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해 겨울, 저는 서재가 있는 제 방을 비우고 아이방으로 만들었어요. '아이방이 필요하다'는 아내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었죠.
아무 소리 하지 않고 그 날 저녁부터 사흘에 걸쳐 제 방을 비웠어요. 아이방을 따로 만들어줄 만큼 충분한 벌이를 하지 못하는 글쟁이 아빠의 설움치고는 가혹했어요.
제 방에 있던 수많은 책들은 거실로 강제퇴거를 해야 했고, 거실에는 손때 묻은 책상 대신 2미터가 넘는 대형 식탁이 자리 잡았어요. 거실에 있던 대형 TV는 안방 구석에 몰아넣었고요.
아이는 제 방이 생겼다고 마냥 좋아했지만, 저는 달리는 자전거 바퀴가 지나가는 바람에 한순간에 제 집을 잃어버린 개미마냥 '이게 뭐냐~' 황당해 하며 한동안 방황했죠.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났을 거에요. 우연히 한 권의 책을 읽고 저는 '아내의 말은 언제나 옳다'는 뭇남편들의 말이 맞구나 하고 탄복했어요. 게다가 아이방에 있던 책상을 꺼내어 거실에 옮겼어요.
아이방이 있는데 왜 거실로 옮겼냐고요? 이제부터 그 이유를 설명할게요.
우선 일본 국가공인 1급 건축사 야노 케이조가 쓴 <부자의 방>이라는 책을 소개해야겠어요.
'4,000명 부자의 방을 보고 알아낸 공간의 비밀'은 인테리어와 풍수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을 만큼 유익한 책인데요,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꼬마들의 방을 다룬 대목이었어요. 저자는 아이가 자기 방을을 갖는 건 공부방이 아니라 침실을 주는 것이라고 말해요. 저자는 책에서 이렇게 말해요.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근사한 방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사생활을 중시하는 미국 문화에 맞게 각자 방에서 시간을 보내는군’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상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많은 미국 가정에서는 부부와 아이들이 각자 침실을 갖는다.
하지만 미국인에게 침실은 정말로 ‘잘 때만 들어가는 방’이다. 깨어 있을 때는 모두 거실에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낸다. 또 식사를 한 뒤 각자 방에 틀어박히는 일도 없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거실이나 주방, 또는 식구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공부를 하고 숙제를 한다.
설령 자기 방에서 공부를 하더라도 방문을 닫은 채 외부와 완전히 차단하지 않는다.
잠을 자는 것도 아닌데 혼자 침실로 들어가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하고 걱정할 정도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을 당연하게 여긴다. 아이들에게 방을 따로 내어주는 문화 본래 미국에서 전파되었지만, 사용 방법이나 의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처럼 방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아무리 넓은 집이라도 가족이 불행해지는 불상사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집을 넓은 공간에 짓는다면 방을 많이 만드는 데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부자의 방, 야노 케이조, 122쪽)
보통 아이에게 방을 만들어주면 공부방이라 여기고 아이의 책상은 물론 아이의 모든 것을 아이 방에 함께 넣어주고 있는데요, 그것 잘못된 공간 활용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고개를 끄덕이게 해요.
그런데 막상 '나도 그렇게 해 볼까' 생각하면 하나 걸리는 게 있을 거에요. 거실에 TV가 있기 때문이에요. 아이의 책상을 거실에 놓으면 자녀들이 신경이 쓰여 TV를 제대로 볼 수 없을테니까요.
하지만 저자는 자녀가 공부하는 아이로 잘 키우고 싶다면 TV는 부모의 침실에 들이고 거실을 서재로 꾸며야 한다고 말해요. 특히 학부모가 되어 자녀를 감시하는 게 아니라, 가족으로서 공감의 대상으로 본다면 꼭 그래야 한다는 거죠.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라면 제 방을 무슨 '성'처럼 여기고 한발자국도 들이지 못하게 하는 경우를 경험했을 거에요. 아이방을 만들어 주면서 컴퓨터와 책상은 물론 아이의 모든 것을 넣어주며 "이제부터 네 할 일은 여기서 해, 알았지?"하고 부모가 먼저 약속을 한 때문인 거죠. 그러다 보니 아이방은 저만의 성역이 되어버린 거에요.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네 방은 만들어주지만 여기는 네가 잠을 자는 공간이야. 공부와 컴퓨터 사용은 거실에서 해야 하는 거야."하고 약속해야 하는 거에요. 아이방은 개방시키되 잠만 잘 수 있게 해야 하고, 거실은 서재, 즉 가정 도서관을 두어 거실에서 공부하고 책을 읽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거죠.
저는 이 책을 서재가 있는 거실 길고 긴 식탁에서 읽었어요.
'부자의 방'은 한 달 전 제 공간이 사라진 것에 대해 아내에게 푸념하는 도구로 활용하려고 읽은 책이었는데, 오히려 아내의 판단이 옳았구나 깨닫게 되었죠. 다음 날 저 아내에게 이 책을 보여주며 '네 말이 옳더라'고 극찬 했어요. 나아가 아이의 방에서 책상을 꺼내어 서재가 있는 거실로 옮기고 방과 후 집에 온 초등 1학년 아이에게 그 이유를 설명했어요. 아이는 '내 방이 더 넓어졌다'고 무척 좋아하더군요.
그 후 4년이 지났어요. 거실에는 TV 소음 대신 분위기 좋은 음악이 들리고요, 가족끼리 대화도 많아졌어요. 그 속에서 아이는 숙제를 하고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있어요. 유튜브도, 게임도 거실에 놓인 PC에서 하고 있어요. 저희 역시 신문을 읽거나, 책을 보거나, 오늘 해야 할 집안 일을 하죠. TV는 아이가 잠든 9시 이후 안방에서만 보고 있어요. 거실을 서재로 만들자는 가족의 약속을 지키고 있어요. '이게 되겠어?' 하는 생각이 '오~ 해 보니 되는구나.' 하는 확신으로 바뀐 거죠.
최근 정말 유익한 책에서도 <부자의 방>봐 비슷한 말을 하더군요.
EBS 영어 일타강사로 유며한 정승익 선생이 <어머니, 사교육을 줄이셔야 합니다>라는 책을 썼는데요, 사교육 시키는 것이 대수가 아니라고 말하는 내용의 책이에요. 집에서 공부 습관이 들지 않은 아이는 학원가서도 공부를 잘 할 수 없으니 공부 습관 없이 사교육에 돈을 들이지 말라는 주장이에요.
그러면서 사교육을 줄이는 방법 중에서 '거실에서 공부하는 부모'가 되라고 이야기 해요. 부모에게 거실에서 TV보는 것을 포기하는 일은 정말 가혹한 일이지만 아이가 공부 습관이 들게 하려면 꼭 필요한 특급처방이었어요. 저자는 본문에서 이렇게 말해요.
"습관은 만들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만들어지면 뇌에 각인이 되기 때문에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좋은 습관은 더더욱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저녁이면 어김없이 거실에서 TV를 보는 습관이 만들어지면, 이 아이는 과연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야 할 나이가 되었을때 스스로 방에 들어가서 공부를 집중해서 할 수 있을까요? 저녁 시간이면 즐기던 여유로움과 재미를 포기하고 힘든 공부를 할 수 있을까요? 이 과정이 너무 힘들지 않을까요?
저는 바쁜 아빠라서 저녁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지만, 그래도 집에 있는 동안은 아이들과 같이 거실에 모여서 저녁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합니다. 이를 위해서 거실에는 TV를 없애고, 책장에 책을 가득 꽂아두었습니다. 거실에 2미터에 달하는 대형 테이블을 놓아서 여기서 밥도 먹고, 공부도 하고, 이야기도 나눕니다. 소파가 있으면 더 편안한 소파에 앉을 것이기에 소파도 없앴습니다. 거실에 놓인 긴 책상에 모여서 아이들을 책을 보거나 해야 할 공부를 하고, 저는 옆에서 신문을 보거나 책을 봅니다."
거실을 서재로 만드는 일은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좋아요. 특히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하는 초등 저학년 때 라면 적극 추천해요. 그래야 공부습관이 들기 쉬울 테니까요. 초등 중고학년이라고 해도 걱정하진 마세요. 습관이 드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릴 뿐 익숙해질 거에요.
거실에서 TV를 없애고 서재로 만들면 일단 가족간 대화가 많아져요. TV에 눈이 쏠린 채 밥을 먹을 때 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하죠. 그래서 전보다 가족의 근황을 더 잘 알게 되요. 무엇보다 가족이 거실에서 TV를 보지 않고 책을 읽거나 집중하는 환경이라면 아이 역시 공부를 수월하게 되죠.
그럼 반대로 여전히 거실에 TV가 있는 보통가정의 아이들의 솔직한 심경은 어떨까요?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 해요.
"거실 공부의 장점을 한 번 더 강조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기 어려운 상황을 그려보겠습니다.
아이가 집에 왔는데 부모님은 거실에서 대형 TV로 재밌는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습니다. 아이도 옆에 앉아서 같이 보고 싶겠죠. 그런데 부모는 자녀에게 방에 들어가서 숙제를 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씩씩대면서 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책상에 앉았는데 도무지 공부를 하고 싶은 '동기'가 안 생깁니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TV소리에 신경이 쓰이고, 부모님이 원망스럽습니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으니 에너지 소모가 심합니다. '능력'이라는 것은 행동이 얼마나 수월하게 일어나는지를 따지는 것인데, 이런 상황이라면 공부라는 행동은 시작조차 하기 너무 힘듭니다. 그렇게 아이는 방에서 제대로 된 공부를 안 하게 되는 것입니다.
'환경 조성'은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이 환경에서 아이가 공부를 잘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겁니다. 다만 거실 공부는 자녀 교육에 있어서 언제나 모범 답안이기 때문에 답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굳이 오답을 선택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머니, 사교육을 줄이셔야 합니다, 정승익, 156쪽)
"자식이 잘 된다는 데 무엇은 못할까?"
모든 부모의 마음일 거에요. 초중고 부모들이 한 달동안 지출하는 사교육비는 평균 70만원 정도 된다고 하더군요. 실제로는 더 많을 거에요. 사교육비를 커버하려면 부모는 더 열심히 일을 해야겠죠?
아이가 사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에요. 가정에서 공부 습관이 들어야 학교 뿐 아니라 학원에서도 공부를 할 수 있어요. 공부 습관은 부모가 잡아줄 수 있고, 가장 좋은 방법은 거실을 서재로 만드는 일이에요.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증세다" 아인슈타인의 말이에요, 꼭 기억하세요.
리치보이 - <행복한 부자 학교 아드 푸투룸 1, 2>의 저자, 도서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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