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6 [리치보이 김은섭의 책으로 만나는 세상]
(4) 가격파괴의 저주
김은섭 : 바로 <가격 파괴의 저주>라는 책입니다.
박은선PD님: 네에, 국내에는 지난 해 초부터 대형할인점을 중심으로 이른 바 <가격파괴 전쟁>이 있었죠? 그와 관련된 책인가요?
김은섭 - 네, 맞습니다. 이 책은 캐나다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고든 레어드가 쓴 책인데요, 우리나라는 지난 해부터 롯데마트에서 통큰 치킨은 5000원, 홈플러스 착한 생닭은 1000원, 지름 45㎝짜리 이마트 피자는 1만1500원, 두께 8㎝짜리 GS수퍼 위대한 버거는 7990원.... 이렇게 피자와 통닭을 시작으로 불붙기 시작한 대형 마트들의 가격 경쟁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고요, 티몬이나 쿠팡 등 반값 정도로 싸게 파는 소셜커머스에 이르기까지 바야흐로 ’가격 파괴’가 넘쳐나는 시대가 요즘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목이 <가격 파괴의 저주>라고 하니까, 현실에서 보면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책제목인데요...내용을 좀 더 살펴보면 가격파괴에 대한 숨은 진실을 어느 매체의 뉴스보다 더 잘 이야기하고 있는 책입니다.
박은선PD님: 말씀으로 미루어보면 가격파괴는 결국 소비자들이나 기업에 좋을 게 없다는 이야기 같은데요...
김은섭: 네, 그렇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요즘은 IMF 시절 못지않게 가격 할인이 범람해서 제 값을 주고 물건을 사는 소비자는 오히려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싸게 살수록 좋은 것 아니냐?”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하지만 가격 할인이 정말 소비자에게 좋기만 할까요?
그리고 과연 싸게 팔든 공짜든 팔기만 하면 기업에게 이로운 걸까요?
저자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값싼 물건에 대한 소비자의 탐닉은 21세기에 발생하는 모든 위기의 근원이 되고 있다”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싼 것 좋아하다가는 머지않아 결국 큰 코를 다친다.”고 이 책은 소비자와 기업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박은선PD님: 그럼 국내 대형마트들의 가격할인경쟁은 계속되고 있는데요...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소비자들은 이들 덕분에 정말 싼 가격에 이용하고 있는데요...
김은섭 - 네, 국내 대형마트들의 가격할인을 시작한 원래 목적dfm 한 번 살펴봐야 할텐데요.... 대형마트들은 피자나 치킨 등을 판매해온 기존의 업체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적정가격에 거품이 포함되었다고 본거죠. 그래서 그 거품을 제거해서 소비자들에게 이익을 돌려주겠다는 취지로 가격할인을 시작했습니다.
경제위기 이후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에게는 반가운 뉴스가 아닐 수 없었죠. 그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업체에서도 치킨이나 햄버거 심지어는 자전거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들을 내놓으며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할인제품의 수량이 한정적이어서 그것을 사기 위해 오래 전부터 줄을 섰음에도 불구하고 수량이 모자라 제품을 사지 못한 소비자들로부터 원성을 샀고요,
심지어 자전거 같은 경우는 급하게 할인가능한 제품을 제달하다 보니 조립불량과 상표권 침해 논란이 있는 제품을 수입해 전량 리콜 하는 일도 생겼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변 상권에서 치킨과 피자를 팔았던 영세업체들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혀 대형마트는 큰 원성을 사기도 했습니다.
박은선PD님: 아~ 그러니까 일종의 미끼 상품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해서 결과적으로는 매장을 찾아 다른 제품들도 구입하게 하는 노이즈 마케팅으로 활용한 셈이군요?
김은섭 - 그렇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시야를 넓혀서 세계를 바라봐도 마찬가지인데요... 세계적인 경제학자 토머스 프리드먼의 책 <세계는 평평하다>를 살펴보면요, ‘평평한 세계’를 주장하며 세계화는 이미 대세이고, 세계화 과정을 통해 나라간 무역을 통해 값싼 제품을 손쉽게 택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소비자인 우리 역시 이러한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왔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그저 제품 가격이 싼 것만 찾다 보니 기업들은 중국과 같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겨서 일해서 돈을 버는 중국 노동자들 숫자만큼 국내 노동자들은 실업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세계적인 대형마트인 월마트의 모토는 Everyday low price, 그러니까 “매일 낮은 가격”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싼 제품만 찾아 전 세계를 뒤지는 월마트와 같은 대형 마트 때문에
지역 재래시장이나 영세상인들의 매출은 크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버티지 못하고 결국 폐점을 해버려 지역 상권이 붕괴되어 버리죠.
오늘날 대형할인점의 의무휴일제도가 그 때문에 생겨난 건데요...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소비자인 동시에 노동자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소비자가 되어 값싼 제품을 찾아다닐 때, 우리의 일자리는 하나 둘씩 잠식을 당하는 셈이고, 결국 실업자가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겁니다.
최근 의무휴일제도 등은 소비자와 정부가 그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움직인 결과가 되겠죠.
한편 나아가 기업에게도 불안요인이 되는데요, 소비자들의 지갑이 얇아지고 실업자가 늘게 되면 결국 제품을 사줄 사람이 없어진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박은선PD님: 그렇군요. 가격이 싼 제품만 찾는 행위는 결국 나와 내 이웃의 일자리를 빼앗기는 행위가 된다....고 생각하니 아찔해지네요.
하지만 ‘당장 먹기는 곳감이 달다’고 저는 오늘 저녁에도 마트에 가면 싼 제품을 찾을 것 같은데요... 살짝 겁이 나긴 하네요. 그렇다면 가격 파괴는 언제까지 계속 될까요?
김은섭 - 할인점과 대형 마트의 가격 파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중국이나 동남아의 값싼 노동력, 값싼 에너지, 값싼 운송 시스템 등 이었습니다.
저자는 세계화의 상징인 월마트의 가격파괴 시스템은 결국 원유가격과 중국으로 인해 브레이크에 걸릴 거라고 말합니다.
그 중 가장 큰 이유 하나는 바로 에너지 고갈입니다. 장기적으로 세계가 에너지 부족에 직면할 것은 불가피한데, 글로벌 경제는 운송에 의지하므로 유가 상승으로 운송비도 상승해서 월마트의 저가 정책은 무너진다는 것이 저자가 내다보는 결론입니다.
또한 만년 생산자일 줄 알았던 중국인들이 소비자로 변했다는 겁니다. 1980년대 이래 세상에서 가장 싼 제품을 만들어낸 중국인들은 수십 년 동안 세계에서 유일하게 10퍼센트대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달러를 긁어 모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인들은 더 이상 일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되어 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중국 근로자들이 부족해지자 임금이 올라가고, 중국인의 소비 급등으로 유가가 따라서 급등하면서 중국산 제품의 평균 가격은 2007년 상승세로 돌아서서 중국산 제품가격이 본격적으로 비싸지기 시작했습니다.
박은선PD님: 그렇다면 싼 가격만 추구한 결과는 어떻게 된다고 이 책은 이야기하나요?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은 무엇이죠?
김은섭 - 이 책의 저자가 내다보는 미래는 우울합니다. 저자는 지금과 같은 제품이 풍요로운 시대는 머지않아 막을 내리고 1930년대 대공황을 겪었던 우리의 선조들처럼 절약이 미덕이고, 빚을 경계하는 태도가 주류(主流)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구체적인 대안은 이 책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해결책으로 우리 속담인 “싼 게 비지떡”에서 찾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비지떡은 두부가 될 물을 짜내고 남은 찌꺼기에다 쌀가루나 밀가루를 넣고 빈대떡처럼 부친 떡으로 값이 쌀 수밖에 없는 떡입니다.
김치처럼 꼭 있어야 할 음식도 아니고, 별 맛도 없는 비지떡을 싸다고 한꺼번에 사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양도 많고 맛도 없어 다 먹지 못해서 남겼다가 하루 지나 금방 쉬어서 먹지 못하게 될 겁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속담은 필요한 물건을 자기의 소득 안에서 여러 가능성을 따져 합리적으로 소비하라는 뜻을 의미합니다.
‘언제나 최저가’를 찾아다니는 소비생활은 초라한 생활 방식이 되고 말 겁니다. 싼 제품도 많이 사면 결국 큰 비용으로 소비하는 격이 될테니까요. 부자가 되는 비결은 적게 사고 적게 쓰는 것이겠죠.
그리고 싼 것만을 찾다보면 정체불명의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게 되거나, 혹은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제 3국의 노동자가 만든 옷을 입거나, 사랑하는 자녀에게 재료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짝퉁 장난감을 선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디서 더 싸게 살까?’를 걱정하는 ‘저가의 노예’가 되지 말고, 과연 내게 필요한 물건인지 아닌지, 살 것인지 말 것인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소비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업 역시 기업의 경쟁력을 ‘가격’으로만 승부하려는 얇은 생각을 버려야 할 겁니다. 똑똑한 소비자들은 기업에게 싼 가격보다 더 훌륭한 경쟁력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가격 파괴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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