놓고 자랑할 만하다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서, 한반도에 뿌리내렸던 그 어떤 왕조도 지금의 우리처럼 역사에 대한 기록과 해석을 등한시하면서 국가를 이끌었던 적은 없었다. 지금 우리의 역사학은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 아니, 어쩌면 20대 이하의 세대에서 역사학은 이미 죽었다고 할 수 있고,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역사의 힘과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상상력은 불행하게도 그 동인(動因)을 잃어버린 상태다.

2. 거대한 ‘함단’과 단독 항해하는 ‘범선’?
화제를 일본으로 돌려보자. 역사학의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역사학을 버린 적이 없다. 한국에서는 모두가 돈과 실용만을 떠들어대는 오늘날 21세기에도 일본의 역사학은 튼튼한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역할을 거뜬히 해내고 있다. 또한 일본은 역사를 전문가들만이 아닌 일반 국민들도 사랑할 뿐 아니라 그렇게 얻은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촘촘하고도 빼곡한 연구들과 응용 저작들을 지속적으로 내어놓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아마도 그런 가장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이것이 일본이 가진 힘 가운데 하나라고 나는 본다. 우리는 일본의 역사학을 ‘역사왜곡’ 정도로 쉽게 폄하하지만, 냉철히 살펴보면 그것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의 역사학은 그 자체로 거대한 빙산과 같으며, 그 힘은 세계사에 대한 다각도의 재해석으로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힘들이 일본 자본주의를 위기 속에서도 계속 구해주고, 부패하지 않도록 자정능력을 만들어주며,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일반인들이 소외되지 않게 하는 원천 능력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메이지 대학 문학부 교수인 사이토 다카시가 21세기의 ‘생각하는 대중’을 위해 쓴 매우 특색 있는 통사이자 부문사인 이 책은 일본 역사학이 가진 힘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준다. 욕망에서 시작해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자본주의 ? 사회주의 ? 파시즘), 종교로 이어지는 다섯 가지 분류는 일반인에게 자본주의의 등장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계적인 경제 환원주의가 아닌 실제 역사를 구성했던 주요 요소들을 통해 인간사회를 재구성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등장과 전개라는 관점으로도 읽을 수 있고, 근현대 문화사라는 시각으로도 읽을 수 있고, 경제사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조건이라는 측면에서도 읽을 수 있다. 그 어느 쪽으로 읽든지 아주 흥미진진한 근현대사를 세계사라는 지평에서 펼쳐 보이고, 또 크든 작든 유의미한 깨달음을 줄 수 있다. 한국에서는 주경철 박사가 해양사라는 측면에서 항해사에 대한 작업을 시도한 적이 있다. 물론 유의미하고 중요한 연구이기는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주경철 박사는 너무 외로워 보인다. 항해사라는 미개척지를 열어가는 그의 행보에 비하면 이렇다 할 반향도 없고, 사회적으로 그 메시지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은 물론, 지금 우리가 다시 보아야 할 여러 주제들과의 동행 없이 이루어지는 까닭이다. 주경철과 사이토 다카시의 차이를 거대한 ‘함단’과 단독 항해하는 ‘범선’의 차이에 빗대어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역사학의 힘이 차고 넘쳐서 소소한 생활사와 비경제적인 요소의 경제사까지 다룰 여력이 되는 일본과, 쥐어짜고 또 쥐어짜 어렵게 책 한 권을 만들어나가며 근근이 버티는 한국 역사학의 차이, 그런 엄청난 차이가 여기에서 발견된다. 주경철과 사이토 다카시의 집단적 체력의 차이는 이미 30년 전에 공부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차이이고, 그것이 좀 더 극명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20년 후, 혹은 30년 후에는 어떻게 될까?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면 아찔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역사학을 버린 나라가 과연 지금의 경제적 덩치를 이끌고 내부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문제들을 어떻게든 해소하면서 다음 단계로의 진화를 계속해나갈 수 있을까?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역사학의 붕괴에서 생겨나는 부작용은 이런 국가나 사회와 같은 거창한 차원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들에게도 치명적인 결함을 만들어내고야 만다.

3. 백과사전적 지식의 귀환,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지식을 분류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백과사전형 지식’과 ‘전문가형 지식’이다. 단어 그 자체로, 얕지만 넓게 아는 것과 깊지만 좁게 아는 두 가지 유형의 지식 체계를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모든 부문에 대해 다 잘 알면 좋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고, 결국 개개인에게도 지식을 습득하는 패턴이라는 것이 생겨나게 된다. 한국에서도 백과사전형 지식은 이규태를 비롯해서 이어령에 이르기까지, 분명히 존재해온 하나의 패턴이었다. 그러나 경제 근본주의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IMF 경제위기 이후 이러한 백과사전형 지식체계를 갖춘 사람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10년 가까이 전문가형 지식을 갖춘 사람을 사회적으로 우대하고, 또 그렇게 사회의 지식 체계가 움직여나갔다. 학계만 보더라도 백과사전형 지식 시대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던 ‘학자’ 혹은 ‘지식인’이라는 단어보다는 ‘전문가’라는 단어를 더욱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분명히 그런 시기가 있었고, 지금도 우리는 한국의 10대들과 대학생들에게 ‘전문성’을 유별나게 강조하고 있다.
……(중략)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라서, 다시 한 번 백과사전적 지식이 필요한 순간이 오게 될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문화나 지식에서는 개별 생산자만이 아니라 기획자가 굉장히 중요해지게 되는데, 그 기획의 순간에 필요한 것이 바로 백과사전적 지식이다.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많아질 때 그들의 지식을 하나로 엮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내고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발상의 전환, 그것은 백과사전적 지식을 갖춘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하나의 블루오션이다. 흩어져 있는 지식들을 엮어내고, 그것들을 조율할 수 있는 사람, 다시 한 번 이런 종합기획자들의 시대가 한국에 오고 있다. 국민경제의 운용방식이 바뀌면, 동시에 지식에 대한 사회적, 물리적 조건도 바뀌는 셈이다. 역사학은 오랫동안 이런 백과사전적 지식에 들어가는 가장 좋은 입구였으며, 역사를 통해서 인류는 이런 방식의 지식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그런 지식체계를 갖춘 사람들을 재생산해왔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역사학을 통한 교육과 교양을 무시해왔지만, 지금 이 위기의 시대를 맞아 또 한 번 세상의 축이 바뀌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그러한 변화가 지금 발생하고 있는 중이다. 종합기획자, 그들의 시대가 다시 한 번 활짝 열리는 셈이다. 이 책을 나는 인문서나 역사서를 즐겨 읽는 독자뿐 아니라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에게도 적극 권해주고 싶다. 세계사에 대해서, 그리고 지금의 역사에 대해서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이들에게, 역사를 읽는 재미와 함께 생활의 소소한 것들의 기원과 기능에 관해 생각해보는 재미를 주게 될 것이다. 역사 비전공자에게 재미있는 역사서를 만드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들에게 사이토 다카시의 책은 좋은 입문이 될 것이고, 잃어버린 ‘종합 교양’에 대한 흥미를 되찾아줄 자극제가 될 수 있다. 또한 ‘맥락’과 ‘디테일’은 사이토 다카시의 중요한 미덕인데, 이 책에서는 그런 강점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한 번쯤 백과사전적 지식을 맛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보고 싶은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이 작지만 뿌듯한 입문서 하나를 권해주고 싶다. 최소한 세계사에 대한 이해는 높이지 못하더라도 백과사전적 지식이 어떤 것인지, 그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배울 것 같다.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저자
사이토 다카시 지음
출판사
뜨인돌출판사 | 2009-10-26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역사의 톱니바퀴는 어떻게 굴러가는가! 세계사를 사유하고 통찰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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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그림과 위대한 걸작을 가르는 1퍼센트 결정적 차이

나치스 독일의 공군사령관이자 히틀러의 오른팔이었던 헤르만 괴링의 집에서 위작이 발견되면서 온 유럽이 발칵 뒤집어졌다. 조사 결과 그 그림을 그린 메이헤른이 체포되었고, 그는 자신의 죄를 순순히 인정했다. 한데 놀라운 것은 그가 그린 다수의 베르메르 위작들이 당대의 비평가들, 네덜란드 3대 미술관 관장들, 그리고 나치스 콜렉터의 눈까지 오랫동안 감쪽같이 속인 채 완전한 진품으로 인정받고 있었다는 점이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와 판 메이헤른……. 재능과 기술적인 면만을 고려했을 때 두 사람 사이에는 겨우 1퍼센트의 차이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위대한 화가로 추앙받고, 다른 한 사람은 파렴치한 도둑으로 역사에 남았다. 평범한 그림과 위대한 걸작을 가르는 1퍼센트 결정적 차이는 무엇인가.

이 책은 전작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과 마찬가지로 연대기적 서술 방식을 지양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누가 봐도 잘 그렸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고 단순한 그림을 우주의 경지까지 끌어올리는 탁월한 ‘표현력’, 누구도 흉내 내거나 침범할 수 없는 자기만의 영역이자 고유한 양식을 만드는 ‘스타일’, 확고한 세계관의 바탕이 되며 현실을 뛰어넘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기반으로서의 ‘자기세계’, 그림이 캔버스의 좁은 틀을 단숨에 벗어나 현실세계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닐 수 있게 도와주는 독특한 ‘아이디어’, 그리고 한 가지에 올인함으로써 미술사라는 무림에서 진검승부를 벌일 수 있게 해주는 ‘몰입’이라는 다섯 가지 힘(코드)의 관점에서 위대한 화가 50인을 선정해 미술사 전반을 날카롭게 통찰하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전문가의 도움 없이 좋은 그림을 판별하는 심미안 키우기

지금까지 단행본 예술서 시장에 나온 책들을 보면 세부 콘셉트 면에서 차이는 있을지언정 거의 예외 없이 그림과 미술세계에 대한 확고한 권위와 객관적인 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특정 그림과 화가를 선정한 뒤 그 그림을 왜 좋은 그림으로 꼽을 만한지, 또 그 화가를 왜 위대한 거장의 반열에 올릴 만한지 날카로운 식견과 풍부한 지식을 곁들여 조목조목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그런 책들은 분명 유익하고, 그림과 미술세계에 대한 지식을 키워준다. 문제는 비슷비슷한 그런 콘셉트의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처음 보는 그림이 좋은 그림인지 아닌지 스스로 판별하는 눈을 키우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 책 『명화를 결정짓는 다섯 가지 힘』은 그런 면에서 시중에 나와 있는 수많은 예술서들과 확연한 차별점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스타일이란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중학교 때 배운 ‘함수’를 사용해봅시다. 학창 시절 수학시간에 우리가 배운 내용 가운데 ‘함수’의 개념만큼 도움이 되는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디어를 도출해낼 때 함수의 방법을 사용하면 매우 편리하고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함수는 y = f(x)의 ‘f’를 말합니다. 이것은 사상(mapping)이라고도 하는데, 누구나 중학교 수학시간에 배웠을 겁니다. y = 2x + 1과 같은 형식을 일차함수, y = 3 + 2x + 1과 같은 형식은 이차함수라고 하죠. 쉽게 말해서, ‘x를 하나 대입하면 y가 하나 결정된다’는 것이 함수이고, 함수의 식은 그 ‘변환방식’을 나타내는 겁니다. 예를 들어 y = 2x + 1이라는 식의 경우 x에 1을 대입하면 y의 값은 3이 되고, x에 2를 대입하면 y는 5가 되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요소, 즉 x에 대입하는 숫자가 아닙니다. x가 무엇이든지 그것은 우연히 넣어본 것일 뿐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f’, 즉 x에 무언가를 대입했더니 y는 이렇게 되더라, 하는 일종의 규칙 및 법칙성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미술의 스타일이라는 개념에 적용하면, 스타일이란 y = f(x)라는 변환작용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일차함수, 이차함수 등으로 표시되는 다양한 함수식은 ‘화가 개개인의 스타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똑같이 나부(裸婦)를 주제로 그림을 그려도 세잔과 르누아르의 그림은 전혀 다르다고 했는데, 그것은 세잔이 갖고 있는 변환작용, 즉 함수식과 르누아르의 함수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똑같이 x = 1을 대입해도 y = 2x + 1이라는 식에서는 y의 값은 3이 되고, y = 3 + 2x + 1에서는 y는 6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f는 변환작용이므로 x에 무엇을 대입하든지 y는 f의 법칙에 따라 값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결국 주제가 무엇이든 완성된 그림은 그 화가의 스타일이 되는 것이죠. 따라서 화가의 스타일은 수학에서 말하는 함수, 즉 변환의 법칙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본문 「함수로 이해하는 미술세계의 스타일」 중에서 (32~35p.)

긴 인용으로 다소 장황해졌지만, 이 정도면 미술세계의 ‘스타일’이라는 개념이 명확히 잡힌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먼저 그림과 미술세계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다섯 가지 키워드(힘)를 제시하고, 그 개념을 명확히 이해시킨 뒤 구체적인 그림과 화가를 예로 들어가며 차근차근 독자의 심미안을 키워준다.

저자가 ‘명화를 결정짓는 다섯 가지 힘’의 첫째 요소로 꼽은 ‘표현력’에 관한 내용도 흥미롭다. 얀 반 에이크가 그린 〈아르놀피니의 결혼〉을 예로 들어보자. 그에 따르면, 이 그림은 미술사의 수많은 걸작들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아도 좋을 만큼 대단한 걸작이라고 한다. 왜 그런가? 82.2×60센티미터로 의외로 작은 사이즈의 이 작품은 이토록 좁은 공간의 캔버스 안에 아무리 확대해도 흔들리지 않는, 굉장히 치밀한 구성의 그림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은 그림을 확대해보면 어딘가 부족한 점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무려 5백 년도 더 전에 그려진 이 그림은 아무리 확대해도 구성이 흐트러지지 않고 단단함을 잃지 않을 만큼 매우 정교할 뿐만 아니라 최첨단 하이비전 방송에 필적할 만큼 치밀하게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이렇듯 굉장히 치밀하고 구성이 너무도 완벽해서 하나의 우주가 되는 그림은 얀 반 에이크처럼 위대한 화가의 천재적인 표현력에서만 나올 수 있다. 표현력의 뛰어남을 간파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저자는 위에서 언급한 ‘확대해보기’와 그림의 일부 요소를 ‘가리고 보기’를 제안한다.
그렇다면 네덜란드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왜 위대한가? 이 책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그의 그림이 갖는 ‘질감’에서 실마리를 발견한다.

인간에게는 이렇듯 ‘사물을 촉감으로 인식하려는 본능적인 습성’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무엇이든 손으로 만져 확인하려고 하는 성향이 있는데, 그런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차츰 ‘질감’을 익혀가는 겁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손으로 만져보지 않고 눈으로 보기만 해도 사물의 질감을 알 수 있는 것은 이렇듯 어릴 때부터의 경험이 시나브로 축적된 결과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사물을 인식할 때 그 질감, 실재감, 손의 느낌을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리며 보는 겁니다. 따라서 만일 어떤 그림에 구체적인 질감이 표현되어 있으면 자연스럽게 인간의 오감 중 하나인 촉감이 자극을 받게 되는 거죠.
베르메르의 그림이 동시대 다른 화가의 그림들과 확연히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촉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다른 화가들 역시 나름 정교하고 치밀하게 그림을 그리지만 베르메르의 그림에서 구현된 그 뛰어난 ‘촉각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직물 하나를 비교해도, 베르메르가 그린 직물에서는 따뜻함이랄까 인간적 온기랄까, 그런 게 느껴집니다. 이것은 그의 그림에 손의 감촉을 촉발하는 ‘질감’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질감이 손의 감촉을 환기시키기 때문에 그림 속 직물에서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이죠.
― 본문 「베르메르 - ‘직물의 온기’와 ‘공기의 질감’까지 캔버스에 완벽하게 담아낸 촉각의 대가」 중에서 (83~84p.)

저자에 따르면, 베르메르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이 그런 직물의 따뜻함만은 아니다. 도기의 차가움과 물이 지닌 습기, 실제로는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공기조차 그의 그림을 보면 촉각적인 것으로서 살아나 우리의 감각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그는 본래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그림으로 그려낼 수도 없는 공기의 질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은 베르메르의 그림 외에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한데 그런 미세하고 투명한 대상의 구체적인 질감을 캔버스에 생생하게 표현해내는 일이 결코 말처럼 쉽지 않다.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 몸에 두르는 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반사하는 마루, 인물이 가진 피부의 질감, 물건의 촉감 등 모든 면에서 완벽히 재현되었을 때 본래는 만지거나 그릴 수 없는 ‘공기 자체의 촉감’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렇듯 베르메르의 그림을 감상할 때 표현력의 관점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질감’(혹은 촉각)의 측면에서 세밀히 살펴보면 그의 그림이 위대한 걸작으로 손꼽힐 수밖에 없는 비결을, 또 그가 위대한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명확히 이해하게 된다.


명화를 결정짓는 다섯가지 힘

저자
사이토 다카시 지음
출판사
뜨인돌출판사 | 2010-10-20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평범한 그림과 위대한 걸작을 구분짓는 결정적 차이는 무엇인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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