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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되는 금주의 소설/시 신간 - 12월 둘째 주

by Richboy 2012. 12. 12.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성석제의 치명적 연애소설!
-고래잡이의 딸을 사랑하는 한 남자의 운명적 연애(戀愛), 그 아름답고도 간절한 구원의 서사!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성석제 작가가 장편소설로는 처음으로 쓴 연애소설인《단 한 번의 연애》를 펴냈다. 2012년 여름에서 초겨울까지 전작 형태로 단숨에 씌어진 이 소설은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고래잡이의 딸에게 매혹 당한 어린 소년이 중년의 남성이 되기까지 사랑과 치유, 구원의 서사를 그린 작품이다. 성석제 작가는 특유의 유머와 통찰, 그리고 동세대의 경험담을 풍부하게 활용해 사랑과 구원이라는 인간 본연의 보편적 테마를 극사실화처럼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황홀하고 달콤하면서도 치명적인 연애의 미학이, 깊은 좌절감과 극한의 희열 사이를 오가며 반복되는 연애의 본질이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게,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릴 정도의 묵직한 감동으로 그려진다. 그와 동시에 지금 우리 사회의 주역인 베이비부머 세대의 주인공들이 시대와 일상의 폭력을 넘어 사랑을 찾고 구현하는 과정 역시 흥미진진하다.

동해안 어촌마을(구룡포)에서 태어난 남자(이세길)는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고래잡이의 딸(박민현)을 만나 그녀의 매력에 사로잡힌다. 그 시점부터 남자는 유년 시절,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 데모와 미팅으로 대변되는 대학 시절, 그리고 군대(전경) 시절을 거쳐 사회인으로까지 이어지는, 한 여자만을 향한 아름답고도 운명적인 연애를 펼쳐간다.
고래잡이배의 포수인 아버지와 ‘나나’라고 불리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 집의 심부름꾼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던 민현을 알고 난 후 지속된 세길의 연애 여정에는 삶이 지닌 본연의 폭력성과 한국 현대사 50여 년의 격렬한 물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험난한 질곡의 순간순간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남자 세길의 한결같은 맹목적 사랑은, 비범하지만 위안의 장소가 없는 그녀에게 구원의 도피처가 되어 준다.

소설은 민현을 향한 세길의 연애 연대기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모든 현대적 폭력들에 맞서 인간과 자연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는 현재의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교차 병렬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성석제 작가 특유의 필담으로 리드미컬하게 현재와 과거, 그리고 시대상을 빠르게 오가며 이야기의 재미를 배가하고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가 있다는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한다. 《단 한 번의 연애》는 평생 단 한 여자만을 사랑했던 한 남자의 간절한 연애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폭력을 극복해내는 사랑의 가치를 다시금 웅변하는 작품이며, 동시에 현시대 인간이 극복해 나가야 할 폭력은 무엇이며 추구해야 할 삶의 가치는 무엇이지를 되묻는 진정성 가득한 소설이다.

■ 19세기 문학의 주제의식이 역전된 21세기 소설의 미학!
-《백경》과 《죄와 벌》의 주제의 역전과 변주를 통한 새로운 구원의 문제를 다뤄

소설의 시대라 불리며 세계적인 대문호들을 배출한 19세기 문학. 이 시대의 소설이 다룬 주제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작품들로 허먼 멜빌의 《백경》과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꼽을 수 있다. 19세기 세계문학 중에서도 단연 백미로 꼽히는 작품들이다. 전자는 자연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위대한 정신과 집념을, 후자는 죄와 구원의 주제를 다룬 작품이다.

성석제의 《단 한 번의 연애》는 이들 고전소설의 소재와 주제의 자장 안에 있으면서도 시대적 역전 현상을 생생하게 반영한 작품이다. 허먼 멜빌이 《백경》을 통해 광포하고 거대한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정신과 극복 과정을 다루었다면, 《단 한 번의 연애》는 역으로 인간의 탐욕이 고래와 같은 자연과 생명, 그리고 인류 절대 다수의 삶에 가하는 폭력을 경고하는 형태로 주제의 역전을 이룬다.

또 《죄와 벌》이 라스콜리니코프의 윤리를 구원하는 소냐의 여성적 치유를 그려냈다면, 《단 한 번의 연애》는 민현을 향한 세길의 남성적 헌신과, 평범함으로 위대함의 빈틈을 아우르는 포용력을 보여줌으로써 사랑과 구원이라는 테마의 변주를 이루어낸다.

즉 《단 한 번의 연애》는 19세기 소설의 시대가 보여준 위대한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21세기적 윤리와 구원의 의미를 새로운 미학으로 그려냄으로써 문학사적인 의의를 획득하고 있는 작품이다.

《단 한 번의 연애》는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연애의 간절함과 진정한 의미를, 중장년층에게는 함께 공유한 세대의 경험이 농축된 재미와 감동과 그리움을, 그리고 완성도 높은 진정한 문학작품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최고의 심미적 충족감을 선사할 것이다.

 


단 한 번의 연애

저자
성석제 지음
출판사
휴먼앤북스 | 2012-12-17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단 한 번의 연애》는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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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순간, 새로운 운명이 시작된다!
“인간들이여, 자신의 운명과 맞서 싸우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랑받은 판타지 소설, 『고양이 전사들』이 새롭게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의 고양이들은 평범한 애완동물도 아니고, 신화 속 존재도 아닙니다. 대신, 가장 위대한 전사가 되기 위해 운명과 맞서 싸웁니다. 주인공 파이어포도 마찬가지입니다. 러스티라는 애완고양이의 이름을 버린 그는, 훈련을 거듭하며 전사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파이어포와 숲을 지배하는 야생 고양이 종족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서로 더 많은 사냥 영토를 얻기 위해 벌이는 전투, 비열한 음모와 모함, 그리고 반전을 거듭하는 배신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고양이 전사들 세트

저자
에린 헌터 지음
출판사
주니어김영사 | 2012-11-27 출간
카테고리
아동
책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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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중심 교통로, 발해의 길!
세계 곳곳의 사람과 물건들이 오갔던 그 길을 달려 본다

사마르칸트를 지나 비단길까지,
새로운 길을 열고 싶었던 열세 살 홍라의 발해 무역길 대장정

발해는 어떻게 해동성국이 되었을까?
발해를 강하게 만든 가장 큰 힘,‘발해의 길’을 복원하다!


동아시아 네트워크의 중심으로 비단길에 버금가게 번성했던 발해의 길. 몇몇 흔적으로만 존재를 짐작케 했던 그 길 위의 이야기를 작가 이현이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이현은 발해가 ‘해동성국’이라는 칭호를 얻으며 세력을 떨치고, 신라의 장보고가 청해진에서 활발하게 해상 무역을 벌이던 때를 배경으로, 발해의 길에 선 열세 살짜리 여자아이 홍라를 탄생시켰다. 상단의 딸로 마냥 곱게만 자랐던 홍라가 어머니의 실종으로 상단의 빚을 떠안게 되고, 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역길에 올라 더 많은 이문을 남기려 분투하는 내용을 그렸다.

홍라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번성했던 발해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바둑판처럼 잘 짜인 수도 상경성, 발해와 서역, 당나라 상인들이 화려하고도 신기한 물건들을 늘어놓고 손님을 부르는 상점가, 당나라와 일본뿐 아니라 사마르칸트까지 쭉 뻗은 여섯 개의 고속도로 ‘발해의 길’등 오늘날 여느 대도시 못지않게 국제적인 발해의 면모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또한 발해는 고구려 후예들과 말갈족을 비롯해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었다는 것, 말과 초피(검은담비 가죽)가 특산물이었다는 것 등 역사 사실이 촘촘히 들어차 있다. 당시 분위기를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물론, 역사적 사실까지 자연스레 알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발해를 우리 역사로 되살려 내자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학교에서는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우리 역사라고 강조해 가르친다. 하지만 남아 있는 정보가 극히 적은 탓에 우리가 그리는 발해의 상은 어렴풋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덜 알려져 더욱 신비한 나라 발해의 면면을, 홍라가 발해 무역로를 따라 교역을 성사시켜 나가는 흥미진진한 모험담 속에 버무려 넣었다. 국제 무역으로 활발하게 세계와 교류했던 해동성국 발해의 진면목을 보여줄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교역을 했을까?
1200여 년 전 국제 상인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다!


작가 이현이 첫 작품《짜장면 불어요!》, SF 영역에 도전한 《로봇의 별》, 아픈 사회 현실을 다룬 《오늘의 날씨는》등의 전작에서 그러했듯, 입담 좋은 이야기꾼의 면모를 거침없이 발휘했다. 이번 책에서는 발해와 일본, 당나라에 이르는 장대한 공간을 배경으로 삼아, 대륙을 가로지르고 바다를 항해하며 자유롭게 교류했던 발해 상인의 모습을 그렸다. 사건은 홍라가 상단을 따라 일본으로 교역을 다녀오던 중 풍랑을 만난 데서 시작한다. 교역품을 실은 배는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어머니는 실종된다. 그 일로 빚더미에 오르자 홍라는 돈을 벌 수 있다는 머나먼 땅으로 길을 나선다. 열세 살 여자 아이가 능수능란한 상인들 사이에서 장사를 하겠다고 나섰으니 우여곡절이 없을 리 없다. 빚쟁이 아들인 쥬신타가 쫓아와 감시자로 동행해야겠다고 선언하고, 힘겹게 찾아간 청해진 상단들은 장보고의 죽음으로 자취를 감추고, 거래를 위해 찾아간 마오 상단의 상인은 홍라를 신뢰할 수 없다며 퇴짜를 놓는다.

엄청난 부를 거머쥔 거상이 등장하거나,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커다란 거래를 성사시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어린 나이로 무모하게 교역을 나선 홍라가 실수도 저지르고 시련도 겪으며 진짜 상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어, 어린 독자들로 하여금 동질감을 느끼며 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이야기의 중심 줄기가 ‘무역으로 이문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있다지만, 단순히 돈 버는 이야기만 하고 있지는 않다. 서로 더 많은 이문을 남기겠다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인들 사이에서도 ‘공생의 법칙’이 통용된다는 것을, 장사 또한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장사치의 발걸음은 세상에도 이문이 되는 걸음이어야 함을 넌지시 일러 준다.

진짜 꿈을 찾아 나서는 홍라의 힘찬 날갯짓

수년 전부터 어릴 때 경제 개념을 심어 줘야 한다며 아이들에게 ‘부자 되는 법’ ‘돈 버는 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돈이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모든 가치를 돈으로 따지게 되면 어쩌나 우려스럽다. 이 책의 주인공 홍라는 어른들이 걱정하는 아이들의 그 모습을 닮았다. 당장의 이문에만 집착하며 거래를 성공적으로 성사시켜야 한다고 자신을, 또 동료들을 몰아붙인다. 그런 홍라에게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돈이 그리 중요하냐고, 왜 험난한 교역을 이어 가려는 거냐고 질문을 던진다.

홍라의 답은 모든 것을 잃고 났을 때 고개를 내민다. 그토록 집착했던 돈을 한순간에 다 잃고, 언제나 옆에 있어 줄 것만 같았던 동료들은 자기 갈 길을 찾아 떠난 뒤다. 그제서야 홍라는 비로소 자기 자신을, 또 자기 주변을 돌아볼 기회를 갖는다. 그리고 세상에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는다. 다시 홍라는 길을 나선다. 이번에는 돈 때문이 아니었다. ‘새로운 길,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싶은 꿈’ ‘길에서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나를 만나고 싶은 꿈’을 찾아 떠나는 길이었다. 요즘 큰돈을 버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돈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었을 때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지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자주 목격하곤 한다. 홍라의 여정이 아이들에게 어떤 길로 가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홍라처럼 그 길을 마음껏 달려 보기를 바란다.

태풍을 만났다. 어머니가 실종되었다.

홍라는 어머니가 이끄는 상단을 따라 일본으로 교역을 다녀오던 중 풍랑을 만난다. 정신을 차려 보니 옆에는 무사 친샤와 천문생 월보뿐, 어마어마한 교역품을 실은 배는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버렸고 어머니는 실종되었다. 그 일로 상단이 빚더미에 올라 홍라는 노비나 다름없는 신세가 될 지경에 처한다. 순간 홍라는 어머니가 위급할 때 쓰라고 했던 묘원 열쇠가 떠오른다. 묘원에는 엄청난 값어치의 은화가 있었는데…….

 


나는 비단길로 간다

저자
이현 지음
출판사
푸른숲주니어 | 2012-11-30 출간
카테고리
아동
책소개
열세 살 발해 소녀 홍라의 대장정을 통해 발해 무역길을 되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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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다
남호섭 시인이 5년 만에 출간하는 새 동시집


초등학교 교과서에 「전학」, 「선암사」 등 여러 편의 시가 실리기도 한 남호섭 시인이 『타임캡슐 속의 필통』(1995), 『놀아요 선생님』(2007)에 이어 5년 만에 새 동시집을 냈다. 특유의 재치와 일상의 언어로 따뜻하고 섬세한 서정 세계를 구축해 온 그는 최근 동시와 시의 경계를 넘어서는 작품을 다수 발표하면서 동시의 세계를 확장하였으며, 이번 동시집에 이러한 그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겼다. ‘자연’과 ‘사람’에 바탕을 둔 그의 시 세계는 안중근, 김구, 장준하 같은 역사 인물을 비롯해 선배 작가 권정생과 임길택, 중국집 배달원, 소방관, 집배원 등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형상화하며, 학교, 생태, 농촌, 노인, 분단, 통일, 노동, 세계, 그리고 삶과 죽음의 영역을 두루 아우른다. 시인의 눈길이 가 닿은 한 편 한 편의 시에서 우리 삶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다. 모두 49편 수록.

“어린이들이라고 이해 못 할 세상일은 하나도 없어.”
삶의 구석구석을 이야기하며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허물다


전체 5부로 구성된 그의 세 번째 동시집 『벌에 쏘였다』에는 그동안 그가 보여 준 서정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가 곡진하게 담겨 있다. 휴대 전화 문자로 “우리 쌤! 고마워용 ♡ 보고 싶어요ㅠㅠ”라고 시인에게 안부를 전하는 학생 진아도 있고(「느껍다」), 아이들과 한데 어울려 지내다가 방학이 되어서야 겨우 시를 쓰는 시인도 있고(「방학 시인」), 새해 첫날 세배를 마치자마자 텅 비어 버린 집 안을 보며 서러워진 앞집 할아버지도 있고(「설날 오후」), 엉치뼈에 금 가고 어깨뼈가 부러져 병원 신세를 지면서도 아들 자랑 딸 자랑에 여념 없는 할머니 환자 여섯 명도 있다(「455년」).

산청 복음병원 305호에는 / 버스에서 넘어져 허리 다치고 / 안방에서 엉덩방아 찧어 엉치뼈 금 가고 /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어깨뼈 부러진 / 할머니 환자만 여섯 명 // 유리처럼 깨지고 금 간 뼈들이 / 더디게 아물어 가는 동안 / 물약 똑똑 떨어지는 약병을 매달고 / 아들 자랑 딸 자랑을 펼친다. // 침대 이름표 나이를 다 합해 보면 / 사백쉰다섯 살, / 아들딸 낳고 키워 낸 역사가 / 조선 왕조 오백 년만큼이나 깊다.
-「455년」 부분

시인의 시선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네 이웃 한 사람 한 사람과 그들의 삶 곳곳에 닿아 있다. 동시라고 해서 통통 튀고 아이들의 호기심을 만족하는 신기한 이야기들만을 노래하지도, 보고 싶은 세계만 보고 보여 주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여 주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우리가 살면서 배우고, 겪고, 해결해야 할 모든 세상 이야기를 우리 이웃들의 사연을 빌어 건강하게 풀어냄으로써 아이들이 마음속 깊이 공감하고 바라보게 한다. 동시집 『벌에 쏘였다』가 특별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늙음’과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뒷집 마당에 / 매화가 활짝 폈다. // 겨우내 댓돌 위에 놓였던 / 할머니 흰 고무신에 / 매화 꽃그늘 내렸다. // 겨울나러 / 큰아들네 간 할머니 / 편찮으신 몸으로 / 올해 아흔을 넘기셨다. // 홀로 가꾸던 텃밭은 / 얼었다 녹았다 / 흙이 보드라워졌는데 // 돌아오실까 / 돌아가실까 / 빈집에 매화만 활짝 폈다.
-「돌아오실까 돌아가실까」 전문

겨울나러 가신 할머니가 돌아오실지, 돌아가실지 담담하면서도 애잔하게 이야기하는 「돌아오실까 돌아가실까」를 비롯해, 중국집 배달원이 교통사고를 당한 현장을 보여 주는 「오토바이 타는 사람」이나, 고양이를 구하려다 순직한 스물아홉 젊은 소방관과 우편물을 배달하다 홍수에 쓸려 간 집배원 이야기를 보여 주는 「2011년 7월 27일」 등이 그렇다. ‘늙는다는 것’ ‘죽는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굳이, 알려 주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시인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리고 뚝심 있게,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담담한 어조로 아이들을 시의 세계로 이끈다. 해설을 쓴 반칠환 시인의 말처럼 ‘아이들에 대한 전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테다.

역사 인물과 사회 그리고 세계로 확장된 시 세계

해방되기 일 년 전, 두 청년은 군인이었다. //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갔던 한 청년은 탈출해서 중국 대륙 육천 리를 걸어가서 대한광복군이 되었다. 천황에게 목숨 바쳐 충성하겠다고 일본 육군 사관 학교를 다녔던 한 청년은 일본 꼭두각시 만주군 장교가 되었다. // (…) // 그러던 어느 날, 마지막 광복군은 등산하다 벼랑에서 떨어져 죽었다. 사람들은 그 죽음이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의심했다. 큰일을 해야 할 사람이 죽었다고 안타까워했다. // 몇 년 뒤, 만주군 장교 출신 대통령도 죽었다. 십팔 년 동안이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어이없게 자기 부하의 총에 맞았다. 어떤 일본인은 일본 제국의 마지막 군인이 죽었다고 슬퍼하기도 했다. // 일제 강점기에 한 살 차이로 태어났던 두 사람은 우리들 앞을 이렇게 걸어갔다.
-「두 청년」 부분

독자들은 『벌에 쏘였다』에서 여러 역사 인물을 만날 수 있다.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갔다가 광복군이 된 청년 장준하와 일본 육군 사관 학교를 나와 만주군 장교가 된 청년 박정희의 과거와 현재를 알게 되고(「두 청년」), 아들들보다 더 강단 있고 의연했던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와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을 만나는가 하면(「두 어머니」), 같은 마을에서 같은 해에 태어나 독립운동을 하다가 같은 해에 숨진, “둘이었으나 하나처럼 살았”던 윤동주와 송몽규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크고 깊은 울림이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하나처럼」). 시적 배경은 일제 강점기에 국한되지 않고 현대로 와 더욱 다양해진다. “새벽 종소리는 가난하고 아픈 사람이 듣고, 벌레랑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가 들어. 그걸 알면서 어떻게 장갑 끼고 종을 칠 수 있어.”라며 맨손으로 종을 치던 아동문학가 권정생을 만나기도 하고(「조탑리」), 우리나라 노동 운동의 불씨를 지핀 전태일과 그 아들의 유언을 가슴에 묻고 “내 몸, 가루가 돼도, 네가 원하는 거, 끝까지 할 거다.”라며 한평생 노동자들을 위해 싸워 온 이소선 여사를 만날 수도 있다(「작은 선녀」). 시인의 시선이 머물러 짚어 내는 인물들의 면면은 독립투사, 실향민, 노동 운동가 등 그대로 덮어 둘 수 없는 우리 역사와 사회 각 영역에 걸쳐 무척 다양하다. 시인의 눈길은 세계로 확장된다.

“아빠, 대통령 머리카락이 나랑 똑같을까요?” //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고 나오던 식구들이 / 막내 하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 소리가 너무 컸을까요. / 대통령이 그 자리에 우뚝 멈췄습니다. / “한번 만져 봐.” // 망설이는 막내에게 / 대통령이 한 번 더 말했습니다. / “만져 봐, 괜찮아.” // 대통령이 허리를 90도 꺾고 / 막내는 엉덩이를 뺀 채 / 1초쯤 지났을까요. // 막내가 크게 말했습니다. / “나랑 똑같네요.”
-「똑같네요」 전문

다섯 살짜리 흑인 아이가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한 장의 사진에서 포착한 「똑같네요」는 너와 나, 너희와 우리가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를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전달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2005년 10월, 조국이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게 되자 간절히 호소해 4년 동안 지속되었던 내전을 잠시나마 멈추게 한 코트디부아르 축구 선수 드로그바와 아프리카 외다리 축구팀 일화를 통해 서아프리카에 남은 가난과 싸움을 들여다보게 하고(「축구」), 새해 첫날 팔레스타인 폭격을 구경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사진 저편으로 똑같은 날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헤아려 보게도 한다(「폭격 구경하는 이스라엘 사람들」).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의 모습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지 않고 이처럼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은 아이들을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온전한 주체로 인정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감각적이고 섬세한 눈길로 바라본 자연과 시간

달빛 하얀 / 겨울밤 // 마당으로 / 고라니 한 마리 / 불쑥 들어온다. // 잠결에 오줌 누던 나하고 / 딱 마주쳤다. // 숨 막히는 / 0.5초 // 세상에는 / 우리 둘뿐
-「고라니」 전문

기와지붕 틈새 / 참새 집 있다. // 어미는 부지런히 / 먹이를 물어 날랐다. // 한 날 아침 / 새끼가 마당에 떨어졌다. // 깃털도 안 난 날갯죽지를 / 펴지도 오므리지도 못하고 / 우는 새끼 // 집에 넣어 줄 수도 / 그냥 두고 볼 수도 없는 / 우리 식구들 // 내려오지도 / 날아가지도 못하는 / 어미 새 // 그 사이를 / 흐르는 시간
-「시간」 전문

한편, 남호섭 시인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경탄하고 바라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하나를 이루는 순간에 닿아 있다. 고라니와 마주친 0.5초의 숨 막히는 시간, 사람과 동물 사이를 흐르는 그 찰나의 시간을 마치 정지 장면처럼 특유의 감각으로 포착해 내는데, 자연을 보호하고 생명을 사랑하자는 말 한마디보다 훨씬 더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화가 고찬규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그림

화가 고찬규는 이번 동시집을 통해 처음으로 일러스트 작업을 했다. 그는 남호섭 시인이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같은 학교 예술 대학을 함께 다닌 친구이기도 하다. 따뜻하고 서정적인 색감과 기법은 일상의 모습을 정감 있고 훈훈하게 보여 주며, 때로는 함축적으로, 때로는 현실적으로 그려 내어 시에 새로운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현대적 채색 인물화에 능한 화가의 특장점이 이번 동시집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시 속 인물에 생기를 더한다.


벌에 쏘였다

저자
남호섭 지음
출판사
창비 | 2012-11-30 출간
카테고리
아동
책소개
화가 고찬규는 이번 동시집을 통해 처음으로 일러스트 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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