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 경제학사를 관통하는 통찰력과 폭넓은 혜안으로 분석해낸
현대 경제학의 치명적 약점과 한계! 경제학에 돌파구는 있는가!
“내가 경제학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전율을 느껴본 게 도대체 얼마만인가!
경제학 책이 이렇게 재밌을 수 있는가! 이런 재미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다.”
_우석훈, 경제학자,《88만원 세대》저자
경제학은 왜 그렇게 무기력한가?
2008년 발생했던 미국발 세계 경제 위기로 우리나라 경제가 크게 흔들거릴 무렵, 모 일간 신문의 시사 논평은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
“미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이번 금융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진단도 처방도 시원스럽지 못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묻는다. 왜 경제학은 그렇게 무기력하냐고.”
2010년 초에는 도요타자동차도 리콜하는 판에 한물간 경제학 교과서는 왜 가만 놔두느냐며 “시대에 뒤처진 경제학 교과서를 리콜하라.”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사회 과학의 여왕’이라고 불리던 경제학이 여왕의 자리는 고사하고 이렇듯 오늘날에는 불만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경제학자들의 예측이나 설명이 형편없다는 비판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이 터지기 10년 전, 하버드 대학 경제학자들은 주요 경제 동향을 예측할 목적으로 하버드경제연구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대공황이 터졌을 때, 이들은 경기 침체가 완만하게 진행될 거라고 예측했지만 현실에선 극심한 불황이 계속되었다. 경기가 곤두박질할 때마다 연구회는 이제 바닥을 쳤으니 곧 빠른 회복이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예측했고,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번드럽게 설명했다. 그러나 그 예측 또한 번번이 빗나갔다. 결국 연구회는 자진해서 문을 닫고 말았다. 경제학자 그 어느 누구도 대공황이 10년씩이나 계속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경제학이 처한 더 큰 문제는, 1930년 세계 대공황이든, 2008년 미국발 세계 경제 위기든, 예측은 둘째 치더라도 사후적으로나마 그런 경제적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도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아니, 설명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에 대해 이른바 주류 경제학자들은 “금융 위기는 시장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잘못 운영해서 발생한 문제”이며, 시장은 멀쩡한데 정부가 쓸데없이 끼어들어서 경제를 망쳤다는 식의 대답을 내놓기는 했다.
그런가 하면 오늘날의 경제학자들은 일반 대중의 정서나 생각과는 아주 동떨어진 생뚱한 주장을 태연하게 늘어놓아 빈축을 사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불황으로 실업률이 25%로 치솟았다고 하자. 그러면 사회 불안이 극도에 달하게 되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정권도 붕괴된다. 실제로 이런 살인적인 실업률이 1930년대에 미국에서 기록되었는데, 이때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을 비롯한 각종 특단의 조치를 취했으며, 온 국민의 걱정과 정치권의 몸부림이 25%에 이르는 높은 실업률에 쏠려 있었다. 그런데 이때도 유독 경제학자들은 “나머지 75%는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웬 호들갑인가?”라며 무덤덤한 태도를 취했다. 심지어 경제학자들은 미국 정부의 뉴딜 정책이 자본주의 시장 질서를 어지럽힌다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현실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무심한 태도는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우리나라가 부동산 투기 문제로 전국이 아우성쳐도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투기가 좋은 것이라고 찬양까지 한다. 이들은 누군가 부동산 거품 이야기를 거론하기라도 하면 그런 것은 이 세상에 없다며 즉각 면박을 주곤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경제학자들의 자질 문제인가, 아니면 더욱더 근본적인 문제일까?
매우 비현실적인 인간에 대한 시각, 무엇이 문제인가!
경제학이 이렇게도 현실과 동떨어지게 된 건, 근원적으로 볼 때, 인간에 대한 시각이 매우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핵심이 되는 단어를 하나만 콕 집어내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손익 계산’이나 ‘수지 타산’일 것이다. 경제학이 전제하는 인간은 얻는 것과 잃는 것을 꼼꼼히 비교한 다음 가장 이익이 되는 것을 찾아 선택하는 존재다. 이런 인간관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처음과 끝을 관통한다. 손익 계산을 잘 해야만 어떤 것이 최선인지를 알 수 있고, 따라서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인간관과 가정을 바탕으로 경제학은 시장에서 일어나는 현상뿐만 아니라, 시장 밖에서 일어나는 온갖 것들까지 설명하려고 든다. 언뜻 보아 경제학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여러 사회적 현상들, 이를테면 범죄, 흡연, 이혼, 성매매 등에 관해서 경제학자들은 개인들의 손익 계산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행동의 결과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한편으로는 범행에서 얻을 이익을 생각해 보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용을 따져 본 후, 그 득과 실을 비교해 본 다음 충분히 수지가 맞는다는 결론에 이르면 범죄자는 드디어 자신의 계획을 행동에 옮기게 된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런가 하면 빈곤이나 실업, 사채업, 인간의 장기 판매 등 경제적인 현상에 대해서는 일반인의 정서와 상당히 다른 설명을 내놓고 있다. 예를 들어, 가난한 사람은 천성적으로 게으르거나 혹은 소득보다는 여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까닭에 노동을 적게 하기로 작정했다는 것이다. 일을 조금하면 소득도 낮을 수밖에 없지만, 자기가 좋아서 가난해지기로 작정한 사람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따라서 실업과 마찬가지로 가난에 대해서도 경제학자가 특별히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태도다. 또한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종종 마지막으로 선택하게 되는 몸, 혈액, 장기, 유아 등에 대한 판매(이른바 ‘절망적 교환’)에 대해서도 경제학자들이나 이른바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를 금지하지 말고, 오히려 공식적으로 허용해 그 시장을 활성화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이 이를 팔아 돈을 쥘 기회를 넓혀 주는 것이 이들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이렇듯 일반인들의 정서에서 한참 벗어난 오늘날의 경제학자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의 행태를 수학적으로 설명하려고 든다. 실제로 100여 년 전부터 경제학은 고도로 수학화되어 왔으며, 그 결과 오늘날의 경제학 교과서는 온통 그래프와 수학 방정식, 그리고 통계 숫자들로 도배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요즈음 경제학계에는 수학을 이용하지 않은 논문은 아예 논문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되어 있다. 몇 년 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경제학회지에 연구 결과 논문을 수차례 보냈지만, 번번이 퇴짜만 당했다. 그후 그는 주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해설을 줄이는 대신 수학 방정식을 잔뜩 채워 넣어서 보냈더니 무난히 심사를 통과해서 발표되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이다.
경제학의 실패를 예고했던 대가들 vs. 경고를 무시하며 자본에 영합했던 현대 경제학!
오늘날 주류 경제학의 인간관과 가정이 틀렸다는 과학적인 증거는 매우 많다. 특히 최근의 신경 심리학자들이나 두뇌 과학자 등 첨단 분야 과학자들은 인간이란 손익 계산과 수지 타산을 통해 행동하는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실험 결과들을 무수히 많이 제시하고 있다. 또한 70여 년 전 케인스도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일일이 손익 계산을 해가며 합리적으로 행동할 여지는 별로 많지 않다고 주장했다.
어떻든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를 예측도 못하고 제대로 설명도 못했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 경제학이 이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새로 태어날 것인가? 놀라운 것은 오늘날 경제학자들로 하여금 경제학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게 해 준 과거 경제학 대가들이 이미 경제학의 실패를 꾸준히 경고해 왔다는 사실이다. 다만 그동안 경제학자들은 그 경고를 외면한 채 자본주의 시장의 유지에 유리한 것들이나 자신의 밥벌이에 도움이 되는 것들만 귀담아 들었을 뿐이다. 1930년대 대공황 때만 하더라도 케인스는 경제학자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질책하지 않았던가. 한동안 경제학자들이 이 질책을 받아들이는 듯한 시늉을 하더니 어느 때부터인가 외면해 버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경제학자들은 경제학 대가들의 질책만 외면해 버린 건 아니었다. 경제학 대가들이 진정으로 주장했던 핵심은 외면한 채, 형식만을 부분 취합해 왔던 것이다.
오늘날 경제학자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이 추앙해 마지않는 애덤 스미스 또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빼 버린 채, ‘보이지 않는 손’ 같은 외피만을 차용한 대표적인 예이다.
오늘날 경제학자들이 시장 경제를 설명할 때 가장 자주 쓰는 말은 아마도 ‘보이지 않는 손’일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돈을 좀 더 많이 벌어 보려는 욕심으로 기업들이 서로 경쟁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결국은 국민들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가 오게 된다는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시장에서 경제 활동이 최대한 자유롭게 이루어지도록 내버려 두라는 자유방임주의로 연결되며, 나아가서 되도록이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를 시장의 원리로 해결하자는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로 이어진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쓴 이유는 당시의 중상주의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유럽은 절대 군주 중심의 국민 국가로 재편되면서 상공업이 급속하게 성장하자, 국가의 부강이 최고라는 이데올로기 아래, 절대 군주와 상공인들이 야합해 국민에게는 저임금을 강요했으며, 무역 흑자를 극대화하기 위한 각종 보호 무역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하고 있었다. 당시 분위기는 마치 삼성과 현대가 망하면 우리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며 모든 유리한 정책과 특혜를 베푸는 현재의 분위기와 같았던 셈이다. 애덤 스미스는 당시의 이런 정부의 폭넓은 간섭과 야합을 당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질타하기 위해 《국부론》을 썼던 것이다. 또한 애덤 스미스가 스스로도 말했듯이 《국부론》은 심심풀이로 쓴 책이며, 글라스고 대학 도덕 철학과 교수였던 만큼 주저는 인간의 도덕과 심리를 다룬 《도덕 감정론》이었다. 사실 《국부론》은 《도덕 감정론》에서 다룬 인간의 여러 가지 심성 중에서 특히 이기심을 부각시킨 책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단지 이기심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경제학은 철저하게 실제 인간의 일상 행태에 바탕을 둔 학문이어야 한다고 애덤 스미스는 주장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경제학은 애덤 스미스의 이런 현실 인식은 배제한 채, 한 부분만을 취사선택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애덤 스미스의 맥을 이은 사람들은 앞서도 밝혔듯이 오늘날 경제학의 잘못된 인간관을 비판해 왔던 행태 경제학자(혹은 행동 경제학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만 잘못 해석되고 있는 건 아니다. 이 책의 저자인 이정전 전 서울대 교수는 리카도, 마르크스, 케인스를 거론하면서 그들이 과연 어떻게 현실과 경제학을 접목시켰으며, 무엇을 비판하고, 어떤 대안을 내 놓았는지 자세하게 전해 주고 있다.
맬서스와의 논쟁을 통해 도출했던 리카도의 차액 지대설을 설명하면서 지가 상승이 어떻게 국가 경제를 망치는지, 왜 마르크스는 기업들이 경쟁력 확보를 위해 설비에 투자를 하면 할수록 이윤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는지, 화폐 애착이 가져올 삶의 파괴를 막기 위해선 과연 무엇이 필요하다고 케인스가 주장했는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경제학이 리콜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장단점을 고루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을 더 잘 도와줄 수 있고, 그 사람의 도움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으며, 그 사람과 더 잘 어울릴 수 있다. 경제학도 마찬가지다. 경제학의 장점뿐만 아니라 그 약점과 한계를 명확하게 알아야 경제학을 진정 잘 이해할 수 있다.
경제학이 자본주의 시장을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치명적 약점 때문에 경제학자들이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고 그래서 제대로 설명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었다.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공허하게 느껴지고 일반 국민들의 정서와 동떨어진 것으로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그 치명적 약점에 기인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약점과 한계를 잘 알아야 경제학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경제학자들은 우리에게 이것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해주지 않는다. 경제학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경제학 교과서들을 보면 천편일률적으로 각종 그래프와 수학방정식 그리고 통계숫자들만 줄줄이 나열되어 있을 뿐 경제학의 약점이나 한계에 대한 진솔한 설명은 별로 없다.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위기를 경제학자들이 예측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언론매체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왜 예측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제 경제학은 현실로 눈을 돌려야 한다. 각종 그래프와 수치, 통계 자료들은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이 겪고 있는 현실 문제를 해결해 주는 데 쓰여야 하며, 이를 해석하는 경제학 교과서의 이론이 틀렸다면 과감하게 수정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실질적인 경제학, 현실적인 경제학, 행복 친화적인 경제학으로 거듭나야만 경제학 리콜이라는 한심스러운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경제학을 리콜하라
기업을 위한 클라우드 전략은 무엇인가?
전 세계는 클라우드 컴퓨팅에 주목하고 있다
매년 10대 IT 트렌드를 선정하는 리서치 및 자문회사 가트너는 클라우드 컴퓨팅을 2010년, 2011년 2년 연속으로 10대 IT 트렌드의 1위로 선정했다. 또한 IT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는 세빗2010에서도 최고의 화두는 클라우드 컴퓨팅이었다. 클라우드 컴퓨팅이 무엇이기에 전 세계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을까?
클라우드 컴퓨팅은 인터넷을 통해 필요할 때마다 컴퓨팅 리소스에 편리하게 접근하여 사용할 수 있는 일련의 서비스 환경을 말한다. 하지만 클라우드 컴퓨팅이란 용어가 널리 알려진 것에 비해 클라우드 컴퓨팅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을 단순히 인터넷으로 접속할 수 있는 데이터 저장공간 또는 오피스 프로그램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면 오산이다. 이 같은 서비스는 클라우드 컴퓨팅의 초기 서비스에 불과하며 클라우드 컴퓨팅의 진정한 의미는 지금까지 우리가 누리지 못했던 새로운 컴퓨팅 능력을 통해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클라우드 컴퓨팅은 아마존닷컴, 마이크로소프트, 세일즈포스닷컴, VM웨어 등 여러 업체가 관련 서비스 및 기술을 선도하고 있으며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상상은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이 책에서는 클라우드 컴퓨팅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 기업 차원에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최신의 정보와 논리적 분석을 통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CEO, COO, CFO 등 최고경영진이 클라우드 컴퓨팅의 장점과 우려점을 이해하고 경영전략에 클라우드 컴퓨팅을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지 비전문가 입장에서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
기업과 경영자는 왜 클라우드 컴퓨팅에 주목해야 하는가
클라우드 컴퓨팅은 개인의 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만 기업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걸린 패러다임의 변화, 즉 혁명적인 변화이다. 기업의 관점에서 클라우드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는 장점은 비용절감 효과이다. 클라우드는 저렴한 비용으로 비효율적인 기업 데이터센터를 대신한다. 경제위기 이후 기업은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사태를 대비해 설비의 70% 이상을 사용하지 않는 과다설비의 문제를 용인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과다설비는 IT 부서 역량의 75%를 유지관리에 쏟게 만든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과다설비 문제와 유지관리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지출되었던 과다설비에 대한 비용절감의 효과는 불경기에 기업들이 클라우드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클라우드 컴퓨팅의 혁명적인 면모는 비용절감 문제가 아닌 최종사용자와 데이터센터의 역할 변화에 있다. 지금까지 최종사용자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데이터센터 또는 인터넷에서 전송하는 결과를 보여주는 기기에 불과했다. 최종사용자는 데이터센터 간에는 일종의 주종관계가 존재했으며, 최종사용자는 데이터센터의 고성능 컴퓨팅 장치에 접근할 수 없었다. 하지만 클라우드 컴퓨팅은 주종관계를 깨뜨리고 최종사용자와 데이터센터 간 평등관계를 만들면서 새로운 업무처리 방식과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최종사용자의 컴퓨터 또는 손바닥에 들어오는 작은 기기로 고성능의 데이터센터를 맘껏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최종사용자가 고성능의 컴퓨팅 리소스를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우리는 그동안 상상하지 못했던 변화를 창출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클라우드 혁명을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절대로 유출되어서는 안 되는 데이터와 보안 문제. 클라우드 서비스와 기업 데이터센터 간의 동기화 문제 등. 그러나 현재 클라우드 컴퓨팅은 계속 진화 중이며, 문제는 조만간 해결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클라우드 혁명이 만드는 미래의 모습과 클라우드 혁명을 기업의 경영 전략에 반영하기 위해 기업 및 경영자와 실무자가 알아야 할 사항 등에 대해 심도 깊고 논리적인 분석으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클라우드 혁명
어디까지가 군중의 의견이고, 어디까지가 내 의견인가!
깊이가 필요한 시대, 천천히 느끼고 제대로 생각하는 법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스크린을 응시한다. 그가 내 눈을 제대로 마주친 건 5분도 채 되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주머니 속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습관적으로 메시지를 확인한다. 어젯밤 남긴 글에 누가 댓글을 얼마나 달았을지 궁금해진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이곳저곳으로 쉴 새 없이 이동한다.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바쁘다. 바빠! 쉴 새 없이 바빠!’
미국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파워스는 그의 저서 ‘속도에서 깊이로’(윌리엄 파워스 지음, 21세기북스 펴냄)에서 마치 지상 낙원과도 같은 디지털 마법에 흠뻑 빠져 있는 동안 우리는 매우 중요한 것을 잃었다고 말한다. 바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느끼고 생각하는 방법이다. 그는 이를 ‘깊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했다. 디지털 네트워크가 확장될수록 점차 우리의 사고는 외부 지향적이 되며, 내면을 살피는 대신 바깥 세상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클릭 몇 번으로 온 세상을 살펴볼 수 있으니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누군가 내 소식을 기다릴 것만 같고 빨리 답장해야만 할 것 같다.
인간에게는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와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 두 가지 충동이 공존한다. 그러나 현대인의 삶은 급속한 디지털의 발전으로 균형을 잃은 채 모두 연결되어 있는 삶만을 향하고 있다. 스크린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 앞을 떠나지 못한다.
여전히 살아있는 철학자들의 깊이 있는 지혜
세상과의 거리를 고민한 플라톤,
햄릿에게 생각하는 도구를 쥐어준 셰익스피어,
삶의 질서를 창조한 벤저민 프랭클린, 월든 숲으로 간 소로 등
“나는 고독 속에서 나만을 위한 실을 지어 번데기를 만들고, 그 번데기에서 빠져나와 더 나은 사회
에 알맞은 더 완벽한 창조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본문 중 ‘소로’의 글 발췌
과거에도 지금과 같은 때가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정보가 흘러넘치고, 분주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삶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창조적인 삶을 설계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갈망하는 모든 것을 그들 역시 갈망했다. 시간, 공간, 고요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깊이다. 저자는 과거로 돌아가 일곱 철학자들의 통찰을 빌려온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철학을 만들었다. 저자가 선택한 일곱 명의 철학자들은 바로 플라톤, 세네카, 구텐베르크, 셰익스피어, 플랭클린, 소로, 맥루한이다. 플라톤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새로운 기술(문자)이 인간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걱정하고 군중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고찰하였다. 대화법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통해 플라톤은 분주한 도시에서 잠시 벗어나 거리를 두는 삶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세네카는 분주한 세상 한가운데에서도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여 자신의 내면을 돌보며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었고, 인쇄술을 발명한 구텐베르크는 ‘책’이라는 내적 공간에 접속하는 도구를 만들어 군중들의 내적 읽기를 가능하게 했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에게 자신의 생각을 적는 테이블을 들려주었다. 또한 분주한 삶에 질서를 창조한 ‘13가지 덕목’의 벤저민 프랭클린, 월든 숲에서 자신만의 은신처를 만든 소로, 분주해진 마음의 온도를 조절하기 위한 맥루한의 아이디어 등 변화의 기로에서 남다른 생각으로 시대를 이끈 일곱 철학자들의 옛이야기들은 현대인들의 바쁜 눈과 귀에 현명한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거대한 입구로 들어 왔지만 마땅한 출구는 없는, 급속한 디지털 소용돌이에 휩쓸려가는 동안 우리는 어쩌면 제대로 된 사용설명서도 없이 입장만을 강요받았는지 모른다. 이제 모든 연결된 것에서 잠시 벗어나 멈추고 호흡하고 생각하라. 그러면 전 세계가 당신의 마음과 함께 속도를 늦출 것이다.
속도에서 깊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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